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이정2024-05-10 21:19:57
[JIFF 데일리] 침묵하지 않는 카메라는 마침내
영화 <양양> 리뷰
SYNOPSIS.
어느 겨울밤, 주연은 아빠에게서 걸려 온 전화를 받는다. 아빠는 술에 취해 혀가 꼬인 목소리로 주연에게 “고모처럼 되지 말라”는 말을 남긴다. 그날 40년 전 자살한 고모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주연은 가족의 수치스러운 비밀이 된 고모의 흔적을 추적한다. 주연은 그동안 역사 속에서 지워져 온 여성들을 기억하며, 애니메이션을 통해 고모의 잃어버린 목소리를 찾아간다.
PROGRAM NOTE.
양주연 감독의 <양양>은 가족사에 대한 고백으로 시작한다. 양 씨 집 안의 첫째 딸로 태어난 그녀는 남동생이 가족의 중심에 있는 것이 익숙한 만큼, 가족 안에서 자기 자리가 없다고 생각해 왔다. 여기까지는 우리나라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가족의 풍경’이다. 그런 어느 날 밤, 술에 취한 아버지는 처음으로 자신에게 누나가 있음을 고백했고, 그렇게 40년 전에 사라진 고모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다. 1975년, 대학교 4학년이었던 감독의 고모는 대학 졸업을 앞두고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고, 할머니가 남겨 놓은 고모의 사진을 발견한 뒤, ‘두려움에 맞서기 위해’ 이 작품을 만들게 되었다. 고모가 자살한 이유를 알아내기 위해 고모를 기억하는 사람들을 찾아 나서는 과정은 ’사라진 고모의 자리‘뿐 아니라, 가족 안에서 늘 한쪽으로 밀려나 있었던 ‘양주연 감독의 자리’를 찾는 과정이기도 하다. (전진수)
"행복한 가정은 모두 고만고만하지만 무릇 불행한 가정은 나름나름으로 불행하다." (박형규 역, 문학동네 버전) 문학사 안팎에서 길이길이 회자되는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첫 문장이다. 처음 들을 땐 그렇지 뭐, 하며 고개를 끄덕였던 이 문장이 언제부터인가 내 안에서 부스스 일어난다. 과연 그러한가? 정말 그러한가?
세월을 머금은 색감의 홈 비디오에서 부드럽게, 고화질의 결혼식 영상으로 넘어가며 시작하는 이 영화 또한 그렇다. 내레이션 속 감독도 스스로 인정할 만큼 화목한 가정, 부족한 것 없이 딸과 아들을 길러낸 집. 90년대에 홈 비디오로 풍성한 일상을 담을 만큼, 그 영상 안에서 생일 파티를 즐기는 아이의 웃음만큼, 밝고 환해 보이는 집.
이런 집들만 보다 보니까 가정에 고민이 있는 사람들은 "왜 우리 집만 이렇지? 왜 나만 이렇지?"라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오래 전, 누군가 지나가는 말로 남긴, 딱히 내게 던진 것도 아니었던 한 마디가 내겐 잊히지 않는다. "모든 가정에는 다 문제가 있어요. 문제 없는 집은 없고, 그러니까 상처 없는 가정도 없어요."
생각해 보면 지극히 당연한 문장인데 우리는 그 말을 잊고 산다. 슬픈 일은 가슴에 묻고, 남부끄러운 일은 적당히 묻어 두면서, 사랑하는 이들에게 주고 싶은 단란한 일상을 바지런히 꾸린다. 그러나 문제 없는 집도 없고 상처 없는 집도 없으니, 감독이 어느 날 알게 된 사실, 이미 오래 전 세상을 떠난 고모의 이야기도 그렇다.
감독은 고모 주변 사람들에게 고모의 이야기를 묻고, 고모의 죽음을 파헤친다. 그간 감독이 카메라에 담아 왔던, 보고 듣고 이야기해 온 것들이 고모의 이야기와 공명한다. 다만 이번에는 그 '고모 주변 사람들'에 감독의 어머니와 아버지도 포함될 뿐이다.
맞지 않는 옷처럼 어색하게, 하지만 자식의 작품 앞에 최선을 다해, 약간은 긴장된 얼굴로 카메라 앞에 앉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모습. 마찬가지로 조금 어색한 듯 이런저런 이야기로 인터뷰를 시작하는 감독의 목소리. 어쩐지 사랑스러워서 조금 웃음도 나왔다. 그러나 이내 이야기가 나아가면서 감독의 목소리는 점차 진중해진다.
힘들다고 덮어둔 기억을 감독은 부감한다. 자기 가족의 일을, 극화하지도 않고 민낯 그대로 인터뷰를 하면서 말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텐데. 카메라는 끝내 침묵하지 않는다. 이제 그만두라는 말에도 꿋꿋하게, 고모의 죽음을 따라간다. 그건 탐정의 자세나 경찰의 태도와도 다른 그 누군가,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는 누군가의 자세와 태도다.
기록도 남아있지 않은 죽음. 타살인지 자살인지도 불확실한 정황. 오래 전의 아픈 일에 대해 바래고 조각난 기억들. 그 안에서 감독은 사회에 끊임없이 익숙하게 찍히는 사건들의 발자취를 본다. 그리고 그 일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에서, 자신이 가족 안에서 겪어왔던 일들이나 익숙하게 들어왔던 말들도 길어 올린다. 아무 악의 없이 부드럽게 놓인 말들, 어쩌면 감독 스스로에게도 그다지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는 그런 말들. 그 스펙트럼은 매우 넓다. 일상의 작은 말 한 마디에서 누군가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고모의 죽음을 둘러싼 진실을 명명백백하게 드러낼 수는 없다. 이 영화는 탐정이나 경찰이 아닌, 감독이 찍은 작품이니까. 고모의 죽음이 타살이었는지 자살이었는지 이유는 무엇이었는지 알 길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조각조각 드러난 진실 속에서도 보이는 것들이 있다. 나는 보면서 어쩌면 감독의 고모의 죽음과 아주 닮아 있었을 어떤 죽음들을 생각했다. 몇 시간에 하나 꼴로 새로운 기사가 뜨는 그런 사건들. 요즘 또 부쩍 많이 보이는 사건들. 피해자의 생명보다 가해자의 수능 점수 같은 것이나 주워섬기고 있는, 악의 없이도 충분히 악독해지는 얄팍한 담론들.
또 하나, 그저 사망한 존재로서만이 아닌, 삶을 영위하던 순간들의 고모를 감독은 그려낸다. 그렇게 단지 죽은 사람, 마음 아프니 덮어둘 사람만이 아닌, 살아 있었고 살아가고 있었던 존재로. 피해 대상으로서만 피해자를 묘사하는 것도 끔찍하지만 (예를 들어 피해자가 수능 만점의 의대생이었으니 그 죽음이 얼마나 아깝다는 식으로 말한다면 얼마나 끔찍할 것인가) 피해자로서도 지워지는 경우가 허다해 더 끔찍한, 그래서 가끔 어떤 유가족들이 사진을 공개한다는 선택지를 끄집어 들게 만드는 이 사회의 서술 방식을 생각한다.
이러한 사회의 서술 방식 앞에 감독의 말하는 방식은 경종을 울리는 바가 크다. 나직나직한 감독의 내레이션이 더 많은 상영관에서 울려퍼지면 좋겠다. 침묵하지 않고 계속해서 이야기되면 좋겠다. 이 감독의 시간이 쌓이고 또 쌓여, 더 많은 여성의 이야기들이 우리에게 전달되면 좋겠다. 침묵하지 않는 카메라는 마침내 부감에 성공하고 마니까. 더 많은 이야기가 그 부감의 시선에 밝히 드러나길.
어떤 죽음으로 떠나간 사람들, 어쩌면 나였을 수도 내 친구였을 수도 있는 그들의 명복을, 진심으로 빈다.
2024. 05. 03. 13:30 메가박스 전주객사 3관 (229)
2024. 05. 05. 10:00 메가박스 전주객사 3관 (411)
2024. 05. 07. 21:00 메가박스 전주객사 1관 (652)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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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스트 키즈
제이든 스미스, 성룡 주연의 액션영화이다.
타지로 이사온 주인공 드레가 쿵후를 배운 또래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한 아저씨에게 쿵후를 배워 그 괴롭힌 아이와 쿵후 대회의 결승에서 붙게되고 이기는 성장, 액션영화이다.
일단 중국에 이민한 미국인이라는 소재가 처음에 신선하게 다가왔고, 주제를 중국의 문화로 잘 넘긴다. 그리고 대회를 준비하고 부터는 액션의 비중이 늘어나며 더 흥미로워 진다. 또한 이민인 꼬마가 쿵후를 배운다는 메인 스토리 라인뿐만 아니라 주인공의 사랑, 한 아저씨의 과거 가족사 등 여러 흥미로운 점을 계속 주어서 좋았지만 마지막에는 그런 것들을 이어붙이기 위해 원래 엄청나게 엄격한 주인공 여자친구의 아버지가 사과 편지 한번에 표정이 풀리면서 대회에 딸을 구경하러 보내는 것을 허락하거나, 한 아저씨의 과거 와이프와 말싸움을 하다가 차가 미끄러져 자신을 제외한 가족이 죽는다는 과거, 그 트라우마를 이겨내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 스토리가 너무 이해하기 어렵고, 빠르게 진행된다는 단점이 있어서 아쉬웠다. 하지만 영화의 흥미를 위해 그럴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액션 또한 눈에 띄었다. 쿵후라는 특이한 무술의 액션을 카메라 무빙에 꽤 잘 담아낸 것 같았다. 특히 처음 한 아저씨가 드레를 괴롭히던 패거리를 상대할때 옷으로 다리를 빠르게 묶는 기술이나, 그런 연출들이 창의적이었고, 또한 서브스토리의 전개로 전체적인 액션의 완급조절이 아주 좋았다.
마지막에 웅장함을 더하면서 쿵후 대회를 이기고 영화가 끝나는 것 또한 깔끔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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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강아름, 그는 왜 결혼했을까?
세상에나, 내가 30대라니. 무슨 일이야!?
“30대, 미혼, 여성”
이 사회가 나를 카테고리화하는 무시무시한 키워드들이다. 성별에 대한 만족도는 꽤나 높아 (아마도) 바꿀 일이 없어 고정값으로 상정하니, 시간이 지날수록 앞의 두 키워드를 마주하는 것이 두려워진다. 특히 10년간 익숙하게 나를 위로했던, 소위 ‘앞자리 수’가 변했을 때 정체를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게다가 코로나 팬데믹과 그 시기가 겹쳤다. 그 말인즉슨 어떤 ‘무뢰한들’의 무차별적이고 무심한 질문 폭격에 답 해야 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다. 결국 다시 한번 해가 지났음에도 아직도 삼십이라는 단어가 입에 붙지 않는다는.. 말 못 할 어려움을(혹은 현실 부정 단계를) 겪고 있다.
<구글 이미지 검색 키워드 : turning 30 meme.. ㅎㅎ>
아니, 도대체 왜?
그동안 목소리를 높여 비판했던 '자존감 낮고 나이가 세상에 전부인' 그런 부류가 바로 나였단 말인가?
29.99였던 어제와 30.00이 된 그날의 나는 정말이지 혼란스러웠다.
“너도 이제 적지 않은 나이야. 피부도 잘 챙겨야 해. 나중에 나이 들어 후회한다.
선크림 하고 아이크림은 필수라고.”
막 잠에서 깨, 동생이 군대에서 신던 초록색 슬리퍼를 질질 끌며 담배를 사러 가면서도 고민은 깊어진다. (로션도 잘 안 바르는데.. 아이크림이 필수라니!! 너무해!!)
우리는 30대 인간에게 사회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수많은 미디어와 인간관계를 통해 배워왔다.
하지만.. 그 누구에게서도 30대의 지침서 따위는 받지 못했단 말이다!!
첫 30대를 살아보는 어른 아이의 패닉은 곧 나이듦에 대한 거부 반응으로 나타나는 것일까? 불안과 혼란의 카오스가 오직 나만 겪는 현상이 아니기를 바라지만, 세상에는 너무 멋진 30대들이 넘쳐난다.
그에 비해 나는 내 몸 하나 건사하기 힘들고, 아직도 모르는 것, 어설픈 것 투성이다.
심지어 누군가 집에 어른 계시냐고 물으면 어색하게, “어.. 엄마 안 계시는데요”라고 답하는 어리숙한 나라는 사람이.. 온전한 사회인으로 기능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이 인간이 30대가 되었다.
참으로 무시무시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30대의 쓰나미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더 큰 폭풍을 몰고 왔다.
우선 나는 한 번도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고 감격에 찬 얼굴로 모두에게 축복받으며 ‘버진로드’를 걷는 모습을 상상해본 적이 없다. 비혼주의라고 굳이 나를 규정하지 않지만(가능성을 열어두겠다는 변명이다) 학생 신분이 지속되면서 나에게 이런 구체적인 상상은 사치에 가까웠다.
결혼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여성으로서 나의 신체와 그 선택은?
적지 않은 나이의 신체를 가진 미혼 여성이자, 도태된 사회적 동물로서 나는 이 사회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인가? 꼬리를 무는 이후의 고민들은 한층 더 골치 아픈 문제였다.
미혼과 비혼은 적법한 선택임에도 불구하고, 한 달에 한 번 꼬박꼬박 자신의 존재감을 입증하는 나의 자궁, 난자들에 대한 고민도 끊이지 않는다.
역시 냉동난자가 유일한 답인가? 오늘이 앞으로의 삶에서 가장 젊은 날이 아니던가? 그런데 내 난자를 어디에 쓸 것인가? 아니 나는 난자 보관비용이나 부담할 수 있나?
그리고 이러한 고민에 난생처음 그리고 아주 ‘적나라한’ 선택지를 던지는 다큐를 보았다.
그리하여,
“<박강아름 결혼하다(Areum Married)>(2021)”
우리 사회에 시의성 있는 화두를 던져온 박강아름은 그의 전작 <박강아름 가면무도회>를 통해 잘 알려진 감독이다. 전통적인 관습과 가치관을 대물림하는 가부장에 대한 전복과 투쟁, 정형화되고 규정적인 여성상과 ‘미’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점철된 감독의 세계관에 난데없이 ‘결혼’이라니? 묘한 배신감이 느껴졌다. 결국 제도적 굴레 안으로 그 또한 편입하는 것인가! (물론, 필자는 결혼에 대해 아무런 악감정이 없다.)
그러나, 그는 우리를 배신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너무나도 처절하게 거대 담론에서 소외된 두 개인의 결혼 생활과 더불어 완전히 새로운 하지만 한 없이 가까운 또 다른 개인의 탄생과 성장을 담아냈다.
그리고 이 노골적인 연대기, <박강아름 결혼하다>에서 그려지는 가장권의 전복,
여성 주도의 가모장(matriarchy)의 풍경을 보며 나름 진보적인 스탠스를 취한다고 자부하는 나의 편협함을 발견하곤 다시금 고개를 숙였다.
가계를 걱정하는 박강아름 감독의 우환과 '영수증' 그리고 그의 집사람이 누리는 3유로짜리(사실 박강아름 감독은 그 값의 절반도 안 되는 일반 커피를 마셨다. 이들의 참사랑은 영수증에서조차 드러나는가!!) 카페 프라페의 행복을 보며 내 안에는 분명 누군가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간 것이다.
그리고 화들짝 놀랐다. 게다가 나라는 인간은 ‘결혼’의 이미지를 곧장 ‘웨딩 세리머니’와 연결시키지 않았던가? 순백의 드레스는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아, 몇 초 가량 박강아름 감독의 연주와 행복한 미소 그리고 새하얀 드레스를 본 것 같기도 하다)
두 인간이 만나 한 집에서, 그것도 저 멀리 낯선 땅 프랑스에서 살아간다. 게다가 임신과 출산, 양육까지 줄줄이 이어진다. 박강아름 감독과 ‘집사람’. 이 두 사람은 나에게는 너무나 용감하고 무모했고 대단하고 절박했고 그리고... 투머치였다! 이 모든 상황이 한 씬에 들어와 있다니. 공포 그 자체였다.(물론 영화는 감독 특유의 유머감각을 놓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계속해서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게다가 진짜 너무너무 앞 발을 꽉 깨물고 싶은 닥스훈트까지. 이것이야말로 30대 기혼자들의 진정한 카오스란 말인가!!?
아직까지는 여성의 신체로만 가능한 재생산의 기능을 수행하고 다시 바깥양반으로 돌아가는 박강아름 감독을 보며 나는 다시금 나의 신체와 생식 가능성을 가진 남은 난자들에 대해 생각했고 또 다른 가능성들에 대해 새로운 선지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감독이 몸이 좋지 않은 집사람을 끌고 덩케르크로 간 날은 바다를 보기에 그리 완벽한 날씨는 아니었다. 그러면 어떠한가? 낑낑거리며 유모차를 옮기는 바깥양반을 보며 저 멀리 수평선을 바라보았을 집사람은 터벅터벅 돌아와 함께 둘 사이의 보리를 옮긴다. 여성과 남성 부인과 남편 바깥사람과 집사람. 이런 단어들로는 그들이 함께 걷는 그 길을 전혀 예측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런들 저런들 어떠하리? 그들은 서로의 균형을 맞추며 나란히 걷고 있지 않은가?
영화가 끝나고 생각했다.
"사실..
나도... 집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더 이상의 스포를 막기 위해 영화에 대해서는 이쯤 이야기해야겠다.
(하지만 가수 이랑의 잔잔한 목소리가 그리 녹록지 않은 자신의 그리고 우리의 현실을 써 내려가는 박강아름 감독의 에세이를 더욱 진하게 만든다는 것과, 곳곳에 삽입된 스톱모션 이미지와 그의 ‘하이퍼 리얼’한 다큐 이미지 사이의 관계를 살피는 것도 놓치지 말아야 할 관람 포인트라는 정도는 공유해도 되겠지)
* 해당 리뷰는 씨네랩(CINE LAB) 크리에이터 시사회 참석 후 작성하였습니다.
* 브런치 삐뚜로빼뚜로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brunch.co.kr/@ppeeppae/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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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귀여운 약초 오타쿠라니
간만에 마음 놓고 즐길 수 있는 애니메이션이 생겼다. 나는 소위 말해 머글이기 때문에 매니악한 애니는 보지 않는다. 그냥 관심이 안 간다. 오히려 소소한 애니만 보는 편인데, 넷플릭스를 표류하다가 세상 귀여운 애니를 발견했다. 뭐, 워낙 나는 늦박을 타는 인간이라 이걸 왜 이제 알았을까 싶었다. 뭔가 맘편히, 자극적이지 않으면서 스무스하게 보기 좋은 애니메이션이다. 물론, 추리부터 살인까지 서스펜스가 있지만 주인공이 너무 귀여운 점이 더 와닿는다.
주인공은 유곽에서 약사로 일하는 마오마오. 양아버지가 유곽의 약사라서 그녀도 녹청관이라는 기생집에 드나들며 약사로서 역할을 수행한다. 수많은 약에 대한 실험을 하기도 하고 사람을 치료하면서 일종의 과학자 같은 성향의 여자라고나 할까. 여자로 태어나면 남자의 사랑을 받는 게 당연한 시대에서 그녀는 그저 약사로서의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약초를 캐러 돌아다니는 게 더 좋다. 그러니 후궁으로 팔려가서도 절세미남 진시를 보고서도 역겨워하는 것이겠지. 이 캐릭터의 성격이 너무 호감이었다. 픽션이라서 가능한 일이겠지만 모든 일을 척척 잘 해내는 점도 참 부러운 지점이었다. 하지만 너무 만능이기도 하고 추리의 과정에 추측에 기반하는 것이라 추리의 과정이 오, 그럴듯하다는 느낌까지 들진 않는다. 말하자면 추리 과정을 견고히 쌓지는 않은 서사라는 것이다. 그저 주인공이 귀엽고, 호감이니 계속 보게 되는 매력이 있다. 그리고 꾸준히 새로운 캐릭터들의 매력이 보여서 그 점도 질리지 않고 보게 되는 매력이다.
궁궐의 절세미남이자 환관인 진시도 흥미로운 인물이다. 하지만 조금 억지스러운 설정도 있다고 생각한다. 스포가 될 테니 말은 안하겠지만 진시의 존재가 뭐랄까 현실적이지 못한 설정을 가진 캐릭터라고 생각한다. 아직 수면위로 올라오진 않았지만 진시의 출생의 비밀이 있는 것은 맞는 것 같은데, 그 과정이 너무 읭스러운 감이 있는 것 같다. 그래도 뭐, 흥미진진한 서사를 위해서라고 한다면 나쁜 선택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실 아직 완결이 난 작품은 아니라서 나의 글이 그저 '오, 이런 것도 있었어?'라며 누군가의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으면 그거면 됐다. 혹시라도 부담없이 볼만한 애니메이션이 취향이시라면 넷플릭스로 ㄱㄱ 해보기시를 바란다. 이상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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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준비없이 맞이하는 황혼의 순간
준비없이 맞이하는 황혼의 순간
영화 <브루클린의 멋진 주말> 리뷰
출처: 다음 영화
살아온 날이 살아갈 날보다 많다는 것을 체감하는 순간을 받아들이는 일은 누구에게나 처음이기에-또한 마지막이기도 하고- 그 어떤 사람도 능숙하거나 잘할 수는 없다. 다만 익숙해지려고 노력할 수 있을 뿐. 영화 <브루클린의 멋진 주말> 속 노부부 역시 피할 새 없이 다가온 이 첫 황혼의 순간을 무방비한 상태로 맞이하며 인생의 새로운 위기에 봉착한다.
뉴욕 브루클린, 이스트 빌리지 아파트에는 은퇴한 교사 루스(다이안 키튼 분)와 화가 알렉스(모건 프리먼 분)가 살고 있다. 계단을 오르내리기가 어려워진 알렉스를 위해 40년 동안 머물러 온 집을 팔기로 결심하는 루스. 부동산 중개인인 조카 릴리(신시아 닉슨)의 도움을 받아 집을 매물로 내놓지만 집 보러 온 사람을 맞이하고 가격을 결정하는 일들이 쉽지가 않다. 한편, 정든 집을 떠나고 싶어 하지 않은 알렉스는 집 안 곳곳에서 옛 추억을 떠올리고 젊은 시절의 두 사람을 떠올리며 아쉬움에 잠긴다. 결국 루스는 알렉스와 함께 직접 살 집을 찾아 나서지만 파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집 고르기. 집을 사는 것도 파는 것도 모두 어려운 루스와 알렉스는 과연 이 아파트를 무사히 떠날 수 있을까?
언뜻 보면 그저 두 노부부가 이사를 하며 겪는 좌충우돌 고군분투기처 같은 영화 <브루클린의 멋진 주말>은 모습을 통해 두 사람이 저희도 모르는 새 다가온 노년의 시기를 극복하며 인생의 새로운 막을 여는 과정을 보여준다. 루스와 알렉스를 힘들 게 하는 가장 큰 벽은 바로 본인들을 그저 ‘노인네’로 만드는 현실. 집 사고파는 일을 도와주는 릴리는 시종일관 두 사람을 세상 물정 모르는 늙은이 취급하며 사사건건 모든 일에 간섭하고 그들이 만나는 젊은 사람들은 무례하기 짝이 없다. 게다가 이 중요한 시기에 발생한 폭탄 테러 위협과 애완견 도로시의 입원까지. 우아하게 맞이할 줄 알았던 노년, 현실적이라기보다 다소 영화적인 이 모든 사건들은 두 사람의 삶을 의도적으로 혼란에 빠트려 두 사람을 시험한다.
출처: 다음 영화
그리고 이 지점에서 두 사람은 달리는 걸 멈추고 숨을 고른다. 그들이 돌아본 건 40년을 함께 한 과거. 살고 있는 집 곳곳에 스며든 두 사람의 그리운 기억들은 잊고 있던 그 시절 그 마음을 상기시켰다. <유스>(2015)에 등장하는 노년의 영화감독 믹 보일(하비 케이틀 분)은 이렇게 얘기한다. ”저 산을 봐봐. 젊었을 때는 이렇게 모든 게 가까워 보여. 미래니까. 반대로 이렇게 봐봐. 늙으면 모든 게 이렇게 멀게 보여. 과거니까.” 그렇다. 루스와 알렉스가 그 과거를 잊어버릴 뻔한 건 그 순간들이 단지 너무 멀리 보였기 때문이었다. 가까운 미래가 두 사람을 지치게 만들 때 두 사람은 눈을 돌렸고 멀리 있어 돌아보지 못했던 과거는 그 자리를 그대로 지키며 그들을 묵묵히 응원하고 있었다.
물론 객관적으로 현실을 마주하는 루스와 알렉스의 태도과 행동이 모두 옳다고 할 수만 없다. 젊은이들은 노인네를 기계치로 안다고 성질을 내는 알렉스는 결국 메일 한 통을 제대로 못 여는가 하면 현관에 들어오지 말아 달라는 다른 집주인의 부탁에도 두 사람은 막무가내로 들어간다.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큰 소리를 치는 일도 있고 사실 전처럼 몸이 아주 건강한 것도 아닌 게 사실이니 말이다. 그러나 그들을 마냥 비난할 수 없는 건 그들 역시 이 시기가 낯선 처음이기 때문이다. 노년의 지혜는 젊은 시절을 지나는 사람들에게 충고를 할 수 있게 해 주지만 그들 자신에게 노년에 대해 조언해 줄 이들은 사실 세상에 남아 있지 않다.
출처: 다음 영화
더불어 영화를 보는 관객들 모두 두 사람을 응원하게 된다. 리처드 론크레인 감독이 부드러운 브라운톤의 화면을 통해 두 사람이 앞으로 나아가는 그 모든 과정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낸 덕분이다. 프레임을 가득 채우는 브루클린 역시 내리쬐는 햇살 속에서 꼭 가고 싶은 사랑스러운 장소로 태어났다. 그리고 그 인간적이고 따스한 순간에 존재하는 루스와 알렉스. 차갑고 냉정하며 복잡함으로 무장한 무시무시한 세상과 상관없이 둘만의 세상에 살아가는 노부부의 시간들은 보는 이로 하여금 응원하게끔 만드는 마력을 지녔다.
과거가 현실의 상황을 기적처럼 바꾸진 못한다. 아무리 다정하게 두 사람을 바라봐도 우리가 직접 도울 수는 없다. 결국 매 순간순간 도전이 되는 인생의 황혼기를 받아들이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건 두 사람의 몫. 곁에서 손을 잡아주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기에 두 사람은 이 모든 시기를 견딜 수 있는 힘을 갖는다. <브루클린의 멋진 주말>의 원제는 <Ruth & Alex>. 사실 꼭 멋질 필요까지도 없다. 단 두 사람만으로도 세상을 살아갈 의지가 되니까 말이다.
지원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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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주복을 벗고 더 큰 우주로
안녕하세요~! 파노라마에서 첫번쨰로 작성하는 영화 리뷰 입니다~!
처음 리뷰할 영화는 원더입니다 줄거리부터 만나보실까요?
1. 원더 줄거리
‘원더’는 안면기형장애를 가지고 있는 어기와, 어기의 주변 인물들을 다룬 이야기이다. 5학년이 되자 어기의 부모님은 어기를 학교에 보내기로 한다. 어기는 홈스쿨링 대신 처음으로 학교에 가게 된다. 어기의 가족들은 어기의 외모에 대해서 어기가 상처를 받지 않도록 노력한다. 하지만 학교는 아니었다. 친구들은 정말 다양한 시각으로 어기를 바라보았으며, 그 상황에서 어기는 상처와 행복을 받는다.
2. 원더를 보고 나서 - 플립과 원더의 공통점과 차이점
줄거리는 원더의 주인공인 어기를 중심으로 요약하였지만, 원더에서는 어기의 상황만을 다루지 않는다. 나는 비슷하게 연출한‘플립’이라는 영화가 떠올라‘플립’과‘원더’를 비교하며 글을 작성해보았다.
첫번째. 영화 플립과 원더의 공통점은 바로 화자가 한명이 아니라는 것이다.
원더에서는 이름과 나레이션을 통해 화자의 전환을 보여준다. 플립도 마찬가지로 화자가 바뀔때마다 나레이션을 하는 인물이 바뀐다. 플립은 두 사람을 교차적으로, 원더는 여러명의 시선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나누어서 보여준다. 플립에서는 줄리와 브라이스의 갈등상황을 보여줄 때 하나의 상황을 두 사람의 시선으로 보여주는 연출을 사용하여 인물의 감정에 관객들이 따라갈 수 있도록 연출하였다. 원더는 처음에 어기로 시작해서, 어기 – 비아 – 미란다 – 잭 순서로 인물이 이야기의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전환된다. 플립은 둘의 상황에 모두 공감할 수 있었다면 원더는 조금 다르다고 생각했다. 원더의 인물변화는 플립처럼 갈등 상황에서 주인공이 아닌 타자의 시선으로 한번 더 보는 것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어기를 다른사람들보다 특별하게 보이지 않도록 하는데 있다고 생각한다. 어기는 학교에 간 첫날 친구들에게 외모로 놀림을 받았다. 슬퍼하는 어기에게 부모님은 위로를 해주며 어기의 상황이 마무리된다. 만약 어기가 가진 콤플렉스를 부각시키게 연출하고 싶었다면, 바로 다음 씬에서 어기가 부모님의 위로로 자신감을 얻게 되고 용기있게 자신의 콤플렉스를 드러나는 씬으로 구성했을 것이다. 하지만 원더는 그렇지 않다. 부모님이 어기에게 위로를 해주는 모습 뒤로 카메라는 누나인 비아에게 초점을 맞춘다. 어기와 같이 학교 첫날이었던 비아도 힘든 하루를 보낸 것을 보여준다. 왜냐하면 비아의 하나뿐인 친구인 미란다는 갑자기 비아를 무시했기 때문이다. 어기와 비아의 씬 연결을 통해 영화가 보여주는 것은 어기를 마냥 측은지심의 시선으로 보지 말라는 신호라고 생각한다. 모든 사람들에게 힘든 부분은 하나씩 있다. 물론 영화 안에서 어기가 비아에게 외모로 놀림받은 적이 있냐고 질문한 뒤 비아가 아니라고 대답하는 장면이 있지만, 서로 힘들었던 부분이 달랐을 뿐이다. 또, 원더는 플립처럼 같은 상황을 두 번 보여주지 않는다. 분명히 갈등 상황이 있음에도 갈등 상황을 부각시키는 것이 아닌 인물의 마음을 나레이션을 통해 그대로 보여준다. 잭이 왜 다른 친구들에게 어기를 뒷담화 했는지의 사정은 보여주지 않는다. 하지만 잭이 얼마나 어기를 소중히 여기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잭의 시선으로 어기에게 사과를 구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잭의 마음을 관객들에게 전달한다.
두 번째. 영화의 주제를 전달하는 어른이 있다는 것이다.
플립에서는 브라이스의 할아버지를 통해 이야기의 주제를 전달한다. 그리고 원더에서는 부모님, 학교 선생님들과 교장선생님인 터쉬만을 통해 이야기의 주제를 전달한다. 할아버지와 터쉬만의 공통점은 인물들의 편견에 대해 일침을 가하는 것이다. 플립에서는 줄리에 대해 브라이스가 가지고 있던 편견에 대해서 얘기를 해준다. 마찬가지로 원더는 어기를 괴롭히던 친구의 부모님이 가지고 있던 편견에 대해서 얘기한다.
플립과 원더는 화자를 여러명으로 설정하여 인물의 마음을 각각의 시선에서 공감할 수 있도록 했다. 원더의 경우 화자가 여러명이 아니었다면, 보통의 영화처럼 어기를 기준으로 악과 선으로 나누어 그려졌을 것이다. 하지만 어기도 다른 사람들과 똑같고, 놀립받거나 과도하게 배려받을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영화는 인물을 어기를 위해서만 존재하는 인물로 만들지 않는다.
원더 명대사
- 그 사람이 누군지 알고싶을 때는 그냥 바라보면 된다 - 어기 풀먼
- You really are a wonder. - 이자벨
- 위대한 사람은 센 사람이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 싸울 용기를 불어 넣는 사람이다 - 터쉬만
-> 원더 포스터
파노라마_이가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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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즈니의 변화는 실패했다
자녀의 입장에서 부모는 보수적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부모는 자녀가 안전하고 좋은 길로만 가길 원한다. 하지만 우리가 자라면서 교육을 받고 직업을 가지게 되는 그 이후에도 완벽하게 안전한 길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의 입장에서 가장 최선은 그 많은 길 중에서 가장 안전한 길이다. 이미 자신이 걸어왔던 길, 그게 아니라면 주변에서 누군가가 이미 지나갔던 안전한 길로 자녀가 가길 원한다. 그 길을 그대로 따라간다면 큰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방향으로는 가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그게 좀 더 편하고 풍족하게 살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인 부모의 마음이다.
하지만 자녀의 입장에서 그 길은 이미 남들이 가봤던 길이다. 전혀 새롭지 않고 오히려 퇴보하는 듯한 느낌을 줄 수도 있다. 그래서 많은 자녀들이 새로운 길을 궁금해한다. 그저 호기심에서 머물 수도 있지만 일부는 그 호기심의 벽을 뚫고 새로운 경험을 하러 뛰쳐나간다. 부모의 생각대로 거기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하지만 최대한 조심하면서 나아가는 자녀는 그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새롭고 창의적인 느낌을 받게 된다. 그건 부모가 생각하지 못했던 발전이자 진보다.
보수적인 부모와 진보적인 자녀의 갈등을 다룬 영화
영화 <인어공주>는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려고 하는 자녀와 부모의 대립이 전면에서 다뤄진다. 물론 이 영화의 이야기 중심 주제는 젊은 두 남녀의 사랑이다. 하지만 그 사랑을 위해서 넘어야 할 관문은 남녀 모두에게 부모다. 부모는 이 둘의 관계를 반대하며 더 나아가 각자가 살고 있는 새로운 사회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서로를 위험한 존재로 보며 교류를 차단하려 애쓴다. 그런 상황에 놓은 두 남녀에게는 더 상대방에게 다가가려는 힘이 커질 수밖에 없다. 그 힘은 일종의 반항심으로 부모에게 반기를 들게 한다.
영화의 중심인물은 에리얼(할리 베일리)이다. 인어인 그녀는 인간 사회와 인간이 쓰는 물건에 굉장히 관심이 많다. 아버지 트리톤 왕(하비에르 바르뎀)의 눈을 피해 인간이 쓰는 물건을 모으고 배 위 인간들의 모습을 훔쳐본다. 인간에 의해 아내를 잃은 트리톤 왕의 입장에서 인간들은 위험한 종족이고 교류가 불가능한 종족이다. 그래서 그는 막내딸은 에리얼이 물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한다. 에리얼의 자유를 속박하면서 그녀를 보호하려 하는 것이다. 이 속박은 에리얼의 반항심과 자유에 대한 갈망을 크게 만든다.
에리얼이 사랑에 빠지는 에릭 왕자(조너 하우어 킹) 역시 보수적인 어머니 밑에서 생활하고 있다. 어린 시절 입양된 그는, 안전한 길로 가길 원하는 어머니의 말을 답답해한다. 어느 날 배가 폭풍우에 침몰하게 되고, 에리얼이 그를 구하면서 그는 바다에서 자신을 구해준 존재를 찾아다닌다. 자신이 가진 모든 힘을 이용해 은인을 구해 다니는 그는 어머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 길을 포기하지 않는다.
애니메이션 <인어공주>의 실사영화
1989년에 개봉했던 애니메이션 <인어공주>를 실사 버전으로 리메이크한 영화 <인어공주>는 보수적인 부모의 보호를 벗어나 독립적인 선택을 하는 에리얼과 에릭 왕자의 사랑이야기를 원작과 거의 동일하게 담았다. 과거 우리가 알고 있는 <인어공주>의 이야기를 그대로 담으면서 몇 가지 변주를 줬다. 에리얼을 백인에서 흑인으로 바꾼 것이 가장 큰 변화이고, 음악의 색깔도 좀 더 R&B 의 느낌을 넣어 변주했다. 이야기 자체를 변주하진 않았기 때문에 큰 줄기는 익숙한 느낌을 주고, 작은 변주로 새로운 느낌을 주려 노력했다는 생각이 든다.
문제는 이 변주가 그렇게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주인공 에리얼을 흑인으로 변경한 것은 큰 변화다. 최근 디즈니 작품들의 방향은 좀 더 다양한 인종을 등장시키는 것이다. 정치적 올바름주의(PC주의:Political Correctness)를 여러 작품에 적용하면서 마블 시리즈의 주인공들을 유색인종으로 바꾸고, 애니메이션을 실사화한 작품들에도 인물들의 인종과 역할을 조금씩 바꾸고 있다. 이런 디즈니의 행보는 변화가 적용된 영화들이 훌륭하고 재미있다면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지만 현재까지의 상황은 그렇게 녹록하지 않다.
마블에서 최근 개봉했던 영화들 중 <샹치>, <블랜팬서: 와칸다 포에버>,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는 모두 주인공이 유색인종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흥행성적이나 관객들의 평가가 과거의 마블 시리즈들에 비해서 그렇게 좋지 않다. 무엇보다 바뀐 캐릭터에 대한 호감을 만들어내지 못한 것이 꽤 크게 다가온다. 팬들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디즈니의 대표 작품인 <인어공주>를 실사화하는 프로젝트는 큰 관심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실패한 변화
<인어공주>의 주인공 에리얼을 흑인으로 바꾼 선택은 제작 단계부터 무수한 논쟁을 만들었다. 무엇보다 어린 시절에 기억하고 있는 애니메이션 속 에리얼의 이미지와 다르다는 것은 큰 반발을 불러왔다. 디즈니는 마치 에리얼이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다른 세상으로 나가는 것처럼 자신의 뜻을 그대로 밀어붙여 작품을 완성했다. 뮤지컬 장르의 영화를 성공적으로 만들어 본 경험이 있는 롭 마샬 감독을 고용해 완성도를 높이려 애썼다.
에리얼 역을 맡은 할리 베일리는 가수 출신으로 영화에 등장하는 주요 노래들을 훌륭하게 소화해 낸다. 하지만 문제는 에리얼이라는 배역과 할리 베일리의 이미지가 좀처럼 잘 어우러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흑인이라는 인종의 문제를 떠나서 좀 더 부드러운 이미지를 가진 원작의 에리얼에 비해 할리 베일리가 맡은 에리얼의 이미지는 좀 더 강인하다. 할리 베일리의 머리스타일인 드레드록스(레게 머리)도 기존의 인어공주 이미지와 상반되는 인상을 준다. 이런 요소들은 영화를 보는 관객들의 몰입을 적지 않게 방해한다. 극이 진행될수록 에릭 왕자와의 감정 교류와 갈등에 마음이 움직이지 않게 만든다.
대표적인 영화의 사운드트랙 중 '언더더씨'가 흥겹게 흘러나오고 다른 노래들도 들려오지만 캐릭터들에 완전히 공감하지 못한 탓에 보는 관객들에게 인상적으로 다가오지 못한다. 이건 각본의 탓도 크다. 과거 애니메이션 원작의 이야기를 그대로 끌고 왔지만, 그 당시에는 진보적으로 보였던 캐릭터들이 지금은 너무 익숙하고 진부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사랑 때문에 기존의 틀을 벗어나 반항하는 이야기는 지금 시대에 더 이상 새롭지 않다. 너무 충실하게 과거의 이야기를 그대로 따라가면서 안정을 추구했지만, 그래서 이 영화가 새롭다는 느낌을 전혀 주지 못한다.
이 영화의 다른 단점으로는 어두운 화면을 들 수 있다. 물속에서의 모습도 마찬가지고 지상에서 벌어지는 장면들도 너무 어둡게 느껴진다. 좀 더 자연스럽게 보이기 위한 선택이었겠지만 어색한 CG와 어두운 화면이 섞이면서 영화의 질감을 떨어뜨린다. 무엇보다 이런 어두운 화면은 밝은 영화의 분위기를 낮춰 영화의 전반적인 완성도를 떨어뜨린다. 영화 말미 인어족들이 에리얼의 뒤에서 갑작스럽게 등장하는 장면은 분장한 사람이 등장한다는 생각이 들어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영화에서 가장 돋보이는 캐릭터는 에리얼의 고모인 울슐라(멜리사 맥카시)다. 원작과 비슷한 이미지로 등장해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캐릭터를 훌륭한 가창력을 뽐낸다. 비록 악역이지만 영화에서 가장 역동적인 캐릭터다.
영화 <인어공주>는 아이들이 보기에 다소 긴 러닝타임(135분)을 가지고 있다. 또한 어두운 화면과 조금 무섭게 등장하는 울슐라 캐릭터 덕분에 아이와 부모가 함께 보기에도 적절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야기와 캐릭터, 러닝타임 등 영화가 가진 장점에 비해 단점이 더 도드라져 보이는 영화 <인어공주>는 여러모로 아쉽게 느껴지는 실사영화다. 이 영화의 흥행 성적에 따라 향후 디즈니가 실사화하는 여러 영화들에 변화가 있을지 궁금해진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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