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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록2025-08-27 01:22:21

깨진 조각은 완전한 결과물을 만들 수 없으므로,

영화 <다른 것으로 알려질 뿐이지>

 

 

시놉시스

"당신은 무엇을 보는가" 어느 날 갑자기 자취를 감춰버린 정호.

정호의 애인 수진. 정호를 짝사랑하는 인주. 정호의 옛 애인 유정.

수진은 정호 모르게 훈성과 비밀스런 만남을 이어가고, 인주는 시한부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정호에게 품은 마음을 고백하기로 한다.

유정은 정호의 자살 시도에 대한 죄책감으로 애인 우석과의 관계가 위태롭기만 하다. 그런데, 정호는 어디로 갔고 정호를 먼저 만난 건 누구인가?

그 정호는 정호가 맞는 걸까? 보이는 것과 믿는 것 그 사이 어딘가, 다른 것으로 알려질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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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것으로 알려질 뿐이다. 이는 영화 자체이다. 말 그대로 제목이 영화를 담고 있다. 그래서 영화는 아무것도 담고 있지 않다. ‘여백의 미’라는 단어를 영화화한다면 이런 느낌일까? 2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쉼 없이 이어지는 장면들과 그 속의 인물들을 있는 그대로 봐야 한다. 이해하거나 판단할 필요도 없다. 그 모습 그대로 받아들일 수록 더욱 잘 느껴질 것이다. 수진, 인주, 유정. 전체적인 극을 구성하는 감정의 주체들이다. 특히나 인물에 대한 정보가 주어지지 않는 극 초반에 나오는 인주의 작품은 영화 제목과 동일한 작품명을 가지며 일련의 사건을 통해 완성 되는데, 때문에 인주가 보고 듣는 이야기들이 작품에 녹아 들고 그 작품의 관념들이 영화의 스토리가 되었다는 생각도 든다.

 

 

 

 

 

파편들. 우리는 인주가 정성들여 완성한 작품의 결과물은 만나보지도 못한 변수와도 같은 갑작스러운 원인 때문에 깨진 작품만 있게 되었다. 깨어진 그대로 전시된 작품은 정호와 동일시 된다. 차분한 분위기에서 조심스럽게 작품의 틀을 잡고 있는 정호의 모습으로 시작된 영화는 깨진 작품의 조각들로 마무리 지어진다. 수진, 인주, 유정 인물이 관계를 형성하고 경험했던 조각들이 모여 관객이 보는 정호가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수진과 이런 일이 있었으니 정호라는 인물은 이런 건가? 유정이 겪은 정호는 이랬으니 정호라는 캐릭터는 이렇겠군, 무의식적으로 판단하는 관객들의 머릿속에는 모두다른정호가 만들어져 있을 것이다. 사람은 자신이 알고 있는 관점으로 대상을 바라보고, 판단하고, 결국 다른 것으로 알려질 테니 말이다.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반면에 메시지로 귀결되는 과정은 얽혀 있다. 시간이 직선으로 흐르지도, 인물마다 정리하여 제시하지도 않는다. 다양한 인물의 단편적인 순간들로 우리는 영화의 흐름을 유추해야 한다. 작품을 벗어나 현실 세계에서 타인을 판단할 때와 같다. 내 앞에 앉아 있는, 처음 보는 사람의 삶을 하나도 모르지만 순간적인 말과 행동, 표정과 간접적인 언어들로 판단한다. 찰나의 차이로 검은 개를 보는 사람과 보지 못한 사람이 한데 공존한다. <다른 것으로 알려질 뿐이지>는 나자신, 당장 내 옆에 있는 친구들, 가족들로 존재할 듯 현실적인 인물들을 나열하며 주요 메시지를 상황 그 자체로 풀어낸다. 사람의 관계를 나타내는 새로운 방식이다. 또 다른 영화적 표현을 마주하게 되어, 내 앞에 놓인 ‘영화’라는 퍼즐의 한 조각을 채워 넣은 기분이 든다.

 

 

 

 

해당 글은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되었습니다.

백록

작성자 . 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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