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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onymoushilarious2024-11-30 21:40:07

혈연이라는 말의 의미

조립식가족

 

 

드라마를 많이 보는 편이지만 드라마는 보다가 이탈하는 경우가 많다. 중간에 '아, 이건 무리순데' 싶거나 너무 자극적인 내용은 굳이 찾아서 보는 편은 아니다. 그런데 이번 드라마를 찾으면서 너무 판타지인가 싶으면서도 결국 흐뭇하게 바라보게 되어서 꾸준히 완주했다. 완주한 기념으로 리뷰한다. 보고 있으면 이런 현실은 믿어보고 싶다고 생각이 들기도 해서 말이다.

 

 

 


 

1. 가족이라는 울타리란

 

 

 

브런치 글 이미지 1

 

 

 

 

 

이 드라마는 설정값부터가 좀 사기다. 모두 부모가 조금씩 자격미달들이다. 부모도 부모 나름대로 각자의 사연이 있지만 결국 아이들은 부모없이 살아내야 하기 때문에 그들이 받아온 상처가 이 드라마에서 기본 설정값이다. 한 아이는 엄마와 아빠가 모두 버렸고, 한 아이는 엄마가 버렸고, 한 아이는 엄마가 죽었다. 세상은 부모가 온전히 존재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들 하고, 뭐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낫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그게 그렇게 절대적인가 싶을 때가 많은데, 이 드라마가 그 지점을 정확히 찌르지 않았나 생각한다. 결핍이 있는 사람들끼리 서로의 상처를 알고 토닥토닥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아무리 픽션이라고 해도 혈연이라는 말은 가족 간의 유대가 약할 때 관계성을 강화하고 싶어하는 어른들이 강조하려고 만든 말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남보다 못한 혈연도 분명히 있고, 가족보다 나은 남도 분명 있기 때문이다. '내가 너를 어떻게 낳았는데'라고 말하며 자식이 벌어온 돈을 당연하게 뺏어가는 부모도 있고, 자식이 없으면 밥도 못 챙겨먹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들이 꼭 '혈연' 운운하며 자식들의 죄책감을 자극하곤 한다. 그런 사람들이 더 이상 대우받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는 듯한 이 드라마를 그래서 더 꾸준히 봤던 것 같다. 바로 그 지점이 마음에 들어서.

 

 

 

 

 

 

 

 

 

 

 

이 드라마를 보고 있자면 그저 모든 인물들이 예쁘게만 보인다. 이 드라마의 판타지는 주인공들을 둘러싼 인물들이 대부분 모두 서로의 인생을 응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세 아이들의 친구들은 서로를 응원한다. 시기, 질투도 없고 누가 더 잘 된다고 까내리는 모습도 없고 그저 다들 순박하다. 난 이 지점이 이 드라마의 가장 비현실적인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뭐, 가끔 산하 엄마같이 자신의 아픔이 가장 중요한 사람들도 있는데 오히려 그런 사람들이 등장해 이 드라마가 가진 판타지를 조금은 현실적으로 그린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한다. 한 편으로는 그런 사람들이 있어서 이들의 우애, 애정이 더 돈독해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도 이 드라마 속 대부분의 인물들은 참 착하다. 생판 남이지만 서로를 형제라고 칭하면서 유대감으로 꽁꽁 매인 아이들을 보고 있자면 참 예뻐보였다. 서로를 가장 많이 챙기니 이게 가족이 아니면 뭐라고 할 건데 싶고, 정재가 산하와 주원을 반대하는 것만 봐도 이건 찐 가족의 리액션이지 싶었다. 그래서인지 세상엔 이들과 같은 사람들이 많다고 믿고 싶어졌다. 가족은 삶에서 가장 필요한 사람들이지만 가족=혈연이라는 말은 더 이상 의미가 없어지고 있다는 것을 내가 외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2. 정재 캐릭터가 가지는 의미

 

 

 

이 드라마에서 가장 중요한 캐릭터는 사실 정재다. 각기 다른 이유로 모여 살고 있는 하나의 가족을 구성하는 데 있어 정재와 같은, 소위 엄마의 역할을 하는 캐릭터가 있어 이 같은 가족 형태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사회는 여자에게 엄마의 역할을 요구한다. 그리고 여자들도 그런 모성이 당연하다는 듯 행동하고 아이들을 키워낸다. 하지만 정재와 같은 사람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 같다. 남자이지만 가족 구성원 상 엄마의 역할을 해내는 사람 말이다. 여자라고 모두 엄마의 역할을 해내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남자도 엄마처럼 살뜰히 챙길 수 있다는 이런 메시지가 이런 TV에 나오는 것만으로도 참 세상이 많이 변한 것 같다고 생각이 들었다. 이 드라마에서 정재가 엄마이고, 산하 아빠가 가장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이걸 보고 있자면 전통적인 사회에서의 온전히 존재하는 엄마 아빠가 없어도 그 역할을 대체할 사람만 있다면 어떻게 될까 생각해본다. 그렇게 된다면 아이들의 결핍까지 모두 채워줄 수는 없겠지만 이렇게 나에게 부모의 역할을 대신할 사람들이 있다는 것 만으로도 아이들이 삐뚤어지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브런치 글 이미지 2

 

 

 

정재가 차려주는 밥상, 이거 참 중요하다고 생각이 든다. 어린 시절 함께 누군가와 정기적으로 밥을 먹어본 경험이 있는 것, 이것이 남은 인생, 20, 30, 40대를 살아가는 데 있어 정서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 같다고 느낀다. 나만 해도 진짜 싫어하던 가족 구성원과 오랫동안 밥을 질리게 먹었는데, 그래도 그 싫어하던 사람과의 밥상도 계속 먹다보면 일말의 추억이라는 게 생기기 때문에 안 한 것보다는 나았겠다 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리고 가족과의 밥을 먹어온 기억으로 지금의 내가 이정도 안정적인 정서를 갖게 된 것 같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가족 사회에서는 그런 밥상을 엄마들이 많이 차려오시는데, 나는 전통적인 가족 사회 출신이지만 그걸 꼭 엄마가 해야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누구든 내 인생에 그런 밥상을 차려주시는 어른이 있다면 그 사람이 곧 엄마가 아닐까. 엄마=여자로 생각될 필요는 없지 않나.

 

 

 

3. 총평

 

 

 

브런치 글 이미지 3

 

이 드라마, 중국 드라마의 리메이크이다. 중국 드라마도 조금 봤었는데, 우리 나라 사람 정서에 맞게 잘 리메이크한 것 같아서 오히려 좋았다. 이런 드라마 잘 못 만들면 신파 되기 십상인데, 인물들을 적당히 불쌍하게 만들다가도 로맨스 라인도 가미되어 잠시 분위기가 환기되기도 하다보니 그렇게 슬픔에만 몰입하지만은 않게끔 완급조절을 잘 한 것 같아서 좋았다. 신파를 볼 때에 크게 과하게 감정소모하는 일은 없었기 때문이다. 적당히 슬프고, 적당히 예쁘고, 적당히 오글거리고 그래서 끝까지 완주 가능했다.

작성자 . Anonymoushilarious

출처 . https://brunch.co.kr/@lanayoo911/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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