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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플레2021-12-02 17:29:12

글을 쓰는 당신을 위해

필리프 팔라도, <마이 뉴욕 다이어리(My Salinger Year)>

 

 

<마이 뉴욕 다이어리>는 꿈을 안은 채 대도시 뉴욕에 발을 내딛는 젊은이를 따라가고자 한다. 조안나는 작가의 삶을 간절히 원하지만,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무시할 수 없기에, 되는대로 글과 가까이 있을 수 있는 직장에 취업한다. 언뜻 보면 최적의 조건처럼 보인다. 작가 에이전시는 작가들과 교류를 맺을 수도 있고, 출판업에 관해서도 배울 수 있으며, 글쟁이들이 모인 업계 상황을 파악하기도 좋아서, 작가 지망생에겐 분명 좋은 자리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부터다. 조안나에게 닥쳐오는 위기들, 그녀의 심리를 뒤흔드는 순간들은 모두 이 일자리로부터 비롯되기 때문이다. 전통 있는 뉴욕의 한 작가 에이전시에서 대표의 조수직으로 취업하게 된 조안나에게 대표 마가렛은 당신이 작가가 아니라는 이유로 고용했다고 말한다. 우리 회사에서 일하려면 작가는 안된다고 말이다. 그러니까 이 회사에선 조안나가 작가로 등단하고 싶은 열망을 숨길 수밖에 없다.

 

 

 

 

<마이 뉴욕 다이어리>는 어쩌면 가깝지만 멀리 있는 것들에 관한 딜레마를 다루기도 한다. 조안나는 근무처에서 J.D. 샐린저(『호밀밭의 파수꾼』(1951) 저자) 관련 업무를 맡게 되는 사람인데도 정작 그 작가의 소설을 단 한 편도 읽어보지 않았다. 심지어 샐린저는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유명 작가이며, 조안나 또한 문학 전반에 관심이 많은 작가 지망생이라, 역시 소설가를 지망하는 남자친구 돈은 이런 조안나를 보면서 신기해한다. 조안나는 샐린저와 통화까지 했는데도 정작 그녀가 그의 글과 조우하는 순간은 한참 뒤에서야 성사된다. 어떻게 보면 조안나가 몸담은 회사도 그렇다. 작가의 집필과 출판 업무 전반을 지원하는 에이전시라는 이유로 글과 가까이 있는 듯 보이지만, 정작 이 회사의 사람들은 아무도 ‘글’을 쓰지 않는다. 그래서 조안나가 할 수 있는 건, 정해진 양식에 따라 타자기로 찍어낸 ‘답장용 편지’를 공장처럼 찍어내는 일이다. 글을 쓰는 작가들을 관리하면서도 한편으론 결코 글과는 가깝지 않은 회사에서, 조안나가 혼란과 괴리감을 맛보게 되는 건 어쩌면 운명이 아니었을까.

 

 

 

 

따라서 조안나는 이 회사에서 그간 가깝게 느껴왔던 것들이 부쩍 멀어졌다는 생각에 자꾸만 사로잡힌다. 원래 글이라는 건, 자신의 내면과 헐벗은 채 마주하는 일이 아니었나. 그런데 조안나가 쓰게 되는 답장용 편지에는 그녀가 시를 쓰고 글을 적어오면서 추구해오던 것들이 더는 남아 있지 않다. 진심이 사라진, 가식과 위선만이 남은 이 자리에 영혼 없이 말라가는 잉크 자국들이 진솔한 감정을 표출하는 이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셈이다. 하지만 조안나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일을 해야만 한다. 일을 그만두면 생활을 영위할 수 없으며 작가로 등단하기 위한 집필 활동 또한 이어갈 수 없다. 그런데 그녀가 아무리 의식하지 않으려고 해도 이 회사에선 손에 붙잡을 수 있던 것들이 멀어져만 가는 것 같다. 따라서 중대한 결심처럼 보이는 조안나의 선택이 비록 극적인 갈등 서사 구조로 쌓아 올린 결과물이 아니라는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조안나에게 있어서 더없이 중요한 인생의 터닝 포인트라는 사실만큼은 자명하지 않을까.

 

 

 

 

 

<마이 뉴욕 다이어리>는 꿈을 좇는 고단한 청춘들을 보듬어 주려는 마음을 숨길 생각이 없다. 오히려 아주 명확한 의도를 내비치며 관객에게 스며들고자 한다. 특히나 이 영화는 저마다의 이유로 소리 없이 잊혀간 세상 속 수많은 문학인의 마음을 스크린을 통해서 위로해주려고 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컴퓨터를 멀리하고 타자기를 고집하는 마가렛 역시, 글을 쓰려는 조안나를 고단하게 하는 포지션에 있는 인물이긴 해도 문학의 가치를 사랑하고 글을 아끼는 사람인 것만큼은 확실하다. 그래서 이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을 통해 우리는 급변하는 시대 속에서 경시되는 가치들이 무엇인지에 관해 한 번쯤 생각할 수 있게 된다. 지금 이 글을 쓰는 나 역시 아무렇지도 않게 키보드 자판을 두들기고 있다는 사실에 흠칫 놀란다. 종이와 펜을 꺼내서 손맛 가득한 글을 써보는 것도 분명 필요한 일이다. 이토록 스산한 겨울에, 글 쓰는 사람들을 위한 따스한 영화가 찾아왔다.

 

 

 

 


 

본 콘텐츠는 '씨네랩'으로부터 초청 받은 '영화 <마이 뉴욕 다이어리> 시사회'를 통해 작성된 글입니다.

작성자 . 드플레

출처 . https://brunch.co.kr/@cena0223/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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