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이정2025-05-07 23:00:32
[JEONJU IFF 데일리] 절망보다 푸른 나무처럼
영화 <하와의 첫 문장> 리뷰
DIRECTOR. 나지바 누리
CAST. 하와 누리
SYNOPSIS. 어린 시절 정략결혼을 한 지 40년이 지난 뒤, 하와는 마침내 독립적인 삶을 시작하며 글을 배운다. 그러나 탈레반이 다시 집권하고, 그녀와 그녀의 딸, 손녀의 꿈은 새로운 고난에 직면해 산산조각 난다.

구글에 "여성 교육이 금지된 나라"라고 검색해 보자. 딱 한 국가의 이야기만 줄줄이 뜬다. 이 영화가 만들어진 2024년에도, 해가 바뀐 2025년에도, 지구상에 여성 교육이 금지된 유일한 국가는 아프가니스탄이다. 교육의 기회를 박탈당한 이들의 현재가 아닌 미래까지 영향을 받는다는 점에서, 이는 정말 치명적이다. 게다가 더 끔찍한 점, 이 악몽은 지금이 아닌 아주 오래 전 싹을 틔웠으며, 이제 되돌아왔다는 점이다.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 현대사에서 두 번 모습을 드러냈다. 소련 붕괴 (및 철수) 후 힘을 길러 1996년 카불을 장악해 2001년까지 "엄격한 이슬람 율법"에 따라 통치하겠다는 명목으로 공포 사회를 조성했다. 여성은 공부도 일도 할 수 없이, 집 혹은 무덤에만 있어야 했다. 남성의 경우에는 조금 나았다지만 역시나 특정한 복장과 규율에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공개 처형까지 서슴지 않았다. 9.11 테러 이후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으로 탈레반 정권은 다시 자취를 감추고 오사마 빈 라덴은 사망했지만, 미군과 나토군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2021년 철수를 결정했고 같은 해 8월, 카불은 다시 점령되었다.
지금도 유튜브 영상을 관리할 만큼 SNS나 국제 여론을 의식하고 있고, 집권 초기에도 여성을 존중하겠다는 (그러니 국제 사회는 말 얹지 말라는) 성명을 냈지만 그 말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 영화를 만든 나지바 누리 감독 또한 여성 기자로서의 삶이 위험에 처했음을 직감하고 옷가지와 노트북, 카메라, 지금까지 만들던 영화의 풋티지 영상이 담긴 장치만 겨우 들고 곧바로 출국한다. 극영화보다 더 극적인 현실.

나지바는 그전까지 엄마에 대한 영화를 만들고 있었다. 그 이름은 하와. 어린 나이에 30살 많은 남자와 결혼해 자식 여섯을 낳았고, 이제는 남편의 치매 증세가 악화되는 상황을 보고 그의 시중을 들고 있는 사람. 동시에 너무나 아름다운 큰 나무 같은 사람. 영화를 보면서 하와가 얼마나 현명하고 용감하며 대담하고 또 넓은 사람인지 느꼈다.
하와는 남편과 함께 사그라드는 날들을 고요히 보내는 대신, 기꺼이 밖으로 나가 자수 천 파는 사업을 벌인다. 동업자를 찾아 역할 분담이나 흥정을 능숙하게 해낸다. 결혼 때문에 학교를 다니지 못했던지라, 뒤늦게 글자도 배운다. 어린 손주들이 지적하고 고쳐주는 내용을 듣고 익힌다. 심지어 손주들은 "할머니가 어떻게 (글씨를) 써?" 라고 되물을 만큼, 할머니가 글을 모른다는 사실을 너무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고 있는데도. 불치하문(不恥下問)이라는 말 그대로의 모습이다. 새로운 것 배우기를 포기하지 않고, 다른 이들이 계속해서 배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사람.

이토록 현명하고 강인한 하와는 그 동안 '집 안의 사람'으로만 살았다. 뭐 아프가니스탄에서 일어나는 거의 모든 일들은 여성에게 불합리했다. 하와는 어린 나이에 수십 년이나 나이 차이가 나는 남자와의 조혼을 겪어야만 했으며, "부모가 자신을 위했다면 아이를 낳지 말라고 말했어야 했다", "이런 결혼으로 우리에게 상처만 남겼다"고 오랜 세월 후에도 그 상처를 선명히 기억하고 있다.
나지바의 언니는 이혼과 함께 두 살배기 딸의 양육권을 박탈당했다. 그 딸, 자흐라는 엄마가 보고 싶다는 말만 해도 돌아오는 매를 맞으며 유년기를 보냈고 끝내 쫓겨나 12년 만에 제 엄마를 찾아왔다. 나지바 언니의 새 남편은 다행히도 친절하고 합리적으로 자흐라를 대해 주지만, 부부 또한 현실의 벽을 넘어설 생각은 감히 하지 못한다. 양육권 분쟁에 시달릴 마음도, 혹시나 자흐라의 친부가 새로 낳은 아들들과 새로운 삶에 손을 뻗쳐오게 둘 마음도 없다. 결국 손녀를 맡아 옷과 팔찌를 사주고 글자를 가르치는 것은 하와의 몫이다. 마치 이럴 줄 알고 배웠던 사람처럼, 하와가 쓰려고 산 화이트보드는 자흐라의 공부 터전이 된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재난은 언제나 약자를 치고, 어린 여자는 재난 상황에 약자 중의 약자이므로.

탈레반이 오면 14살 자흐라는 언제 끌려갈지 모르는 신세가 된다. 결국 자흐라는 시골 집으로 돌아가는 게 좋겠다는 어른들의 결론이 난다. 그 동안 자흐라는 내내 울고 있고, 하와가 똑같은 표정으로 망연자실하게 앉아 있다. 방 안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 중 그 말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고 공포로 바라보는 사람은 그 둘이다. 하와가 탈레반의 치하에서 느끼는 공포와 불안의 깊이를 가늠하게 하는, 가장 마음 아픈 장면이다.
영화에서는 계속 극영화 못지않게 극적인 상황이 전개된다. 그러나 내 마음은 자흐라와 하와의 표정에서 떠나지 못한다. 하와는 글을 배우기로 결심했을 때 몰랐을 것이다. 손녀에게 글을 가르칠 줄도, 딸이 멀리 떠나야만 해서 편지로 그의 이야기를 듣게 될 줄도. 마치 이럴 줄 알고 배웠던 것처럼, 그토록 유용하다.
아니, 이 말은 틀렸다. 마치 이럴 줄 알고 배운 것처럼 배운 게 아니라, 글을 배운다는 건 그만큼이나 일상에 필수적인 것이다. 이렇게나 필수적인 기술을 배워야 하는 기회를, 소녀들은 박탈당하고 있다. 하와는 그 고통을 알고 있다. 이미 피부로 겪었기에.

"차라리 다 같이 몰려가서 우리를 다 죽이라고 하자. 몰살을 당하는 게 낫겠어. 그러면 애도도 하루만 하면 되잖아." 얼마나 절망하면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 닿을 수 없는 깊이의 절망을 스크린 너머 바라볼 수밖에 없다. 탈레반은 이미 여자들을 몰아냈다. 이미 공부하고 일하고 생각하고 "나대기" 시작한 여자들을 탈레반이 어찌 갑자기 가두겠나 했던 사람도 있을 텐데, 결국 그렇게 되고 있다. 이토록 생명력 넘치는, 푸른 나무 같은 여자들의 오늘과 내일을 탈레반이 뒤덮고 있다.

하지만 하와는 포기하지 않았다. 책과 자수 천을 곱게 챙겨 두었다. 언젠가 다시 펼쳐 옷을 만들어 팔고 사업 수완을 발휘할 날이 올 수 있길 바라며. 하와가 꾹꾹 눌러 쓰고 읽는 문장들을 자흐라와 다른 아이들도 계속 읽고 쓸 수 있기를 바라며.
이번 전주국제영화제를 앞두고 문성경 프로그래머는 "전 세계가 모두 비슷해지는 시대에 다른 경험을 하는 것 자체가 저항입니다."라는 말로 관객을 전주에 초청했다. 어쩌면 이런 영화를 함께 본다는 자체로도, 우리가 지켜보고 있음을 명확히 하는 자체로도, 포기하지 않은 어떤 이들에게 가 닿을 수 있는 마음이 있지 않을까. 보기 괴로워도 포기하지 않고, 아프가니스탄 소식에 귀를 기울여 본다. 나무 같은 여자들의 자장이 더 넓게 드리우기를.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2025.04.30-05.09) 상영일정]
2025.05.01 10:00 메가박스 전주객사 1관 (상영코드 111)
2025.05.03 13:30 CGV전주고사 8관 (상영코드 330)
2025.05.06 17:30 메가박스 전주객사 5관 (상영코드 651)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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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 영혼을 위한 소나타
아름다운 영혼을 위한 소나타
1984년 동독, 개인의 삶은 존중 받지 못했다. 사회주의 체제 아래, 개인을 억압하기 위한 비밀경찰의 감시는 날로 심해졌고, 당시 국민의 3~5%가 비공식 정보원으로 활동했다고 추정될 만큼 이웃, 친구, 연인, 심지어는 가족까지도 신뢰할 수 없는 사회였다. 비즐러는 대학교수이자 비밀경찰로 일하는 인물이다. 그는 사회주의에 대한 강한 신념이 있으며, 그 신념을 바탕으로 세워진 국가 체제에 철저히 복종한다. 그에게 있어서 체제에 순응하지 않는 이는 '사회주의의 적'일 뿐, 하나의 '인간'으로 취급되지 않는다. 그러나 드라이만을 감시하게 되면서, 비즐러의 삶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한다.
드라이만은 동시대의 다른 예술인들에 비해 비교적 체제에 순응하는 편이었다. 국가를 노골적으로 찬양하지는 않지만, 정치적 탄압에 대해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그가 적극적으로 체제에 저항하게 되는 계기가 생긴다. 드라이만의 친구 예르스카는 국가로부터 위험인물로 간주되어 연출가로서 활동을 금지당한다. 자신의 자유 의지를 빼앗긴 예르스카는 삶의 의지 또한 잃고, 결국 자살을 택하다. 정확히는, 국가에 의해 극단적인 선택으로 내몰린 것이다.
또한, 드라이만의 연인 크리스타는 배우로서의 경력을 안정적으로 이어가기 위해 문화부 장관의 도움을 받는다. 예르스카는 억압된 사회에서 스스로 벗어난 인물이라면, 크리스타는 원치 않는 성적 관계를 감내하면서까지 예술을 통한 생존을 꿈꾼다. 드라이만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 허위적인 신념 아래 고통받는 개인의 삶을 고발하기 위한 글을 쓰기 시작한다. 글의 내용은 이러하다. 1977년 동독은 자살 관련 통계 공개를 중단하였다. 그해, 유럽에서 동독보다 자살률이 높은 나라는 헝가리뿐이었다. 이는, 개인의 삶을 안전하게 보호해야 할 사회 체제가 오히려 폭력을 휘두르고 있음을 드러낸다.
비즐러는 드라이만의 삶을 가까이서 지켜보며, 자신이 복종하던 사회 체제의 허구성을 점차 깨닫는다. 그의 동료 그루비츠는 이미 신념에 지배당하여 당 서기 호네커와 전화를 동일시하는 모습에서 보이듯 인간을 사물화하고 타인을 억압한다. 문화부 장관 헴프 역시 허구적인 신념 위에 군림하며 타인의 삶을 훼손한다. 체제의 모순성과 허구성을 느끼기 시작한 비즐러는 드라이만에 대한 감시를 중단한다. 그때, 그는 드라이만의 삶과 연결되기 시작한다. 예술의 힘이 바로 여기에 있다. 예술은 인간과 자연, 인간과 세계, 인간과 인간을 연결하다. 따라서 예술에 진정으로 마음을 바친다면 결코 개인주의적인 인간이 될 수 없다. 비즐러가 크리스타의 삶에 연민을 느끼고 적극적으로 행동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녀가 예술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술은 더욱 강력하게 비즐러의 마음을 흔든다. 동독은 예술이 가진 힘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집착했을 것이다.
생존과 개인의 존엄 사이에서 갈등하던 크리스타는 결국 자신의 연인인 드라이만을 배신하게 되지만, 끝내 생존하지 못하고 비극적인 결말을 맞는다. 신념에서 벗어나 타인을 인간으로 마주하게 된 비즐러에게 타인의 삶은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실현된다. 크리스타의 죽음 앞에서 비즐러는 진정으로 슬픔과 죄책감을 느낀다. 타인을 체제의 적으로 규정하고 비인간적으로 고문하던 초반의 모습에서 변화하여 신념에서 해방되고 주체적인 삶을 찾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다. '추구하고 싶은 이상과 혁명할 대상이 사라진 사회'에서 신념에 지배당한 사람들은 과거를 그리워하지만 비즐러는 스스로 자신의 삶을 살아나간다. <아름다운 영혼을 위한 소나타>는 비즐러와 같이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는 개인 주체에게 주어진다.
어떠한 신념도 개인의 삶을 앞설 수 없다. 신념은 언제든 무너질 수 있는 허구적인 개념이며, 온전하지 못하다. 아름다운 영혼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타인의 삶을 생생하게 경험해야 한다. 타인과의 연결이 희미해질 때, 예술에 취해보는 것도 좋다. 타인과 공존할 때,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주체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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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뻔한 스릴러를 펀하게. [넷플릭스] 그 여자의 집 건너편 창가에 웬 소녀가 있다
이 후기에는 결말과 해석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알코올 중독에 합법적인 약을 마약처럼 활용하는 주인공 애나는 독특하고 처절한 방식으로 딸을 잃은 여자다. 부모님의 직업을 참관하는 미국의 교육 프로그램에 따라 그녀의 딸은 FBI 프로파일러인 아버지의 일터에 방문한다. 그 방문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연쇄 살인마를 인터뷰하는데 딸을 데리고 간 것? 어쩌다 우연히 불운하게 딸과 연쇄 살인마가 한 공간에 갇히게 된 것? 하필 부모님 직장에 방문해야 하는 날이 연쇄 살인마를 인터뷰하는 날이었던 것? 핑계 댈 곳은 많지만, 주인공 애나는 딸을 잃은 슬픔을 그 누구에게도 전가하지 않고 오롯이 자신의 잘못이라 자책하고, 슬퍼한다.
그래서였을까? 딸을 보냈던 그날, 내렸던 비에 트라우마가 생긴 애나는 비가 오는 날이면 밖으로 한 발도 딛지 못한다. 혹시 비를 맞게 되면 기절하기 일수. 그녀가 삶을 버텨낼 수 있는 힘은 술과 약. 그리고 술과 약을 섞어 먹으며 딸의 환영을 보는 일.
그런 그녀를 견디지 못한 남편은 떠나고, 그의 슬픔을 동정하던 이웃들도 그녀의 파괴적인 행동에 동정 대신 불편한 마음을 드러낸다.
그러던 어느 날 애나의 앞집에 어린 여자아이를 키우는 싱글대디가 이사를 온다. 늘 자신을 돌보지 않던 애나는 앞집의 소녀를 보며 자신의 딸을 떠올리고 손놓았던 그림을 다시 시작하게 된다. 앞집의 소녀에게 반한 애나는 그녀의 아버지에게 자연스럽게 호감을 보이게 된다. 그리고 그와 썸을 탄다고 느끼는 순간, 남자의 여자친구가 나타나고 애나는 한없이 작아지는 기분을 느끼게 된다.
남자의 애인은 될 수 없지만, 자신의 딸을 닮은 당돌한 소녀와는 잘 지내고 싶었던 애나. 소녀가 그림을 그리는 것을 좋아해서 그녀에게 무언가를 해주고자 하지만, 남자의 애인이 사사건건 발목을 잡는다. 하지만 틈틈이 소녀와 단둘이 있는 상황에서 애나는 소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막 전학 온 소녀를 위해서 쿠키를 사주는 일처럼 소녀에게 도움이 되는 일. 그런데 이 과정을 보고 있자면 어쩐지 소녀는 어딘지 모르게 어른스럽다. 특히 애나와 함께 이웃 여자를 험담하는 장면은 어린아이라기엔 묘하게 이질적으로 보였다. 소녀가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와 둘이 살아서 성숙한 걸까라는 생각도 약간 들었다. 하지만 곧 '그 여자의 집 건너편 창가에 웬 소녀가 있다'라는 제목을 떠올리며, 이 아이는 곧 모두의 뒤통수를 치겠구나 싶은 깊은 의심이 올라왔다. 그리고 그 예상은 맞아떨어졌다.
이 드라마는 불안정한 정신의 애나의 시선을 따라 진행되기 때문에, 평온한 일상도 불안하게 보여준다.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지만 곧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은 극의 진행. 그리고 그 예상처럼 애나는 살인을 목격하게 된다. 물론 술을 마신 상태에서. 그동안 이웃의 신임을 잃었던 애나의 말은 아무도 믿어 주지 않고, 살인을 당했다고 추정되는 사람은 여전히 문자로 연락이 된다. 애나 역시 자기 자신을 의심할 정도. 드라마를 보는 사람들도 애나가 술을 마시고 환각을 자주 보기 때문에 헛것을 본 건 아닐지 같이 의심하게 된다. 하지만 극이 진행될수록 애나의 의심은 사실이었고, 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의심되는 이들이 나타나게 된다.
아내의 죽음으로 수사를 받은 소녀의 아버지. 애나의 집 앞에서 몇 주가 지나도록 우체통을 고치고 있는 수상한 남자. 살해당한 여자의 숨겨진 애인이자 사업 파트너(사기). 그리고 술에 취하면 필름이 끊기는 애나 자신까지.
치밀하진 않지만, 인과관계는 확실하게 짜인 판의 범인은 애나였다. 애나가 아무리 자신이 범인이 아니라고 해도 믿어주는 사람은 없고, 자식을 잃은 슬픔으로 뭐든지 할 수 있는 게 아니냐며 사람들은 애나를 범인으로 몰아간다. 애나는 전화로만 상담하는 상담사가 있었는데, 그는 스스로를 의심하는 애나에게 당신은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끊임없이 말해준다. 그의 말처럼 애나는 범인이 아니었다.
그리고 애나가 또다시 앞집의 살인을 의심하게 된 날. 비 내리는 길로 뛰어든 애나는 소녀를 살리겠다는 의지로 기어서 앞집으로 향한다. 자신의 딸은 잃었지만, 앞집의 소녀만은 잃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그녀가 목격하게 된 것은 자신이 지키려 했던 소녀의 민낯. 아버지를 죽이고, 우편물을 가져다주기 위해 자신의 집을 방문한 남자 역시 찌르고, 애나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려 시도하는 소녀. 애나는 죽을힘을 다해서 소녀에게 대항하지만, 과할 정도로 소녀는 힘이 셌다.
사실 이 작품을 특별한 해석이 필요 없는 작품이다. 극의 종반부에 닿으면 친절하게 모든 상황을 설명해준다. 소녀가 자신의 의견을 묻지 않고 임신을 했다는 이유로 어머니를 죽이고, 아버지의 애인과 아버지까지 살해한 과정. 모든 죄를 애나에게 덮어 씌우려고 한 상황까지 모두 알려준다. 그럼에도 이 작품이 식상하지 않았던 이유는 30분 단위로 끊어지는 회차의 빠른 진행과 몰입도를 높이는 배우들의 연기에 있었다. 특히 보통은 아이를 의심하지 않기 때문에 결말도 나쁘진 않았던 것 같다. 물론 수사물이나 스릴러를 많이 본 사람이라면 제목 때문에 소녀를 바로 의심했을 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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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성한 나무의 씨앗> 리뷰
<신성한 나무의 씨앗>에는 촬영을 중심으로 눈에 띄는 두 장면이 있다. 집에 갇혀 있다고도 할 수 있는 딸들이 인스타그램을 통해 실시간으로 보게 되는 시위 영상 장면과, 사라진 권총과 가족 간 신뢰를 찾겠다며 아버지가 카메라 앞에서 가족들에게 증언을 요구하는 장면. 둘은 각각의 진실을 찾기 위해 촬영되고, 촬영하는 영상이다. 하지만 전자는 그것에 성공하고, 후자는 실패한다. 억압을 피해 촬영된 영상은 진실을 찾고, 억압적으로 촬영한 영상은 진실을 더욱 미궁 속에 빠뜨린다. 만인에게 열린 거리와 인터넷에서의 영상과 고립되고 폐쇄된 집에서의 영상. 가부장제와 불평등, 현실과 픽션 등 여러 레이어로 감싸진 두 영상의 비교는 <신성한 나무의 씨앗>이라는 영화의 다층적인 위치와 조응한다.
한 가지 흥미로운 비교가 또 있다. 영화의 마지막, 픽션 속에서 결국 땅에 묻힌 아버지(가부장)의 손과 시위 영상 속 V를 그리는 여자의 손. 이란 시위라는 현실과 픽션 사이에서 다양한 형식적 시도를 통해 울림을 주는 걸작이다.
*씨네랩 크리에이터 자격으로 시사회에 참석해 작성하는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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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 셋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웡카> 3주째 1위, <건국전쟁> 70만 돌파, 예매율 1위 <파묘>!
2월 3주차 박스오피스 분석 시작합니다.
<건국전쟁>이 누적관객 수 70만 명을 돌파하며, 국내 박스오피스 2위에 올랐습니다. 한편 <웡카>가 3주 연속 주말 1위에 올랐으며 현재 추세라면 250만 관객을 넘어 300만 명도 가시권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오는 22일 예매율 11만 명을 넘어선 <파묘>가 개봉하면서 4주 차 박스오피스에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보입니다.
밥말리 일대기를 다룬 영화 <밥 말리: 원 러브>가 북미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습니다. 혁명적인 음악으로 사랑과 화합의 메시지를 전한 시대의 아이콘 ‘밥 말리’의 전설적인 무대와 나아가 세상을 바꾼 그의 뜨거웠던 삶을 그린 감동 음악 영화며 국내는 3월 13일 개봉예정입니다. 한편 마블 코믹스의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캐릭터를 기반으로 한 소니 스파이더맨 유니버스 <마담 웹>이 2위를, <아가일>이 3위를 차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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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선을 돌리는 순간 조각나는 믿음
좋은 사람 (Good Person, 2020)
개봉일 : 2021.09.09
감독 : 정욱
출연 : 김태훈, 이효제, 김현정, 김종구, 박채은
시선을 돌리는 순간 조각나는 믿음
“나는 너를 믿어.” “너는 그럴 사람 아니잖아.” “걔는 그럴 애 아니야.” 상대의 마음과 입장은 생각하지 않은 채 내 눈에 보인 타인을 평가하는 말들. 이 말에 담긴 믿음은 상대에게 묵직한 무게감과 책임을 떠넘긴다. 그리고 그것들은 우습게도 상대를 보는 시선의 각도가 조금이라도 변하는 순간, 아주 가벼운 휴지조각처럼 휙 뒤집히곤 한다.
<좋은 사람>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영화는 이젠 자신이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을 줄 아는 좋은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주인공 경석이 그가 가르치는 학생 세익을 바라보는 시선을 생생하게 담아내며 우리에게 질문을 건넨다. “여기서 누가 좋은 사람이고 누가 나쁜 사람 같아?”. 영화를 보는 내내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이 이야기의 끝을 보고, 뒤통수를 한대 맞은 것처럼 얼얼한 듯한 느낌을 안고 상영관을 나왔다. 멍한 기분이었다. 믿음이라는 게 말 한마디라는 게,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이토록 간사하고 얇은 것이었구나. 내가 나를 좋은 사람으로 만들려 노력해도 모든 것이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구나. 싶었다. 사실 나라고 영화 속 경석과 다른 사람인 건 아니다. 나도 완벽히 착하고 좋은 사람이 아닌, 이런 사람이란 걸 아는데, 알면서도 경석을 통해 나를 보고 나니 더 허탈한 느낌이었다.
겨울이라는 계절적 배경을 갖고 있어서 그런진 몰라도 <좋은 사람>은 전체적으로 차가운 느낌이 든다. 딸 윤희가 교통사고를 당하고, CCTV도 블랙박스도 또 다른 목격자도 없는 상황에서 경석이 믿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사건에 얽힌 트럭 운전사, 세익은 경석에게 사고 당시의 상황을 말하지만 경석은 둘의 말을 믿지 못한다.
지갑 도난 사건에 있어서는 너의 말을 무조건 믿을 것이라고 말하던 착한 선생님이었던 경석은 세익이 자신의 일에 엮이자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끝없이 의심하고 분노하며 감정을 토해낸다. 그런 경석 앞에 선 어린 소년 세익은 죄송하다, 억울하다는 말만 반복할 뿐이다. 세익은 이미 자신을 의심하고 있는 경석 앞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도망칠 뿐이다. 죄책감이, 어른들의 압박이 무서웠겠지. 안타깝고 답답했다.
이 영화를 보면서 전여빈 배우님 주연의 <죄 많은 소녀>가 함께 떠오르기도 했다. 어떠한 아이인진 잘 알 수 없지만 왠지 상황상 좋은 사람은, 착한 학생은 아닐 것 같다는 상황에 내몰린 인물들. 그리고 휘몰아치다 결국 벽을 무너트려버리는 감정의 소용돌이까지. 두 영화는 어딘가 닮은 것처럼 느껴진다. 이 두 영화를 연달아 보게 된다면.. 아마 마음에 내상이 제대로 생길지도 모르겠다.
<좋은 사람>은 경석 역을 맡은 김태훈 배우님의 곧 갈라져 버릴 것만 같은 위태로운 감정 연기와 세익 역을 맡은 이효제 배우님의 성장이 특히 눈에 띄는 영화였다. 가장 최근에 김태훈 배우님을 본건 드라마 <나빌레라>에서였는데, 은은한 따뜻함을 가진 인물 기승주를 연기하던 그가 이런 퍼석한 인물을 연기하는 모습을 보니 낯설면서도 새로웠다. 죄책감, 분노, 혼란을 한곳에 담아낸 표정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몇 년 사이에 쑥- 성장한 이효제 배우님의 변화가 정말 놀라웠다. 2016년 <가려진 시간>에서 강동원 배우님의 아역으로 출연했던 그 아이가 이렇게 자랐다니.. 처음엔 못 알아보고 시간이 꽤 지나서야 알아봤다. 아이들은 금방 자란다더니만 (나만 모르는 새..) 정말 멋지게 잘 자랐다. 5년 전보다 훨씬 깊어진 배우님의 눈빛을 보고 있으니 앞으로 다가올 그의 미래가 더욱 기대된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순간이었다.
좋은 사람 시놉시스
고등학교 교사 ‘경석’(김태훈)의 반에서 지갑 도난 사건이 발생하고, 같은 반 학생이 ‘세익’(이효제)이 범인으로 지목된다.
‘경석’은 ‘세익’을 불러 어떤 말을 해도 믿을 테니 진실을 말하라고 하지만, 세익은 무조건 아니라며 억울함을 호소한다. 그날 밤, 학교에 데려왔던 ‘경석’의 딸 ‘윤희’가 교통사고를 당하게 되고 또다시 ‘세익’이 범인으로 지목되는데…
의심하는 순간 모든 것이 흔들렸다. 의심과 믿음 그 사이에 좋은 사람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실수해도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어... 잘못을 되돌릴 이 기회 놓치지 말자.”
경석의 반에서 지갑 도난 사건이 발생한다. 아이들은 모두 모른다며 입을 열지 않고, 반에서 가장 말 없는 아이 세익이 목격자인 동규에 의해 범인으로 지목된다.
경석은 아이들과 스스럼없이 장난을 치고, 돈을 잃어버린 학생 광열에게 대신 돈을 건네며 누가 보기에도 착한 선생님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도난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학생들에게 너희들을 믿겠다며, 잘못해도 뉘우치고 되돌리는 과정을 통해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근데 나는 그 말이 든든하고 믿음직스럽다기보단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무조건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너는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니 실수를 모두 되돌려야만 한다고, 이 일은 너에게 모든 책임이 있다고. 그렇게 말하는 것만 같았다.
“넌 아니라고 하고, 누군 봤다고 하고. 난 둘 다 믿을 거야. 난 네가 여기 쓴 거 다 믿을 거야.”
경석은 조용히 세익을 불러 상황을 묻는다. 새벽에 일하는 부모님에 대해 전할 이야기도, 미래에 대해서도 별생각이 없다며 입을 열지 않는 세익을 앞에 두고 앉아있던 경석은 윤희를 데리러 가야 한다는 초조한 마음에 밀려 세익을 상담실에 방치하고 떠난다.
경석은 세익이 무슨 말을 써내든 다 믿을 거라고 약속했다. 한 사람의 말만 들어선 안되니 범인으로 지목된 네 말도 다 들을 것이라고. 하지만 세익이 딸 윤희의 교통사고에 연관되자 그 믿음은 흔들리기 시작한다.
갑자기 아이가 튀어나왔다고 진술하는 트럭 운전자의 말을 들은 경석은 처음엔 “아무 책임 안 지려고 거짓말하는 거야.”라고 반박하며 세익을 당장 만나겠다는 지현을 말리고 이성적으로 행동하려 노력한다. 누구를 의심하고 미워한다는 건 의심의 결과가 어떻게 되든 의심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다 믿어주신다고 했잖아요. 제가 뭘 어떻게 해야 해요.”
한번 흔들린 믿음은 세익의 서랍에서 지갑이 발견되자 급속도로 무너져 결국엔 사라져버린다. 자신을 피하고 아르바이트마저 갑자기 관둔 세익의 행동과 서랍에서 나온 도난당한 지갑. 경석의 눈에 세익은 이미 지갑도 훔치고, 윤희를 찻길로 밀고 거짓말하는 범인이다.
하지만 진실은 그렇지 않았다. 세익은 범인이 아니었다. 그는 그저 윤희를 몸으로라도 막았어야 했다는 후회와 자신의 잘못을 주장하는 어른들에게 쫓겨 겁에 질린 채 도망치고 있는 아이였다. 도와주고 싶어 데려온 윤희는 “아빠한테 가자”는 세익의 한마디에 싫다며 찻길로 달려나갔고 사고를 당한다. 다 믿는다던 선생님은 이성을 잃고 세익을 내몰아가고, 세익은 정황상 이미 나는 나쁜 사람이 되어있었다. 평소에도 마음에 담긴 이야기를 하지 못했던 아이가 이런 공포스러운 상황에서 어떻게 입을 떼고 억울함을 호소할 수 있을까.
세익은 차라리 자신이 용서받을 수 없는 나쁜 사람으로 남고 모든 상황을 정리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상처를 극복하지 못하고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누던 법을 모르던 아이는 매번 상황에 맞춘 거짓말로 순간을 모면했고, 진실을 말해도 달라질 건 없으니 차라리 자신을 탓하며 머리를 내려치는 선택을 하게 된다. 전하지 못할 말을 흘릴 바엔 피를 흘리며 상황을 정리하는 게 더 빠를 거라고 세익은 그렇게 생각했다.
이 모든 상황을 만든 나쁜 사람은 누구일까? 엉킬 대로 엉켜버린 경석과 지현의 사이? 닫혀있던 세익의 입? 윤희 앞에서 경석을 의심하고 미워하는 모습을 보여준 지현의 행동? 모르겠다. 누구도 딱 나쁜 사람이라고 할 순 없었다.
오히려 다른 관점에서 보면 이들은 좋은 사람이기도 하다. 경석도 좋은 사람이 되려 나름대로 노력했다. 잘못을 되돌리기 위해 술도 끊었고 학생들에겐 좋은 선생님이 되기 위해, 가까이 지내기 위해 노력했다. 지현은 윤희를 키우기 위해 노력했고 윤희는 그런 엄마를 잘 따랐다. 세익은 정황상 경석에게 앙심을 품고 윤희를 데려간 범인이었지만 그는 자신의 의견을 건네는 방법을 몰랐을 뿐, 나쁜 일을 저지를만한 인물은 아니었다. 오히려 큰엄마에게 신세 지지 않으려 스스로 아르바이트를 하며 노력했던 착한 아이였다. 그렇다면 세익을 용의자로 올린 사람들이 잘못했느냐. 그 또한 아니다.
대체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은 어떤 사람이란 말인가. 사람은 정말 입체적인 존재다. 한 사람을 오래도록 봐왔고, 잘 안다고 생각해도 언젠가 그의 다른 모습을 목격하고 놀라는 순간이 있지 않은가. 무서울 만큼 입체적인 사람이란 존재를 좋음/나쁨이라는 이분법으로 나누며 누군가의 질문에 “그 사람은 착해. 그럴 사람 아니야”라고 표현하는 게 정말 맞는 걸까? 물론 범죄를 저질렀거나 큰 잘못을 저지른 누가 봐도 나쁜 사람은 당연히 존재하지만, 좋은 사람이라.. 참 정의하기 힘든 단어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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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답지만 무심하게 잔인하고 강력한 자연에게 바치는 한편의 시이자 애찬
아르타바즈드 펠레시안 감독의 이름을 들어본적 있는가, 들어본적 있다면 당신은 상당한 수준의 씨네필일 것이다.
사실 모른다고 해도 섭섭해할 필요는 없는것이, 예전부터 영화를 봐온 씨네필이 아닌 이상 잘 모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이번에 이야기할 영화, <대자연>은 아르타바즈드 펠레시안 감독의 무려 27년만의 신작이기 때문이다.
이전 작품인 <생명>, <끝>, <우리 세기> 같은 작품들은 90년대, 80년대 작품인데다가 흔히 보기 힘든 단편이며, 시대가 시대인지라 한국에 초청된 것도 벌써 한자리대의 전주국제영화제이다.
그러나 "간격 몽타쥬 Distance Montage"의 창시자로 불리는 의미있는 거장이며 장 뤽 고다르 감독이 "영화의 신"이라 칭할 정도로 존경을 표할 정도의 반드시 알아야 할 거장 감독이다.
이번에 정말, 아주 오랜만의 복귀작인 대자연을 통해 그의 이름을 다시 이야기하고자 한다.
대자연은 잔잔하고 고요한 자연의 순간에서 시작하여, 강력한 자연의 힘에 저항없이 무너지는 인류의 문명들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렇게 인간을 무릎꿇게 만든 자연은, 내가 언제 그랬냐는듯이 다시 잠잠해지고, 여명이 밝아오며 이러한 자연의 연속성을 알 수 있다.
본 영화는 대사가 단 하나도 없이, 흑백의 기록영상들과 음악으로만 이루어져있다.
다만 단순 나열에 그치는 것이 아닌, 마치 자연을 위해 만들어진 음악들과 그에 맞춰진 자연의 모습은 정말 놀라운 조화를 일으킨다.
필자는 사실 이번 기회에 본 감독의 작품을 처음 접한터라 그가 창시한 "디스턴스 몽타주"라는 게 뭔지 잘 몰랐는데 영화를 보고 나니 어떤 느낌인지 알게되었다.
하지만 솔직히말하자면, 1시간 내내 계속 이렇게 진행되다보니 중반부부터 체력적 힘듦은 느낄 수 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스스로 말한 "영화적 언어"에 대한 위대함과 강력한 힘을 느낄 수 있었던 62분이었다.
장 마리 스트라우브 감독의 영화 중 "아르테미스의 무릎", 레우코와의 대화 중 한 대사를 이야기하며 마무리를 짓고 싶다.
자연에 대한 예찬이자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 같아서이다.
“당신은 이런 이를 본 적이 있나요? 하나의 존재 안에 수많은 것들을 품고 있는 그런 여인을. 그리하여 그녀의 모든 몸짓과 그녀를 향한 모든 생각이, 당신의 대지와 하늘, 말과 기억들, 당신도 모르게 스쳐 지나가는 나날들, 미래들, 확실한 것들, 그리고 결코 당신의 것이 될 수 없을 대지와 하늘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들을 무한히 품고 있는 것처럼 여겨지는 그런 이를 본 적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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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이 겨울에 보면 좋을 영화 5편
‘몽글몽글 심야영화’ Ep.02 당신의 겨울에 감성 이불을 덮어줄 영화 5편
크리스마스도, 2017년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당신의 겨울에, 어두운 방에서 이불 덮고 귤 까먹으며 보면 좋을 영화 5편을 소개해드립니다.
렛미인 / 룸 / 브리짓존스의 일기 / 캐롤 / 러브레터
** 강한 스포일러는 없으나, 콘텐츠 특성상 일부 내용이 스포일러가 될 수 있다는 점 알려드립니다.
** 소개 순서는 영화의 선호도와 무관합니다.
** '몽글몽글 심야영화'는 모두가 하루를 마무리할 때 영화를 켜는 '환몽씨네'의 상명이가, 심야에 들려주는 영화 이야기입니다. 자기 전, 혹은 적적한 밤과 새벽에 한번씩 꺼내 먹는 조그마한 야식처럼 들어 주세요 :)
** 시간 관계상 아쉽게 소개해드리지 못한 영화 5선 (라라랜드 / 인사이드 르윈 / 헤이트풀8 / 물랑루즈 / 이터널 선샤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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