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이정2024-09-07 13:59:44
[JIMFF 인터뷰] 멈추지 않고 새롭게 간다, '별들의 고향' 이장호 감독 인터뷰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조직위원장 이장호 감독 인터뷰
관객석이란 수많은 사람들이 각각 앉아있는 자리임에도 묘하게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 같아서, 관객석의 공기를 모두 동시에 느낄 수 있다. 객석이 싸한지, 진심으로 웃고 있는지, 안타까워하는지 모두 서로에게 전해진다. 9월 6일 제천예술의전당에서 있었던 이장호 감독 데뷔 50주년 기념 스페셜 토크 현장의 관객석은 그야말로 애정과 열정으로만 꽉 찬 객석이었다. 오래 전부터 그의 영화를 사랑하고 그의 작품과 동시대를 호흡한 사람들부터, 그의
오랜 발자취를 뒤늦게 더듬어보는 사람들까지, 함께 모여 그의 영화 인생 50년에 진심 어린 박수를 보내는 자리였다.
오늘 데뷔 50주년 기념 스페셜토크를 진행하셨는데요. 감독님께서 현재진행형으로 사랑받는 영화인이심을 선명하게 느낄 수 있는 자리였습니다. 오늘 관객들과 이야기 나누면서 기분이 어떠셨나요?
아주
편안했습니다. 50년 동안 <별들의 고향>이 나를 뒤따라다니다 보니까 어떨 때는 그만했으면 좋겠다, 다른
작품 이야기도 더 하고 싶다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많이 사랑해 주시는 분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
참 꾸밈없이 이야기할 수 있어 편안하고 좋다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듭니다.
오늘 스페셜토크 현장만 보아도 많은 분들이 <별들의 고향>을 가장 깊이 사랑하시는 것 같습니다. 당시에도 경아라는 이름이 유행할 만큼 파급력이 굉장했는데, 지금도 유튜브에 그 시절을 추억하고 이 영화를 사랑하는 분들의 댓글이 달리고 있어요. 이 영화의 어떤 면이 이토록 오래 사랑받는 것일까요?
우리
시대는 청년문화라는 게 처음 생긴 때였어요. 최인호 작가가 청년 문화 선언을 언론에 발표했고, 민주주의 교육을 받거나 온전히 한글만으로 교육받은 첫 세대인 거예요. 한글
문화의 독특한 특징이 우리에게 들어오면서 이전 세대와 다른 특징을 갖게 된 셈인데, 저는 거기에 굉장히
긍지를 느끼고 있어요. 한글은 알파벳과 달리 글자 모양이 (초성, 중성, 종성의) 조립형인데, 이렇게 글을 배우니까 조립과 조형의 감각이 우리 예술의 특징이 되는 거죠. 또
조립과 변형은 율동적이기도 해서, 대단한 춤이 되기도 하거든요. 우리
문화가 지금 세계에 널리 알려진 게 저는 다 이 청년문화의 영향이 크다고 봅니다.
영화음악이란 것이 보편적이지 않던 시대에 <별들의 고향>은 음악으로도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이장희), <나는 열아홉 살이에요> (윤시내) 같은 곡들이 아직도 굉장히 유명할 만큼 감독님 영화의 음악이 관객들과 잘 공명했는데요. 감독님께서는 영화 음악에서 어떤 지점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나요?
음악을
굉장히 좋아했어요. 관악반에서 색소폰을 불기도 했고. 아버지께서
클래식 음악을 매우 좋아하셔서, 어렸을 때 아버지께서 틀어 놓으신 음악으로 잠을 깨곤 했어요. 그렇게 음악적 감각이 길러졌던 것 같습니다. <별들의 고향>에서 제가 가장 자랑스러운 건, 경아가 자신을 배신하고 다른
여자와 결혼한 애인의 결혼식장에 뛰어가는 장면이에요. 그전 같았으면 아주 처절하고 애절한 음악을 공식처럼
썼을 텐데 저는 거기서 락 음악을 깔았습니다. 그게 저는 너무 마음에 들어요. 그런 게 청년 문화의 특징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거죠.
이제는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조직위원장 자리에도 계신데, 이 자리에 영화인이 선임되신 것은 처음이라고 들었어요. 바쁘게 준비하시다가 개막을 맞이하셨을 텐데 개막 직후 기분이 어떠신가요?
작년
개막 공연을 보고 ‘영화제가 차차 발전하고 있구나’ 했는데, 금년 공연은 ‘이동준이라는 천재가 개막 공연에서부터 스타일을 바꿔
버리는구나’ 싶었어요. 음악과 영화를 동시에, 아시아 국가의 성격이 드러나는 너무 좋은 공연이었어요. 이동준 위원장이
직접 작곡한 영화 음악을 활용해서 더 좋았고요. 개막 공연을 보며 영화제 성격이 완전히 자리 잡혔다는
걸 느낄 수 있어 정말 자랑스러웠습니다.
이제 영화제가 20년을 맞이했으니 앞으로도 쭉 나아갈 일만 남았는데요. 앞으로를 어떻게 바라보시는지 들려주세요.
지금처럼
나아가면 세계 정상으로 갈 겁니다. 다만 행정적인 문제가 없어야겠죠.
소위 말하는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잘 지켜진다면, 제천국제음악영화제는 계속 훌륭하게 나아갈 수 있을 겁니다.
차세대 영화인과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으신 말씀이 있으실까요?
시대도
바뀌고 세대도 바뀌지만 제일 중요한 건, 폭력이나 선정적인 것만 노려 돈을 벌겠다는 마음을 품지 않는
것입니다. 지금 봉준호, 박찬욱 같은 감독들은 폭력이나 오락을
노리는 게 아니라 인문학적 토양에서 영화를 만들잖아요. 그게 성공의 지름길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젊은 사람들이 영상에 익숙하다는 이유로 자극적인 것이나 선정적인 것을 만들기 쉽지만, 관객들의 영혼에 도움이 안되는 것으로 돈만 벌려고 하면 그런 감독은 성장하지 못해요.
마지막으로 제천국제음악영화제를 찾아 주신 관객 여러분께도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제천만의
환경이 있어요. 실제로 약재도 많고요. 정신건강에도 이로운
환경이에요. 영화와 음악 같은 것을 즐길 수 있는 여유, 문화와
생태. 제천의 이런 면에 초점을 두고 와 주신다면, 사람이
살아가는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영화제가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스스로가 여전히 “철부지” 같다고 말하는 이장호 감독. 지나온 역사를 물 흐르듯 이야기할 때에는 아득할 만큼 듬직한 거장이지만, 다음 영화와 새로운 꿈을 이야기할 때마다 그의 눈은 맑고 싱그럽게 빛났다. 그의 지난 50년도, 제천국제음악영화제의 지난 20년도, 다사다난했지만 여러 변곡점을 거치며 흘러와 지금까지의 시간을 한 단락 맺고 앞을 바라보고 있다. 짧지 않은 시간을 보내왔지만 여전히 성장을 멈추지 않는 모습. 이장호 감독과 제천국제음악영화제가 쌓아온 시간이 든든한 마음 못지 않게 내일에 대한 기대가 차오르는 이유이다.
글: 하이스트레인저 정유선
사진: 하이스트레인저 김소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