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4-05-08 18:06:54
[JIFF 데일리] 사라진 거장 피아니스트를 찾아서
<그들은 피아노 연주자를 쐈다>
시놉시스
뉴욕의 한 음악 비평가가 브라질의 젊은 피아노 거장 테노리우 주니오르의 행방불명 사건 뒤 숨겨진 진실을 밝히는 탐험에 나선다.
EDITOR AMY PICK
쿠바 라틴 재즈를 다룬 <치코와 리타>를 만든 트루에바와 하비에르 마니스칼이 만든 신작 영화로브라질 천재 피아니스트의 존재를 좇는 영화다. 피아니스트 이름은 ‘테노리우 주니오르’. 남미에서 일어난 군사독재 정권과 문화인들의 탄압과 함께, 당시 테노리오의 동료를 비롯한 주변 인물들의 인터뷰, 역사적 상황들을 단서 조각들로 진실을 맞춰간다.
테노리우 주니오를 찾아서
이 영화의 주인공 ‘테노리우 주니오르’. 1960년대 재즈 삼바의 시대를 풍미한 최고의 피아니스트 중 한 명이다.
“그가 브라질 음악에 끼친 영향은 어마어마합니다. 그의 선율은 예술적이며 피아니스트 중에서도 최고입니다”.
그의 지인들은 입을 모아 그의 예술성 뿐만 아니라 인간성에도 극찬을 보낸다.
그런 브라질의 인재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 당시 군사독재를 펼치던 브라질 군부에 의해 한밤중에 잡혀간 것.
영화는 인터뷰를 통해 최고의 피아니스트가 음악가들 사이에서 사라지는 것, 한 가정에서 사라지는 것,
문화와 개인적인 측면에서 상황을 조명하며 지인들이 안고 갈 고통과 그리움을 담아낸다.
다큐멘터리를 뛰어넘어
자칫 지루한 다큐멘터리로 끝날수 있는 영화를 다채롭게 꽉꽉 채워넣었는데,
브라질의 음악 거장들의 인터뷰와 테노리우의 음악을 애니메이션과 결합하여 시청각을 모두 사로잡았다.
또 감독은 수많은 테노리우 지인들의 인터뷰와 당시 감금되었던 수용소를 직접 찾아가 테노리우가 겪었던
고통을 고스란이 관객들에게 전달할 뿐만 아니라 본인의 생각을 가감없이 던지며 사라진 예술가에 대한
안타까움과 애정을 표한다.
영화, 음악, 미술 LET'S GO
영화는 음악, 인터뷰, 역사, 하비에르 마리스칼의 작화가 조화를 이뤄 재즈와 브라질 역사를 알지 못해도 충분히 즐길수 있는 영화다. 또한 브라질의 음악이 전세계 음악을 뛰어 넘어 영화사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담겨져 있으니 씨네필들이라면 안 볼 이유가 없는 작품!
EDITOR_AMY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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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솔한 에세이, 자기 구원의 문을 열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참석한 영화 <더 웨일> 시사회 관람 후기입니다.
272kg의 거구로 세상을 거부한 채 살아가는 대학 강사 ‘찰리’는 남은 시간이 얼마 없음을 느끼고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10대 딸 ‘엘리’를 집으로 초대한다. 그리고, 매일 자신을 찾아와 에세이 한 편을 완성하면 전 재산을 주겠다고 제안한다.
대런 아로노프스키의 <더 웨일>은 불편한 영화다. 엄청난 거구의 찰리가 포르노를 보며 자위하는 초반부 장면부터 그렇다. 자기 몸을 지탱하지도 못하는 사람이 높은 칼로리를 자랑하는 음식을 게걸스럽게 입에 밀어넣는 걸 보다보면 팝콘과 콜라를 내려놓고 싶어진다. 그 뿐만이 아니다. 마치 베일을 하나 하나 벗기듯 찰리가 막무가내로 사는 이유를 조금씩 알게 되면 그를 지켜보기가 더 어렵다.
그에게는 삶의 의지가 없다. 그는 1주일 안에 죽을 수 있는 걸 알고도 초콜릿과 피자, 치즈를 추가한 미트볼 샌드위치와 탄산 음료를 계속해서 먹는다. 그에게 폭식은 자기 자신을 죽이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는 거식증에 걸렸던 연인을 돕지 못했던 자기 자신을 죽이려 한. 또 이는 동성애자였던 연인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세상에 분노하는 마지막 방법이기도 하다. 그래서 깊은 자기 혐오에 빠진 채 자기 방에 틀어박힌 그의 모습은 거북하고, 보기 불편하다.
여기까지만 보면 <더 웨일> 또 한 번 대런 아로노프스키다운 영화처럼 보인다. 그의 영화는 대체로 우울하다. 염세적인 주인공들이 자주 등장하기 때문이다. 또 기독교적 가치나 상징을 부정적으로 활용하기로도 유명하다. 평범한 구원이나 행복 대신 인간의 모순과 광기를 보여주는 게 그의 장기이기 때문이다. 성경 속 등장 인물을 인간을 환멸하는 염세주의자로 만들어 버린 영화 <노아>처럼. 얼핏 보기에는 이번에도 다르지 않다. <더 웨일>은 찰리와 토마스의 만남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자기혐오에 빠진 채 죽어가는 한 남성은 구원 받으려면 신을 믿으라는 전도사의 조언을 가볍게 무시한다.
지옥, 현실을 부정한 대가
하지만 <더 웨일>은 예상했던 전개와 결말을 절묘하게 빗겨 나간다. 영화는 구원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반대다. <더 웨일>은 그 어느 때보다도 명확하게 구원의 길이 존재한다고 선언한다. 단지 그 길이 신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달려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찰리와 그의 주변 사람은 본인들이 만들어 낸 지옥에 빠져 있다. 흥미로운 것은 그들이 지옥을 만들어내는 방식이다. 그들은 현실을 부정한다. 다 각자의 모습을 숨기고 있다. 우선 찰리는 자기 존재를 부정한다. 그는 자기가 허락한 몇몇 사람(~~와 토마스)을 제외하면 자기 존재를 숨긴 채 살아간다. 집 밖으로 나서지도 않고 바깥 사람에게 자기 존재를 보여주지도 않는다. 당장 본인은 대학 강사지만, 노트북 카메라를 가린 채 줌으로 강의한다. 매일 저녁 피자를 배달시키지만, 자기 안부를 물으며 걱정해주는 피자 배달부에게 단 한번도 자기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다. 새생명 선교회 소속 전도사 토마스는 복음을 믿으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의 말은 처음부터 전부 거짓말이다. 그는 새생명 선교회 소속이 아니다. 한때는 소속 전도사였으나, 거리에서 전단지를 나눠주는 선교 방침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도망쳐 나왔기 때문이다. 믿음이 강해서 찰리에게 전도하는 것도 아니다. 그는 자기가 생각하는 선교 방식이 전정으로 옳다는 걸 증명하려는 아집에 사로잡혀 있을 뿐이다. 찰리를 간호하는 리즈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찰리가 곧 죽을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다. 찰리가 폭식하는 이유도 알고 있다. 하지만 현실을 알면서도 부정한다. 음식을 한 번만 잘못 삼켜도 심장에 무리가 가는 찰리에게 리즈는 고칼로리 음식을 꾸준히 가져다 준다. 이처럼 영화 속에는 자기가 처한 현실을 부정한 채 살아가는 인물들이 가득하다.
더 나아가 이들은 자기도 믿지 않는 방식으로 남들을 도우려 한다. 찰리는 그의 학생들에게 솔직하게 에세이를 쓰라고 가르친다. 화려한 수식어를 빼고, 그럴듯한 명언도 빼고 오직 자기만의 생각과 느낌을 담아서 글을 쓰라고 한다. 정작 본인은 얼굴조차 보여주지 않으면서. 속했던 교회에서 도망쳐 나온 토마스는 성경을 읽고, 신을 믿으면 행복해질 수 있다고 찰리를 설득한다. 리즈의 태도도 모순이다. 찰리가 행복했으면 좋겠다며 그의 자기 파괴적 행동을 돕다가도, 그가 치료 받지 않고 병원도 가지 않으려 한다며 크게 화낸다. 오랜만에 찰리를 만난 전처 메리도 찰리와 화해하는 듯 하다가 결국 다투고 만다. 자기가 엘리를 잘못 키운 것 같다면서도, 다른 방법은 없다며 찰리의 도움을 무시해버린다. 그 결과 그들의 만남과 헤어짐은 다 상처로 가득하다. 스스로도 믿지 않는 구원을 남들에게 강요하고 있으니 진정으로 도움이 될 리가 만무하다.
진솔한 에세이의 힘
하지만 영화는 이들을 지옥 속에 남겨두지 않는다. 그들이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 그 방법이 '진솔함'이다. 본인들이 천국이 아닌 지옥에 있다는 걸, 그리고 그 지옥을 스스로 만들어냈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흥미로운 것은, 그가 학생들에게 에세이를 진솔하게 쓰라고 강조하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찰리도 내심 고통스러운 진실을 알고 있다는 점이다. 그가 엘리의 에세이를 애지중하는 것은 또 하나의 증거다. 그는 아프거나 힘겨울 때마다 소설 <모비 딕>을 비판하는 엘리의 에세이를 소리 내어 읽는다. 그 에세이는 솔직해져야 한다는 가르침을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사실 <모비 딕>은 읽기 어려운 소설이다. 고래에 대한 설명이 매우 길게 나올 뿐만 아니라 분량도 많다. 또 여러 방면으로 해석할 여지를 남기는 주제를 다루기에 난해하다. 하지만 <모비 딕>이 형편없다고 비판하기는 어렵다. 수많은 전문가들이 극찬하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 <모비 딕>이 재미없다고 말하는 에세이는 다른 사람의 평가나 관점은 의식하지 않는 매우 솔직한 글이다. 바로 엘리의 에세이가 그렇다.
엘리는 <모비 딕>이 지루하고 어려운 책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대신 자기 경험을 살려 소설을 읽어나간다. 그녀는 소설 속 고래를 찰리에 비유하고, 고래를 죽이고 싶어하는 애이햅의 입장에서 에세이를 써 내려간다. 어린 시절 엄마와 자기를 떠난 찰리에 대한 미움을 고래에 투영한다. 실제로 영화에서 엘리의 첫인상은 매우 부정적이다. 그는 찰리에게 상처를 주기로 작정한 사람처럼 보인다. 시를 읽고 감상을 써보라는 이야기에, 엘리는 말도 안 되는 욕을 써놓는다. 찰리가 아빠로서 호소할 때는 들은 척도 안 하다가, 그가 모은 전재산 14만 달러를 주겠다고 하자 찰리의 부탁을 들어준다. 찰리의 집에 와서 학교 숙제인 에세이를 쓸 때도 찰리가 추천한 시가 엉망이라고 욕한다. 또 스스로를 혐오하게 된 찰리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고, 심지어 SNS에 올려 그를 조롱한다.
하지만 찰리는 엘리를 다르게 본다. 이미 그녀의 에세이에서 진짜 그녀의 모습을 읽었기 때문이다. 남들에게 휘둘리지 않고 솔직하게, 자기만의 주관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엘리를 본다. 또 자기 행동 때문에 딸이 얼마나 상처 입었는지도 안다. 그래서 그는 딸의 독한 말들을 듣고서 화를 내기는 커녕 솔직함을 마음에 들어한다. 계속해서 이상한 사진을 찍는 엘리의 행동을 두고 세상을 자신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것이라고 이해한다. 학교에서 쫓겨날지도 모른다는 사고뭉치 딸 엘리에게서, 찰리는 자신이 강조하던 '솔직함'의 미덕을 본다. 그래서 그것이 소중하고 중요하다는 것을 엘리에게 알려주고 싶어 한다. 왜냐하면 그는 그러지 못했으므로. 찰리는 앨런과 함께 하기로 결정하는 순간을 제외하면 솔직하게 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경험상 솔직한 것, 자기만의 시선과 관점을 유지하는 게 삶을 살릴 수 있는 길이라는 걸 내심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는 단순하고 맹목적인 부성애가 아니다.
구원을 향해 내딛는 고통스러운 발걸음
하지만 엘리의 에세이는 찰리에게 위안을 줄지언정 그를 구하지는 못했다. 찰리가 실천에 옮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솔직해져야 한다는 것,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간에 떳떳하게 자기가 하고 싶은 말과 행동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이를 실천에 옮기자니 찰리는 용기가 없다. 또 무섭다. 머리로는 알지만, 그런다 한들 자기가 진짜 구원받을 수 있을지 확신을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의 나약함은 피자 배달부를 만났을 때 온전히 드러난다. 매일 같이 피자를 가져다 주던 배달부는 좀처럼 문을 열지 않는 찰리가 궁금한 나머지 호기심에 가는 척하다가 피자를 받으러 나온 찰리를 목격한다. 그는 거구의 찰리를 마주한 후 혐오스러워하며 자리를 뜬다. 이에 찰리는 미친듯이 폭식한다. 배달부의 호기심이, 찰리에겐 크나큰 불행이었고, 그의 자기 혐오가 터져 나온다.
그런데 이러한 파괴적인 순간을 거치면서 찰리는 역으로 용기를 얻는다. 의도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자신을 외부에 공개한 상황이 되었으므로. 솔직해질 수 있는 계기가 원치 않게 생긴 셈이다. 그래서 찰리는 노트북을 켜서 수강생들에게 제발 솔직하게 글을 쓰라며 욕설 섞인 메시지를 보낸다. 마지막 에세이 수업에서는 자신의 메시지대로 진정성 있는 글을 쓴 학생들을 칭찬하며,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노트북 카메라를 키고, 자기 모습을 공개한다.
마침내, 고래는 구원받았다
그러나 찰리가 자기 모습을 공개하기로 결정한 데에는 또다른 이유가 있다. 엘리다. 어느 날, 찰리가 잠자는 사이 토마스와 솔직하게 이야기할 시간이 생긴 엘리. 그녀는 자기가 교회 소속 전도사도 아니고 가족과의 불화 때문에 집에서 가출했다고 털어놓은 토마스의 이야기를 몰래 녹음한다. 또 SNS를 뒤진 끝에 그의 가족을 찾아내 연락한다. 그 결과 토마스는 마침내 가족에게 돌아간다.
혹자는 이 장면을 보면서 엘리를 배신자라고 생각할 수 있다. 속사정을 어렵게 털어놓은 친구를 신고한 셈이니까. 찰리는 다르다. 엘리의 에세이를 읽어 본 찰리에게 이 사건은 다른 의미다. 자기에게 미운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했듯이, 엘리가 토마스에게도 동정심을 솔직하게 표현했다고 이해한다. 또 솔직함이 구원의 열쇠가 될 수 있음을 깨닫는다. 예상과 달리 가족과 빠르게 화해하고, 가족에게 돌아가게 되어서 행복해하는 토마스를 보면서 더욱 확신한다. 그래서 찰리는 자기혐오의 끝을 찍은 뒤에 엘리에게 에세이를 읽어달라고 부탁한다. 그녀가 에세이를 읽을 때, 찰리는 마침내 깨달음과 확신을 실천에 옮긴다. 깊은 검은 화면에 스스로를 가뒀던 고래가 드디어 밝은 세상을 마주하고 일어나 걷는다. 그렇게 고래는 자기 혐오를 버리고 구원 받는다.
더 나아가 진솔함이라는 깨달음은 찰리 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도 구원의 문을 열어준다. 자기에게 진솔해진다는 것은 곧 자기 욕심과 이기심을 깨닫는다는 의미다. 이는 타인에게 간섭하고, 구속하고, 원하는 바를 강제하는 악순환을 끊어낼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후반부에 리즈는 과거 찰리가 자기 오빠인 앨런을 도와주었듯이, 자기도 찰리를 돕고 싶었다고 말한다. 설령 그가 원하지 않더라도. 오빠 대신 애정을 쏟을 사람으로 찰리를 고른 셈이다. 동시에 자기 욕심을 직시하면서 찰리와 화해한다. 그녀는 찰리가 병원 치료를 받지 않는다고, 그가 병원비를 낼 수 있는 돈을 엘리에게 주겠다고 결정하자 크게 화를 낸 것이 모두 본인의 욕심과 바람 때문이었다고 인정한다. 이처럼 <더 웨일>은 찰리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을 가두고 있던 모든 이들이 문을 열고, 스스로 채운 족쇄를 마침내 풀어버리는 구원의 이야기다.
찰리의 집이 인상적인 이유
물론 <더 웨일>의 이야기는 보편적이다. 자기 자신을 솔직하게 인정함으로써 스스로를 구원해야 한다는 자아 성찰의 이야기. 이는 누구에게나 익숙할만한 메시지다. 그러나 <더 웨일>의 진가는 메시지에만 있지 않다.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한 흔적이 보이기 때문이다. 찰리의 집을 활용하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몇몇 대목을 제외하면 모든 장면은 찰리의 집 안에서 진행된다. 그런데 이 집이 매우 좁다보니 찰리의 거구와 대비를 이루면서 유달리 답답하고 음울하다. 덕분에 이 공간에 담긴 여러 의미가 잘 드러난다. 찰리를 감싸고 있는 죽음이 손에 잡힐 듯 느껴지고, 이 집에 발을 들이는 사람들의 트라우마나 상처가 더 강조되기도 한다. 더 나아가 고해소 같기도 하다. 자기 밑바닥을 마주하면서 진실을 깨닫는 공간도 되기 때문이다.
촬영 방식 덕분에 공간적 특성은 더 잘 살아난다. 1.33:1의 화면비를 선택한 게 대표적이다. 가로로 좁은 화면비에서 좁은 공간과 거구의 몸은 전체 화면을 거의 다 차지한다. 그 결과 공간의 분위기와 다층적인 의미는 직관적으로 전달된다. 클로즈업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도 영리한 선택으로 보인다. 협소한 공간을 주된 배경으로 삼고 있기에 영화는 인물들의 대화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이때 클로즈업 컷은 대화의 흐름에 따른 각 인물의 감정선 변화를 보여주기에 적절하다. 인물의 표정을 집중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브랜든 프레이저의 연기는 공간 미술, 촬영, 각본에 이르는 모든 영화적 선택을 최선의 결과로 엮어낸다. 찰리는 사실상 영화의 모든 장면에 등장해 혼자 힘으로 감정 굴곡이 심한 이야기를 끌고 가는 인물이다. 브랜든 프레이저는 이러한 캐릭터가 버겁지 않고, 그의 심경 변화가 충분히 이해되는 연기를 보여주는 데 성공한다. 동성 성추행 피해, 과도한 스턴트 연기로 인한 혹사, 이혼과 같은 배우 본인의 사연이 더해지면서 더 짙은 호소력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가 크리틱스 초이스와 미국배우조합상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고, 제9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유력 남우주연상 후보로 꼽히는 이유를 궁금해 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E(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내 모습을 직시할 때, 비로소 문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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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변을 왜곡되어 보게 만드는 내면
누구나 내 안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때론 대화하며 살아간다. 나의 심리 상태는 외부의 시선을 형성하는 데 꽤나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리가 기분이 좋을 때 바라보는 세상과, 기분이 나쁠 때 바라보는 세상은 전혀 다르게 느껴진다. 실제 모습과는 다르게 외부의 모습을 왜곡시키는 경우가 많다. 좋은 기분일 때는 모든 것이 아름답게 보이지만, 나쁜 기분일 때는 모든 것이 괴상하고 기이하게 보인다. 이건 개인이 아무리 좋은 마음으로 조정하고 노력한다고 해서 조절되는 건 아니다. 특히나 우울증 증상이 심각해졌을 때는 자신은 잘 한다고 생각하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영화 <스마일> 1편은 개인의 심리가 외부 세계에 미치는 영향을 공포 스릴러 형식을 통해 잘 보여주었다. 등장인물들은 괴상한 스마일 전염병에 걸리며 웃음을 지은 채 자살하고, 이를 목격한 사람이 다시 감염된다. 마치 우울한 사람과 자주 접할수록 그 감정이 전염되듯이, 영화는 감정의 전염을 무척 효과적으로 표현했다. 공포 장르의 틀 속에 있으면서도 심리 스릴러적인 요소가 강하게 느껴졌다. 이번에 개봉한 <스마일2>는 음주운전과 남자친구의 죽음으로 인해 몰락의 길을 가다가, 다시 재기하려는 스타 가수 스카이(나오미 스콧)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첫 번째 감정] 스카이의 아픔
스카이는 음주 운전 사고로 남자친구가 죽는 것을 옆에서 목격했다. 한때 엄청난 인기를 누리던 스타 가수였지만, 그 사고로 인해 심리적 충격을 받았고, 대중의 비난도 받아왔다. 스카이는 사고 이후 육체적인 후유증과 더불어 심리적인 고통을 겪고 있으며, 그 고통은 점점 심해져 마약 성분의 진통제를 찾게 된다. 그녀의 아픔은 단순히 육체적 고통을 넘어 심리적인 문제와 깊이 얽혀 있어 견딜 수 없는 상태에 이른다.
영화 속에서 스카이는 정신적으로 안정되지 않은 상태로, 소속사와 어머니의 압박 속에 무리하게 복귀를 준비한다. 주변 사람들은 그녀가 아프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를 외면하며 성공과 재기를 강요한다. 심지어 어머니조차도 스카이에게 쉴 틈을 주지 않고 끊임없이 그녀를 밀어붙인다. 스카이는 심리적으로 안식할 공간을 찾지 못한 채, 점점 더 깊은 고통 속으로 빠져든다. 그녀의 아픔은 외면받고, 고통은 해결되지 않은 채 누적되어간다.
스카이의 아픔은 단순히 개인적인 고통을 넘어선다. 그녀는 과거의 실수로 인해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하고, 주변의 기대와 압박은 그녀의 고통을 더욱 심화시킨다. 그녀는 무대 위에서 화려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부담감 속에서 자신의 상처를 감추려고 애쓴다. 하지만 그 고통은 결코 사라지지 않으며, 점점 더 깊은 상처로 변해간다. 스카이는 자신의 아픔을 외면하려 하지만, 그 고통은 계속해서 그녀를 따라다니며 그녀의 삶을 갉아먹는다. 영화는 이러한 스카이의 심리적 고통을 매우 섬세하게 그려내며, 관객들로 하여금 그녀의 고통을 공감하게 만든다.
[두 번째 감정] 스카이의 우울
스카이는 영화 내내 불안정하고 불안해 보인다. 죄책감, 압박감, 자기 자책 등 다양한 부정적 감정을 혼자 떠안고 있으며, 이러한 감정들은 그녀를 점점 더 불안하게 만든다. 스카이는 자신의 심리적 고통을 통제하지 못하고, 그 결과로 점점 더 많은 환상과 환각에 시달리게 된다. 후반부로 갈수록 이러한 환상의 순간들은 점점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며, 그녀가 현실과 환상을 구별하지 못하는 상황으로 치닫는다.
영화는 스카이가 자신의 심리를 통제하지 못하는 과정을 기괴한 이미지로 표현하며, 그녀가 점점 더 깊은 우울 속으로 빠져드는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스카이는 여러 번 마음을 다잡으려 하지만, 그녀의 우울은 정상적인 시도를 무력화시키며 계속해서 그녀를 어둠 속으로 끌어내린다. 결국 스카이의 심리 상태는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망가뜨리고, 그녀 자신마저 파괴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스카이는 자신의 우울을 떨쳐내기 위해 여러 번 노력하지만, 주변의 환경과 내면의 고통이 그녀의 노력을 무력화시킨다. 그녀는 다시 노래를 부르고, 팬들 앞에 서며 정상으로 돌아가려 하지만, 그 모든 시도는 결국 실패로 끝난다. 그녀의 우울은 점점 더 심각해지고, 그녀의 내면은 점점 더 혼란에 빠진다. 영화는 이러한 스카이의 우울한 감정을 다양한 시각적 표현을 통해 강조한다. 무대 위의 화려한 조명과 그녀의 흐릿한 눈빛, 환각 속에서 보이는 기괴한 이미지들은 스카이의 불안정한 심리 상태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과정은 관객들로 하여금 그녀의 고통을 더욱 깊이 느끼게 만든다.
[세 번째 감정] 스카이의 감정전파
스카이는 몰락한 상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단한 팬층을 보유한 스타다. 실제로 우리 주변에는 이러한 스타들이 많다. 십대들은 그들을 보며 꿈을 키우고, 그들의 행동에 큰 영향을 받는다. <스마일2>는 한 스타의 몰락이 수많은 팬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경고하고 있다.
스카이의 모든 행위는 미디어를 통해 팬들에게 전해진다. 그녀가 콘서트장에서 보여주는 행동들은 팬들에게 그대로 전달되고, 그녀의 우울은 무의식중에 팬들에게도 전염된다. 스카이는 개인적인 공간에서 자신의 우울을 추스르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오히려 더 큰 절망과 불안을 드러내게 된다. 이 과정이 무척 기괴하고 공포스럽게 표현되며, 팬들에게도 충격을 준다.
스카이의 감정전파는 단순히 무대 위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녀의 개인적인 행동과 그녀가 느끼는 모든 감정은 미디어와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팬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 영화는 이러한 과정을 매우 현실감 있게 묘사하며, 스타의 감정이 팬들에게 어떻게 전염되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팬들은 스카이의 몰락을 보며 그녀의 고통을 함께 느끼고, 그녀의 우울은 마치 바이러스처럼 퍼져나간다. 스카이가 느끼는 절망과 공포는 팬들에게도 동일하게 전해지며, 영화는 이러한 감정 전염의 과정을 공포스럽고도 설득력 있게 그려낸다. 스카이의 몰락은 단지 한 사람의 추락이 아니라, 그녀를 따르는 수많은 팬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커다란 사건임을 영화는 강조하고 있다.
우울증 환자의 심리 속에 들어간 듯한 기괴함
<스마일2>는 공포 장르를 통해 우울하고 불안정한 사람의 심리를 매우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마치 심리학 소설을 읽는 것처럼 불안정한 사람이 어떤 모습을 보고 망상을 겪게 되는지를 잘 보여준다. 특히 이러한 감정이 전염된다는 설정은 1편에 이어 계속되며 무척 신선하고 공포스럽게 느껴진다.
현대 사회는 많은 사람들이 우울을 경험하고 있으며, 이러한 우울한 감정은 종종 주변 사람들에게 전염된다. 영화는 이러한 현대인의 우울과 불안을 스타라는 매개체를 통해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스카이는 개인의 불안과 우울이 사회적으로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인물이다. 그녀의 몰락은 단순히 한 사람의 추락이 아니라, 그를 둘러싼 사회 전체의 문제로 확장된다.
<스마일2>는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주변 사람들의 고통과 우울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들의 감정이 우리에게 미칠 영향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이 영화는 공포라는 장르를 통해 우리 사회의 감정적 연결과 그 파급 효과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만든다. 현대 사회의 우울함을 직시하고, 그로 인해 왜곡된 세상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우리가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느끼는 감정은 때로는 우리의 내면을 왜곡시킬 만큼 강력하다. <스마일2>는 이러한 감정의 힘과 그 전염성을 무섭도록 현실감 있게 그려낸 영화다. 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영화의 기괴한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내면과 주변의 감정들을 다시 한 번 돌아보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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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은 고된만큼 아름답다, 영화 <밀리언 달러 베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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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 매거진 ⓒ주간우두미 36호
밀리언 달러 베이비(Million Dollar Baby, 2004)
제작 : 미국,드라마 │ 감독 : 클린트 이스트우드
출연 : 클린트 이스트우드(프랭키), 힐러리 스웽크(매기), 모건 프리먼(에디)
등급 : 12세 관람가 │ 러닝타임 : 133분
영화 <밀리언 달러 베이비>는 복싱 영화이자, 휴머니즘 드라마이자, 어쩌면 존엄사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예나 지금이나 존엄사에 대한 첨예한 찬반양론이 존재하지만, 이 영화를 보고 존엄사, 말 그대로 '스스로의 존엄을 지키며 죽을 수 있는 권리'를 가지는 것이, 사람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새삼 깨닫게 됐다.
주인공 '매기'는 웨이트리스 출신의 아마추어 복서다. 서른한 살이라는, 복서로서는 아주 늦은 나이에 복싱을 시작한다. 그녀는 슬플 정도로 박복한 팔자에, 가진 거라곤 열정 하나뿐이다. 그런 그녀의 열정에 못 이겨 복싱 매니저이자 컷맨(상처에서 피가 멈추도록 도와주는 보조자)인 '프랭키'는 삼고초려 끝에 그녀를 거두어준다.
매기는 집념 하나로, 프랭키를 따르며 1년 반 만에 엄청난 실력자가 된다. 나는 권투에 관해서는 문외한이지만, 아마도 복서에게는 타이틀 전이라는 게 궁극적 목표인가 보다. 매기는 첫 라운드부터 KO승을 거두며 무서운 기세로 돌진해 이 타이틀 전을 꿈꾸는데, 프랭키는 매기에게 타이틀 전을 시키는 것을 탐탁지 않아한다. 너무도 무서운 상대와 겨루어야 하는 타이틀 전에서, 친한 동료가 실명하고 평생을 힘들게 사는 것을 경험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매기의 고집으로 결국 프랭키는 타이틀전을 주선하게 되고, 종국엔 '밀리언 달러' 타이틀 전까지 출전하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줄곧 승승장구만 했던 매기의 암울한 그림자가 터지고야 만다. 전직 창녀 출신으로 비겁한 반칙들을 일삼기로 유명한 독일의 복서 '블루 베어'와 겨루다가, 매기가 그만 사고를 당하고 만 것. 매기는 1,2번 경추가 완전히 박살 나, 목 아래로는 전혀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만다.
그리고 이때, 별안간 전에 보았던 <미 비 포유>라는 영화가 생각났다. 얼굴도 잘생기고 유능하고 부유하던 남자가, 한 순간의 사고로 전신마비가 되어 살아가던 내용의 영화. 그를 사랑하게 된 여주인공은, 그가 합법적 존엄사가 인정되는 스위스에 가서 존엄사를 꿈꾼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런 그의 선택을 바꾸려 안간힘으로 노력한다. 하지만 삶의 욕구를 불어넣어주려는 여자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남자는 "이렇게 사는 것도 괜찮을 수 있겠죠, 하지만 내 인생은 아니에요. 난 (건강했던) 내 인생을 사랑했어요 진심으로요"라고 말하며 끝내 존엄사를 택했더랬다.
그때 그 영화를 보면서 나는, 남자의 선택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아니, 무슨 영화의 결말이 이래! 여자의 사랑이 이 남자의 선택을 바꿔 놨어야지! 살았어야지! 건강을 잃은 삶을 살아보지 못한 자의 섣부른 오만이었을까. <미 비 포유>에서나 <밀리언 달러 베이비>에서나, 늘 목숨의 주인공보다, 다친 그들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의 죽음을 기를 쓰고 반대한다. 으스러진 삶을 감당해야 하는 당사자의 고통보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자신의 고통을 먼저 헤아리기 때문이다.
<밀리언 달러 베이비>의 프랭키도 마찬가지였다. 딸처럼 여기며 복서로서의 성장을 도왔던 매기가, 전신마비를 고통스러워하며 죽을 수 있게 도와달라고 요청했을 때, 프랭키는 거절한다. 상실감을 느낄 자신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하지만 더 이상 복싱을 할 수도, 일어나 걸을 수도 없는 매기는 차라리 죽고 싶었다. 그래서 혀를 깨물고 수차례 자살시도를 한다. 그리고 그 일이 몇 번이나 반복되자, 프랭키는 그제야 깨닫는다. 그녀를 도와줘야겠다고. 자신이 그토록 아끼던 매기가 원하는 것은, 이 삶을 유지하는 게 아니라, 건강하지 못한 육체로부터 해방되는 것이라고.
무슨 연유로 딸과 멀어지게 됐는지는 모르지만 매번 딸에게 편지를 부치고도 반송이 되는 프랭키와, 면면이 쓰레기 같은 가족들을 둔 외톨이 매기. 매니저와 선수로서의 만남이었지만 둘 사이에는 거의 부녀지간에 가까운 애정이 존재했다. 그런 선수가 불의의 사고를 당했을 때 프랭키의 심정이 어땠을지는, 굳이 짐작해보지 않아도 그 무게를 알 것 같다.
하지만 그 무게는 프랭키뿐 아니라, 매기 역시 지고 있다. 자신이 사고를 당해, 프랭키가 엄청난 미안함과 부담감을 가지게 될 거란 걸 고스란히 느껴야 하는 매기의 마음은, 어쩌면 프랭키보다 더 무거웠을지 모른다. 하물며 자신이 목숨을 이어나간다고 해도, 그 돌봄과 죄책의 나날을 프랭키에게 지워야 한다는 건, 매기로선 정말 못 견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이런 매기의 복잡다단한 마음을 완전히 이해했을 프랭키는, 결국 자신의 손으로 매기의 산소호흡기를 떼고, 그녀가 편안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게 주사를 놓아준다. 그리고 이 장면에서야 <미 비 포유>에서는 몰랐던 것을 느꼈다. 존엄사의 진정한 의미를. 당사자의 선택을 존중해주는 것, 그게 삶이든 죽음이든, 내 상실감보다 그의 고통을, 그로 인한 그의 선택을 존중해주는 것 또한 사랑이라는 걸.
매기의 죽음을 도와주며, 프랭키는 그녀에게 자신이 지어준 링네임 '모쿠슈라'의 뜻을 알려준다. 게일어인 모쿠슈라의 뜻은 "나의 소중한, 나의 혈육"이라는 뜻이다. 매기는 그런 프랭키의 마음을 마지막으로 간직하고 그렇게 존엄을 지키며 세상을 떠났다.
만약 내가 사랑하는 누군가가, 불의의 사고로 자신의 뜻대로 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 나도 그에게 마냥 살아달라고 요구할 수는, 아마 없을 것 같다. 그가 원하는 게 죽음이고 해방이라면, 결국에 그 뜻을 존중해주고 싶어 질 것만 같다. 누군가를 잃을 상실감에 앞서, 인간에게는 누구나 존엄할 권리가 분명히 있다고 믿기에.
* 본 콘텐츠는 브런치 우두미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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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0회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 추천작] 다양한 별들이 섞여 아름다운 은하가 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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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유튜브에서 우주 관련 영상들을 보는 재미에 빠져서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에서 선정한 우주에 관련된 작품은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지 기대하면서 선택한 영화 <우리 사이의 우주>. 우주라 하면 과학의 첨단이라고 생각을 해서 크게 감동을 받거나 감성적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햇었는데, 엄청난 문학적 비유에 놀라고 감동을 받았던 작품이었다.
영화 <우리 사이의 우주> 시놉시스
토비는 엄마와 함께 여름 휴가를 보내러 슬로베니아에 온다. 그러나 토비는 아빠 그리고 친구들과 떨어져 보내는 여름이 맘에 들지 않는다. 동네 아이들이 토비를 괴롭히면서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된다. 그때, 토비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녀 티아샤를 만난다. 티아샤는 토비를 은퇴한 장님 천문학자 헤르만에게 데려간다.
* 해당 내용은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 공식홈페이지 소개를 참고했습니다.
이 이후로는 영화 <우리 사이의 우주>에 대한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사람 사이의 관계를 우주로 풀어내다
Space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물리적인 공간이라는 의미와 우주라는 의미인데, 이 작품에서는 이 두 가지 의미를 중첩해서 활용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서 우주의 별을 매개해서 사람 사이의 관계를 비유적으로 굉장히 잘 풀어내고 있어서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별과 은하에 관심이 많은 토비는 엄마와 함께 여름휴가를 엄마의 고향 슬로베니아로 오게 되고 그곳에서 시력을 잃은 천문학자 헤르만을 만나게 된다.
동네 사람들은 그를 괴팍한 사람이라고 말하지만 토비는 그와 함께 별을 관측하면서 재밌는 시간을 보내 헤르만과 별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자신과 사람들의 관계에 대해 별과 비유하면서 대화를 이어가는데 굉장히 문학적이어서 뇌리에 강하게 남았다. 캐나다에 좋아하는 여자아이가 있냐고 물어보자 토비는 자신 자신의 빛이 그 아이에게 도달하지 못했다고 말하면서 토비가 좋아하는 친구가 있지만 아직 그 관계가 진전되지 않았음을 표현하고 있었고, 피부색이 달라 은근히 따돌림을 당하고 있었던 토비를 향해 헤르만은 별은 절대 혼자 있을 수 없다면서 큰 은하 속에 위치한 별의 태생을 알려주면서 토비 역시 혼자라고 생각할지라도 결국에는 사회 속에서 사람들과 함께 하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이처럼 굉장히 문학적으로 우주와 사람 사이의 관계를 풀어내고 있어서, 과학 그 자체로 생각했던 우주에 대해서 이렇게나 감성적일 수가 있구나 깨달을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섞임에 대하여
영화 <우리 사이의우주>의 주인공 토비는 백인과 흑인 사이의 혼혈인이다. 인종차별을 하면 안된다는 교육을 전 세계적으로 지속되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은연 중에 그 차별을 겪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 작품 역시 그러한 차별에 대해서 다루고 있었다. 슬로베니아에서 드물었던 흑인은 토비가 오자 친구들은 피부색이 검다는 이유로 굴뚝청소부라 놀림을 받는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꼭 흑인과 백인이라는 이분법적인 구조로 바라보고 있다기 보다는 한 집단에서 이방인으로 취급받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확대해서 다루고 있었다.
토비의 엄마는 인종적으로 보자면 백인이었지만 그녀의 예술적인 감성으로 인해 고향에서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고, 그렇게 예술을 한다고 떠나 캐나다에 정착했지만 그곳에서도 낯선 느낌은 지울 수 없었고, 휴가차 다시 돌아온 고향에서도 여전히 이방인의 느낌을 계속 받는다. 이렇게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엄마와 인종적으로 차별을 받는 토비의 모습을 보면서 ‘블렌딩(섞임)’의 필요성에 대해서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한다.
영화 속에서는 펜케익을 만드는 토비가 등장하는데, 일반적으로 하나의 반죽을 이용하는 것과 달리 토비는 흰색 반죽과 갈색 반죽을 따로 만들고 후라이팬 위에서 섞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요리사로 성공한 아빠의 레시피라고 소개한다. 백인과 흑인 혼혈인 자신의 모습을 표현하면서 결과적으로는 블랜딩을 통해 성공한 레시피로 인정받았듯이 자신 역시 그 존재를 인정받길 바라는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 더불어 마크라메 공예가인 토비의 엄마 역시 다양한 실을 엮어서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내는데, 블렌딩(섞임)이 예술 작품에서 중요한만큼 사람들 사이에서도 중요함을 잘 표현하고 있었다.
이렇게나 우주가 감성적으로 표현될 수 있다는 것에 굉장히 만족스럽게 봤던 영화 <우리 사이의 우주>. 다양성에 대한 메시지도 함께 전달하고 있었던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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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자아를 남성성의 세력에서 구하소서
전통 서부극과 현대 서부극, 카우보이의 스테레오타입을 벗어났는지에 관하여
권총을 찬 채 말을 타고 드넓은 들판을 가로지르며 소를 지키는 카우보이란 직업의 독특한 캐릭터성은 영화의 주인공으로 쓰이기에 적합합니다. 전통 서부극을 비롯해 현대 또는 미래를 배경으로 하지만 본질은 자신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투쟁하고 복수하는, 전통 서부극과 같은 골자를 가진 최근의 영화까지 카우보이는 스테레오타입화되어 수많은 영화에 등장했습니다. 재밌는 부분은 개척시대 혹은 그와 가까운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최근에 제작된 현대 서부극의 카우보이들은 전통 서부극의 카우보이가 가지고 있는 스테레오타입의 일부 특징들을 비틀어서 각자의 독특한 개성을 드러낸다는 점입니다. 그렇기에 각 영화가 가진 카우보이의 특징은 무엇인지, 그로 인해 그 영화만이 가진 특별함을 다채롭게 즐길 수 있도록 해 줍니다.
제인 캠피온 감독의 <파워 오브 도그>는 1920년대의 미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므로, 당연하게 카우보이가 다수 등장하는 서부극 장르의 영화입니다. 얼핏 보면 그들은 전통 서부극 카우보이의 스테레오타입을 그대로 가진 듯한 느낌입니다. 카우보이 하면 바로 떠오르는 외양은 두말할 것도 없으며, 남성우월적 마초이즘·인종차별 마인드가 깊이 뿌리박혀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끝까지 감상하게 되면 <파워 오브 도그>에 등장하는 필 버뱅크로 대표되는 카우보이 또한 숨겨져 있던 비틀린 개성을 가지고 있으며, 결국 이 영화는 현대 서부극의 범주에 속하는 영화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이 영화에서는 총을 사용한 액션은 찾아보기 힘든 대신, 대화와 분위기를 통해 등장인물의 심리를 숨기거나 파헤치는 데에 집중합니다. 그리고 남성성을 중시하고 강조하면서 여성스럽고 섬세한 피터를 멸시하던 필은 역설적이게도 남성성과는 정반대에 위치해 있는 동성애자임을 여러 메타포를 통해 은연중에, 또는 직설적으로 드러냅니다. 과거 자신의 스승이었던 브롱코 헨리의 안장을 쓰다듬는 행위는 마치 애인을 조심스레 어루만지는 듯한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거나, 밴조를 음정과 박자에 맞춰 섬세하게 연주하는 모습, 카우보이 무리와 동떨어져 홀로 멱을 감고 스승의 손수건으로 자위를 하며, 남성의 나체 사진이 담긴 잡지를 비밀 공간에 숨겨놓는 등의 행위를 비춤으로써 말입니다. 마초적인 남성의 실체가 동성애자라는, 그 괴리감으로 인한 자기 파괴적인 면모를 보이는 캐릭터는 이제는 식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착실한 빌드업을 거쳐서 드러낸 클리셰는 관객들의 흥미를 이끌어내기에 충분합니다. 게다가 <파워 오브 도그>만이 가진 특별함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전통 서부극처럼 보이지만 실체는 스테레오타입을 탈피한 현대 서부극 <파워 오브 도그>, 클리셰일지라도 착실한 빌드업은 영화를 풍부하게 만든다.
나의 유일한 영혼과 자아. 개에게 잡아먹혔느냐, 저항하였느냐
개의 세력으로 직역이 가능한 영화의 제목 <파워 오브 도그>는 영화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시피 성경의 시편 22편 20절로부터 유래했습니다. 왜 하필 개의 세력을 제목으로 설정하였을까? 이 구절은 자신의 유일한 것을 개의 세력에게서 구해달라는, 자신의 영혼을 악(惡)에게의 굴복이라는 고난으로부터 구해달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럼 <파워 오브 도그>의 악은 무엇인가? 해당 시대의 사회가 남성들에게 요구하는 권위적이고 마초적인 남성성을 의미합니다. 영화에서 로즈와 피터에게 남성성을 내세우면서 가차없고 잔인하게 대하는 필을 보면 악을 대변하는 존재로 느껴질 법 합니다. 하지만 그는 섬세한 감수성과 높은 지능, 그리고 동성애자라는 자신의 자아와 영혼을 악으로부터 지켜내지 못하고 굴복하여 사회가 요구하는 남성성을 대변하게 된 나약하고 가여운 자일뿐입니다.
반면에 내성적인 성격에 가냘프고 유약해 보이는 외모, 그리고 생화로 착각할 만큼 종이로 섬세한 꽃을 만드는 등 영화 초반의 피터는 전반적으로 남성성과는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되면서 그는 결코 나약한 존재가 아님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살아있는 토끼를 아무렇지 않게 해부하고 관찰하며, 고통받는 자신의 어머니를 위해 치밀한 계획을 통한 살인을 벌이기까지 합니다. 또한 다른 카우보이들은 발견하지 못하던 개의 형상을 피터는 발견함으로써 필의 관심을 끌게 됩니다. 이를 통해 필은 황무지에서의 생존법을, 더 나아가 사랑을 배웠던 브롱코와의 관계처럼 피터와 그러한 사제지간 혹은 그 이상의 관계를 형성하고자 합니다. 피터는 그를 따르고 지식을 습득하려는 듯 보이지만 실상은 카우보이의 삶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다시 말해, 피터는 사회가 요구하는 남성성이란 개의 세력으로부터 자신의 유일한 것, 의사가 되고자 하는 자아와 영혼을 지켜내었음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둘 자체의 성격과 둘 사이의 관계를 묘사하고 은유하는 존재들 역시 영화 속에 치밀하게 숨어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예 외에도 인상 깊은 메타포 하나를 소개해 보자면, 필과 피터가 같이 여행을 떠났을 때 토끼 한 마리를 쫓게 되었습니다. 나무 더미 아래에서 당당하다는 듯 꼼짝 않는 토끼는, 실은 꺼내고 보니 다리를 움직이기 힘든 부상을 당한 상태였습니다. 이러한 토끼에게서, 나무 더미와 같은 주변 환경에 둘러싸여 있는 상태에서는 마초적이고 당당하지만 주변 환경에서 꺼내어져 실체를 확인하였을 땐 상처 입은 나약한 존재에 불과한 필의 모습과 겹쳐 보입니다. 그 토끼를 고통에서 벗어나 편안하게 쉴 수 있도록 해 준 피터는 필 또한 동일하게 구원과 안식을 주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이처럼 <파워 오브 도그>는 수많은 장치들을 통해 둘과 둘 사이의 관계를 치밀하고 섬세하게 담아냈으며, 이 영화가 가진 특별함 중 하나입니다.
브롱코의 안장을 신줏단지 모시듯 소중하게 대하던 필과, 필이 만든 밧줄을 장갑을 낀 채 침대 아래로 밀어 넣은 피터, 악의 대물림과 끊어냄.
영화를 흘러가게 만드는 힘, 연출·배우와 소리
난해 보일 법 한 영화의 초반부 흐름과 달리 <파워 오브 도그>의 스토리는 정말 단순합니다. 부유한 카우보이 형제·동생과 결혼하게 된 과부·소심하고 유약한 그녀의 아들·그리고 모자와 형 사이에 벌어지는 갈등이 이 영화의 주된 골자입니다. 이 단순한 스토리를 특별하게 보이도록 만드는 데에는 치밀한 플롯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치밀한 플롯은 누구에게서 탄생을 하였는가 하면 연출과 배우의 연기에서 탄생하였습니다. 분명히 태양빛이 강하게 내리쬐고 있는 드넓은 황무지를 익스트림 롱 숏으로 비추고 있음에도 그 분위기는 마치 겨울처럼 싸늘하게 느껴집니다. 또는 등장인물을 비출 때 클로즈업을 통한 감정의 묘사와, 등장인물의 시선으로 보는 듯한 위치의 카메라는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하는 질문을 관객들이 자연스럽게 가질 수 있도록 만들어 줍니다. 한 가지 예로, 로즈가 형편없는 실력으로 피아노 연습을 하고 있을 때, 2층에서 마치 그녀를 비웃는 듯 필은 동일한 곡을 밴조로 유창하게 연주합니다. 이때 위에서 내려다본 로즈는 한없이 작아 보이고, 아래에서 올려본 필은 한없이 커 보입니다. 위축된 로즈와 위압감 넘치는 필을 자연스럽고 탁월하게 묘사해 냈습니다.
아무리 감독이 연출을 뛰어나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를 배우들이 뒷받침하지 못한다면 그 영화는 불완전한 실패한 영화일 뿐입니다. <파워 오브 도그>는 진정으로 배우를 위한, 배우에 의한 영화입니다. 베네딕트 컴버배치와 커스틴 던스트, 코디 스밋 맥피, 그리고 제시 플레몬스는 감독의 의도를 명확하게 이해하고 이를 그대로, 혹은 더 특출나게 영화에 담아냈습니다. 베네딕트 컴버배치야 두말할 것도 없으며, 그가 맡은 배역 중에서 감히 최고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컴버배치의 포스에 전혀 밀리지 않고 동등하거나 오히려 후반부에서는 그를 잡아먹어 버린 코디 스밋 맥피는 새로운 배우의 이름을 머릿속에 각인시킬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또한 커스틴 던스트의 짓눌린 듯한 압박감과 공포로 인해 병들어가는 모습 또한 그녀 역시 실력이 녹슬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제인 캠피온의 소리를 활용하는 능력 또한 뛰어났습니다. 필이 차고 있는 박차가 찰랑거리는 소리는 그의 성격과 맞물려 그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 자연스럽게 그에게 압도되고 공포를 느끼도록 분위기를 전환시킵니다. 게다가, 조니 그린우드의 음악들 역시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에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피터가 미지의 공간인 산과 황무지를 처음 탐험할 때, 처음 발을 들이는 공간이 주는 긴장감을 OST가 묘사를 합니다. 전통적으로 휘몰아치는 듯한 긴장감을 조성함에 있어 바이올린이 주로 사용되기 마련이지만 그린우드는 호른 두 대와, 커다란 공간의 잔향을 활용하여 독특한 긴장감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 외에도 불협화음으로 이뤄진 날카로운 피아노 소리는 로즈가 위치해 있는 장소의 분위기와 그녀의 감정을 탁월하게 표현합니다. 불편한 감정을 불러일으키지만 영화와 잘 어울리는 '소리'까지, <파워 오브 도그>는 눈과 귀 모두에 강한 자극을 선사합니다.
단순한 스토리를 받쳐주는 치밀한 플롯, 그 플롯을 받쳐주는 배우들의 열연.
그리고 그들을 한데 아울러 감싸고 있는 불편하지만 어울리는 소리까지.
본문에서 다루지 않은 한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간단히 소개하자면 자동차를 이용하는 동생 조지와 피터와 달리 필은 오직 말을 이용할 뿐입니다. 이를 통해 필과 피터의 관계를 과거에 안주해 있는 존재와 그로부터 벗어나 현재·더 나아가 미래를 향하는 대립되는 존재로 해석할 여지도 있습니다. <파워 오브 도그>는 수많은 메타포와 상징이 산재해 있는 영화이지만 관객들이 그들을 찾아내는 데 큰 어려움이 없다 보니 해석하는 재미가 있는 영화입니다. 물론, 그것들을 발견해 내지 못하더라도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연기를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뛰어나고 훌륭한 심리 영화입니다. 다만, 서스펜스가 형성되는 데에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리는 만큼, 적지 않은 분들에게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영화입니다. 하지만, 이를 차치하고서라도 꼭 감상하기를 추천하는 영화, <파워 오브 도그>입니다.
내 생명을 칼에서 건지시며 내 유일한 것을 개의 세력에서 구하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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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럽게 재밌고 끝나면 프레첼이 먹고 싶어지는 영화
이 영화는 젠더부터 시작해서 자본주의와 계급, 사상과 정치까지 3부로 나누어 다루고 있으며 147분 내내 블랙코미디 그 자체였습니다.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슬픔의 삼각형"의 뜻은 얼굴에서 미간과 콧대를 이은 역삼각형이라고 해요.
이 모양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뒤집어진 계급사회를 의미하는 것 같네요.
1부는 젠더 고정관념을, 2부는 각양각색 부자들의 위선과 자본주의 민낯을 보여줍니다.
3부는 계급도 뒤바뀌어 청소부가 캡틴이 되는 이야기로 상황에 따라 사회적 지위와 역할이 뒤바뀌고
이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영화였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이 전복되었을 때 이 영화의 재미는 배가 됩니다.
*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에 초청되어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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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체르노빌 1986 영화 후기 /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고 / 실화바탕 / 생각보다 안 국뽕임
영화직관하는 남자 영직남의 “체르노빌 1986” 후기입니다.
쿠키영상은 없습니다~ 장엄한 클래식 OST 가 흐르는 엔드크레딧이 제법 기네요.#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폭발사고, #러시아영화, #재난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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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탑건이 해군? 당신이 모를 수 있는 5가지 사실들ㅣ탑건:매버릭ㅣ탑건2ㅣ탑건 매버릭ㅣ톰 크루즈ㅣ
'탑건2'는 2019년 7월 12일 개봉 예정이었으나
톰 크루즈가 직접 전투기를 몰기 위해서
촬영까지 중단하고 2020년으로 개봉을 연기했다고 합니다영화 역사상 최초로
배우가 직접 전투기를 몰게 되는데...
진짜 이 정도면 이 형은 기네스북은 물론이고
인간문화재에도 등재되어야 할 수준지금의 톰 크루즈를 있게 한 그 영화가
34년 만에 속편 "탑건:매버릭"으로 돌아옵니다
톰 크루즈가 34년 동안 최고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기에 가능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제작진 및 출연진
감독: 조셉 코신스키
제작: 제리 브룩하이머, 데이빗 앨리슨, 톰 크루즈, 데이나 골드버그, 돈 그레인저
각본: 크리스토퍼 맥쿼리, 피터 크레이그, 저스틴 마크스, 에릭 워렌 싱어
출연: 톰 크루즈, 마일스 텔러 외
장르: 군사, 액션, 드라마
제작사: 제리 브룩하이머 필름, 스카이댄스 미디어, TC 프로덕션, 텐센트 픽처스
배급사: 파라마운트 픽처스
개봉일: 2020년 6월
촬영 기간: 2018년 5월 30일 ~ 2019년 4월 15일
음악: 해롤드 팔터마이어, 한스 짐머#탑건2 #탑건매버릭 #탑건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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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노웨어 스페셜> 메인 예고편
서른네 번째 생일을 맞은 창문 청소부 ‘존’,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그에게는 마지막으로 할 일이 있다.
바로 네 살짜리 아들 ‘마이클’에게 새로운 부모를 찾아주는 것.
세상에 혼자 남을 아이를 위해 ‘존’은 특별한 부모를 찾는 여정을 시작한다.
“아직 어리지만, 말도 잘 듣고 예절도 잘 지켜요.
내 아이를 키워줄, 새 부모를 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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