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자까2025-02-10 23:17:30
'특종' 경주에서 값진 승리는 없다
영화 <9월 5일: 위험한 특종>
1972년 뮌헨 올림픽은 슬픈 역사의 한 페이지로 기억됩니다. 팔레스타인 테러 조직 '검은 9월단'이 올림픽 선수촌에 침입해 이스라엘 선수 11명을 살해했기 때문인데요. <9월 5일: 위험한 특종>은 당시 테러 상황을 생중계한 미국 ABC 방송국 주조정실의 모습을 생생하게 담아낸 영화입니다. 언론인을 꿈꾼다면 1970년대 보도 현장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고, 저널리즘의 역할에 대한 다양한 질문을 던지는 이 작품을 꼭 한 번쯤 관람하기를 추천합니다.
※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은 <9월 5일: 위험한 특종> 시사회를 통해 영화를 감상했습니다. <9월 5일: 위험한 특종>은 2025년 2월 5일 국내 개봉작입니다.
9월 5일: 위험한 특종
September 5
Summary
1972년 뮌헨, 올림픽 생중계에 도전한 ABC 방송국 스포츠팀은 무장한 테러리스트들이 선수촌에 난입해 인질극을 벌이고 있음을 알고 이를 생중계로 보도한다. 솟구치는 시청률과 9억 명의 시청자까지, 생방송으로 내보내는 단독 특종에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그들은 테러리스트들 역시 자신들의 방송을 보고 있음을 알게 되는데… (출처: 씨네21)
Cast
감독: 팀 펠바움
출연: 피터 사스가드, 존 마가로 외
9억 명이 시청한 테러 생중계
영화의 주인공은 뮌헨 올림픽의 생중계를 맡은 ABC 방송국 스포츠 팀입니다. 당시 ABC 방송국은 전 세계 최초로 올림픽 위성 동시 생중계를 진행해 이목을 끌었습니다. 원활한 방송을 위해 올림픽 선수촌 옆에 간이 스튜디오를 세우기까지 했죠. ABC 방송국은 차질 없는 생중계를 위해 수많은 위기 상황에 대비했겠으나, 올림픽 도중 테러 사건이 발생할 것이라고는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겁니다. 테러 발생 직후, 마침 사건 현장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그들은 이 상황을 전 세계에 실시간으로 송출하기로 합니다.
<9월 5일: 위험한 특종>은 멀티 캐스트를 활용해 테러 상황을 라이브하는 주조정실의 모습을 밀도 있게 그려냅니다. 주조정실을 지휘하는 프로듀서, 몸집만 한 카메라를 테러 현장과 가까운 언덕으로 끌고 올라가는 카메라맨, 독일 경찰의 무전을 엿듣는 통역사, 선수로 위장해 올림픽 선수촌을 드나드는 직원까지. 정신 없이 오가는 사람들 한가운데서 영화를 관람하다 보면, 관객이 아니라 그 현장 속 '주조정실 직원 1'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죠.
ABC 방송국 스포츠 팀은 '특종'을 놓치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합니다. 전 세계 시청자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 화면이 무엇일지를 고민하느라 잠시도 쉬지 못합니다. 그들의 생중계는 인질이 전원 생존했다는 속보를 전함으로써 22시간 만에 막을 내렸고, 약 9억 명이 시청하는 대기록을 세웠습니다. 어마어마한 시청률로 방송을 마친 제작진은 축배를 나눠 듭니다.
그러나 후손들인 우리는 이미 역사를 알고 있습니다. 역사에 기록된 바는 '전원 생존'이 아니었지요. 극 중에서도 테러 조직이 인질로 붙잡은 이스라엘 선수 11명을 살해했다는 것이 뒤늦게 밝혀집니다. 생중계를 이끈 프로듀서 '제프리'는 어찌저찌하여 방송을 마무리하지만, 언론인으로서 깊은 고뇌에 빠집니다.
⊙ ⊙ ⊙
고통은 언제부터 특종이 되었나
1970년대의 기술 상황을 고려할 때, 테러 상황을 실시간으로 전 세계에 생중계한 것은 여러모로 엄청난 일입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축배를 들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을 테죠. 그러나 이를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만은 없다는 것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전원 생존'이라는 오보와 특종을 위해 자극적인 내용들을 앞다투어 내세우던 언론의 경쟁적인 보도 행태를 직접 경험한 세대이기 때문입니다.
제 머릿속에는 아직도 언론이 보도한 이미지를 통해 공개된 고통의 면면들이 선명합니다. 가라앉은 세월호가 선명하고, 소란했던 이태원이 선명하며, 질주하는 제주항공 비행기가 선명합니다. 언론은 이러한 이미지들을 '시선 잡아끌기'용으로 대중에게 공개해선 안 됐습니다. 이러한 이미지가 가져올 결과를 고민했어야 합니다. 하지만 '제프리'의 실제 인물인 당시 ABC 방송국의 조정 프로듀서 제프리 메이슨마저도 팀 펠바움 감독과의 인터뷰에서 '(현장에서는) 그럴 시간이 없었다'고 답했다고 하지요.
이렇듯 <9월 5일: 위험한 특종>은 저널리즘을 향한 다양한 질문을 던지게끔 합니다. 뉴스는 세상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 뉴스의 영향력을 어디까지 고려해야 하는가? 언론인은 어떤 자세로 사실을 대해야 하는가? 사실이란 무엇인가?고통은 언제부터 특종이 되었나?
오늘날은 소셜 미디어가 언론보다 빠르게 소식을 전파하는 시대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언론은 여전히 쓸데없는 '특종' 경주에 올라타 있고, '시선 잡아끌기'용 보도에 열중하는 것만 같습니다. 이제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제대로 된 '단독'을 기획하는 언론이 필요합니다. 사회적 약자를 무시하는 대기업의 횡포를 포착하거나, 장애인 이동권 시위를 쟁점을 언론인의 시선에서 정리하거나, 팩트 체킹된 정보를 공정한 관점에서 취사선택하여 전달하거나... 특종이나 단독이라는 말머리가 달려야 할 기사는 무릇 이런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 ⊙ ⊙
<9월 5일: 위험한 특종>은 체험하는 영화로서도 무척 인상적인 작품입니다. 주조정실 안에서만 진행되는 스토리인데도 손에 땀을 쥐게 하고, 쉬이 가라앉지 않는 긴장감을 만들죠. 그때 그 시절의 방송 현장을 보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수제로 자막을 만드는 모습, 필름을 느리게 돌려 슬로우 모션으로 재생하는 모습, 확대한 사진을 출력하기 위해 필름을 재촬영하는 모습 등 다채로운 아날로그 기술의 향연이 펼쳐집니다. 저널리즘을 향한 여러 질문들을 곱씹으며, 당시의 모습을 재현하기 위해 부단히 애쓴 미술팀의 활약도 감상해 보시길 바랍니다.
One-Liner
재앙은 언론에 기회로 작동하고, 보도윤리를 지키는 언론에는 기회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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