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4-11-21 13:58:53
영화는 지루한 부분이 커트된 인생이다
영화 <보이후드> 리뷰
오래 동안 사용한 나의 블로그 이름은 ‘언젠가 그리울 오늘’이다. 어쩌다 이런 이름을 사용하게 되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나에게 흘러가는 시간들을 붙잡는 일들은 너무나도 소중하다. 한 달의 마지막 주 주말에는 지나간 날들을 톺아보며 기록하는 시간을 가지고, 고등학교 때 우연히 시작한 필름 사진 찍기는 어느덧 8년 차의 취미가 되었다. 어떨 때엔 이 순간이 지나가는 것이 너무 아쉬워 마음이 저릿할 때도 있다. 가끔은 자기 전에 누워 지루한 오늘이 나의 삶에 어떤 흔적으로 남을지 가늠해 볼 때도 있다.
이렇듯 시간의 흐름 앞에 늘 아쉬워하는 나에게 영화 <보이후드>는 와닿을 수밖에 없다. 12년의 제작 기간을 거친 <보이후드>는 2002년에 시작해 1년에 한 번씩 모여 촬영을 진행하며 소년 ‘메이슨’과 주변 인물의 성장 과정을 그대로 녹여냈다. 영화 자체가 거대한 타임캡슐인 것이다. 모토로라 폴더폰에서 아이폰, 이라크 전쟁과 오바마의 당선 등 시대상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요소들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사실 메이슨의 인생에 있어서 특별하다고 말할 엄청난 사건은 일어나지 않는다. 비록 엄마의 세 번의 이혼이라는 특이한 성장배경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이로 인한 잦은 이사 때문인지, 메이슨은 세상과 한 발짝 떨어져서 관조하는 것을 선호하는 차분한 성격으로 자라난다. 자유롭게 문화생활을 즐기는 아빠와는 비슷한 듯 다르게 말이다.
대학생이 된 메이슨은 젊은 시절의 아빠처럼 수염을 기를 만큼 아빠와의 연대가 끈끈하다. 영화에서는 부대끼며 지내는 엄마보다 아빠와의 시간들을 더 많이 조명하는데, 훗날 엄마가 될 나로선 이 연출이 아쉬웠다. 아이에 대한 삶을 책임지고 쓴소리를 해야 하는 역할인 엄마보다 일주일에 한 번 만나 캠핑에 가고 드라이브를 할 수 있는 위치인 아빠가 더 멋지게 비치는 건 너무 억울하지 않나! 그래도 비틀즈의 ‘화이트 앨범’을 오마주해 직접 제작한 ‘블랙 앨범’을 생일 선물로 주는 아빠는 부러울 정도로 참 근사했다.
또한 세 번의 이혼을 거쳐, 홀로 두 아이를 대학교에 보낸 메이슨의 엄마를 완벽하고 강인한 여성으로만 그려내지 않아서 좋았다. 텍사스로의 이사를 준비하며 신이 난 메이슨을 보며 ‘뭔가 더 있을 줄 알았다’며 펑펑 눈물을 쏟아내는 장면은 영화의 명장면 중 하나이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눈 깜짝할 새’에 자라나 버린 아들을 보며 어떤 감정이 들었는지는 내가 엄마가 되어 자식을 떠나보내는 그때가 되어야지만 알 수 있을 것 같다.
감독 리처드 링클레이터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한 인간이 어떻게 변해가는지, 그 변화의 과정에서 만나게 된 사람들과 사랑의 이야기를 꾸준함으로 녹여냈다. 시간은 언제나 흘러간다. 무한한 흐름 속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돌아오지 않을 이 시간을 찬찬히 음미하는 것뿐일지도 모른다. 나아가 내 앞에 주어진 것을 선택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지고, 그 과정에서 마주친 인연과 사랑 앞에 최선을 다하는 것. 이를 통해 우리는 시간 속에 변화하고 성장하며 성숙해진다.
제아무리 멈추려고 해도 인생은 계속해서 흐른다. 시간은 흐르지만, 그 순간에 충실했던 나와 그 마음들은 사라지지 않고 내면 속에 깊이 스민다. 현실에 발을 디디고 있는 우리 역시 앞에 평범하기에 대단한 나날들이 계속되기를 바란다. 또한 가슴 벅차도록 반짝이는 찰나가 이어져 잊고 싶지 않은 순간이 종종 찾아오길, 또한 <보이후드>같은 영화를 다시 만날 수 있는 행운이 함께한다면 좋겠다.
Editor. I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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