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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텔로2025-06-01 11:39:16

<퀴어>, 사랑은 죽어야 끝난다

<퀴어> 리뷰

 

 

 

<퀴어>, 사랑은 죽어야 끝난다

 

 

 

퀴어 영화의 핵심에는 주로 성 정체성에 대한 탐문이 있었다. 특별한 계기를 통해 그간 눈치채지 못했거나 애써 감춰왔던 성 정체성의 발현을 감지하는 장면은 퀴어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영화들의 정당한 클리셰처럼 형상화되곤 했다. 또한, 성 정체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차별이 난무하는 상황 속에서 퀴어로서의 정체성을 만천하에 드러낼 것이냐 말 것이냐 하는 개인적 고뇌의 시간을 담아내는 장면이, 주인공에 대한 관객의 감정이입이라는 중차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편으로 거의 필수적으로 제시되곤 했다. 그런데 <퀴어>에는 그런 장면들이 없다. 영화의 첫 대사가 너 퀴어 아니지?”라는 점에서 짐작할 수 있듯 <퀴어>의 세계는 마치 퀴어가 아닌 사람이 더 이상하고 낯설게 여겨지는 특별한 시공간처럼 세공되어 있다. 이 독특하고도 뻔뻔한 이질감이 퀴어를 상대로 갖기 마련인 반사적인 편견과 차별의 가능성을 차단하고, 퀴어를 바라보는 어떤 특별한 정동, 예컨대 연민과 혐오 따위의 일차원적 감정 상태를 무화시킨다.

 

퀴어이기에 부득이 감수해야 하는 사회적 불편과 차별이 전무한 것처럼 그려지는 <퀴어>에서 성 정체성은 오직 사랑의 가능성을 점쳐보는 일종의 판별기 정도로 축소된다. 퀴어면 가능하고, 퀴어가 아니면 불가능한 세계. 마치 여기서 사랑은 퀴어에게만 허락된 신성하고도 속된 특권처럼 비친다. 퀴어는 사랑할 수 있지만 퀴어가 아닌 사람은 사랑할 수 없다는 전제. 그러나 문제는 그 전제가 그들만의 전제라는 점이다. 단숨에 중년의 주인공 리의 마음을 사로잡은 청년 유진은 퀴어가 아님에도 사랑을 나눈다. 그것이 정신적 교류와는 유리된 육체적 탐닉에 국한되어 있기는 하지만 육체와 육체의 교통을 사랑이 아니라고 단정할 증거가 어디 있겠는가.

 

 

문제는 육체적 접촉을 맺을 수 없게 되었을 때 촉진된다. 유진이 여자인 메리를 비롯하여 다른 남자들과 어울려 다니는 통에 리를 멀리하자 리는 상사병에 걸린 것처럼 괴로워한다. 급기야 리는 유진에게 남미 여행 경비를 전부 내줄 테니 일주일에 두 번만 그를 만질 수 있게 해달라고 간곡하게 호소한다. 호소라고는 썼지만 사실상 이것은 거래다. 자본주의의 영역으로 들어선 것이다. 사랑에는 거래가 없다. 거래가 전제하는 등가물의 교환이 사랑에서는 작동되지 않는다. 사랑의 영역에서 우리는 받은 만큼만 돌려주려 하지 않고, 준 것 이상으로 돌려받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니 리가 유진을 거래의 영역으로 초대한 순간 둘의 사랑에 커다란 균열이 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부와 달리 2부와 3부에서 리와 유진이 서로의 육체를 탐닉하는 장면이 공허하고 때로는 해괴하게 보이는 것은 바로 사랑의 순수성이 탈색되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리가 유진의 속마음을 알아내기 위해 주술사를 만나 텔레파시를 나누는 대목은 사실상 사족처럼 보인다. 누구도 사랑하는 사람에게 금전을 대가로 만남을 이어가진 않는다. 유진은 답한다. “난 퀴어가 아니에요.” 그 말에 숨은 뜻, “나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아요.”

 

 

 

리는 유진을 사랑하지만 유진은 리를 사랑하지 않는다. 그럼으로써 리는 유진을 가질 수 없지만 유진은 리를 가질 수 있다. 여기서 리의 성 정체성은 중요하지 않다. 그가 실제로는 퀴어이든 그의 말마따나 퀴어가 아니든 그는 사랑받는 존재이다. 사랑은 언제나 받는 쪽이 권력을 쥔다. 그 권력을 나눠 갖지 못하면 평생 짝사랑의 고통에 허덕여야 한다. 그 고통을 파괴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방법밖에는 없다. 광인이 되거나 자신을 죽이거나. 이때 상대를 죽이는 방법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렇게 되면 망자와 사랑하게 되는 꼴이 된다. 상상 속에서 리가 유진에게 권총을 쏘아 죽이는 장면은 그런 점에서 아찔하고 동시에 현명하다. 그것은 아무쪼록 현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평생 유진을 그리워하던 리가 마침내 숨을 거두는 장면은 똑같은 이유로 희극적이다. 이때 방점은 죽기 직전까지 그리워할 만큼 리가 유진을 열렬히 사랑했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리가 죽음을 통해서나마 비로소 지긋지긋한 사랑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는 데에 있는 것이다. 거칠게 귀를 긁어대던 숨소리가 점차 잦아지고 괴로워 보이던 얼굴이 평안해지는 대목이 그 희극성을 증거한다.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시사회에 참석했습니다.

작성자 . 코스텔로

출처 . https://brunch.co.kr/@shadows/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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