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로진2024-10-03 11:08:14
[DMZ Docs] 어디에나 사람이 있다
<빅 데이터의 축>

빅 데이터의 축 The Axis of Big Data
감독: 저우타오 Zhou Tao
러닝타임: 58분
시놉시스: 〈빅 데이터의 축〉은 중국 귀주성 산악 지대에 위치한 대규모 데이터 센터의 주변 환경을 탐험한다. 이 영화는 데이터 센터 자체를 전면에 내세우는 대신, 이 시설을 품고 있는 산악 지형을 섬세하게 담아낸다. 영화는 풍경의 본질을 포착하며, 데이터 센터 인근과 그 너머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생활상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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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의 한복판에서, 우리는 매일 인공지능이 어쩌고저쩌고 하는 말을 듣곤 한다. 특이점에 도달했다, 학습하지 않은 내용을 스스로 깨달아 새로운 능력을 함양했다, 인간은 인공지능에게 지배될 것인가, 기타 등등.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이 인공지능이라면, 그 재료는 아마 데이터가 아닐까 싶다. 인공지능은 방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학습한다. 빅 데이터는 그 이름처럼 어마어마한 데이터일진대, 그 데이터를 보관하는 데이터 센터 역시 엄청난 전력을 소비한다.
2022년 카카오 데이터 센터 화재 사건을 떠올려 보면, 데이터가 인간을 얼마나 지배하는지를 알 수 있다. 고작 카카오가 잠시 멈추었을 뿐인데 큰일이라도 난 듯 호들갑스러웠다.
그러면서 동시에 생각하게 된다. 4차 산업혁명이 일어난 지금, 누군가는 인공지능을 활용하여 최첨단을 달리는가 하면 또 누군가는 태어나서 스마트폰이라고는 만져본 적이 없다. 이는 증기기관이 발명되었는데도 걸어서 또는 가축을 타고 이동했던 사람들이나, 전기 시스템이 만들어져도 촛불을 켜고 살던 사람들이나, 컴퓨터의 전원도 켜 본 적 없는 사람이 존재함과 마찬가지다.
가끔은 그 괴리가 이상하다.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세대와 아예 그것을 만져본 적도 없는 세대가 공존한다는 사실이.

저우타오가 카메라에 담은 세계도 비슷하다. 데이터 센터 주변의 풍경을 섬세하게 탐방한다. 데이터 센터의 풍경으로 시작한 시선은 데이터 센터 밖을 향한다. 카메라는 가치 판단이나 평가 없이 그저 귀주성의 사람과 자연, 동물을 따라 횡단한다.
나무토막과 포대를 든 노인, 등이 굽은 노인, 허수아비, 일하는 노인, 사진을 찍는 관광객, 담배를 피우는 남자, 우비를 입고 사진을 찍는 관광객 가족, 잡초를 태우는 남자, 물가의 닭, 물고기, 흑염소....... 패치워크처럼 기워진 풍경이다.
푸른 농촌의 풍경과 희뿌연 안개, 그 속에서 점멸하는 데이터 센터의 불빛이 기이한 이질감을 만들어낸다.

챗GPT 등 인공지능은 사람도 아니면서 사람의 시늉을 한다. 물어보는 말에 재깍 대답하고, 답이 풀리지 않는 문제의 답을 알려 준다. 이제 사람이 필요하지 않다. 그림을 그려 달라 하면 그림을, 노래를 만들어 달라 하면 노래를 만든다. 모르는 문제도 사람에게 물어볼 필요가 없다.
그러나 과연 기계만의 일일까. 모든 것의 뒤에는 사람이 있다. 챗GPT의 데이터를 걸러내는 작업은 케냐의 노동자가 시간당 2달러도 받지 못하고 처리했다. 최첨단 데이터 센터가 필요한 줄은 알지만, 그 데이터 센터가 건설된 주변에 마을이 있다는 사실은 간과한다.
우리가 누리는 혜택은 어쩌면 누군가를 착취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언제나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너무도 쉽게 잊힌다.
이번 DMZ국제다큐멘터리 영화제에서 좋았던 부분은, 비극장 상영 프로그램이었다. <빅 데이터의 축>은 극장 상영도 했지만, 상영관이 아닌 곳에서도 볼 수 있었다. <빅 데이터의 축> 역시 레이킨스몰 2층의 전시공간에서 상시상영되어 오며가며 관람하게끔 설치되었다.
다큐멘터리가 어떠한 서사나 의미를 갖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에게 가르침을 주지도 않는다. 그러나 어떤 지점에서의 균열, 일상적 풍경에서의 낯설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 지점에서부터 사고하는 것은 인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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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일정
9/28(토) 17:30-18:28
9/30(월) 14:00-14:58
그 외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기간(9/26-10/2) 동안 레이킨스몰 2층 마리나갤러리 연속 상영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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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룩이 온기와 구원이 되기까지
해당 리뷰는 씨네랩의 초청을 받아 시사회 관람 후 작성되었습니다.
야적장에서 하루종일 석탄과 장작을 나르며 일하고 집에 돌아온 빌 펄롱(킬리언 머피)의 손은 까만 얼룩이 져있다. 빌은 모자와 외투를 벗어두고, 현관 바로 앞에 위치한 화장실에서 손과 얼굴에 묻은 검댕을 꼼꼼히 닦아낸 후에야 아내와 딸들이 있는 거실로 들어간다. 펄롱은 비누와 솔만 들어있는 케이스를 꺼낸 후 세면대에 받아 놓은 물이 까맣게 변하고 자신의 손은 깨끗해질 때까지 비누 거품을 내고 솔로 문지른다. 펄롱이 손을 씻는 과정을 클로즈업으로 반복해서 등장한다. 깨끗하고 정직한 사람이 되기 위해, 자신의 아내와 다섯 딸에게 한 점의 더러움도 묻히지 않으려 부단히 애쓰는 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좁은 현관 통로는 따뜻하고 깨끗한 거실로 들어가기 전 더러움을 닦아내는 중간 지대의 역할을 한다. 현관을 지나 거실로 이어지는 좁은 문은 닫혀 있지 않지만 집의 공간을 분리한다. 영화 속 카메라는 문틀 너머에 펄롱을 위치시키며 일정한 거리감을 조성한다. 하나뿐인 가족을 잃은 어린 시절, 새벽에 수녀원의 석탄 창고를 들어갔을 때, 수녀원에서 겁먹은 소녀들을 볼 때 문틀 안의 펄롱이 느끼는 감정은 고독함과 고뇌다. 동명의 원작 소설에서 클레어 키건은 “언제나 쉼 없이 자동으로 다음 단계로, 다음 해야 할 일로 넘어갔다. 멈춰서 생각하고 돌아볼 시간이 있다면, 삶이 어떨까”라는 문장으로 펄롱의 고뇌를 표현한다. 삶에서 무언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는 감각은 보는 이의 마음을 강력하게 붙잡는다.
1920년대부터 시작하여 1990년대까지 이어진 아일랜드의 막달레나 세탁소는 조금이라도 타락할 여지가 있다고 판단되는 여성을 감금하고 강제노역을 시키며 삶의 자유를 빼앗았다. 미혼모, 성매매 여성, 고아, 남자들에게 매력적인 외모를 가진 여성까지 대상은 불명확하며 넓었다. 보호받지 못하는 환경의 여성들이 가는 감옥이었다. 아일린은 우리의 딸과 그 아이들은 다르다며 차갑게 선을 긋는다. 마을 사람들이 짐짓 눈치채고 있으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것은 수녀원의 영향력이 마을 전체에 퍼져 있기 때문이다. 펄롱의 딸이 다니는 세인트마거릿 학교는 수녀원과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으며 수녀원은 펄롱의 야적장을 이용하는 주요 고객이고 매년 크리스마스마다 돈을 주고 있다. 감금된 여성들의 노역으로 쌓아 올려진 풍요를 순순히 받아들이고 있던 것이다. 그러나 외면할 수 없는 장면이 있는 법이다.
선의는 언제나 옳다고 배워왔지만, 현실에서 선의를 베푸는 것은 복잡한 용기다. 누구나 모른 척 지나칠 수 있는 상황에서 선뜻 손을 내미는 일은 무언가를 무릅쓴 사람의 행동이다. 까맣고 차가운 석탄은 스스로를 태워 밝고 따뜻한 온기를 전한다. 선을 행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태울 용기와 작은 불씨가 필요하다. 펄롱에게 그 부싯돌 역할이 된 인물은 수녀원에 의해 석탄 창고에 갇힌 어린 소녀 세라다. 어깨에 무거운 석탄을 둘러업고 석탄 창고 안으로 들어간 펄롱은 어둠 속에서 세라를 발견한다. 공교롭게도 미혼모였던 자신의 어머니와 같은 이름을 가진 소녀는 출산을 5개월 앞둔 채 수녀원에 의해 석탄창고에 갇혀 추위와 어둠에 떨고 있었다. 기댈 곳 없는 아이를 보호하는 일은 수녀원을 적으로 돌리는 행위가 되고 만다.
펄롱은 자주 어릴 적 기억에 휩싸인다. 주로 창과 거울을 통해 이어지는 플래시백은 펄롱의 과거와 현재를 묶어준다. 아버지가 없었던 어린 자신과 자식을 키우며 눈물을 훔치는 어머니의 얼굴은 과거의 일이기도 하지만 누군가의 현재이기도 하다. “우리는 괜찮은 걸까?” 펄롱은 아일린에게 묻는다. 아일린은 경제 사정을 묻는 것인지, 부부의 안위를 묻는 질문인지, 자녀들의 미래를 묻는 질문인지 의아해하며 적금을 넣고 있으니 괜찮다고 답한다. 그러나 ‘우리’에는 그보다 더 넓은 의미의 가족, 나아가 공동체 전체의 안위를 포함하고 있다. 펄롱은 어린 세라에게서 자신의 어머니를 본다. 모두가 자신의 딸이자 어머니다.
펄롱은 세라에게 손을 내미는 것으로 어린 자신 역시 구원한다. 영화는 원작 소설과 달리 어린 세라의 아이를 엄마와 헤어지게 두지 않는다. 펄롱은 미시즈 윌슨이 그랬던 것처럼 세라와 그의 아이를 보호하며 한 가족을 지키게 된다. 펄롱은 세라의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간다. 좁은 현관 통로에서 간단하게 손을 씻은 펄롱은 아직 얼룩이 가득한 세라의 손을 잡고 거실로 함께 들어간다. 언제나 고독함과 고뇌와 고단함의 프레임이었던 문틀 너머로 희망과 확신을 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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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빠는 보이지 않아도 언제나 곁에 있을거야
해당 리뷰는 씨네랩의 초청을 받아 관람 후 작성했습니다. :)
노웨어 스페셜
존(제임스 노튼)은 서른네 번째 생일을 맞았다. 그의 서른다섯 번째 생일은 아마 오지 않을 것이다.
창문 청소부로 일하고 있는 존은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고, 네 살짜리 아들 마이클(다니엘 라몬트)에게는 새로운 가정이 필요하다.
마당이 있는 넓고 좋은 집, 많은 아이들이 함께 생활하는 집, 아이를 바라는 다양한 후보들 사이에서 존은 망설인다.
마이클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는 중대한 결정을 자신이 내려도 괜찮을까. 마이클은 아빠의 죽음과 새로운 가족과의 만남을 점차 이해하기 시작한다.
훗날 자신의 부모를 궁금해할 마이클을 위해 ‘기억 상자’에 물건들을 하나하나 담듯이 영화는 존과 마이클의 마지막 여정을 한 장면 한 장면 소중히 눌러 담는다.
죽음을 말하는 방법
우베르토 파솔리니 감독의 전작 <스틸 라이프>(2014)는 누구나 홀로 감당할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죽음 앞에서 삶과 사람의 소중함을 이야기했다.
이번 영화 <노웨어 스페셜>은 예견된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을 담는다. 존의 마지막이기도 하지만, 마이클의 새로운 시작을 위한 준비다.
아이의 눈높이에서 바라본 죽음은 회색 하늘로 날아간 빨간 풍선과도 같다. “슬픈 게 아니라 그냥 없어”져서 보이지 않는 것.
마이클은 동화책과 빨간 풍선, 움직이지 않는 딱정벌레를 통해 죽음을 이해한다. 감독은 누군가의 죽음 이후에도 여전히 지속되는 삶에 더 집중한다.
<스틸라이프>가 죽음 이후에 삶을 되짚어 보았다면, <노웨어 스페셜>은 죽음의 앞에 선 채로 삶을 응시하고, 죽음 이후에 남는 것을 찾아내려 하는 영화다.
존의 희망
아이를 버리고 떠난 엄마와 너무 일찍 죽어버린 아빠. 존은 마이클이 친부모를 잊기를 바라는 동시에 자신을 "창문 청소부로" 기억하기를 바란다.
마이클을 위한 기억 상자에도 창문 청소도구는 빠지지 않고 담긴다. 창은 존재하되 보이지 않아야 한다.
존은 자신이 보이지 않더라도 마이클이 자신의 존재를 기억해주기를 바란다.
존에게 있어 유리창은 현실과 이상의 경계이다. 창의 존재조차 잊을 정도로 깨끗이 닦아낸 창문 너머의 풍경은 그가 닿을 수 없는 희망을 담고 있다.
창 너머의 단란한 가족, 장난감으로 가득한 아이의 방, 교복을 입은 아이. 창 너머의 삶과 행복은 존이 바라던 삶의 모습이다. 손에 닿을 듯 보이나 창문 너머로 갈 수는 없다.
존의 생일 케이크에 마이클은 서른네 개의 초를 꽂는다. 그리고 붉은색 초 하나를 존에게 건넨다.
존은 그 초를 꽂은 서른다섯 번째 생일 케이크를 볼 수 없지만, 마이클의 곁에 있기를 바란다.
타오르지 못할 붉은 초 하나는 기억 상자에 고이 담긴다.
마이클을 위한 기억 상자는 마이클이 행복하기를 바라고, 자신을 잊지 않기를 바라는 존의 희망이 담겨 있다.
For Michael, 마이클에게
존과 마이클은 서로를 깊이 바라본다. 서로의 모습을 한순간이라도 더 눈에 담겠다는 듯이 말이다. 우베르토 파솔리니 감독이 두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 역시 사려 깊음이 묻어난다.
두 사람이 대화를 시작하면 카메라는 말을 끊지 않고 지그시 바라봐준다. 서로의 얼굴은 가까운 클로즈업으로 자세히 본다.
존의 수척하고 푸석한 얼굴과 마이클의 섬세한 표정 변화를 느낄 수 있다. 마이클은 존의 병세가 악화되어 가는 과정을 지켜본다.
거칠고 고통스러워하는 얼굴과 떨리는 손을 본다. 존은 마이클의 옅은 미소와 뾰로통한 입술로 표현되는 미세한 감정의 변화를 응시한다.
두 사람이 함께 할 때는 정다운 투샷을 놓치지 않는다. 두 사람의 모습을 소중하게 담아 간직하려는 것처럼.
존은 마이클이 기억해 주기를 바라는 것을 기억 상자에 담는다. 영화 <노웨어 스페셜>은 그 자체로 두 사람을 위한 하나의 앨범 혹은 '기억 상자'와도 같다.
떠나는 사람도 남는 사람도 서로를 기억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 시선으로써 서로의 기억을 존재 깊숙이에 각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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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아주고 싶은 등짝
SYNOPSIS.
"나는 쓸모없는 사람일까?"
한 고등학교 교실의 쓰레기통에서 주인 모를 유서 내용의 편지가 발견된다. 대입 시험을 앞두고 교감은 이 일을 묻으려고 하고, 정 선생은 우선 이 편지를 누가 썼는지부터 찾아보자고 한다.
"일기야, 안녕? 오늘부터 매일 일기를 쓰기로 했어"
편지와 학생들의 글씨 모양을 비교하던 정 선생은 편지 속 한 문장에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오래된 일기장을 꺼내 든다. 열심히 쓰다 보면 바라던 어른이 될 거란 믿음으로 써 내려간 열 살 소년의 일기. 정 선생은 일기를 읽으며 묻어뒀던 아픈 과거와 감정들을 마주하고, 학생들을 위해 마음을 열기 시작하는데…
POINT.
✔ 홍콩 금마장영화제 신인감독상 수상작
✔ 독특하게도 부산국제영화제 리퀘스트시네마로 첫 선을 보였는데, 평이 좋았습니다
✔ 감독이 하고 싶었던 말이 길 잃지 않고 정확하게 전달되는 영화, 감정의 에너지가 커다랗게 전해지는 영화. 전 요즘 이런 영화가 참 좋더라고요.
✔ 경쟁을 일상으로 여겨 온 한국인이라면, 다소 어렵지 않게 공감할 수 있는 감정들이 있어요
✔ 10살 소년을 연기하는 황재락 배우의 얼굴이 오래 아른거릴 거예요
✔ 11월 13일 개봉
영화 <연소일기>는 계단을 올라가는 아이의 이미지에서 시작한다. 높이를 가늠해 보며 계단을 오르고, 옥상에서 소리를 질러 보는 아이의 등짝. 영화는 이제부터 아이 삶을 따라가며 몇 번의 상승과 하강을 그려낼 것이다.
또 한편에는 '정 선생'이 있다. 영화는 현재의 정 선생과 과거의 아이를 교차해 보여준다. 기억과 현실 사이, 과거와 현재 사이 매개가 되는 것은 어느 날 정 선생의 학교에서 발견된 유서 비슷한 편지이다. 스스로가 쓸모 없는 사람인 것 같다는, 그래서 사라져도 빨리 잊힐 것이라는 말. 그 말은 정 선생을 10살 아이의 일기장으로 데려간다.
정 선생을 잡을 때마다 카메라는 계속해서 불안하게 흔들거리고, 아무렇지 않은 척 턱을 괴거나 엎드리거나 칠판을 보고 있는 학생들의 마음에는 어떤 생각들이 고여 있는지 종잡을 수가 없다. 10살 아이는 폭력적인 세계를 살아간다. 이 영화 속 인물들은 모두 터져 나갈 것 같은 외로움과 괴로움의 시기 안에 있다.
(언제든 우리의 현재가 될 수도 있지만 지금 당신의 현재가 괴롭든 괴롭지 않든) 우리는 과거에 누구나 한 번 이상 괴로움을 겪었다. 형태와 깊이는 제각각이지만, 어떤 것은 금방 잊히고 어떤 것은 영영 생채기로 남지만, 그래서 오늘 우리의 얼굴에서 어제의 괴로움이 다 읽히지는 않지만, 겪지 않는 사람은 없다. 정 선생의 동료 교사들만 보아도 그렇다. 그들에게 유서 비슷한 편지는 공허한 문장으로만 읽힌다. 어릴 때 한번쯤은 하는 생각이라면서. 그들에게도 익숙한 문장이라는 뜻이다. 기억 속에 문장의 기표는 남아 있지만, 그 뒤에서 터져 나갈 것 같았던 기의들은 잊혔다.
그러나 정 선생은 10살 아이의 일기장이 떠올라 버린 이상 그렇게 쉽게 놓을 수 없어, 상담 선생님과 함께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본다. 유서 편지의 문장과 똑같은 일기장 속 문장을 끈으로 삼아, 교차 편집된 과거에서 10살 아이가 연필로 써내려간 일기장의 기억을 펼쳐 보여준다.
일기를 쓰게 된 계기도, 일기 속 문장들도... 10살 아이의 세상은 녹록지 않다. 필연적으로 부모의 영향력이 클 수밖에 없는 나이다. 남들 눈에 비춰지는 성과에 집착하는 아버지와 그 옆에서 히스테릭해져 가는 어머니, 아이와 다르게 뭐든 잘 해내는 동생의 모습은 다소 도식적으로 그려졌지만, 10살 아이의 캐릭터가 선명하여 그 단점을 상쇄한다. 영화를 보다 보면 황재락이 연기하는 10살 아이 요우제를 사랑하게 된다. 아이는 비록 공부를 잘 못하지만, 타인의 마음을 헤아려 보는 데에 재능이 있다. 이야기를 좋아하고 문구를 좋아하는 걸로 보아, 공부 아닌 다른 데 재능이 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아버지는 10살 요우제의 재능을 헤아려 보지 않는다. 그에게는 메트로놈에 딱딱 맞는 것만이 올바른 음악이다. 정해진 박자 바깥의 풍성함은 그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 정답이 아니라면 모두 틀렸다는 그의 독선은 가족을 차별과 폭력으로 물들인다. 그 독선적 세계 또한 카메라에서 계속해서 흔들린다.
부모의 편협한 시야 안에서, 10살 아이의 세상은 조금씩 쪼그라들고 무너진다. 보고 있노라면 이 일기가 10살 아이의 세상이 무너져간 기록이라는 생각도 든다. 정 선생이 유서의 주인공을 찾아 헤매는 순간에도 일각에서는 폭력이 계속 일어나고 있는 세계를 보며, 얼마나 많은 세상이 이렇게 무너지고 쪼그라들고 있을까 생각하면 아찔해진다. 요우제라는 10살 아이에게 맞춰진 소실점은 수많은 아이들에게로 투사된다.
그 구도 안에서, 이 영화가 관객에게 실어 나르고자 한 감정이 묵직하게 전달되어 온다. 감독이 하고 싶었던 말이 선명하게 느껴진다. 특히 골목 사이로 아이들이 뛰는 장면에서, 카메라 앵글을 따라 세상이 뒤집힐 때, 우리는 비로소 메트로놈 박자 바깥의 세상을 느낀다. 무너지지 않은 세상에서 아이들이 건강하게 웃을 수 있는 세상을 느낀다. 거기에는 기꺼이 손 내미는 다정함, 함께 보내는 시간, 솔직하게 터놓은 마음이 있다. 그것만이 우리를 구할 수 있다고 절절한 마음을 담아 던지는 영화다.
영화를 보며 심규선의 <살아남은 아이>가 떠올랐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살아남은 아이인지 모른다. 유서를 발견해도 어린 시절 한번쯤 해보는 생각 아니냐고 말하는 교사들도, 독선적인 형태의 성취만을 인정하는 아버지도, 그런 아버지에게 맞추는 데 눈물도 인생도 쏟아낸 어머니도... 사실 그들 또한 과거의 어느 순간, 터져 버릴 것 같은 외로움과 괴로움을 넘어서 여기까지 왔는지 모른다.
불쏘시개처럼 나를 자꾸만 헤집어대는
어린 시절의 아름답지만은 않던 기억 속에서
어떤 모습으로 자라 지금의 네가 되는지
들춘 기억에 귀엣말처럼 속삭여주고 싶다 (...)
너는 살아남은 아이 미움과 무관심 속에서
이 어둠은 너의 별빛을 더 환하게 할 뿐 꺼트릴 순 없어
너는 살아남은 아이 눈물의 반짝임 모아서
저 은하수처럼 흐르며 또 살아갈 거야 마지막의 마지막까지영화는 영화일 뿐인데, 자꾸 현실의 아이들이 떠오른다. 우리 모두가 그런 시기를 넘어 바라던 어른으로 자라날 수 있다면. 가끔은 뒤늦은 후회의 눈빛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해도, 그럼에도 다시 시작해볼 수 있는 자리에 서 있을 수 있다면. 그런 소망을 품고, 옥상에 선 아이의 등짝을 끌어안고 싶다고 생각했다. 아마 내 안의 <연소일기>에는 그런 문장들이 적힌 페이지가 있을 것이다. 차마 끌어안지 못하고 놓쳐버린 등짝들이. 지금이라도 끌어안고 싶은 등짝들이.
이 영화를 마주한 당신의 <연소일기>에서는 어떤 페이지가 펼쳐질까. 이 영화는 누군가의 어린 시절 일기인 동시에, 당신 내면의 일기장을 부드럽게 펼치는 영화이기도 하다. 그리고 페이지를 넘겨줄 것이다. Time still turn the page라는 이 영화의 영어 제목 그대로. 과거에 덮어두고 온 상처 투성이 일기더라도, 오랜 시간 흐른 후에 다시 페이지를 고이 넘길 수도 있는 법이니까. 넘어간 페이지에서 다정한 마음을 가득 끌어안고 상영관을 나올 당신의 모습을 그려 본다.
*온라인 무비 매거진 <씨네랩>을 통해 시사회에 초청받아 감상 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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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5주 차, 최신 씨네 뉴스
"황금종려상이 궁금하면 네온을 보라" 미국의 중소 영화 제작.배급사 [네온]
<아노라>가 올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면서 네온은 5회연속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게 되었습니다.
5월 마지막주 씨네뉴스 같이 봐요
영화 제작자 된 손석구 천원짜리 영화
손석구가 제작자로 참여한 영화 <밤낚시>가 개봉합니다.
영화 '밤낚시'는 어두운 밤 전기차 충전소에서 벌어지는 미스터리한 사건을 다룬 휴머니즘 스릴러로 13분의 단편영화 입니다. 배우 손석구는 이번 <밤낚시>의 공동 제작과 연기를 모두 진행했습니다. 영화는 CGV에서 6월 14일부터 16일, 6월 21일부터 23일 2주간 단독 개봉하며 단 천 원에 관람하는 ‘스낵 무비’라고 합니다.
이선균배우 유작 두 편, 올 여름 개봉
지난해 세상을 떠난 배우 이선균 유작 2편을 모두 이번 여름에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공항대교 위에서 추돌사고가 발생하면서 사람들이 고립되고, 군사용 실험견이 풀려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탈출:PROJECT SILENCE>가 7월 공개, 이어 1979년 10.26 사태 이후 이야기를 그린 <행복의 나라>를 8월에 공개한다고 합니다.
배급사 네온 5회 연속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배출
칸영화제 경호원의 과도한 제지로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미국 가수 켈리 롤런드, 도미니카공화국 배우 마시엘 타베라스에 이어 윤아까지 사진을 못찍게 막아섰으며 유색 인종 스타들만 빨리 들어갈 것을 재촉하며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켈리롤랜드는 해당 경호원에게 자신의 몸에 손을 대지 말라는 듯 경고했고, 마시엘 타베라스는 경호원의 어깨를 밀치며 분노했습니다.
<북극성> 2025년 공개 확정
전지현, 강동원 주연의 <북극성>이 2025년 공개를 알렸습니다.
작품은 박찬욱 감독의 오랜 파트너이자 <독전> <작은 아씨들>의 극본을 써낸 정서경 작가와 <눈물의 여왕> <빈센조>의 연출을 맡은 김희원 감독의 만남으로 캐스팅뿐만 아니라 화려한 제작진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북극성>은 외교관이자 전 주미대사로 국제적 명성을 쌓아온 문주가 국적 불명의 특수요원 산호와 함께 거대한 사건 뒤에 숨겨진 진실을 쫓는 이야기를 그립니다.
칸영화제 경호원 논란
칸영화제 경호원의 과도한 제지로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미국 가수 켈리 롤런드, 도미니카공화국 배우 마시엘 타베라스에 이어 윤아까지 사진을 못찍게 막아섰으며 유색 인종 스타들만 빨리 들어갈 것을 재촉하며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켈리롤랜드는 해당 경호원에게 자신의 몸에 손을 대지 말라는 듯 경고했고, 마시엘 타베라스는 경호원의 어깨를 밀치며 분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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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 여왕으로써의 무거운 책임감을 다큐멘터리로 풀어내다!
영국의 여왕인 엘리자베스 2세는 영국인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으며 논란의 중심인물이기도 했다. 대중매체에 공개되는 영국 여왕 가문의 모습은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다가가기 어렵고 엘리자베스 2세 역시 성격이 까칠하다. 하지만 영국 여왕인 만큼 무거운 책임감은 항상 따라왔다. 영국의 여러 고위 관료들이나 중요 인물에게 훈장을 서사하고(이 훈장들은 몇 년이 지나면 사라진다) 그녀가 쓴 왕관 역시도 그만큼 많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영 연방 국가들의 수장으로써 순방을 다녀오면서 많은 업적도 이뤄냈다.
특히 이 다큐멘터리에서 돋보이는 건 대한민국의 글로벌 대기업인 삼성전자의 회장인 이건희와 만나고 여러 반도체 시설들을 순방했는데 영국 뉴스에도 보도되었다. 이게 바로 삼성전자의 저력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러나 엘리자베스 2세의 자식들이 스캔들에 휘말리고 사건의 주목 인물이 되면서 엘리자베스 2세의 삶의 고단함이 스멀스멀 다가오기 시작한다. 또한 영국 왕실 가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아이들은 평생 먹고 노는 사람들이라며 부정적인 대답도 내놓았는데 버킹엄 궁전도 화재로 대부분을 잃었고 영국 국민들에게 밉상이 되기도 했다.
엘리자베스 2세는 자신의 아들도 공군에 보내고 자신도 전장에서 영국 군들을 보조하는 역할을 했는데 엘리자베스 2세의 공이 컸다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점 영국 왕실 가문은 시간이 지날수록 영국인들에게 신뢰가 잃어가고 부조리의 대상으로 지목되었다. 영국의 코미디언들은 영국 왕실 상황을 패러디하며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냈고 파시즘이나 인종차별주의에 반대하는 단체 운동에 의해 비판의 대상도 되었다. 여기서 고난은 끝이 나지 않는다. 이 다큐멘터리에서는 영국 여왕인 엘리자베스 2세가 온갖 사치를 누리면서도 어떤 국민들에게는 부정적으로 인식된다는 걸 보여준 것이다.
그저 영국 왕실 가문으로써 대중매체에 공개되어 파파라치들에게 타깃이 되었던 불쌍한 이들이지만 한편으로는 고급스러운 호화 궁전에 살면서 모든 걸 누린 사람들이다. 엘리자베스 2세의 일대기를 챕터식으로 나뉘면서 관객들에게 영국 왕실의 숨은 이야기들을 과감하게 풀어낸다.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나왔지만 영화 곳곳에 나오는 영국 여왕을 찬양하는 팝 음악과 더불어 영국 여왕에게 몰려든 영국인들을 벌집에 모여든 꿀벌들로 묘사하고 영국 여왕의 포스와 영국 국민들에게 말하는 메세지 하나하나가 크게 다가왔다.
엘리자베스 2세의 다사다난한 일대기를 다큐멘터리로 풀어내고 풍자하기도 하다!
※ 씨네랩의 크리에이터로써 영화 시사회에 초대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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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샷건 웨딩(2022) 리뷰>
영화 <샷건 웨딩(2022)>는 <피치 퍼펙트(2012)>로 유명한 제이슨 무어 감독의 신작으로, 결혼 직전의 달시(제니퍼 로페즈) & 톰(조쉬 더하멜) 커플에게 갑작스레 닥친 재난을 코믹한 액션과 결부시킨 영화이다. 사실 제목에서부터 두 사람의 결혼식이 심상치 않으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샷건 웨딩이라니! 미국 문화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이 단어가 거친 서부 개척시대에서 유래한 말이라는 것을 기억할 터다. 현대에 와선 속도위반 등으로 인해 급히 치러야만 하는 결혼식 정도로 희석되었다고는 하지만, 최초의 의미든 현대의 의미든 단어가 갖는 기본적인 방향성은 동일하다. 당사자의 의지가 우선시된 다기보단 외부의 압력 혹은 필요에 따라 진행되는 결혼식이라는 것. 이런 점에서 제목만으로도 우리는 영화관에 들어가기 전부터 우리는 많은 상상과 기대를 하게 된다. 두 사람을 둘러싼 외부 갈등은 무엇일까, 왜 생겼을까, 그리고 둘은 그 갈등을 어떻게 넘어서서 행복한 결합을 이루어 낼 것인가?
※스포일러 주의
<샷건 웨딩>의 초반부는 비교적 타 로맨틱 코미디 영화와 다르지 않다. 결혼식을 앞둔 커플이 있고, 둘을 둘러싼 말 많고 문제 많은 가족이 있다. 사실, 커플 사이의 갈등조차 터질 듯 말 듯 아슬아슬하다. 서로를 끔찍하게 여기는 듯 하지만 식전 파티에서 손을 놓지 말아 달라는 달시의 부탁조차 곧바로 지켜지지 않을 만큼. 어디 그뿐인가? 이혼 후 애인과의 애정을 과시하며 등장하는 부유한 달시의 아버지 로버트(치치 마린)는 자신이 제시한 럭셔리한 호텔 결혼식을 물린 딸과 예비 사위를 탐탁지 않아 하고, 달시의 어머니 레나타(소냐 브라가)는 달시에게 로버트의 애인 해리엇(다르시 카덴)이 자신에게 웃어 보이는 것도, 다소 점잖지 않아 보이는 톰의 어머니 캐롤(제니퍼 쿨리지)이 다가오는 것조차 끔찍하다며 토로한다. 심지어 캐롤은 집안의 전통이라며 다 녹슨 칼을 결혼 선물로 주고, 달시가 조금도 원치 않았던 구식 웨딩드레스를 입게 권하는 데다가, 톰의 아버지 래리(스티브 콜터)는 끊임없이 비디오만 찍다 축사를 하는 동안엔 고개를 꾸벅이며 졸기까지 한다. 이렇듯 <샷건 웨딩>의 등장인물은 결혼식을 앞둔 커플과 그 두 사람을 둘러싼 가족 관계 등으로 깔끔하게 정리되는 도식이고, 이 갈등을 푸는 것에 100분 이상을 할애해도 유쾌한 로맨틱 코미디가 될 것도 같다. 하지만 액션 요소를 한 스푼 추가함으로써 이 영화는 한 걸음 더 나아간다.
필리핀의 어느 섬에서 열리기로 한 결혼식은 사실 예비 신부 달시가 원했던 스몰 웨딩과는 전혀 다른 류의 것이고, 부족한 재력과 장래의 불투명성으로 달시의 부모님에게 제대로 어필하지 못했다는 초조함을 지닌 예비 신랑 톰 사이엔 바쁘다는 이유로 회피하기만 한 불안이 자리한다. 이 갈등은 식이 시작되기 전까지 점차 고조된다. 게다가 달시의 아버지 로버트가 초대한, 달시의 전 약혼자이자 사업 후계자와 다름없이 예뻐한다는 숀이 도착하는 바람에 달시와 톰 사이의 분위기는 한없이 냉랭해졌다. 그렇다 한들 어쩌겠는가? 본국과 한참 떨어진 태평양의 섬까지 와준 하객들을 생각한다면 갑작스레 모든 걸 멈출 순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당신을 위해서’ 모든 것을 참으려 했다는 달시와 ‘당신을 위해서’ 완벽한 결혼식을 준비하고자 했던 톰 사이의 말다툼은 점차 수위가 높아지고 달시는 끝내 반지를 손가락에서 뺀다.
그러나 이때 피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거대한 위기가 당도한다. 바로 해적이 섬을 포위한 것. 결혼식은 그야말로 쑥대밭이 된다. 하객은 모두 인질이 되었고, 로버트는 거의 모든 재산을 잃기 직전이다. 말다툼을 하고자 인적이 드문 곳에 있었던 달시와 톰이 이 상황을 타개할 유일한 희망이 된다. 결혼식을 물리니 마니 했던 두 사람이 결국 다시 뭉친다. 피는 물론 벌어진 상처만 봐도 졸도할 듯한 달시가 수류탄을 들게 되고, 높은 탑에 오르는 것조차 무서워하던 톰이 낙하산에서 하강하게 되는 데엔 상대방을 지키고 둘을 아끼는 하객을 구하겠다는 선의와 사랑이 존재한다. 결혼 직전 터졌던 갈등을 전우애로 다시금 봉합한 두 사람이 행복한 결혼을 하는 건 당연지사다.
<샷건 웨딩>을 코믹 액션버스터로 소개했지만 영화에 몇 번이고 등장하는 결혼식의 의미 변화를 떠올린다면 이 영화는 액션 장르로 포장했을 뿐,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 영화의 문법을 따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가장 처음 등장한 결혼식은 ‘오로지 행복만으로 칠해내고 싶었던 환상적인 결혼식’이나, ‘단 하나뿐인 반려자와 나누는 흠 없는 일생’이란 미숙한 판타지의 상징이며 철저히 부서진다. 이후 영화는 이혼하지 않고 큰 갈등 없이 산 것처럼 보였던 톰의 가정조차 실은 울퉁불퉁한 현실을 얼렁뚱땅 봉합하며 살고 있었다는 것을 밝히고, 인생이란 대단히 매끈한 아스팔트 도로를 빠르고 행복하게만 질주하는 것과 거리가 멀다는 것을 털어놓는다. 달시와 톰은 이토록 엉망진창이 된 결혼식조차 소중한 인생의 일부라는 것을 배우며, 정신없는 인생을 몇 번의 위험을 무릅쓰더라도 서로를 구하고자 몸을 내던질 줄 아는 상대와 함께 꾸려나갈 수 있다면 더없이 기쁘리라는 깨달음을 얻는다. 그렇게 영화 말미의 결혼식에서 두 사람은 결혼이라는 서약의 의미를 되새기고, 진정한 결합을 완성한다.
결혼이 연애 과정에 쌓아 올린 낭만의 최종점이 될 수 없다는 것, 사랑의 최종점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하게 밝힌다는 점에서 <샷건 웨딩>을 고전적 로맨틱 코미디와 완전히 동일선상에 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심지어 영화가 최종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건 사랑의 완성도 아니다. 감독이 유쾌하게 풀어나가는 것은 삶의 복잡다단함이다. 단 하나의 일반적인 결말을 원할 뿐이더라도 뜻밖의 상황이 펼쳐져 엄청난 사투를 벌여야 할지도 모른다는 경쾌한 경고라 여겨도 좋다. 혹은 뒤죽박죽, 알쏭달쏭한 인생 속에서 함께 웃을 수 있는 동반자 한 명만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성공한 결혼(혹은 삶)일지 모르겠다는 으쓱임 하나 정도이지 않을까.
<샷건 웨딩>은 정말이지 여러모로 뻔하고 가벼운 영화지만, 예상치 못한 곳에서 속속 등장하는 소품의 활용과 다채로운 사투만큼은 일품이다. 전투뿐만 아니라 달시와 톰의 티키타카나, 범상치 않았던 하객의 대응 역시 웃음을 적지 않게 자아낸다. 참을 수 없는 진지함으로 가득한 일상에 지쳤더라면, 당신의 100분을 마법처럼 채워줄 <샷건 웨딩>을 감상해 보는 건 어떨지.
★★★
* 본 리뷰는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에 참석하여 감상한 후, 주관적 견해에 따라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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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넘는 동심파괴(?)의 현대적 해석 / 내가 알던 백설공주가 아니야 / 새로운 캐릭터의 매력 / 단순한 스토리의 영화화 한계
영화직관하는남자 홍큐의 "백설공주" 후기입니다.
*쿠키영상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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