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2025-02-19 20:41:00
흑백 현실 속 총 천연색 꿈
영화 [더 폴]리뷰
이 글은 영화 [더 폴]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샤흐리야르 왕의 마음이 이랬으리라.
불륜을 저지르는 왕비의 모습을 지켜만 보았을 왕의 마음이 로이(리 페이스)는 어쩐지 이해되는 것만 같았다. 아니, 지금 자신의 꼬라지를 본다면, 오히려 왕이 자신을 향해 고개를 내저으며 혀를 찰 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 가련한 환자는 사랑에 배신당한 것도 모자라, 커리어 까지도 자신의 척추처럼 박살 나게 생길 위기였으니까. 이 기구한 운명을 꼼짝없이 견뎌야만 하는 답답함을 알아주는 누군가라도 등장해 주면 좋으련만. 지금 로이의 옆에 있는 사람이라고는, 아무리 봐도 아직 숫자를 3까지 밖에 모르는 것만 같은 알렉산드리아(카틴카 운타루)의 존재가 전부였다.
그러나 오히려 기회일지도 몰랐다.
이 앞니 빠진 암살자(?)를 내 편으로 만들 수만 있다면. 자신이 결국 그렇게 넘고 싶어 하는 요단강(?)도, 쉽게 건널 방법이 생길 것만 같았다.
물론 처음에는 자신의 운명까지 내걸어 볼 심산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인생을 망치러 온 이 구원자의 손길을 거부할 수는 없었다. 로이는 입을 열었다. 이 얕고 가는 자신의 목숨줄을 좌지우지하게 될지도 모르는 꼬마 샤흐리야르 왕 앞에서. 로이는 기꺼이 세헤라자데가 되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 암살자의 스턴트는 실로 대단했다.
로이가 수행할 수 없는, 위험하기 그지없는 스턴트 역할을 거리낌 없이 수행했다. 물론 이 초보 복면에게 허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3이 넘어가는 숫자에 기겁을 하기도 하고(!) 공범인 주제에 도덕적 잣대가 너무 높아 대역을 하지 않겠다며 생떼를 부리기도 했지만. 세헤라자데가 풀어내는 이야기의 황홀경에 빠져 망설임의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미션 수행의 시간이나 방법도 치밀해져 갔다.
하지만 마지막 미션의 벽은 이 하룻강아지 대역에게는 여전히 조금은 높았다. 닿을 듯 닿지 않아 힘껏 까치발을 해야 할 것임을. 로이는 알 수 있었다. 로이는 반드시 자신이 원하던 목표를 이루고 싶었고. 그러려면 알렉산드리아에게 연료를 계속 불어넣어 까치발의 끝에 자신이 그토록 원하던 것이 간신히, 하지만 반드시 쥐어져야만 했다.
그는 환상의 이야기 속에서라도 스턴트를 이어가야만 했다. 오디어스를 찾아가는 여정은 더 험하고 어려워져 갔고. 그의 애달픈 마음을 알기라도 한 것처럼 마스크 밴디트는 충실하게 로이의 대역을 해냈다. 알렉산드리아의 눈이 여전히 처음처럼 빛나는 것을 보면서. 로이는 현실의 자신도. 자신의 대역인 밴디트로서도. 조금은 인정받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죽음도, 삶도 조금씩 간절해지는 세헤라자데는 자꾸만 자신의 왕이자 대역인 알렉산드리아 앞에서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로이는 다리에서 떨어지던 순간을 떠올렸다. 모두가 실패했다며 손가락질을 하던 그 순간을. 단 한 번의 낙하로 인해. 자신이 알던 사람들의 등 외에는 이제 기억할 수 있는 모습은 없을 것만 같았다. 로이는 고개를 들었다. 원래 서 있던 곳이 참 까마득하게만 느껴졌다. 그리고 로이를 대신해 그 높은 곳에 안간힘을 써서 올라가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낙하해 버린. 이 꼬마 스턴트역을 보며. 로이는 이제 정말 모든 것이 실패했다고 생각했다.
로이의 작은 왕은 계속 이야기를 이어나가라고 명령했지만. 세헤라자데는 이제 이 허무맹랑한 모험의 끝이 자신의 손으로 이뤄져야 함을 알고 있었다. 로이는 환상 속 모든 인물들을 추락시키기 시작했다. 그것이 실패의 상징이었고, 동시에 죽음으로 가는 길이며 인물들의 마지막으로 마무리할 수 있는. 자신이 알고 있는 가장 잔인한 방법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추락은 마치 영화 [인셉션]의 킥(kick)과도 같아서. 두 세계에 모두 존재하는 사람들을 그저 한 세계에서 추방할 뿐. 그 어떤 의미의 실패도, 죽음도 아니었다. 그러나 이미 한 번의 추락으로 인해 겁에 질린 로이는 그 사실조차 쳐다보고 싶어 하지 않았다. 알렉산드리아는 로이에게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말을 전해주기 위해. 겁쟁이인 자신을 대신해 기꺼이 추락을 감행했고. 결국 그를 죽음이라는 망상에서 구해냈다.
세헤라자데의 이야기는, 결국 세속적 욕심이 3까지 밖에 없는 무자비한 왕(?)에게서 자신의 목숨을 구해낼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리고 자신의 추락이자 실패라 여겼던 작품을 이 꼬마 대역에게 보여주겠다는 결심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 결심의 끝에. 두 운명 공동체(?)는 겨우 웃어낼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을 모두 내쫓은 뒤 덩그러니 둘 만 남아버린 환상의 세계는 이제 끝에 다다랐지만. 여전히 몇 번이고 재생될 것만 같은 유일하고도 독특한 이야기가 되어. 두 벤디트의 뱃속에서 영원히 날갯짓을 할 것이다. 더 이상의 추락은 존재하지 않을 것처럼 힘차게 날아오르면서.
마치면서
그들의 인생은 서로를 만나기 전 까지는 흑백에 불과했다. 그러나 서로를 만나는 순간부터 꾸게 된 모든 꿈들은 총천연색이었다. 차갑고 메말랐던 일상이 이렇게 질감과 색감으로 넘쳐나는 것으로 변화할 때까지의 지분은 거의 모두 알렉산드리아에게 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이 영화를 보며 그저 잿빛에 지나지 않았던 회사원의 하루를 예쁘게 물들여 준. 같이 영화를 봐준 친구에게도 감사의 말을 전한다. 만두 또 먹으러 가쟈!!!
영화를 가득 채우고 있는 추락, 스턴트, 그리고 세헤라자데의 모티브를 가지고 글을 써 보았습니다.
[이 글의 TMI]
1. 정말 물리적으로 시간이가 없다. 돌아버림
2. 환상 속 5인조가 화면에 잡힐 때마다 후레쉬맨 같아서 빵 터짐
3. 이런 뽀송한 질감의 영화 너무 좋다
[다음 리뷰 예고]
미키 17!!
원작이랑 얼마나 다를지(?) 기대된다. 근데 봉감독님 나빠.. 애를 원작보다 열 번이나 더 죽였어ㅠㅠ
#더폴 #최신영화 #영화리뷰 #영화리뷰어 #브런치작가 #네이버인플루언서 #munalogi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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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속에서 숨쉬는 여자들의 연대는 뜨겁다
* <밀수>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
밀수 (2023)
감독: 류승완
출연: 김혜수, 염정아, 조인성, 박정민, 김종수, 고민시
장르: 범죄, 액션, 코미디
개봉일: 2023.07.26
상영시간: 129분
평화롭던 1970년대의 작은 도시 군천, 해녀 '춘자(김혜수)'와 '진숙(염정아)'은 동료들과 함께 물질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바다 근처에 화학 공장이 들어서자 어패류가 대량으로 폐사하는 사태에 이르고, 해녀들은 하루 아침에 일자리를 잃는다. 어려서부터 먹고 살기 위해서라면 물불 가리지 않던 '춘자'는 밀수가 돈이 된다는 소식을 접하고, '진숙'과 해녀들을 밀수판에 끌어들인다. 물 속에 들어가 물건만 건져 올리면 끝인 밀수 작업은 반평생을 바다에서 살아온 해녀들에게 천직이나 다름 없었다. 그렇게 돈맛을 막 보려던 찰나, 세관 단속에 걸려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진숙'은 눈앞에서 모든 것을 잃는다.
혼란을 틈타 홀로 탈출에 성공한 '춘자'는 서울로 상경해 밀수업을 이어가며 돈을 벌어들인다. 괄괄하고 대담한 성격 탓에 전국구 밀수왕 '권상사(조인성)'를 만나 죽을 위기에 처하기도 하지만, 절박한 그녀는 기지를 발휘해 다시금 해녀들에게로 향하는 방편을 모색한다. '권상사'를 만나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진 밀수판, '춘자'는 또다시 '진숙'과 해녀들을 밀수판으로 끌어들인다. '진숙'은 여전히 '춘자'와의 앙금을 풀지 못했지만, 동료들을 위해 리더로서 큰 결심을 내린다. 이제 그 누구도 함부로 믿어서는 안 되는 곳이 된 바닷가에서, 두 사람은 마지막으로 서로를 믿기로 해본다.
<밀수>는 한국형 범죄액션의 대가로 불리는 '류승완' 감독이 처음으로 선보이는 여성 투톱 영화이자 해양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범죄액션활극이다. 대중성을 노린 텐트폴 작품인만큼 플롯은 제법 익숙하다. 돈을 벌기 위해 주인공들이 범죄에 손을 대고, 예상치 못한 사건으로 위험에 휩싸이며, 배신과 협력을 오가다 결국 악의 세력에 맞서 고군분투 하게 된다는 이야기. 할리우드 케이퍼 무비나 여름 시즌을 노린 한국 범죄영화에 숱하게 등장했던 형식의 이야기 구성이다.
뻔한 스토리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건 단연 여성 캐릭터들이다. 언제나 남자들이 메인으로 나섰던 한국 범죄액션오락물에서 여자들이 주축으로 나섰다는 것, 뿐만 아니라 그들의 직업이 생계형 해녀라는 것만으로 <밀수>는 같은 장르의 영화들 사이에서 신선한 포지션을 차지하게 된다. 몸소 밀수 작업을 수행하는 것도, 힘 있는 남자들 사이에서 두뇌싸움을 벌이는 것도, 끝에 승리를 손에 쥐는 것도 모두 여성들이다. 새롭지 않은 이야기임에도 식상함을 탈피할 수 있던 건 캐릭터의 서사를 통해 흥미로운 변화를 꾀했기 때문일 것이다.
<밀수>를 관통하는 여성 서사에 설득력을 부여한 건 개연성 있는 갈등 해결 구조와 적절한 캐릭터 활용법이다. 1970년대라는 시대적 배경, 그리고 '춘자'와 '진숙'의 사회적 위치를 생각하면 이들이 밀수판에서 전면적으로 활약하기란 쉽지 않다. 밀수왕 '권상사'는 누구보다 이 바닥을 잘 아는 베테랑 꾼이며 '장도리(박정민)'는 믿음직스럽지 못하긴 해도 졸개 수십 명을 줄줄이 끌고 다닌다. 물리적 힘과 권력에서 모두 열세인 해녀들이 이 잔혹한 범죄 판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결국 자신들만의 방법으로 맞설 수밖에 없는 셈이다.
해녀들에겐 '권상사'의 '쿠엔틴 타란티노'식 무쌍 액션신도, '이장춘(김종수)'와 '장도리'의 엽총과 칼자루도 주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녀들에겐 투쟁의 근거지로 삼아왔던 바다가 있고, 배신과 의심으로 똘똘 뭉친 남자들에게 없는 뜨거운 연대가 있다. 후반부 수중액션 장면이야말로 끝까지 이들을 얕잡아 본 남자들을 상대로 해녀들의 힘을 가감없이 보여준다. 물론 물 속에서 맨손으로 남자들을 상대해야 하는 해녀들의 반격은 살짝 어설퍼 보이기도 하고, 우왕좌왕하는 것처럼 비쳐지기도 한다. 그렇지만 해녀들이 '아쿠아맨' 마냥 물 속에서 수준급 액션을 보여주는 것은 오히려 판타지가 아니었을까. 오히려 완벽해 보이지 않아서 현실적이었고, 돈에 대한 탐욕보다는 서로를 지키려는 해녀들의 끈끈한 동료애가 엿보여서 좋았다. '춘자'와 '진숙', 그리고 해녀들이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주도권을 차지하고, 혈투 끝에 승리를 쟁취한 것으로 여성 서사의 깔끔한 완결을 이뤄냈다.
여성 서사를 이끈 주역 '김혜수'와 '염정아'는 상반된 스타일의 연기로 작품의 중심을 잡아주며 콤비로서의 호흡도 뛰어나다. 초반부 '춘자'의 연기 톤이나 과장된 표정연기는 오버액션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극이 전개될수록 점차 안정감이 더해지자 '김혜수'가 해석한 '춘자' 캐릭터에도 조금씩 적응이 된다. 가볍고 만화적인 캐릭터들이 판을 치는 와중 유일하게 진중하고 무게감 있는 연기를 펼친 '염정아'는 밸런스 면에서 가장 중요한 포지션을 점했으며 '김혜수'와의 캐릭터 대비를 확연하게 보여준다. 무엇보다 조연이지만 가장 뛰어난 존재감으로 엄청난 매력을 보여준 '고민시'의 감초 연기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였다. '박준면', '김재화', '박경혜' 등 동료 해녀들을 연기한 배우들도 마치 실제 그곳에 존재할 것 같은 실감나는 표현력을 보여주며 극중 최고의 액션신을 남긴 '조인성'과 '박정민', '김종수'의 캐릭터 변신도 훌륭하다. 말로만 내세운 여성 서사가 아닌 여배우들이 역량을 맘껏 표출할 수 있는 판을 제대로 깔아주었으며 남배우들과의 적절한 케미스트리도 극에 매끄럽게 녹아들었다.
손익분기점 돌파를 확정지으며 2023 여름 텐트폴 영화 중 가장 먼저 흥행에 성공한 <밀수>. 이렇게 여성 주연 영화는 투자 받기 힘들다는 한국 영화의 고리타분한 편견을 깨부수고, 앞으로 여성이 주축으로 활약하는 텐트폴 영화도 다양하게 개봉하는 날이 올 수 있기를.
- 씨네랩 크리에이터 popofil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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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 3주 차 개봉작 추천, 공개 예정작 추천
안녕하세요!
영화/OTT 콘텐츠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오늘은 2월 셋째 주 개봉 예정인 작품들을 소개드리려고 해요.
마블의 새로운 블록버스터 영화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부터
프랑수아 오종 감독의 신작 <피터 본 칸트>까지!
기대되는 작품들이 많은 이번 주, 어떤 영화들이 개봉하는지 지금부터 알아볼까요?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
ANT-MAN AND THE WASP: QUANTUMANIA
ⓒ 네이버 영화개요: 액션, 모험, 코미디, SF | 미국 | 124분
감독: 페이튼 리드
출연: 폴 러드, 에반젤린 릴리, 미셸 파이퍼 등
개봉: 2023.02.15
배급: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시놉시스
슈퍼히어로 파트너인 '스캇 랭'(폴 러드)과 '호프 반 다인'(에반젤린 릴리), 호프의 부모 '재닛 반 다인'(미셸 파이퍼)과 '행크 핌'(마이클 더글라스), 그리고 스캇의 딸 '캐시 랭'(캐서린 뉴튼)까지 미지의 ‘양자 영역’ 세계 속에 빠져버린 ‘앤트맨 패밀리’. 그곳에서 새로운 존재들과 무한한 우주를 다스리는 정복자 '캉'을 만나며, 그 누구도 예상 못 한 모든 것의 한계를 뛰어넘는 모험을 시작하게 되는데… 2023년 첫 번째 마블 블록버스터 2월, 무한한 우주의 정복자가 깨어난다!
CINE PICK!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는 미지의 세계 '양자 영역'에 빠져버린 앤트맨 패밀리가 MCU(마블시네마틱유니버스) 사상 가장 강력한 빌런이자 무한한 우주를 다스리는 정복자 캉을 마주하며 시공간을 초월한 최악의 위협에 맞서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앤트맨 시리즈로 전 세계적인 히트를 친 페이튼 리드 감독이 다시 한번 연출을 맡았으며, 완벽한 파트너로 한층 더 업그레이드된 활약을 예고하는 폴 러드와 에반젤린 릴리의 협업이 기대되는 작품입니다. '앤트맨' 역의 폴 러드는 이번 영화가 앞선 1,2편과 마찬가지로 가족애를 중시하면서도 이번에는 훨씬 더 커진 스케일과 빌런 캉의 거대한 존재감이 남다를 것임을 예고해 기대감을 높였습니다.
피터 본 칸트
Peter von Kant
ⓒ 네이버 영화개요: 멜로/로맨스 | 프랑스 | 85분
감독: 프랑수아 오종
출연: 드니 메노셰, 이자벨 아자니, 칼릴 벤 가르비아 등
개봉: 2023.02.15
배급: (주)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시놉시스
1972년 독일 쾰른, 유명 영화감독 피터 본 칸트는 그의 말이라면 죽는시늉까지 마다하지 않는 어시스턴트 칼과 함께 살고 있다. 어느 날, 오랫동안 피터의 뮤즈였던 여배우 시도니가 찾아와 피터에게 아미르라는 청년을 소개하고, 연인과 이별한 상실감으로 고통스러워하던 피터는 어린 아미르에게 첫눈에 반한다. 아미르에게 영화계의 스타로 만들어 주겠다는 약속을 하며 사랑을 고백한 피터. 성공한 유명 감독과 무명 배우는 서로에게 이끌려 동거를 시작하게 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들의 사랑에 금이 가기 시작하는데…
CINE PICK!
<피터 본 칸트>는 세계적인 프랑스 감독 프랑수아 오종의 신작으로, 오종의 작품 세계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쳤으며 독일 영화의 전설이기도 한 베르너 파스빈더 감독의 영화 <페트라 폰 칸트의 쓰디쓴 눈물>을 오마주한 작품입니다. 제72회 베를린 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며 화제를 모았고, 국내의 경우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의 '아이콘' 섹션에 초청되어 초고속 매진을 기록, 관객들의 추가 상영에 대한 문의가 쇄도해 추가 상영을 결정하는 등 작품성과 흥행성을 미리 인정받기도 했습니다.
또한, <한니발 라이징>부터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 <로빈 후드> 등에 출연하며 유명세를 떨친 배우 드니 메노셰, 소피 마르소와 함께 프랑스 대표 미녀로 언급되며 프랑스인이 가장 좋아하는 국민배우로 자리매김한 이자벨 아자니가 출연하며, 주인공 칸트가 사랑에 빠진 무명 배우 아미르 역은 최근 넷플릭스 인기 시리즈 <레아의 7개 인생>의 주연을 맡고 <스캄 프랑스>에 출연하기도 했던 칼릴 벤 가르비아가 맡아 기대가 모아지고 있습니다.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 프랑스에서도
Final Cut
ⓒ 네이버 영화개요: 코미디, 공포 | 프랑스 | 112분
감독: 미셀 하자나 비시우스
출연: 로망 뒤리스, 베레니스 베조 등
개봉: 2023.02.15
배급: (주)까멜리아이엔티
시놉시스
프랑스에서 각종 영상을 찍는 레미(로맹 뒤리스)에게 일본에서 이미 성공한 원 테이크, 생방송, 좀비 영화를 프랑스어 버전으로 만들어달라는 의뢰가 들어온다. 레미는 가족과의 관계를 개선을 위해 제안을 받아들인다. 우여곡절 끝에 촬영이 시작되지만 하나 둘 사고가 터지며 촬영 현장은 아수라장이 돼 간다! 하지만 레미는 절대 카메라를 멈출 수 없는데…
CINE PICK!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 프랑스에서도>는 무성영화 시기를 다룬 흑백영화 <아티스트>로 2012년 아카데미 영화제 감독상, 작품상 등 5개 부문을 수상한 미셀 하자나비시우스 감독의 신작 영화이며, 저예산 제작비와 무명 배우들의 어설픈 연기로 일본 최초 개봉 시 2개 관에서만 개봉했다가 입소문이 퍼지며 제작비의 1000배가 넘는 극장 매출을 기록하는 역주행 신화를 쓴 일본 영화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의 리메이크작입니다. 2022년 칸영화제에서 비경쟁 개막작으로 공개되어 뛰어난 완성도와 재미를 선사해 관객들의 기립박수를 받았고, 프랑스에서는 개봉 당시 신작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좀비 공포 영화의 촬영 현장에 진짜 좀비가 나타나면서 배우와 스태프들이 진짜 희생되고, 그런 상황마저 영화로 담으려는 미친 감독 때문에 벌어지는 좌충우돌 소동극 속에 '영화 속 진짜 영화 이야기', '가족애'까지 겹쳐지며 감동을 더한 영화입니다. 일본 원작과 달리 많은 제작비와 프랑스 최고의 배우들의 참여로 원작을 뛰어넘는 완성도와 작품성, 그러면서도 원작의 병맛 코미디의 재미를 잃지 않은 수작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어메이징 모리스
The Amazing Maurice
ⓒ 네이버 영화개요: 애니메이션, 판타지, 모험 | 영국, 독일, 미국 | 94분
감독: 토비 젠켈
출연: 휴 로리, 에밀리아 클라크, 데이빗 듈리스 등
개봉: 2023.02.08
배급: (주)블루라벨픽쳐스
시놉시스
신기한 능력으로 성공적인 사기 행각을 이어가던 모리스와 친구들! 4차원 소녀 ‘멜리시아’에게 정체가 탄로 나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도와 마을에 숨겨진 비밀을 찾아 나선 그들은 세상을 지배하려는 절대악 ‘쥐마왕’의 음모를 알아채지만 뜻하지 않은 위험에 처한다. 가까스로 잡혀있던 ‘복숭아’를 구해낸 모리스와 친구들은 마을에서 탈출을 시도하고, 멜리시아는 허당 피리꾼 ‘키이스’와 함께 쥐마왕에게 맞서기 위해 진짜 마술피리를 찾아 나서는데.. 쥐마왕의 정체는 과연 무엇? 그리고 모리스와 친구들은 무사히 마을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CINE PICK!
<어메이징 모리스>는 올해 올해 선댄스영화제 공식 초청작이자 아동문학계 최고 권위로 불리는 카네기상을 심사위원 만장일치 수상로 수상한 베스트셀러 원작을 애니메이션으로 옮긴 작품입니다. 전 세계 29개국 박스오피스를 석권한 화제작으로, 사기력 만렙으로 불리는 미워할 수 없는 고양이 '모리스'와 상극 친구들의 완벽 협동작전을 그리고 있습니다. <알라딘>, <슈렉>, <코코>를 만든 흥행 드림팀과 <하우스> 시리즈의 휴 로리, <왕좌의 게임>으로 국내 팬층이 두터운 에밀리아 클라크의 더빙이 만나 더욱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스톰 보이
Storm Boy
ⓒ 네이버 영화
개요: 가족 | 오스트레일리아 | 99분
감독: 숀 시트
출연: 핀 리틀, 제이 코트니 등
개봉: 2023.02.16
배급: 예지림엔터테인먼트
시놉시스
외딴 해변가에 아빠와 단둘이 살고 있는 ‘마이클’. 무차별적인 사냥으로 어미를 잃은 아기 펠리컨 세 마리를 발견하고, 마을 원주민 ‘핑거본’의 도움으로 아기 펠리컨들의 집사 생활을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 날, 폭우로 바다에 빠진 아빠를 펠리컨 ‘퍼시벌’이 구하게 되고 이 사건이 매스컴에 관심을 받기 시작하자 펠리컨 사냥꾼들이 다시 해변가로 몰려드는데… 어느 날 찾아온 가장 특별한 ‘새’상! 끝까지 지켜 줄게!
CINE PICK!
호주에서는 국민 소설이라는 평판을 얻고 있는 콜린 티엘의 1964년 베스트셀러 소설 <Storm Boy>를 원작으로 한 영화입니다. 원작 소설은 한국에서는 <폭풍 소년>이라는 제목으로 수입, 출간되었으며 1976년에는 이미 영화화가 한차례 진행되기도 했습니다. 최근 환경 보호와 동물 보호 문제가 점점 심각해지며 이를 현대적인 시각으로 재해석했다는 점이 돋보이며, 호주 남부 쿠롱의 아름다운 풍광을 담은 영상미와 광활한 자연의 아름다움, 마법 같은 이야기로 관객들의 감성을 자극할 예정입니다. 또한, <샤인>, <캐리비안의 해적>, <킹스 스피치> 등에 출연하며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할리우드 배우 제프리 러쉬가 출연해 어른이 된 주인공 '마이클' 역을 맡아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두다다쿵: 후후섬의 비밀
Duda&Dada The Secret of HooHoo Island
ⓒ 네이버 영화개요: 애니메이션 | 대한민국 | 83분
감독: 최병선, 김지윤
출연: 이영아, 장경희, 엄상현 등
개봉: 2023.02.15
배급: (주)NEW
시놉시스
두다를 위해 친구들이 뭉쳤다! 후후섬에 가기 위해서는 신비의 꽃, 빛나는 크리스털을 찾아야 해! 우리 핑카 타고 모험을 떠나볼까? “우와! 전설의 눈토끼 마을에 도착했어!” 뭐? 보름달이 뜰 때마다 용이 내려와 아기 토끼들을 데려간다고? 용으로부터 아기 토끼들을 구하고 후후섬에 가기 위한 보물들을 얻어야 해! 다들 함께 할 준비됐지? 다 함께 두다다다 출발 =3=3
CINE PICK!
영화 <두다다쿵: 후후섬의 비밀>은 엄마의 기억을 찾아 후후섬으로 모험을 떠난 두다와 친구들의 좌충우돌 롤러코스터 어드벤처 애니메이션 영화입니다. '두다다쿵'은 호기심 많은 두더지 두다가 친구들과 함께 세상을 탐험하며 세상을 배워 나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으로, 재미와 교육을 동시에 선사하여 방영 당시 EBS 방 시청률 유아동 부문 1위를 차지한 국내 대표 유아 애니메이션으로, 프랑스, 일본, 중국, 러시아, 남미 등 전 세계 40여 개국에 수출되며 140개 채널에서 방영, 전 세계를 사로잡은 K-애니메이션으로 높은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이번 영화에서는 보다 더욱 넓어진 세계관과 한국의 아름다운 자연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두다와 친구들의 스펙터클한 모험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씨네랩 에디터 Yumi였습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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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이 만들어낸 가장 마법적인 공동체의 신화
안토니아스 라인 Antonia's Line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안토니아(빌레케 반 아믈로이)는 어머니(도라 반 더 그로엔)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온다. '목소리 큰 남자들이 조용한 여자들을 짓밟는' 한적한 마을은 안토니아를 반기지 않는다. 강인하고 주체적인 안토니아는 딸 다니엘(엘스 도터만스)과 함께 땅을 일구고 공동체를 꾸려나간다. 안토니아는 너른 품으로 마을의 소외된 인물들을 끌어안는다. 안토니아의 긴 식탁은 풍요와 사랑으로 가득 찬다.
영화 <안토니아스 라인>은 안토니아부터 사라까지 4세대에 걸친 모계의 일대기를 그린다. 목가적인 농촌의 풍경을 바탕으로 펼쳐지는 이들의 삶은 계절의 변화처럼 순환하며 계속해서 이어진다.
식탁의 공동체
이들의 주요 생계수단은 땅, 즉 농사다. 안토니아의 곁에 모여든 사람들은 자연스레 농사일을 함께 하게 된다. 처음에 농사일을 도울 사람은 딸 다니엘뿐이었으나 루니 립이나 디디와 같은 사람들이 함께하기 시작하며 일손은 점점 늘어났다.
안토니아의 사람들이 모이는 구심점은 단연 식탁이다. 넓은 마당에 놓인 기다란 식탁은 마음 놓고 먹고 마시며 웃고 이야기할 수 있는 휴식처이다. 식탁을 중심으로 한 이들의 관계는 혈연관계에서 벗어난 진정한 의미의 '식구'이다. 식탁 중심의 공동체 안에서 구성원들은 각자의 방향으로 성장한다. 이들을 살찌우는 것은 테이블 위의 음식이 아니라 안토니아를 기반으로 다져진 단단한 신뢰다. 누군가 갑작스레 이 식탁의 손님으로 찾아오더라도 문제는 없다. 자리에 숟가락 하나만 더 놓으면 그만이다.
안토니아는 마치 건국 신화의 주인공처럼 느껴진다. 안토니아의 정착기는 황무지를 일구어 새로운 마을을 만드는 것과 다름없다. 안토니아를 주축으로 한 공동체는 기존의 남성 중심적 질서의 흐름을 바꿔놓는다. 어떤 여성도 소나 돼지처럼 대우받지 않고, 조금 느리거나 튄다는 이유로 돌을 맞지 않는다. 안정과 풍요 속에서 자라나는 사람들의 바탕에는 안토니아라는 굳건한 땅과 식탁의 공동체가 있다.
경계의 리더십
안토니아는 힘과 폭력에 의한 굴복이 아니라 받아들임의 방식으로 사람들을 모은다. 안토니아의 방식은 기존의 남성적 방식과도 다르고 흔히 여성에게 기대하는 '헌신적인 모성'의 성격과도 다르다. 안토니아는 무리의 우두머리로서 책임을 지고 구성원들을 이끌어나간다. 그와 동시에 이들의 의사를 존중한다.
안토니아의 리더십은 경계를 지어주는 방식으로 드러난다. 어떤 관계에서든 협상의 태도를 보인다. 이를테면 결혼을 청하는 농부 바스가 찾아왔을 때의 대화가 그렇다. 일단 그의 요구를 듣는다. 아내와 엄마를 원하는 바스의 제안을 안토니아는 단호히 거절한다. 남편도, 아들도 필요 없다고 딱 잘라 이야기한다. 다만 남자가 해줄 수 있는 일을 도와주면 식사에 초대하겠다고 제안한다. 상대가 원하는 것과 자신이 원하는 것을 분명히 파악한 뒤, 자신이 줄 수 있는 만큼의 것을 제시한다. '너는 여기까지 올 수 있고 나는 여기까지 내줄 수 있다.'는 태도다. 서로의 제안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걸로 그만인 것이다. 힘으로 제압하거나 상대를 깔보지 않으며 서로의 의사를 존중하는 세련된 리더십을 보여준다.
폭력적인 남성성의 상징으로 등장하는 피트에 맞서는 시퀀스도 안토니아의 리더십과 카리스마를 보여주는 중요한 대목이다. 안토니아는 총을 가지고 가지만 그 용도는 위협에 그친다. 총구는 시종일관 피트를 겨누고 있지만 그에게 발사되지는 않는다. 안토니아는 피트에게 경계를 정해줌으로써 그를 처벌한다. 마을을 떠날 것, 다시는 눈에 띄지 말 것. 다만 여기에 협상의 여지는 없다. 자신의 무리에 위해를 가한 자에게 내리는 심판에 협상은 필요 없다. 총구를 단단히 겨눈 팔과 저주를 퍼붓는 단호한 얼굴 뒤로 마을 남자들이 서 있는 장면은 안토니아가 이미 마을에서 리더의 위치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신이다.
신화와 창조성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아들로 이어지는 이야기는 우리에게 익숙하다. 단순히 할머니와 어머니 그리고 딸의 이야기를 한다고 특별하다는 것은 아니다. 영화는 여성들에게 새로운 신화를 선물한다. 그리고 그 신화의 바탕에는 여성들의 고유한 능력인 임신과 출산이 있다. 4대에 걸쳐 펼쳐지는 모계의 이야기가 가능한 것은 여성이 지닌 창조성 덕분이다.
다니엘이 딸 테레스를 가지게 되는 경위를 생각해보자. 다니엘은 아이를 원했지만, 남편과 결혼은 원치 않았다. 다니엘과 안토니아는 아이를 얻기로 한다. 여기서 남자의 역할은 한 번의 성관계를 함께 하는 것이 전부다. 그 남자가 누구인지 우리는 알 필요도 없고, 남자 역시 자신의 아이가 있다는 것을 알 필요가 없다. 딸 테레스는 다니엘의 딸이 분명하다. 이 모든 과정은 자연스럽고 산뜻하게 그려진다. 감독은 중요하지 않은 아버지의 역할보다 생동감 넘치는 여성들의 모습에 주목한다.
이들의 창조력은 비단 임신과 출산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다니엘은 그림으로, 테레스는 음악과 수학으로, 사라는 글로써 창조력을 뿜어낸다. 이들의 삶에는 폭발적인 창조력이 꿈틀거리고 있고 계속해서 무언가를 만들어낸다.
안토니아의 죽음이 '끝'처럼 느껴지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의 이야기는 자손들에 의해 불멸할 것이다. 안토니아 개인은 그저 필멸의 생을 지닌 인간이지만, 그가 창조한 자손과 질서와 공동체가 이어져 불멸할 것이다. 필멸하되 불멸하는 인간의 기나긴 흐름이 담겨있다. <안토니아스 라인>의 신화적인 면은 이 불멸성에서 드러난다.
환상의 이미지
작품 속에서 다니엘과 사라는 종종 환상의 이미지를 마주한다. 안토니아의 어머니 일레곤다의 장례식에서 다니엘은 관에서 일어나 흥겹게 노래 부르는 할머니의 환상을 본다. 예수 조각은 고개를 움직이고 천사 동상은 날개로 신부를 내리친다. 라라에게 사랑에 빠지는 순간 다니엘의 눈앞에 펼쳐지는 이미지는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이다. 교회의 교리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면서도 다니엘은 이미 절대자의 허락이라도 받은 듯 당당하고 유쾌하다. 그렇기에 교회의 세속적인 신부가 아무리 다니엘과 안토니아를 힐난해도 자리를 박차고 나올 수 있다. 다니엘은 종교와 신화의 위에서 자유롭다.
다니엘이 미술적인 환상을 본다면 사라의 환상은 조금 다르다. 안토니아의 증손녀인 사라가 가족의 구심점인 식탁을 보며 죽은 이들의 환상을 보는 신은 이 작품의 백미라 할 수 있다. 일레곤다, 크룩 핑거, 미친 마돈나와 신부, 레타, 디디의 남자 형제들, 루니 립은 사라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식탁 옆에서는 젊은 모습의 안토니아와 바스가 춤을 춘다. 감독은 높은 곳에서 모든 것을 아우르며 지켜보는 사라의 시선을 따라 하이앵글의 풀숏으로 이 장면을 담아낸다. 한 폭의 그림과도 같은 이 꿈같은 장면은 안토니아의 가족을 거쳐간 죽은 이들을 다시 식탁으로 소환한다. 실제로 사라가 그들을 아는지 상관없다. 안토니아의 삶의 궤적은 사라에게도 각인되어 이어진다. 마당에서 펼쳐진 환상적 이미지는 안토니아의 죽음으로 이어지며 작품의 마지막을 향해 나아간다.
그리고 우리는 영화의 내레이터이기도 한 사라가 모든 것을 지켜보며 훗날 자신의 언어로 표현해내리라는 것을 안다. 안토니아의 마지막 아침에서 시작해 주마등 같은 그의 젊은 날들은 사라를 통해 계속해서 이야기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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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IFF 데일리] 뱀파이어인데 사람을 못 죽이겠어요
예전에는 짧고 간결한 제목이 최고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엔 아닙니다. 아주 긴 제목이 오히려 기억에 더 오래 남는 느낌이 들기 때문인데요. 제24회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이었던 <우리는 천국에 갈 순 없지만 사랑은 할 수 있겠지>도 그렇고, 동네 플리마켓에서 구매한 <한가로운 걱정을 직업적으로 하는 사내의 하루>도 그렇고, 올해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인 '이 영화'도 그렇고 말이죠.
제목이 너무 길어서 영화를 보기 전까지 몇 번이나 이 영화의 제목을 헷갈려 했습니다. 그렇지만 검색해 보지 않고 제목을 다시 떠올리는 것도 긴 제목의 작품을 즐기는 방법이죠. 이러한 이유로 제목을 자꾸 되뇌었더니, 영화관에 들어서기 한참 전부터 '이 영화'가 머릿속에 단단히 각인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제목이 뭐냐면요….
난 엄청 창의적인 휴머니스트 뱀파이어가 될 거야
Humanist Vampire Seeking Consenting Suicidal PersonSummary
'사샤'는 심각한 문제로 골머리를 싸매고 있는 뱀파이어다. 사람을 죽이기엔 마음이 너무 약하다는 것! 다행히도 자살 성향이 있는 외로운 십 대 소년 '폴'을 만나고, '폴'은 '사샤'를 구하기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바치기로 한다. 하지만 이 둘의 계약은 날이 밝기 전, '폴'의 마지막 소원을 이루기 위한 탐험으로 바뀐다. (출처: 전주국제영화제)
Cast
감독: 아리안 루이 세즈
출연: 사라 몽페티, 펠릭스-앙투안 버나드
뱀파이어 호러 속 비거니즘
우리는 너무 익숙하면 본질을 제대로 보지 못하곤 합니다. 진실이라고 해도 잘 와닿지 않죠. 그래서 장르물이 재밌습니다. 장르라는 커튼 뒤에 현실을 어렴풋하게 감춰놔서 익숙했던 일상을 낯설게 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입니다.
뱀파이어 호러 장르를 표방하는 이 작품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난 엄청 창의적인 휴머니스트 뱀파이어가 될 거야>는 사람의 피를 마셔야만 사는 뱀파이어 '사샤'가 동정심으로 인해 사람을 죽이지 못해 벌어지는 일을 다룹니다. '사샤'는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겠다는 마인드로, 살인을 저질러야 한다면 차라리 굶어 죽겠다며 버팁니다. 그러나 본능을 거부하기가 쉽지만은 않습니다. 밀려오는 허기 앞에서 '사샤'는 윤리와 생존의 문제를 고민합니다.
이러한 '사샤'의 모습은 비거니즘이라는 현실을 떠올리게 합니다. 먹이사슬 최상위의 인간들은 오랜 시간 아무렇지 않게 고기를 먹어왔지만, 다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죽어가는 동물에게 동정심을 느끼는 사람들이 늘어났습니다. 세상은 동물에게 동정심을 갖는 사람들이 유별나다며 입을 모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스스로 비건이라 칭하고, 동물을 죽이지 않는 삶을 택했죠. 인간을 죽이지 않는 삶을 택한 '사샤'처럼요.
현실에서는 비거니즘을 실천하는 사람들을 향해 얄팍한 비판의 잣대를 들이대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람을 죽이는 대신, 부모님이 구해준 피를 팩에 담아 쥐고 사는 '사샤'에게도 비슷한 잣대를 댈 수 있죠.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면서, 남이 죽인 사람의 피는 마셔도 되는가?' '진짜 휴머니스트 뱀파이어가 맞는가?' 하지만 영화에서는 이런 사사로운 문제를 꼬집으며, '진짜 휴머니스트 뱀파이어'인지 아닌지를 재고 따지지 않습니다. 결국은 일반 뱀파이어들도 그의 대안을 존중하고 지원해 주죠.
휴머니스트 뱀파이어 '사샤'는 이번 전주국제영화제의 또 다른 상영작 중 하나인 <연습>의 주인공 '트리네'를 떠올리게도 했습니다. <연습>은 트럼펫 오디션을 보기 위해 수천 킬로를 이동해야 하는 젊은 음악가가 환경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 비행기 대신 히치하이크만으로 목적지에 도달하는 과정을 담은 로드무비입니다. '트리네'도 배기가스를 내뿜는 자동차를 타고 이동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환경 운동이 아무 소용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때로는 약간의 모순이 있을지라도, 조금 더 나은 대안을 밀어붙이는 마음. '사샤'와 '트리네, 그리고 자신이 지향하는 가치를 따라 움직이는 현대인들의 공통점입니다.
⊙ ⊙ ⊙
각자도생보다 공생
원제는 직역하면 '자살 희망자를 찾는 휴머니스트 뱀파이어'입니다. 'Consenting'이라는 말이 포함되어 있으니, 더 정확하게는 '피를 제공하는 것에 동의한 자살 희망자를 찾는 휴머니스트 뱀파이어'가 되는데요. 한국어 제목도 센스 있게 잘 번역했지만, 원제가 영화 전체의 맥락을 고스란히 담고 있어 소개했습니다. 이 영화는 사람의 피를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휴머니스트 뱀파이어('사샤')와 그를 도와주고 싶어 하는 자살 희망자('폴')의 이야기거든요.
현실에 빗대어 보면, 둘의 협력은 타인에 의해 생명을 거두는 안락사나 조력 자살을 연상케도 합니다. 그러나 저에게 둘의 협력과 연결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단어는 바로 공생이었습니다. 이것이 감독의 의도였는지, 단지 개인적으로 마음을 쓰고 있는 부분이어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이 단어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공생은 두 생물이 이익을 주고받으며 사는 것입니다. 흔히 악어와 악어새를 예로 들어 설명하곤 하죠. 우리 사회에서 유행처럼 번지는 각자도생과는 정반대의 말입니다. <난 엄청 창의적인 휴머니스트 뱀파이어가 될 거야>에서는 삶을 빼앗기 싫은 휴머니스트 뱀파이어와 삶에 미련이 없는 자살 희망자가 공생하는 과정을 거치는데요. 어쩐지 현실에서는 공생의 개념이 점점 사라지는 것만 같습니다. 휴머니스트 뱀파이어 '사샤'와 자살 희망자 '폴'은 서로가 있었기에 다음을 도모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각자도생뿐이었다면 두 생물의 결말은 어땠을까요? 적어도 해피엔딩은 아니었을 겁니다.
⊙ ⊙ ⊙뱀파이어를 소재로 한 영화는 뻔한 장르, 뻔한 스토리를 즐기는 맛에 보는 장르물입니다. 하지만 <난 엄청 창의적인 휴머니스트 뱀파이어가 될 거야>는 뻔한 장르에서 가장 안 뻔한 부분을 집어내 확장하고, 그 안에서 안 뻔한 스토리를 만들어냅니다. 국내에서는 5월 29일에 개봉할 예정이라고 하니, 색다른 뱀파이어물을 보고 싶으신 분들께 가볍게 추천해 드립니다.
One-Liner
뱀파이어는 아니지만, 나도 엄청 창의적인 휴머니스트 인간이 되고 싶어.
Schedule in JIFF
2024.05.04(토) 메가박스 전주객사 4관 23:59
2024.05.04(토) 메가박스 전주객사 5관 23:59
2024.05.04(토) 메가박스 전주객사 6관 23:59
2024.05.07(화) 메가박스 전주객사 2관 17:00
2024.05.10(금) CGV전주고사 1관 11:00
전주국제영화제 기간 : 05월 01일 - 05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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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킹덤: 아신전 (2021)
* 리뷰는 영화 <킹덤: 아신전>의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
킹덤: 아신전 (2021)
연출: 김성훈
극본: 김은희
출연: 전지현, 박병은, 김뢰하, 구교환 등
러닝타임: 94분
공개일: 2021.07.23
<킹덤>의 스페셜 에피소드, 김은희+전지현, 기대할 수밖에 없는 조합
작년에 공개됐던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2>는 화제성에 비해 다소 호불호가 갈렸던 시즌1을 보완하며 호평 속에 시즌을 마무리하였다. 그리고 시즌2 마지막회에서 '전지현'을 등장시키는 엄청난 떡밥으로 시즌3에 대한 기대감을 고조시키는 임팩트까지 발휘했다. 대사 없이 얼굴만 잠깐 비췄던 전지현의 '아신'이라는 캐릭터에 대한 시청자들의 궁금증이 증폭되었던 가운데, 그의 전사(前史)를 다루는 스페셜 에피소드를 공개하며 시즌3를 위한 본격적인 예열에 들어간다. 이미 넷플릭스 한국 드라마 중 최고로 히트한 시리즈인 데다가 국내 최고의 톱스타인 '전지현'이 합류한 것만으로 스페셜 에피소드인 <킹덤: 아신전>에 대한 기대감은 높을 수밖에 없을 터. 다만, 요란했던 홍보와 여러 떡밥과는 달리 기대 이하의 스토리로 아쉬움을 남겼다.
주인공 전지현, 심각한 분량실종
<킹덤: 아신전>의 메인 홍보 포인트는 단연 흥행 보증수표이자 압도적인 영향력을 가진 배우 '전지현'이었다. 4년만의 복귀작인만큼 주인공 '아신'을 맡은 그의 연기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정작 주인공인 러닝타임 94분 중 50분이 지나서야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다. 그마저도 액션과 표정 연기가 전부이며 대사도 몇 마디 소화하지 않는다. 극은 전부 '아신'의 서사로 채워지기는 하지만, 유년 시절의 이야기가 절반 이상을 차지하다보니 상대적으로 성년이 된 아신의 이야기는 적게 등장한다. 처절한 고통 속에 살아온 아신의 삶이 부각됨에 따라 무정한 세상에 등을 돌린 그가 말을 잃는 것 또한 당연하다. 후반부의 임팩트와 전지현의 액션 장면은 분명 강한 임팩트와 함께 돋보이지만, 주인공이라고 보기 힘들 정도로 적은 분량은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다.
분량 실종은 비단 '전지현'만의 문제는 아니다. 전지현 못지않게 등장하는 영화마다 미친 존재감을 보여주는 '구교환'의 분량도 심각하리만큼 적다. 그는 파저위의 냉혈한 부족장 '아이다간'을 연기했는데, 사실상 카메오에 가까운 존재감을 보여준다. 아신의 아버지 '타합'을 연기한 배우 '김뢰하' 또한 배우의 역량이 돋보일 만한 장면이 주어지지 않는다. 화려한 캐스팅을 앞세웠으나 정작 배우들은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는 기회조차 부여받지 못한 느낌이다. 아무리 시즌3를 위해 거쳐가는 징검다리라고 하지만, 이렇게까지 알멩이가 부실할 줄은 몰랐다.
시즌3를 위한 떡밥 회수일뿐
<킹덤 시즌3>라는 본편에 들어가기 전에 미리 스페셜 에피소드로 본작이 공개되었다는 것은 시리즈의 흐름과는 별개로 풀어낼 장편의 스토리가 있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특히 '아신'의 서사를 본편 중에 플래시백의 형태로 삽입한다면 흐름을 방해할 수 있어 스토리의 맥락상 별개의 에피소드로 만드는 것이 수월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본작을 끝까지 감상한 결과, 굳이 94분이나 할애해 가며 한 편의 영화 같은 에피소드로 만들 필요가 있었나라는 의문점이 제기된다.
<아신전>을 통해 회수된 떡밥은 생사초를 먹고 살아난 좀비들이 조선을 활개하고 다니기 시작한 게 언제부터였는지, 이승희 의원은 그 약초를 어떻게 접하게 되었는지와 같은 '생사초'와 '역병'에 관한 사건의 발단들을 풀어낸다. 이를 제외하면 <아신전>에서 딱히 건질만한 떡밥은 없다. 즉, 풀어낼 이야기가 많지 않음에도 한 편의 영화 같은 분량으로 에피소드를 기획한 것은 지루함을 키우며 관심 없는 내용을 장황하게 설파하는 것과도 같다. 결정적으로 <아신전>이 재미가 없는 이유다.
그럼에도 빛나는 엔딩신, 그리고 전지현
<킹덤: 아신전>은 후반 10분을 위해 존재한다고 해도 무방하다. 그만큼 복수의 대상을 바로잡고 각성한 '아신'이 펼치는 후반부의 액션신과 분노하다 못해 무정한 세상에 신물이 나버린 '아신'의 시체 같은 표정 연기는 앞선 스토리를 모두 잊게 할 정도로 강렬하다. 절정에 다다른 장면에서 아신의 눈빛을 보면, 시청자가 더 이상 따라잡을 수 없는 감정선에 이르러 마치 지옥도의 사신 같은 모습을 연상시킨다. 대사 없이도 표정과 몸짓만으로 아신의 참혹한 복수의 심정을 표현하며 중반부까지 집중력을 잃게 했던 영화에 몰입감을 더한다.
확실히 <도둑들>, <암살>과 같이 전지현은 액션 연기를 소화할 때 유독 빛이 난다. 비현실적으로 뛰어난 무술실력을 가진 아신 캐릭터를 전지현이 연기함으로써 선역이 아님에도 히어로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어느 정도 연출한다. 그나마 전지현이 활약하는 후반부의 10분이 있었기에 <킹덤: 아신전>이 존재해야 하는 당위성을 조금이나마 뒷받침해줄 수 있게 된다. 아신이 본격적으로 활약할 시즌3를 기대할 수 있게 되는 이유 또한 결말부에서 찾을 수 있다.
- 씨네랩 크리에이터 popofil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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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최소한의 빛 아래,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다.
*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 해당영화는 씨네랩 크리에이터 활동의 일환으로 시사회 참석 후 작성된 글입니다
전 세계를 막론하고 대도시는 그 규모 만큼이나 다수의 이들에게 기회의 땅이 되어주나 결코 집이 되어주진 않는다. 고향보다 훨씬 나은 밥벌이를 재공하지만 마음은 점차 그 속에 매몰되어 갈지도 모르며 도시라는 공간 아래 개개인이 조명 받지 못한 채 그저 수치화 되어, 현상화 되어 논해질 뿐이다. 이 영화는 바로 그러한 지점을 놓치지 않고 거기에 정면으로 도전하여 카메라를 사람들에게로 돌린다. 꺼지지 않는 뭄바이의 불빛 아래 존재하는 사람들. 어딘가를 바삐 오가고 그 속에서 쪽잠을 청하기도 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말이다.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인도'라는 일종의 장르성이 강하게 부여된 작품으로 해당 영화에 접근하면 큰 오산이다. 춤과 노래로 희노애락을 강렬하게 표현하는 특정 영화들이 너무나도 강렬하게 마음 속에 들어와있는 것도 사실이나 이 영화는 그런 특징을 제하고 관람해도 되는 너무나도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너와나의 이야기이다. 예컨대 그런 것이다. 다수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 종종 혼자 있는 기분이 되는 사람, 이미 해야하는 일 만으로도 벅차 자꾸만 고립되어가는 것 같은 사람, 어딘가에 털어놓고 싶지만 내 치부가 약점이 될까 말하기 꺼려지는 사람의 이야기 말이다. 영화는 더 나아가 이러한 현상의 제시뿐 아니라 아주 다정한 위로까지 건네준다. 엔딩 크레딧 이전 등장하는 감독의 짧은 헌정사까지 관람한다면 이 영화가 다름아닌 전세계에 존재하는 우리에 대해 쓰여졌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영화는 크게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뉘어 전개되는데 그 중 전반은 인도의 대도시 뭄바이에 사는 '프라바'와 '아누'라는 너무나도 다른 두 친구를 조명하며 시작한다. 프라바는 정략 결혼 이후 독일로 떠난 남편의 연락을 기다리며 성실히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반면 아누는 종교적 차이에도 불구 거침없이 사이즈와의 연애를 이어나가는 여성이다. 여기에 새로 들어서는 고급 아파트로 인해 23년간 살아왔던 집에서 나가야 하는 파르바티까지. 세 여성은 대도시에서 각자 만의 힘겨운 싸움을 이어나가고 있다.
모두가 모여드는 대도시인만큼 그 사이 벽도 존재한다. 힌두교와 이슬람교, 종교적 구분은 물론 계급으로 나뉘어진 도시 안에서는 도무지 ‘우리’ 라는 개념을 찾아보기 힘들다. 이는 프라바와 아누 역시 마찬가지이다. 성격도 사상도 마음가짐도 다른 둘은 엄연히 다른 사람으로써 도시에 존재한다. 하지만 이러한 벽은 극 후반부, 도시가 아닌 곳에서 점차 허물어지기 시작한다. 특히 이 벽은 주연 중 한 명인 '프라바'의 두 가지 선언을 통해 극 중에서 개인이 이러한 통념를 허물기까지 얼마나 많은 용기를 내야 하며 더 나아가 어떠한 개혁의 의미를 갖는지까지 보여주게 된다.
퇴근시간을 훌쩍 넘긴 시간, 성실하게 근무를 이어나가는 아누의 룸메이트 프라바는 오래전 정략결혼 뒤로 인도를 떠나 영국으로 가버린 남편을 그리워한다. 어쩌면 그녀는 제대로 그에 대해 알기도 전 이별부터 경험 했어야만 했기에 더욱 그를 기다렸을지 모른다, 어쩌면 그녀는 응당 떠나버린 남편을 기다려야하는 아내의 역할에 충실해야만 했기 때문에 그녀에게 적극적으로 다가오는 동료 마누지를 거절했을지 모른다. 규율과 사회가 만들어낸 자아는 그렇게 자신이 진정 바라는 것과 정반대의 길로 나아가게끔 한다. 그러는 사회적 억압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아누는 어떨까. 프라바보다 다른 이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 그녀지만 반대는 고사하고 종교적 차이로 인해 연인이 될시 가족 간의 살인도 빈번하게 일어나는 곳에서 자유롭게 사랑할 수 있을리 만무하다. 퇴근 후 이어나가는 사이즈와의 밀회는 짜릿하지만 그것 역시 자신들을 철저하게 감출 수 있는 인파 속에서나 가능하다. 사랑함에도 서로의 집을 허락할 수 없는 현실에 아누는 철저하게 절망한다.
다르면서도 각자의 억압을 안고 살아가는 두 사람이 보여주는 갈등은 관객을 스크린 안으로 부르는 결정적인 장치가 되어준다. 프라바 역시 마누지에게 관심이 있었다고 밝혀지는 시퀀스에서 프라바는 자신이 할 수 없는, 자유롭게 이성과 대화를 이어나가는 아누에게 소문을 언급하며 핀잔을 준다. 그간 프라바가 아누에게 갖고 있던 의심과 짓눌려있던 마누지에 대한 자신의 진심들이 터져나온 것으로도 보여지는데 이는 다름 아닌 그간 프라바가 살아온 세상에서 비롯된 것들이다. 그것이 프라바의 입을 통해 아누에게 향하게 된 것인데 다름 아닌 영화가 관객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직후의 시퀀스에 존재한다. 바로 프라바의 사과이다. 친구와의 다툼 이후 당연하게 등장하는 사과 장면인듯 하나 해당 영화에서 프라바의 사과는 일종의 선언과도 같이 작용한다. 밀회를 즐기는 아누를 향한 세상의 시선, 그로부터 탄생하는 뒷 이야기들. 더 나아가 나는 할 수 없었던 것들에 대한 사과는 그간 프라바가 사회에서 적응해나가며 체화한 것들을 깨트리는 것이기도 하다. 사실 너에대해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며 이러한 생각들을 갖게 된 것에 대해 미안하다고 아누에게 비로소 전하는 진심의 선언인 것이다. 그리고 이 선언을 기점으로 프라바는 점차 무언가를 깨달아가기 시작한다.
퇴거 명령에 결국 고향행을 택한 파르바티의 이사를 도와주기 위해 잠시 도시를 벗어난 프라바와 아누는 그곳에서 도시가 막아둔, 어쩌면 사회가 막아두었던 자신들의 소원을 이루게 된다. 그 소원은 프라바와 아누가 그 누구에게도 심지어는 서로에게 조차 말 하지 않는 비밀이기도 하다. 그렇게 프라바는 이별을, 아누는 사랑을 도시가 아닌 낯선 누군가의 고향에서 찾게 된다.
아누와 사이즈의 밀회를 목격하게 된 프라바는 배신감을 비롯한 여러 감정을 겪던 와중 우연히 해안가에 떠밀려 온 낯선 남자를 구해주게 된다. 빛이라고는 실내를 겨우 밝히는 전깃불이 전부인 그곳에서 프라바는 낯선 남자를 통해 자신이 오랫동안 숨겨왔던 진심을 고백하게 된다. 마술적 리얼리즘처럼 연출된 해당 시퀀스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뭄바이라는 대도시가 꺼지지 않는 빛들로 막아두었던 한 사람의 선언이다.
이 후반부는 아마 전반부 많은 이들이 느꼈을 도시의 환멸에서 벗어나 그 개개인들의 가로막혔던 실질적 욕망을 달성 시켜줌으로 건네는 일종의 위로와도 같은 기능을 하는 공간으로 묘사된다. 특히 프라바가 해안가로 떠밀려 온 기억 잃은 남자를 구해주는 시퀀스가 그러하다. 번진 빛 위로 꿈처럼 연출 된 해당 장면에서 낯선 남자는 마치 독알에서부터 떠내려온, 기억 잃은 프라바의 남편인양 그녀에게 말을 건넨다. 이는 어쩌면 마법처럼 갑작스레 그녀에게로 다시 찾아온 남편에게 듣고자 한 말일지 모른다. 프라바는 아주 오랜 시간 자신의 침대 위에서 그런 식으로 스스로를 달랬을지 모른다. 하지만 비로소 그녀는 그 순간에 어쩌면 자신이 아닌 사회가 만들어낸 자아가 가장 원했던 말이 아닌 비로소 자신에게 자유를 선사하는 형태로 남편과의 이별을 선언한다. 당신을 기다리는 숱한 밤동안 번뇌가 많았으나 결국 그렇기에 더욱 명확하게 볼 수 있노라 하고. 대도시의 빛에 가려져 자신이 뚜렷하게 상상할 수 없던 스스로만의 빛을 드디어 찾았고 앞으로도 찾아나갈 것이라 말을 한다. 프라바의 이러한 선언은 물론 단순히 프라바만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다. 아누가 자신도 모르게 사이즈와의 관계를 통해 쟁취해내고자 하는 몸부림에서 발견할 수 있었고, 파르바티가 한 발 물러설 지언정 불합리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언제든 싸우겠노라 다짐하는 태도에서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이다.
도시는 개인에게 무수한 기회를 주는 곳이나 동시에 철저하게 개인을 고립시키는 곳이기도 하다. 저마다의 고통을 끌어안고 살아내는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가 도움을 필요로 할 때 비로소 연대가 시작된다. 서로의 눈을 보고 나눌 수 있는 대화가 시작되며 그로부터 저 자신의 성찰도 탄생하게 된다. 파르바티를 돕고자 하던 프라바였기에 우연으로 얽힌 여행에 도달해 진정으로 자신이 해냈어야만 했던 진심의 고백을 완성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는 단순히 자신만의 성장으로 끝나지 않는다. 프라바는 이후 아누에게 쉬아즈를 소개할 수 있게 도와준다. 이는 어쩌면 사회가, 세상이 철저하게 억압하려 했던 개인이 이룩한 혁명과도 같다. 그 개혁은 아주 조용하고도 확실하게 찾아온다. 그 자리에 함께 있던 파르바티 역시 한 때 아누의 행실을 문제 삼기도 했으나 그 소리 없이 찾아온 만남의 순간에, 조용하게 찾아온 그 개혁에 동참하게 된다. 해묵은 사회의 통념은 그렇게 보이지 않던 개인들에 의해 차근히 무너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최소한의 빛 아래, 흥겨운 조명 아래, 그 누구보다 서로의 얼굴을 볼 수 있는 그 빛 아래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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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하우스오브스포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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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중 페이블에게 소소한 일상을 가르쳐 준 직장 동료
‘미사키’가 납치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는데… ‘
페이블은 과연 보스의 ‘아무도 죽이지 말고 평범하게 사는’ 미션을 통과하고
미사키를 구해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