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로진2024-10-03 11:08:14
[DMZ Docs] 어디에나 사람이 있다
<빅 데이터의 축>

빅 데이터의 축 The Axis of Big Data
감독: 저우타오 Zhou Tao
러닝타임: 58분
시놉시스: 〈빅 데이터의 축〉은 중국 귀주성 산악 지대에 위치한 대규모 데이터 센터의 주변 환경을 탐험한다. 이 영화는 데이터 센터 자체를 전면에 내세우는 대신, 이 시설을 품고 있는 산악 지형을 섬세하게 담아낸다. 영화는 풍경의 본질을 포착하며, 데이터 센터 인근과 그 너머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생활상을 보여준다.
*
4차 산업혁명의 한복판에서, 우리는 매일 인공지능이 어쩌고저쩌고 하는 말을 듣곤 한다. 특이점에 도달했다, 학습하지 않은 내용을 스스로 깨달아 새로운 능력을 함양했다, 인간은 인공지능에게 지배될 것인가, 기타 등등.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이 인공지능이라면, 그 재료는 아마 데이터가 아닐까 싶다. 인공지능은 방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학습한다. 빅 데이터는 그 이름처럼 어마어마한 데이터일진대, 그 데이터를 보관하는 데이터 센터 역시 엄청난 전력을 소비한다.
2022년 카카오 데이터 센터 화재 사건을 떠올려 보면, 데이터가 인간을 얼마나 지배하는지를 알 수 있다. 고작 카카오가 잠시 멈추었을 뿐인데 큰일이라도 난 듯 호들갑스러웠다.
그러면서 동시에 생각하게 된다. 4차 산업혁명이 일어난 지금, 누군가는 인공지능을 활용하여 최첨단을 달리는가 하면 또 누군가는 태어나서 스마트폰이라고는 만져본 적이 없다. 이는 증기기관이 발명되었는데도 걸어서 또는 가축을 타고 이동했던 사람들이나, 전기 시스템이 만들어져도 촛불을 켜고 살던 사람들이나, 컴퓨터의 전원도 켜 본 적 없는 사람이 존재함과 마찬가지다.
가끔은 그 괴리가 이상하다.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세대와 아예 그것을 만져본 적도 없는 세대가 공존한다는 사실이.

저우타오가 카메라에 담은 세계도 비슷하다. 데이터 센터 주변의 풍경을 섬세하게 탐방한다. 데이터 센터의 풍경으로 시작한 시선은 데이터 센터 밖을 향한다. 카메라는 가치 판단이나 평가 없이 그저 귀주성의 사람과 자연, 동물을 따라 횡단한다.
나무토막과 포대를 든 노인, 등이 굽은 노인, 허수아비, 일하는 노인, 사진을 찍는 관광객, 담배를 피우는 남자, 우비를 입고 사진을 찍는 관광객 가족, 잡초를 태우는 남자, 물가의 닭, 물고기, 흑염소....... 패치워크처럼 기워진 풍경이다.
푸른 농촌의 풍경과 희뿌연 안개, 그 속에서 점멸하는 데이터 센터의 불빛이 기이한 이질감을 만들어낸다.

챗GPT 등 인공지능은 사람도 아니면서 사람의 시늉을 한다. 물어보는 말에 재깍 대답하고, 답이 풀리지 않는 문제의 답을 알려 준다. 이제 사람이 필요하지 않다. 그림을 그려 달라 하면 그림을, 노래를 만들어 달라 하면 노래를 만든다. 모르는 문제도 사람에게 물어볼 필요가 없다.
그러나 과연 기계만의 일일까. 모든 것의 뒤에는 사람이 있다. 챗GPT의 데이터를 걸러내는 작업은 케냐의 노동자가 시간당 2달러도 받지 못하고 처리했다. 최첨단 데이터 센터가 필요한 줄은 알지만, 그 데이터 센터가 건설된 주변에 마을이 있다는 사실은 간과한다.
우리가 누리는 혜택은 어쩌면 누군가를 착취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언제나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너무도 쉽게 잊힌다.
이번 DMZ국제다큐멘터리 영화제에서 좋았던 부분은, 비극장 상영 프로그램이었다. <빅 데이터의 축>은 극장 상영도 했지만, 상영관이 아닌 곳에서도 볼 수 있었다. <빅 데이터의 축> 역시 레이킨스몰 2층의 전시공간에서 상시상영되어 오며가며 관람하게끔 설치되었다.
다큐멘터리가 어떠한 서사나 의미를 갖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에게 가르침을 주지도 않는다. 그러나 어떤 지점에서의 균열, 일상적 풍경에서의 낯설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 지점에서부터 사고하는 것은 인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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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일정
9/28(토) 17:30-18:28
9/30(월) 14:00-14:58
그 외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기간(9/26-10/2) 동안 레이킨스몰 2층 마리나갤러리 연속 상영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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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 2주 차 개봉작, 공개 예정작 추천
안녕하세요!
영화/OTT 콘텐츠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오늘은 'Hump Day' 이죠!
평일 중 중간에 있는 수요일이기에 가장 고비라고 하죠.
이 고비만 넘기면 곧 주말이 오니 조금만 더 힘을 내봅시다!
그럼 4월 두 번째 주에는 어떤 영화가 기다리고 있을지!
한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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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 개봉 영화
신비한 동물들과 덤블도어의 비밀
출처: 네이버 영화
개요: 판타지 | 미국 | 142분
감독: 데이빗 예이츠
출연: 에디 레드메인, 주드 로, 매즈 미켈슨 등
개봉: 2022.04.13
배급: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줄거리
1930년대, 제2차 세계대전에 마법사들이 개입하게 되면서 강력한 어둠의 마법사 그린델왈드의 힘이 급속도로 커진다. 덤블도어는 뉴트 스캐맨더에게 위대한 마법사 가문 후손, 마법학교의 유능한 교사, 머글 등으로 이루어진 팀에게 임무를 맡긴다. 이에 뉴트와 친구들은 머글과의 전쟁을 선포한 그린델왈드와 추종자들, 그의 위험한 신비한 동물들에 맞서 세상을 구할 거대한 전쟁에 나선다. 한편 전쟁의 위기가 최고조로 달한 상황 속에서 덤블도어는 더 이상 방관자로 머물 수 없는 순간을 맞이하고, 서서히 숨겨진 비밀이 드러나는데…
관전 포인트
신비한 동물사전 시리즈의 3번째 영화인 <신비한 동물들과 덤블도어의 비밀>. 개봉 하루 전인 12일, 무려 60%의 예매율을 기록하였습니다. 이번 시리즈는 해리포터 시리즈에서 호그와트의 교장이었던 덤블도어의 젊은 시절을 다루고, 그린델왈드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풀어나갈 예정입니다. 또한, 매즈 미켈슨이 새롭게 그린델왈드 역으로 합류해 기대를 높이고 있습니다.
말임씨를 부탁해
출처: 네이버 영화
개요: 드라마 | 한국 | 110분
감독: 박경목
출연: 김영옥, 김영민, 박성연 등
개봉: 2022.04.13
배급: 씨네필운
줄거리
85세 대구의 꼬장 할매 정말임 여사는 자식 도움 1도 필요 없다며 인생 2막을 내돈내산 나홀로라이프로 즐기려 했건만 이놈의 몸이 말썽! 오랜만에 외아들 종욱의 방문 탓에 팔이 부러지고, 이 사고로 요양보호사 미선을 들이게 된다. 엄마 걱정에 CCTV까지 들이는 아들과는 마음과 다르게 모진 말만 오가고, 요양보호사는 어쩐지 꿍꿍이가 있는 것 같아 영 맘에 안 든다. 그렇게 마찰과 화해를 반복하던 중 종욱 가족이 불쑥 찾아온 명절날, 묻어두었던 관계의 갈등이 터져버리는데…
관전 포인트
65년 연기 경력을 지닌 대배우 김영옥의 첫 주연작인 <말임씨를 부탁해>. 다양한 해외 영화제에서 큰 관심을 받은 박경목 감독과 <오징어 게임>, <반도>, <써니>의 촬영 감독이 참여하며 큰 기대를 불러일으켰습니다. 이 영화는 가족 사이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담고 있기 때문에 가족과 함께 보기 좋은 영화일 것 같습니다.
태어나길 잘했어
출처: 네이버 영화
개요: 드라마 | 한국 | 100분
감독: 최진영
출연: 강진아, 박혜진, 홍상표 등
개봉: 2022.04.14
배급: 그린나래미디어(주)
줄거리
손에 땀 마를 날 없는 ‘다한증’ 춘희는 마늘 까는 아르바이트로 수술비를 모으고 있다.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별로 안 좋아한다며 홀로 살아가던 씩씩한 춘희, 부끄러움과 외로움이 전부였던 그에게 봄처럼 새로운 인연이 시작된다.
관전 포인트
<태어나길 잘했어>는 최진영 감독의 장편 데뷔작으로, '다한증'을 가진 춘희가 새로운 인연을 만나며 벌어지는 성장담을 담은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부산국제영화제, 서울독립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 등 수많은 영화제에 초청되며 화제를 모았습니다.
복지식당
출처: 네이버 영화
개요: 드라마 | 한국 | 96분
감독: 정재익, 서태수
출연: 조민상, 임호준, 한태경 등
개봉: 2022.04.14
배급: 인디스토리
줄거리
사고로 장애인이 된 청년 ‘재기’는 홀로 거동조차 힘든 중증에도 불구하고, 경증의 장애 등급을 받아 힘겨운 싸움 중이다. 하지만 그의 딱한 사정을 봐준 선배 장애인 ‘병호’ 덕에 취업도 하고 대출도 받으며 희망을 되찾는다. 그렇게 삶의 재기가 눈앞에 왔다고 여긴 순간 ‘재기’는 세상에 자신이 중증 장애인임을 증명해야 하는데…
관전 포인트
<복지식당>은 장애인 감독과 비장애인 감독이 맡아, 장애인들의 삶을 꾸밈없이 현실을 반영해 만든 휴먼 드라마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전주국제영화제, 제주혼듸독립영화제, 런던한국영화제 등에 초청되며 작품성을 인정받은 바가 있습니다.
OTT 공개 예정작
나이트메어 앨리
출처: 네이버 영화
개요: 범죄 | 미국 | 150분
감독: 기예르모 델 토로
출연: 브래들리 쿠퍼, 케이트 블란쳇, 토니 콜렛 등
공개: 2022.04.13
스트리밍: 디즈니플러스
줄거리
성공에 목마르고 욕망으로 가득 찬 ‘스탠턴’은 절박한 상황에서 유랑극단에서 만난 독심술사 ‘지나’를 이용하여 사람의 마음을 간파하는 기술을 터득한다. “사람들을 속이는 게 아냐, 사람들이 스스로를 속이는 거지” 수려한 외모, 현란한 화술, 마음을 현혹시키는 능력으로 뉴욕 상류층 상대로 부를 손에 쥐게 된 ‘스탠턴’. 채워지지 않는 그의 위험한 욕망을 꿰뚫어 본 심리학자 ‘릴리스’ 박사는 뉴욕에서 가장 위험한 거물을 그에게 소개해 주는데…
관전 포인트
아카데미에서 4관왕을 차지했던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의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이 4년 만의 내놓은 신작입니다. <나이트메어 앨리>도 여러 영화제에서 100개의 부문에서 노미네이트 되었고, 그중 20 부문에서 수상하였습니다. 또한, '지난 10년 영화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엔딩!'이라는 카피를 사용하면서 기대감을 높였는데요. 영화를 통해 직접 확인해봐야겠습니다...!!
아사코
출처: 네이버 영화
개요: 드라마 | 일본 | 120분
감독: 하마구치 류스케
출연: 히가시데 마사히로, 카리타 에리카, 세토 코지 등
공개: 2022.04.13
스트리밍: 왓챠
줄거리
첫사랑 ‘바쿠’와 함께하는 모든 날이 특별했던 ‘아사코’. 설레지만 불안하고 뜨겁지만 자유로운 영혼이었던 바쿠는 어느 날, 다시 돌아온다는 짧은 말만 남긴 채 아사코를 떠나갔다. 첫사랑 바쿠와 똑같은 외모의 ‘료헤이’를 만나게 된 아사코. 겉모습만 같을 뿐 공통점 하나 없는 모습에 혼란스럽지만, 자상하고 따뜻한 료헤이의 사랑으로 아사코는 다시 설레는 사랑의 순간을 맞이한다. 그러던 어느 날, 떠나간 첫사랑 바쿠가 갑자기 나타나고, 아사코는 흔들리기 시작한다.
관전 포인트
<드라이브 마이 카>의 감독이신 하마구치 류스케의 작품입니다. 이동진 평론가가 4.5점을 준 작품이고. IMDB에서도 7점으로 꽤 높은 점수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
출처: 네이버 영화
개요: 드라마 | 한국 | 111분
감독: 이태겸
출연: 유다인, 오정세 등
공개: 2022.04.15
스트리밍: 쿠팡플레이
줄거리
7년간 근무했던 회사에서 하청 업체로 파견 명령을 받은 정은, 자신의 자리를 찾아보려 하지만 사람들은 그녀를 불편해하고, 현장 일은 낯설다. 그러나 반드시 1년을 채워 원청으로 돌아가고 싶은 정은은 ‘막내’의 도움으로 점점 적응해가는데… 1년의 파견, 살아남기 위해 치열하게 도약하다!
관전 포인트
제21회 전주국제영화제 최고의 화제작으로 떠오른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 믿고 보는 배우이자, 내공 있는 두 배우 유다인과 오정세가 만나 기대를 높였는데요. 희망의 메시지를 담은 영화이자 따뜻함을 보여준 영화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 추천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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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랩 에디터 김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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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리 가이> 세상 모든 NPC에게 전하는 희망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라이언 레이놀즈 주연의 <프리 가이>는 어디선가 본 듯한 장면들로 가득하다. 상상하는 모든 것이 가능해지고 폭력이 난무하는 게임, '프리 시티'의 모습은 포트나이트와 GTA 시리즈를 닮았다. 주인공 '가이(라이언 레이놀즈)'가 자신의 현실이 진짜가 아니었다는 걸 깨닫는 스토리 라인, 주어진 각본에서 벗어나려는 주인공과 그를 보며 당황해하는 주변 사람들의 모습에서는 <트루먼쇼>가 보인다.
저작권 제국인 디즈니의 힘을 빌린 크리스 에반스의 카메오 출연 및 캡틴 아메리카 방패, 헐크의 팔, 스타워즈 광선검 같은 이스터에그의 등장은 스티븐 스필버그의 <레디 플레이어 원>을 연상케 한다. 코나미를 비튼 게 분명해 보이는 게임회사 수나미의 존재 역시 <레디 플레이어 원>만큼이나 일본 대중문화의 영향을 받았음을 알려준다. 작중 게임과 현실을 넘나드는 가이의 존재감 또한 영화와 현실 사이 '제4의 벽'을 넘나들던 라이언 레이놀즈의 인생 부캐, 데드풀에 비견될 만하다.
그러나 <프리 가이>를 단순히 수많은 레퍼런스가 집합한 오락 영화로 치부하는 것은 적절치 않아 보인다. 앞서 언급한 작품들과 달리 주인공을 게임 속 NPC로 설정한 결과, <프리 가이>는 현실에서 NPC와도 같은 삶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위로는 물론, 그 이상의 희망을 주는 영화로 거듭나기 때문이다.
날강도와 피 튀기는 총격전이 공존하는 버라이어티한 도시, 프리 시티에서 평범한 은행원의 삶을 살아가던 '가이'는 거리에서 우연히 '몰로토프 걸(조너 코디)'과 마주치고, 한눈에 그녀에게 반해버린다. 그런 그에게 그녀는 자신의 이름이 사실 '밀리'이고, 가이가 보는 자신의 모습은 그저 게임 속 플레이어일 뿐이라는 불편한 진실을 알려준다. 또한 자신과 자신의 동업자 '키즈(조 키어리)'에게 가이는 자신들이 개발한 게임을 프리 시티의 개발자 '앙투안(타이카 와이티티)'이 무단으로 도용한 증거를 찾을 때 도움이 되는 npc에 불과하다고도 말한다. 이에 그녀를 만나 마침내 삶의 의미를 찾았다고 믿었던 가이는 큰 좌절과 혼란 속으로 빠져든다.
그러나 으레 그렇듯 <프리 가이> 역시 주인공을 절망의 구렁텅이에 남겨두지 않는다. 진실을 깨달은 가이는 절친이자 은행 경비원인 '버디(랄렐 호워리)'를 찾아가 이 세상이 사실 가짜이고 계획된 시나리오대로 진행되는 것에 불과하다면 너는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묻는다. 그러자 버디는 이렇게 답한다. 세상이 진실이든 아니든 지금 내가 마주하고 있는 이 찰나의 순간과 현실을 어떻게 살아가는지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라고. 이러한 버디의 말을 들으면서 가이는 자신만의 인생을 살아갈 동력을 얻고, 그는 자신의 세계인 프리 시티를 구하기로 결심한다.
사실 <프리 가이>의 중심 플롯을 뒷받침하는 메시지, 곧 지금 마주하는 찰나의 순간에 집중하고 그 순간을 온전히 느끼면서 살자는 격려는 낯설지 않다. 일례로 이는 작년에 큰 반향을 일으킨 픽사의 애니메이션 <소울>과 일맥상통하는 측면이 있기도 하다. 개개인을 마모시키고 파편화하는 사회에서 무작정 목표만을 쫓기보다는 마음의 짐을 잠시 내려두고 지금 이 세상을 즐기자는 <소울>의 메시지도 재즈 음악을 만나 현대인들의 지친 마음을 따스하게 어루만진 바 있다.
하지만 익숙함과 별개로 <소울>의 위로에는 야누스의 두 얼굴 같은 일장일단이 있기도 하다. 당장의 삶이 고달픈 이들에게는 따뜻한 위로이지만, 그러한 개인들로 구성된 사회 전체의 맥락에서 보면 그 위로는 언제든 마약처럼 사람들로 하여금 구조적 모순과 현실의 문제를 잊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프리 가이>는 <소울>의 따뜻함 이면에 숨어 있는 이 함정을 영리하게 피해 간다. 그 중심에는 가이가 NPC라는 설정이 위치한다. 이 설정을 통해 <프리 가이>는 현대인들의 삶을 가이의 삶에 일치시키고, 자칫 평범할 수 있었던 위로를 실천적인 희망의 메시지로 탈바꿈시킨다.
작중 NPC의 가장 큰 특징이라 하면 종속성을 꼽을 수 있다. NPC는 자기 결정권을 지니는 일반 플레이어와 달리 게임이라는 세상 안에서 미리 결정된 방식대로 움직여야만 한다. 그들은 주어진 시나리오에 갇혀 있으며, 심지어 규칙에서 어긋나는 것을 불편해하며 스스로를 그 시나리오에 가두려고 한다. 버디는 가이로부터 불편한 진실을 들은 후에도 애써 이를 무시하려 한다. 카페 사장은 늘 마시던 커피가 아닌 카푸치노를 달라는 가이를 이상한 사람 취급하며, 매일마다 강도를 만나는 행인은 항복의 의미로 들어 올린 두 손을 좀처럼 내리지 못한다. 밀리를 만나기 전까지는 가이도 같은 일상을 반복한다.
이때 NPC들이 스스로를 게임의 규칙 속에 가두는 모습은 관객들로 하여금 이 작품에 정서적으로 강한 유대감을 느끼게 한다. 미셸 푸코에 따르면 게임 밖 현실을 사는 현대인들도 NPC처럼 일정한 규칙에 순응하게끔 스스로를 통제하기 때문이다. <감시와 처벌: 감옥의 탄생>에서 근대적 감옥이 어떻게 생겨나는지를 고찰한 결과, 푸코는 감옥 체계가 공장, 학교, 병원 등과 같은 감옥 밖의 현상과 밀접한 상호 관련성을 지닌다고 지적한다. 판옵티콘을 닮은 사회 안에서 현대인들은 전반적으로 규율과 규범에 길들여져 있다는 것이다. 당장 교사가 학생을 감시할 수 있는 교실 구조, 불법 인터넷 사이트에 뜨는 유해정보 차단 알림 화면, 도로 구석구석 깔려 있는 cctv 등은 현대인들이 자기 자신을 감시, 감독하도록 만든다.* 이처럼 스스로를 통제하고 규칙에 종속시킨다는 공통점 덕분에 그저 한 NPC의 판타지였던 <프리 가이>는 이제 현대인들의 일기나 다름없어진다.
흥미로운 것은 푸코가 감시 사회에서 벗어나는 방법으로 제안한 내용을 가이가 실천에 옮긴다는 사실로, 바로 이 대목에서 <프리 가이>는 동병상련의 위로를 넘어서는 실제적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다. 푸코는 사회가 우리에게 부과한 한계를 분석하고, 그 한계를 위반할 가능성을 모색해야 하며, 가능한 경우 변형을 시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는 사회가 제시한 자신의 모습이 아니라 자신만의 규칙에 맞는 삶을 살아야 억압적인 사회와 권력관계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말한다.** 작중 가이는 이 모든 일을 해낸다. 그는 밀리의 도움과 자신의 노력을 통해 프리 시티라는 게임, 곧 사회의 오류를 발견한다. 이후 자신에게 부과되었고 본인이 이유도 모른 채 유지시켜 온 라이프 스타일을 거부한다. 매일 같은 옷을 입고 같은 커피를 마시며 은행에 출근해서 똑같이 은행 강도를 만나야 했던 그는 의식주를 바꾸는 것은 물론 직접 은행 강도를 때려눕히기까지 한다.
심지어 영화는 가이의 이타심과 연대라는 키워드를 통해 한 발짝 더 나아간다. 이는 주인공 '가이(guy)'의 이름이 남녀 상관없이 일반적인 모든 사람들을 뜻하는 단어이고, 그에게 깨달음을 주는 친구의 이름이 문자 그대로 친구라는 의미인 '버디(buddy)'인 이유이기도 하다. 가이는 자신이 깨달은 진실을 주변인들에게도 전파한다. NPC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게임 플레이어들만의 세상을 발견한 후에는 새로운 세상의 재미를 버디와도 함께 나누려고 한다. 프리 시티가 게임 개발자에 의해 만들어진 허구의 것이라는 진실을 알게 된 후에도 마찬가지다. 그는 게임 속 모든 NPC들을 불러 모아서 불편한 진실을 전하고, 모든 순간순간을 가치 있게 살겠다는 자신의 다짐도 공유한다.
카페 사장은 늘 만들던 커피가 아니라 카푸치노 같은 새로운 메뉴들을 만들어 내고, 매일 강도를 만나 손을 번쩍 올려야 하던 남성은 그 손으로 주먹을 쥐어서 강도를 때리려고 노력한다. 플레이어들에게 퀘스트가 되어주는 대신 NPC끼리 한 데 모여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기고 파업하기도 한다. 이렇게 가이와 친구들이 진정한 자유로 가득한 도시, 프리 시티를 일구어내는 모습을 보면 이미 NPC들과 한 마음인 관객 역시 일상 속 작은 변화를 통해 현실의 큰 변혁을 이끌어낼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다. 그렇게 <프리 가이>는 단순한 개인적 차원의 위로가 아니라 보다 실천적인 희망으로 이해될 공간을 남겨둔다.
다만 <프리 가이>를 현대인이라는 NPC에게 각성의 희망을 건네는 영화로 이해할 때, 이 작품의 결말은 유난히 짙은 아쉬움을 선사한다. <프리 가이>는 애매한 비중을 차지하던 남녀 주인공의 로맨스를 급진전시키면서 마무리된다. 이때 로맨스가 부자연스럽게 부각되는 것은 그 자체로도 문제이지만, 무엇보다도 자아를 찾고 자신만의 세상을 일구어낸 가이의 의미를 다시금 제한한다는 점에서 더 큰 문제다. 로맨스가 전개되는 과정에서 가이를 마치 게임 개발자의 아바타처럼 묘사하면서 대담한 전개에 스스로 제동을 거는 것이다.
이러한 아쉬움은 <프리 가이> 속 다른 단점들마저 가려버린다. 게임 속 이야기에 비해 게임 밖에서 밀리와 키즈가 앙트완과 대립하는 플롯의 몰입도가 부족한 것과 게임회사의 모든 작업이 엔터 키 하나로 처리되는 편리한 전개 등은 결말이 남기는 물음표에 압도된다. 개개인이 자신에게 부과된 한계를 극복하기를 바라는 영화가 정작 본인에게 부여된 상업영화라는 한계는 이겨내지 못한 상황이 펼쳐진 셈이다. 이렇게 <프리 가이>는 짜리한 해방감만큼이나 짙은 미련을 안기며 결승선 코앞에서 발을 헛디딘 채 마무리된다.
A(Acceptable, 무난함)
세상 모든 사람이 진정한 프리 시티를 만들 날을 희망하는 영화
* <괴물과 함께 살기>, 정성훈, 미지북스, p.155-157
** 같은 책, p.162-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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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냉담함과 무관심의 시대에 도시 청춘들의 삶과 사랑
스리랑카 내전을 피해 생판 처음 보는 여인과 소녀를 데리고 가족으로 위장한 채 프랑스에 온 된 타밀 반군의 전사였던 주인공이 거짓으로 꾸려진 가족들을 지키는 또 하나의 전투를 치르는 과정을 담은 2015년 ‘디판’을 통해 68회 칸 황금종려상을 거머쥔 올해로 일흔에 접어든 노장 자크 오디아르가 프랑스 차세대 감독이자 시나리오 작가인 셀린 시아마, 레아 미지위와 함께 작업한 신작 영화 파리, 13구 리뷰입니다. 배경이 되는 다인종 다문화 주거 지역의 이름 ‘Les Olympiades’라는 원제를 사용하는 만큼 그 안에서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젊은이들을 상징하고, 특히 성적인 면에서 정체성을 깨달아가는 그들을 비춥니다. 무엇보다 흑백이라는 특징은 우리가 떠올리는 파리의 일반적인 이미지에 변화를 꾀하면서도 반대로 어느 대표 도시에도 적용될법한 묘한 현실감을 부여해 현시대를 관통하는 시대극의 형태를 완성시켰다 할 수 있죠. 더불어 이런 시각적 효과와 현대 사람들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에 대한 작가들의 고민은 3편의 단편 그래픽 노블을 하나처럼 매끄럽게 연결시켜 충분히 매력적인 플롯을 선사합니다.
※ 최대한 자제하였으나 일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주의 부탁드립니다.
# 영화 파리, 13구 정보
난 연애할 생각 없어
일단 자고 본다는 자유로운 연애 철학의 콜센터 직원 에밀리, 할머니가 물려주신 집에 여자 룸메이트를 구하는 광고를 내지만 이름만 여자인 카미유가 찾아오고 그의 매력에 빠져들어 사랑을 나누고 룸메이트 사이가 됩니다. 그녀는 그와 좀 더 발전된 관계를 원하지만, 그는 그저 파트너라고 선을 그어버리고 이후 같이 일하는 단기 교사를 종종 집으로 데려오기까지 하죠. 결국 그의 새로운 여자친구에게 질투를 느낀 에밀리의 훼방은 그와 다툼으로 이어지고 다른 집으로 이사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지방에서 삼촌과 부동산 일을 하다 30대 늦깎이 법대생이 된 노라, 나이가 많은 그녀를 반겨주는 사람은 없었고 친해지기 위해 금발 가발을 하고 간 개강파티에서는 야동 사이트의 앰버 스위트라는 BJ로 오인받으며 온갖 추파와 소문에 휘둘립니다. 결국 학교 생활이 힘들어질 정도가 된 그녀는 파리에서 일을 알아보던 중 잠시 교사 일을 그만둔 카미유와 함께 부동산에서 일하게 되죠. 그러면서 자신으로 오인되었던 앰버와도 친구처럼 친해지고, 카미유와도 가까워집니다. 그리고 어느 날 중국 부동산 고객이 찾아오며 카미유는 에밀리에게 통역을 부탁하고 이후 그가 지인 교사의 파티에 둘 모두를 초대하게 되면서 상황이 이상해지는데...
예고편│ Trailer
원제 : LES OLYMPIADES, PARIS 13TH DISTRICT│감독 : 자크 오디아르│각본 : 자크 오디아르, 셀린 시아마, 레아 미지위│원작 : 에이드리언 토미네의 그래픽 단편집 Killing and Dying│출연진 : 루시 장, 노에미 메를랑, 마키타 삼바 외 多│장르 : 멜로/로맨스, 드라마│상영 시간 : 105분│개봉일 : 2022년 5월 12일│국가 : 프랑스│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평점 : 관람객 7.48, 네티즌 7.67, 기자·평론가 7.0, 왓챠피디아 3.6, 로튼 토마토 신선도 82% 팝콘 60%, IMDB 7.1, 메타 스코어 76점│수상 내역: 74회 칸 경쟁부문 초청 및 사운트랙상, 57회 시카고 국제(특별언급상), 47회 세비야 유러피안(여우주연상)│시청 가능 서비스 : 현재 극장 상영 중
# 영화 파리, 13구 평점
널 사랑했어 지금도 사랑하고
우리는 젊은 세대들의 데이트 문화에 대한 이야기들을 아주 많이 접해왔기에 이런 덧없는 사랑놀이를 그리는 것에 형식적이고 진부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룸메이트 여성을 찾는 중 카미유는 여자 이름만 될 수 있다고 생각한 두 사람과 성인 BJ로 잘못 식별되어 삶이 뒤틀리는 노라가 예상치 못한 우연을 빙자한 오해를 통해 관계가 형성되는 점은 흥미롭습니다. 대부분의 일상에서 오해라는 부분들을 연속되고 사람들은 그저 그들의 하루의 또 다른 무작위적인 방향이라 생각하기에 다시 연결되고 떨어져 나가기를 반복하며 각각의 관계에 영향을 미칩니다. 감독은 이러한 부분에서 문제를 삼기보단 그들을 이해하고 노력하는 시선으로 젊은이들의 성적인 활동을 단편적으로 보며 다음 번 방황이 지금보다 더 오래 지속되지는 않을 것임을 그들의 독특한 관계와 일상으로 풀어나갑니다.
충분한 학벌에도 텔레마케팅이나 웨이트리스 같은 일들을 하며 알츠하이머에 걸린 할머니에게는 대리인을 보내고 어머니에겐 거짓 전화를 하는 에밀리, 연애의 감정은 금방 사라진다고 믿는 이기적인 교사 카미유, 30대 법대생의 부푼 꿈이 일순간에 무너진 뒤 원인이라 볼 수 있는 앰버와 뜻밖의 관계로 발전하는 노라까지 예사롭지 않은 캐릭터를 사용하며 옴니버스 같은 묘한 교집합으로 클리셰 한 부분을 피해 갑니다. 원작의 제목처럼 죽음과 유사한 상징의 이별, 우울, 정체성의 혼란 같은 톤을 유지하면서도 각자의 직업에서 가져오는 13구 지역의 사회적 이미지까지 다양하게 끌고 와 외적인 확장까지 보여주죠. 더불어 솔직하게 전면으로 드러낸 성생활의 이야기와 인물 간의 대화, 흑백이라는 영상미와 감각적인 편집들, 아티스트 RONE의 세련된 오리지널 스코어까지 사랑이 이뤄지고 사라지는 평범해 보이지만 독특한 멜로의 순간을 담아냅니다.
‘걸후드’와 ‘쁘띠 마망’,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과 같은 흠잡을 데 없는 스토리를 만든 셀린 시아마와 2017년 ‘아바’로 주목받은 레아 미지위, 노장 자크 오디아르가 이루어낸 협업의 결과물입니다. 그들의 개성과 다양성을 유지한 듯한 캐릭터들의 설정과 이를 연기한 루시 장, 노에미 메를랑, 마키타 삼바는 순간순간의 서로 다른 감정과 생각, 행동들을 훌륭한 앙상블을 선보입니다. 한편으로는 투박하고 뻔할 수 있지만, 전반적으로 캐릭터와 배우, 스토리의 매력이 잘 어우러진 사랑에 대한 어떤 순수한 마법의 연장선상을 그릴 수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청춘들의 사랑 또한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느낄 수 있었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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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WIFF 데일리] 깨어있든지, 다음이 되든지
데카메론(Decameron, 2021)
감독 : 쉬야수
상영시간 : 108분
시놉시스 : "역사는 단지 날짜의 문제가 아니다." 1997년 영국이 홍콩 행정부를 중국에 반환하기 직전, 크리스 패튼은 홍콩의 영국 총독으로서 마지막 연설에서 이와 같이 말했다. 이 영화는 크리스 패튼의 연설을 포함한 역사적 자료들을 픽션과 결합한다.(출처: 서울국제여성영화제)
나는 한 번도 홍콩에 가본 적 없지만 홍콩을 좋아한다. 홍콩을 좋아한다고 말하지만 나는 제니쿠키와 몇 편의 홍콩영화만을 좋아할 뿐이다. 어릴 때 엄마가 '별들이 소곤대는 홍콩의 밤거리'로 시작되는 <홍콩 아가씨>라는 노래를 자주 불렀다. 내가 좋아했던 홍콩은 예술가들에 의해 잘 만져진 홍콩이고, 나는 홍콩을 모른다.
홍콩은 1841년 아편전쟁을 겪고, 1842년 난징조약으로 영국의 식민지가 된다. 근현대사에서 뭔가 구린내가 난다 싶으면 영국이 끼어 있다. 아무튼,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도 영국은 홍콩을 계속 식민지로 둔다. 중국 본토에는 사회주의 체제인 중화인민공화국이 세워졌지만 홍콩만큼은 세계사의 흐름대로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를 취한다. 그리고 중국의 부호들과 돈 좀 벌어보고자 하는 사람들이 홍콩으로 몰려들기 시작한다. <첨밀밀>의 이요와 소군처럼.
왕가위 감독은 홍콩 반환을 앞두고 그가 사랑하는 홍콩의 모습을 필름에 담았다. 1997년, 홍콩은 영국의 식민지에서 중국의 특별행정구로 편입되었다. 덩샤오핑은 일국양제로 홍콩의 민주자본주의를 50년간 유지하기로 했으나, 우리가 중국에 대하여 보고 들은 바와 같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시민들은 우산을 들고 최루탄에 맞섰다. '우산혁명'이라 불리는 2014년 홍콩 민주화운동이다. 5년 뒤인 2019년에는 '범죄인 인도 법안'에 맞서 시민들이 다시 거리에 나섰다. 우산혁명 당시에는 평화적 시위를 이어나갔지만, 우리 모두 알다시피 평화시위는 힘이 없었다. 1996년생인 조슈아 웡은 대한민국에도 홍콩과 뜻을 같이할 것을 호소했다.
영화는 영국령 홍콩의 마지막 총리 크리스 패튼이 연설하는 장면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를 교차편집하여 보여준다. 총리는 말한다. "역사는 단지 날짜의 문제가 아니"라고. 대학교 졸업 이후 처음으로 역사의 보편성과 특수성에 관하여 생각해보게 된다.
<데카메론>은 이탈리아 작가 조반니 보카치오가 쓴 소설의 제목이다. 흑사병이 돌고있는 도시를 떠나 교외의 별장에 머무는 귀족들이 떠드는 이야기. 홍콩의 민주화운동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보여주는 이 영화는 굳이 '데카메론'이라는 제목을 차용했다. 21세기의 흑사병 같은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이겠다.
영화에는 홍콩 역사의 이모저모가 담겨있다. 100년 전인 1922년 홍콩 선원 파업 사건과 코로나 이후 홍콩 예술인들의 노조 설립을 병치하고, 1966년 홍콩섬과 구룡반도를 잇는 유일한 운송수단이었던 스타페리호의 가격인상이 도화선이 되어 발생했던 1967년 폭동과 2019년 혁명, 아직까지도 이어지는 '광복홍콩 시대혁명'까지 영화는 홍콩의 큼직큼직한 역사적 사건들을 훑어간다.
그 가운데, 코로나로 봉쇄된 도시에서 주부들이 화상회의로 만난다. 주부들의 권리를 찾기 위해서이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겠지만, 코로나로 아이들이 유치원과 학교에 가지 못하게 되자 엄마들이 난감해졌다. 거시적으로도 난리가 났지만 미시적으로도 케파가 딸리는 상황에서, 언제까지 생활을 이어갈 수 있을지도 의문스럽다. 밖에서는 검은 옷만 입어도 전경에게 취조를 받아야 하고, 안에서는 밖에 나가지 못하는 가족을 돌보거나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경찰들 때문에 조마조마해야 하는 삶.
아무튼 <데카메론>은 홍콩의 과거와 현재다. 홍콩영화 특유의 찬란한 네온사인도, 화려한 액션도 없는, 홍콩 그 자체다.
'홍콩을 정말 사랑하는 예술가들'이 제작했다는 엔딩 크레딧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이 작품은 공권력에 의해 살해되거나 실종된 수많은 홍콩사람들을 기억하는 일, 억울한 죽음에 마스킹테이프를 붙이는 일을 이어갈 수밖에 없는 마음 그 자체다. 정말 사랑하기 때문에 기록해야만 하는 일이다. 그렇지 않으면 영화에서 교차편집하여 보여주었듯이, 역사는 반복될 것이다.
홍콩 시위대가 남긴 "깨어있든지, 다음이 되든지(Be aware, or Be next)"라는 문구를 목격한 우리는 지금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우리나라에도 민주화운동이 있었고, 기록하는 사람들과 왜곡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곧 행안부 소속 경찰국이 신설될 예정이다. 어쩌면 다음은 우리일지도 모르겠다.
제24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상영 스케줄
2022년 8월 27일 17:30~19:18 / 메가박스 상암월드컵경기장 9관
2022년 8월 31일 16:00~17:48 / 메가박스 상암월드컵경기장 8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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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불처럼 뜨거운 마감 직전의 마음
본 리뷰는 독립예술영화 활성화 캠페인인 '인디플렉스 시즌4'에서 제공된 관람권으로 관람 후 작성된 리뷰입니다.
우리는 종종 자기 자신의 고민에 완전히 빠질 때가 있다. 자신이 해결해야 할 큰 문제가 눈앞에 있을 때 주변을 바라보기 힘들다. 주변 사람이 건네는 도움의 손길도 귀찮은 손길로 보이고, 좋은 조언도 잔소리로 들린다. 그렇게 눈앞의 고민에 집중하다 보면 주변에서 들어오는 정보들이 하나 둘 왜곡된다. 그렇다고 눈앞에 있는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다. 그 문제는 문제대로 해결되지 않고, 주변과의 관계는 흔들림의 진폭을 늘려간다.
뭔가 만들어내야 하는 과제가 주어졌을 때 더 시야는 좁아진다. 글을 쓰는 작가도 있겠지만 우리가 학교 다닐 때 해야 할 다양한 과제들과 시험들을 떠올리면 그런 일들이 무척 많다는 걸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많은 사람이 평상심을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자신에게 그 문제가 다가올 때면 여유를 잃고 감정적인 실수를 하게 된다. 이런 히스테리컬 한 반응은 특정한 사람에게만 나타나지 않고 모두에게 정기적으로 찾아오는 일이다.
마감을 위해 시골 별장에 방문한 레오와 펠릭스
영화 <어파이어> 속 주인공 레온(토마스 슈베르트)은 글을 쓰는 작가다. 새로운 책을 쓰고 있는 그는 최종적으로 원고를 마무리하기 위해 조용한 곳에 있는 펠릭스(랑스톤 위벨) 부모님의 별장으로 함께 간다. 별장의 분위기는 무척 조용하고 경관은 아름답다. 바닷가가 근처에 있어 수영을 하고 돌아오기도 무척 좋은 위치다. 그래서 그 별장은 레온이 글을 마무리하기에 딱 좋은 환경이다. 하지만 여기에 불청객이 있다. 먼저 여행객으로 머무르고 있던 나디아(파울라 베어)는 레온이 방문한 첫날부터 큰 소음을 내고 음식 먹은 그릇을 치우지 않은 채 생활하고 있다.
사실 레온과 펠릭스의 별장 방문은 처음부터 순조롭지 않았다. 차가 고장 나서 먼 거리를 무거운 짐을 들고 걸어야 했고 편하게 쉬어야 하는 첫날밤에 나디아가 내는 소음 때문에 편안하게 푹 자지 못했다. 여기에 꼭 성공적으로 마무리해야 할 원고는 손도 대지 못했다. 어쩌면 그가 시종일관 주변에 짜증을 부리는 건 당연할 것이다.
영화 초반 차가 고장 나 산길로 걸어가다가 친구 펠릭스가 길을 확인한다며 먼저 뛰어갔다 돌아오는 장면이 있다. 레온은 산 중간에서 한참을 기다린다. 그러다 펠릭스가 소리 없이 다가와 레온을 놀라게 한다. 레온은 심각한 표정으로 펠릭스의 목을 조른다. 한 편으론 장난처럼 보이지만 몇몇 순간에 레온의 얼굴에서 엄청나게 화난 모습이 보인다. 그건 실제로 놀라게 한 펠릭스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미 그때도 레온의 마음에는 그런 장난을 받아줄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또한 레온은 주변을 세심하게 바라보지 않고 자신의 고민에만 몰두하고 있었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레온은 별장에 도착한 이후 며칠이 지나서야 나디아를 만나 인사하게 된다. 그리고는 나디아, 펠릭스와 별장 근처에 사는 데비트(엔노 트렙스)와 함께 식사도 하면서 관계를 만들어간다. 하지만 레온은 그들이 제안하는 대부분의 놀이나 활동에 참여하지 않는다. 그는 반복적으로 일이 많아서 못한다는 말을 내뱉는다. 흥미로운 건 그가 혼자 남았을 때, 일을 진행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혼자 공놀이를 하고 집 주변을 돌아다니거나 잠을 자며 시간을 보낸다.
일도, 노는 것도, 인간관계도 망치게 만드는 레온의 불안
영화 속 레온의 모습은 점점 지질해진다. 주변 사람에게 틱틱 쏘아붙이듯 말을 하거나 퉁명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는 그는 분명 비호감이다. 하지만 그의 그런 삐딱함은 이해할만한 범위에 있다. 마감을 앞두고 있는 그의 마음속에는 이미 집필이 거의 완료된 초고의 완성도에 대한 불안감이 자리하고 있다. 그의 마음속에 있는 불안은 산불처럼 그의 마음속을 빨갛게 채우면서 불길이 이리저리 옮겨 다닌다. 마치 영화 속에 등장하는 산불로 빨개진 하늘처럼 레온의 마음도 빨갛다.
레온은 시종일관 그 불안을 보고 있다. 주변에서 불쏘시개로 그 불안을 찌르면 과민반응을 한다. 그의 불안은 그가 쓴 초고에 대한 평가가 다른 사람의 입에서 나올 때 더욱 커진다. 영화 후반부 출판사 사장(매티아스 브랜트)과 나디아가 초고에 대한 평가를 할 때 레온의 마음의 불은 커지고 그 주변까지 태워버린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산불은 마치 레온의 마음을 보여주는 것 같다. 산불은 갑작스럽게 레온 일행에게 다가와 레온의 주변을 망쳐버리고 떠난다. 레온은 그 산불에 집중하다 주변의 불행을 미처 알아채지 못한다.
불안을 가지고 있는 히스테리컬 한 레온의 주변 인물들은 대체로 따뜻하다. 그의 짜증을 받아주면서 그에게 휴식을 자꾸만 권하는 그들 속에서 레온의 모습이 좋은 모습은 아니지만, 결국 뒤늦게나마 자신이 왜 그렇게 불안했는지를 알게 된다. 영화의 전반적인 전개 과정은 레온의 불안에서 짜증으로 넘어가 슬픔과 깨달음으로 마무리된다. 여기에는 우리의 젊은 시절 성장하는 과정도 떠오르게 하고, 어떤 일이 해결되기까지 겪는 심리적인 상태를 떠오르게 하기도 한다.
레온은 영화가 끝날 때 즈음에야 주변 인물들의 진심을 보기 시작한다. 그건 마감과 작품의 완성도에 대한 압박을 잠시 내려두고 자신의 작품을 봤을 때 비로소 느낄 수 있는 것인데, 그것은 주변 인물의 상실이라는 큰 트라우마도 큰 영행을 주었다. 큰 산불이 만들어낸 폐허가 된 산의 모습과 큰 불행이 겹쳐지면서 레온에게는 다시 온전한 상태가 될 수 있는 마음가짐을 만들어 낼 수 있게 되었다.
산불로 인한 붉은 노을처럼 위험해 보이는 레온의 복잡한 마음
영화 <어파이어>는 4명의 젊은 인물이 자신의 앞에 당면한 문제나 시험을 대하는 태도를 상반적으로 보여준다. 레온은 모든 일에 예민하고 시니컬 하지만 펠릭스는 놀면서 생각하고 영감을 받으려 애쓴다. 서로의 방법이 다를 뿐 두 사람 모두 무언가 자신이 해야 할 일에 직면한 상태는 동일하다. 나디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는 졸업을 위해 논문을 준비해야 하지만 잠시 아르바이트를 하며 쉬고 있는 상태다. 그 역시 해야 할 일을 앞에 두고 있지만 긴 호흡으로 그 과제에 천천히 정리하며 접근한다.
그들이 보는 빨간 하늘은 아름다운 노을 같기도 하지만 뜨거운 젊음을 보여주는 것 같다. 뜨거운 산불이 위험한 것처럼 그들의 젊음이 가져다주는 감정도 무척이나 뜨겁고 위험하다. 이 영화를 연출한 크리스티안 페촐트 감독은 이 영화로 베를린국제영화제 은곰상을 받았다. 과거 <운디네>, <트랜짓>, <파닉스> 같은 사회역사적인 배경이 있는 영화를 주로 연출했는데, 이번 <어파이어>는 좀 더 개인적인 경험이 녹아들어 가 있는 작품이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다운로드하였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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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에만 느낄 수 있는 행복을 향해.
줄리아 로버츠 그리고 조지 클루니라는 이름만으로도 보러 갈 이유가 충분한 영화 <티켓 투 파라다이스>는 <맘마미아 2!>를 연출했던 올 파커 감독의 새로운 작품이다. 10월 12일에 개봉한 이 영화는 로맨틱 코미디이지만 딜콤살벌한 매력을 느낄 수 있다. 특히 두 베테랑 배우가 만들어내는 연기의 케미가 이 영화의 주요 이야기의 중심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하며 보다 많은 세대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이끌어낸다. 풀리지 않을 것 같았던 문제들이 조금씩 풀리며 또 다른 의미를 뻔하지만 따뜻하게 풀어나간다.
운명 같은 사랑을 느꼈던 데이비드와 조지아는 서로가 없는 지금을 살아가고 있다. 그때와 전혀 다른 상황이지만 그들은 딸 릴리와 연관된 일이 아니면 대면하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대형 로펌 입사를 앞둔 딸이 발리에서 운명의 남자와 결혼한다는 소식을 전해 오게 되고 항상 의견이 맞지 않았던 두 사람이 의기투합하게 되고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비행기에 올라타게 된다. 이들은 과연 결혼을 막을 수 있을까.
'나'가 아닌 '타인'을 중심으로 한 삶은 한계를 느낄 수밖에 없다. 릴리 또한 자신의 목표가 아닌 부모님의 목표를 향해 달려갔던 터라 목표를 이루고 나니 찾아오는 허탈함을 견딜 수 없었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던 릴리가 발리로 떠났고 새로운 세상을 만났으며 그곳에서 느낀 것들을 통해 처음으로 자신이 원하는 선택을 하게 된다. 그것이 부모님이 원하지 않을지라도 릴리는 그 사랑을 멈추고 싶지 않다. 사랑을 위주로 이야기를 풀어나갔지만 릴리가 마주했던 건 자신이 기존에 누렸던 모든 것들과는 정반대에 있는 삶이었다. 자신이 살아가는 사회에서의 자유보다는 자신이 앞으로 살아갈 사회에서의 자유를 택한 것이다.
현실과 상황은 성격을 드러내고 그들은 자연스레 반대가 되어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런 상황을 겪었기에 짧은 기간의 만남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시간도 감정도 변하지만 변하는 것 앞에서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다르다. 늘 앞에 있는 것에 충실하며, 언제 찾아올지 모를 미래 때문에 현재의 행복을 누리지 못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들이 사랑의 말보다 상처의 말을 꺼내어 긴 불행을 겪은 일을 되풀이하지 않고 서로를 위해 지금 건넬 수 있는 사랑의 말을 꺼낼 때다. 좋은 건 뒤로 미루는 게 아니다.
우리는 왜 운명적인 사랑에 끊임없이 빠져드는 걸까. 경험해보지 못한 것들은 환상에 뒤덮여 있어 더욱 아름다워 보인다. 아름다운 것 또한 삶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순간,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다만 그 속에서도 진심을 다한다면 당신이 건넨 이 티켓이 정말 '파라다이스 행' 티켓이 바뀔 수 있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다만 단번에 찾아오는 화해가 존재할지는 의문이다. 영화관에서 느낄 수 있는 아름다운 풍경과 배우들의 연기에도 곳곳의 빈 공간을 메우지는 못하기에 더욱 그렇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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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뮤지컬로 만들었지? / 호불호가 갈리는 뮤지컬 형식 / 조커와 할리퀸 / 강렬한 레이디 가가의 연기 / 역시 호아킨 피닉스 / 반전 있는 결말
영화직관하는남자 홍큐의 "조커: 폴리 아 되" 후기입니다.
*쿠키영상은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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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 잘만든 수작인데 빛을 보지못한 숨겨진 비운의 명작
안녕하세요 빛을보지못한 숨겨진 명작을 찾아서....첫번째 2007년작 영화:스카우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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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스쿨 아웃 포에버> 티저 예고편
최악의 팬데믹 발생!
전 세계 인구 95% 사망
오직 Rh-O형만 면역력 보유
세상이 진짜로 망해버렸다!
전염병과 난폭해진 사람들을 피해 학교에 모인 키건과 친구들
현실 생존에선 그동안 배운 것은 모두 무쓸모!
지금부턴 실전이다! 본능대로 살아남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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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로스트 시티> 대환장 어드벤처 예고편
자고 일어났더니 나도 모르는 곳의 보물을 찾는 열쇠가 나?? ? 리치 빌런이라는 페어팩스는 또 누구? ? 정말 대환장 그 자체! 난리났네~난리났어! 보물을 향한 이 어드벤처의 끝이 궁금하다면! 지금 바로 예매하러 달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