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바다2025-03-02 00:13:40
악의 평범성은 어떻게 공유되고, 확장되고, 유전되는가?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 리뷰
▷한줄평 : ‘악’은 그렇게 우리네 삶 속에 스며들어 현실이 되고 있다
▷영화 : 존 오브 인터레스트(The Zone of Interest), 2024.6월
영화의 시작은 암흑 그 끝은 아우성, 그리고 두 간극을 가득 채우는 행복한 일상, 우리는 이런 기괴한 영화와 같은 현실 속에서 살고 있다. 더군다나 ‘악’은 단지 몇몇 그럴만한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닌, 우리 모두에게로 확장되고 있다는 점이 무섭다. ‘선’에 대해서 머뭇거리고 주저하는 소극적 회피는 이젠 일상이 되었다. 지금 우리는 세계 도처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벌어지고 있는 ‘홀로코스트’를 목도하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이 영화는 과거의 과오에 대한 참회를 말하지 않는다. 지금 현실 속 함께 치유해야 할 상처를 들춰낸다. 그 표현 방식은 독창적이고 강렬하다.
1963년 한나 아렌트는 홀로코스트 대학살 전범자인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 과정을 담은 책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Eichmann in Jerusalem』에서 ‘악의 평범성’(The Banality of Evil)’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이 ‘악의 평범성’이 주인공 루돌프 회스(크리스티안 프리델)뿐만 아니라 그의 아내 헤트비히 회스(산드라 휠러)와 공유되고 그리고 다섯 자녀들과 주변 사람들에게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Zone of Interest, 관심구역 또는 이익구역)’란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를 둘러싼 40㎢ 지역을 일컫는 말이다. 루돌프 회스는 아우슈비츠 수용소 소장으로 관심구역내 타운하우스 사택에서 거주한다. 이 2층짜리 사택에는 방만 10여 개가 있고, 커다란 정원과 온실, 정자, 마구간, 자녀들을 위한 작은 수영장까지 딸려 있다.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 스틸 컷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집요하게 담장 하나 사이로 벌어지고 있는 끔찍한 홀로코스트의 현장을 뒤로한 평화롭고 자유로운 평범한 가족의 일상을 가득 담아낸다. 그 흔한 배경 음악 하나 없다. 대신 수용소 담장을 넘어 들려오는 유대인들의 비명소리, 총성 소리 그리고 소각로 돌아가는 소리가 배경 음악을 대신한다. 영화를 보는 내내 눈으로는 회스 가족의 일상을 쫓아가면서도 귀로는 유대인 학살의 참혹함에 귀 기울이게 된다. 영화는 마지막까지 철저히 눈과 귀를 분리해서 하나의 장면으로 담아낸다. 지옥과 낙원의 불편한 공존이다.
[주도] 한 가족의 든든한 가장, 루돌프 회스
1940년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 초대 소장이 된 루돌프 회스는 이곳에서 200만 명에 달하는 유대인을 학살한다. 1944년에는 70만 명의 헝가리 유대인을 강제 수용하는 작전을 자신의 이름을 딴 ‘회스 작전’으로 불린 것을 자랑스러워 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수용소에서 퇴근 후 아내와 잠들기 전 옛 즐거웠던 이탈리아 온천 여행을 떠올리며 다시 여행을 약속하거나, 아이들과 함께 강에 가서 나룻배를 타며 수영을 즐기거나, 장교 가족들을 초대하여 수영장 파티를 열거나, 아들과 말을 타며 새소리를 구분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장면 등은 영락없는 한 가정의 가장임을 보여준다. 심지어 그는 수용소 방송을 통해 아내가 가꾸는 라일락 덤불은 훼손하지 말도록 세심함을 보여준다. 전출을 앞두고 아끼는 말과 교감하며 ‘사랑한다, 내 새끼!’라고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줄도 안다. 그는 그저 견고하게 세워가는 한 가족의 평범한 남편이자, 아버지일 뿐이다.
[공유] 꿈에 그리던 삶을 이룬 아내, 헤트비히 회스
유대인집 청소부 딸로 자라 17살에 루돌프와 결혼하여 정원, 온실과 수영장이 딸린 대 저택에서 ‘모범적인 보금자리’를 만들어가는 자신이 대견하다. 작은 텃밭에 불과했던 앞마당을 지난 3년 동안 수많은 꽃과 채소로 가득 채운 것도 자랑스럽다. 헤트비히는 스스로도 그동안 꿈 꿔왔던 삶을 이룬 ‘아우슈비츠의 여왕’으로 불리는 것을 흡족스러워한다. 그리고 유대인들로부터 압수한 모피 코트를 입어보거나, 하녀들을 ‘아무도 모르게 재로 만들어 버리겠다’고 겁박함으로써 남편이 이룬 권력의 성취를 향유하기도 한다. 남편의 전출 발령에도 이곳에 남아 자신이 가꾸어 온 이 낙원을 지켜내고자 한다. 그는 그저 한 가족의 평온한 일상을 돌보는 평범한 가정주부일 뿐이다.
'난 죽어도 여기 못 떠나! 여긴 우리 집이야. 그동안 꿈꿔 왔던 삶이잖아!' 헤트비히 회스(산드라 휠러)
'낙원이 따로 없구나.' 친정엄마 리나
'그이는 저보고 아우슈비츠의 여왕이래요.' 헤트비히 회스(산드라 휠러)
‘너 따위는 내 남편한테 말만 하면 아무도 모르게 잿더미로 만들 수도 있어.’ 헤트비히 회스(산드라 휠러)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 스틸컷
[확장] 하인들과 동료 장교, 그리고 나치 추종자들
이 저택에는 다수의 하인들이 등장한다. 어느 날 유대인으로부터 압수한 속옷들을 하나씩 나눠 갖도록 하는 장면에서 하인들은 자신에게 맞는 사이즈의 속옷을 고르는 일이 낯설지 않아 보인다. 그리고 동료 장교 부인은 유대인에게서 뺏은 다이아몬드를 어떻게 습득했는지를 자랑삼아 늘어놓는다. 루돌프 회스는 사택에 기술자들을 불러들여 24시간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순환 시체 소각장의 설계를 검토하기도 한다. 하루에도 수백 명씩 태워 죽이는데도 이를 당연시한 집단 무의식은 자신들만의 낙원에서 웃고 떠들어대는 평화로운 일상을 가능하게 했다. 어쩌면 당시 수많은 나치 추종 세력들은 이러한 세상의 향유 및 확장을 반증한다.
[유전] 풍요로움을 향유하는 다섯 자녀들
회스 부부에게는 아들 둘, 딸 셋 등 어린 다섯 자녀가 있다. 형제간에 티격태격 다툼을 하거나 자매가 물에 젖은 수영복을 입고 집 마당을 왔다 갔다 하며 노는 장면은 여느 가정집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금이빨을 모으거나, 동생을 온실에 가두는 장난을 치거나(큰아들), 병정놀이를 하면서 놀거나, 소각로 돌아가는 소리를 입으로 흉내 내거나(작은아들), 초대받은 사람들이 적어놓은 방명록에 ‘국가 사회주의 독일 노동당의 환대를 감사한다’는 글귀를 함께 읽는(두 자매) 장면은 서서히 부모가 만들어 놓은 병든 세계의 일원으로 스며들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일상은 그저 평범한 가정의 자녀들 모습일 뿐이다.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 스틸 컷
[회피] 딸의 참혹한 성공이 불안하기만 한 친정 엄마 리나
성공한 딸의 저택을 구경하기 위해 먼 길을 떠나온 친정 엄마 리나는 한때 유대인 집에서 일하는 청소부였다. 지금은 그들이 반대편 수용소에 갇힌 상황이 되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속에서도 눈여겨보아왔던 그 집의 커튼을 경매에서 낙찰받지 못한 것이 아쉬울 뿐이다. 딸이 다양한 꽃과 채소가 가득한 정원을 가꾸고, 훌륭한 음식들을 차려오는 모습에 대견스럽기만 하다. 그러나 잦아지는 기침과 밤새 창밖을 밝히는 소각로의 참혹한 모습에 적이 당황스럽다. 몰래 편지를 남기고 떠날 수밖에 없다.
[희망] 그러나 한줄기 빛과 같은 존재, 폴란드 소녀
열화상 흑백 화면에 등장하는 폴란드 소녀 알렉산드라 비스토리니는 역설적이게도 이 영화 속 유일한 빛의 존재다. 그녀는 위험을 무릅쓰고 유대인들을 위해 사과와 야채들을 작업장 곳곳에 몰래 가져다 놓는다. 그리고 훗날 연주곡으로 태어난 ‘햇살(Sunbeams)’은 사라지지 않을 인류애의 희망을 대변한다.
영혼은
태양처럼 강렬히 불타올라
고통을 잊고 날아오르네.
우리 곧 보게 되리.
나부끼는 깃발을
아직 보지 않는
자유의 깃발을
알렉산드라(폴란드소녀) /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이렇게 루돌프 회스로부터 비롯된 ‘악의 평범성’이 그의 아내, 자식들, 하인들과 나치 추종자들에게로 확장되었음을 보여준다. 그들은 한 가족의 아버지와 남편으로서, 엄마와 아내로서, 자녀로서 각자의 자신의 위치에서 가족의 안락한 삶과 행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의 삶을 지탱해주고 있는 보편적 도덕 가치에 대한 사유가 존재하지 않는다. 거기에 자신들이 가하고 있는 악행에 대한 죄의식이나 타인의 고통과 슬픔에 대한 공감과 유대가 끼어들 틈이 없다. 기계적 충성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한편 그토록 그들이 철저히 외면했던 학살의 참혹함은 담장으로도 가두어 두지 못했다. 그렇기에 과거의 길고 어두운 터널 끝 창문은, 오늘날 아우슈비츠 전시관에 맞닿아 있다. 담벼락 하나 사이로 천국과 지옥이 공존했듯이, 빛이 새어 드는 작은 창은 과거와 현실을 넘나드는 연결 통로가 되었다. 그래서 영화 마지막 크레딧에서처럼 그때의 비명과 아우성은 지금도 다시 여기저기서 처참하게 재생되고 있다. 감독 조나단 글레이저가 제96회(2024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언급했듯이 우크라이나에서, 이스라엘 가자 지구에서… 그리고 수많은 전쟁과 핍박과 무관심의 일상 속 현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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