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이정2025-05-25 15:41:02
댕겨진 불씨는 반드시 타오른다
영화 <신성한 나무의 씨앗> 리뷰
DIRECTOR. 모함마드 라술로프
CAST. 마흐사 로스타미, 세타레 말레키, 소헤일라 고레스타니, 미삭 자레
SYNOPSIS. 꿈에 그리던 수사판사 승진을 하게 된 ‘이만’, 때마침 테헤란에서는 대규모 히잡 반대 시위가 일어나고 ‘이만’은 가족의 안전을 위해 총을 지급받는다. 그러나 딸들과 논쟁을 벌인 어느 날, 총이 집에서 감쪽같이 사라지고 가족의 믿음에는 균열이 생긴다. 지금 반드시 목격해야 할, 올해 가장 용감한 걸작.
POINT.
✔️ 2022년 히잡 시위를 둘러싸고, 이란의 국가폭력을 비판하는 영화입니다. 감독과 두 딸 역할의 배우는 이 영화 이후로 망명했고, 함께 나오지 못한 엄마/아빠 역할의 두 배우 사진을 높이 올려든 채 레드카펫에 섰습니다. 어머니 역할을 맡은 배우 소헤일라 고레스타니는 2022년 당시 시위에 연대하여 수감되었고, 현재 자택 연금 상태라고 합니다. (해당 내용을 비롯, 영화 외부적 이야기는 배급사 그린나래미디어 SNS에서 참고했습니다.)
✔️ 의미 있는 영화인 동시에, 재미있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2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인데 전혀 길다고 느껴지지 않았어요. 집안에서 없어진 총을 둘러싼 가족 간의 이야기가 아주 잘 짜여 있는 구조라서, 다음을 궁금해하면서 끝까지 따라가게 만드는 흡입력 있는 영화입니다.
✔️ 영화는 6월 3일 개봉합니다.

체호프의 총이라는 개념이 있다. 1장에서 총이 등장한다면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그 총이 반드시 쏘아져야 하며, 쏘지 않을 총이라면 이야기에 등장시켜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물론 이를 역이용해 신경 쓰이는 위치에 놓여 있던 아이템이 별 의미 없는 맥거핀으로 판명되는 경우도 있지만, 집안에서 총이 사라진 이 영화에서 총은 맥거핀일 리 없어 보였다. 총을 쏘지 않는다 해도 최소한 관객은 총의 행방에 대해 좀 더 알게 되겠지.
이 영화에서 총이 맥거핀일 리 없다는 생각을 한 이유는 하나 더 있다. 맥거핀으로 장난을 치기엔 이 영화가 너무 절박한 메시지를 직설적으로 담고 있었다. 모함마드 라술로프 감독은 체제 비판 영화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감시와 탄압을 받는 상황에서 이 영화를 만들었다. 감옥이냐 망명이냐, 다소 극단적인 두 가지 선택지만 남아있던 상황에서 감독은 망명을 택한다. 칸영화제는 <신성한 나무의 씨앗>에 '심사위원 특별상'이라는, 기존에 없던 상을 만들어 수여했다. 한 해가 지난 올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은 다른 이란 감독인 자파르 파나히 감독에게 돌아갔다. 심사평에는 "저항과 생존"이라는 단어가 새겨져 있어, <신성한 나무의 씨앗>도 함께 떠오른다. 무함마드 라술로프 감독은 "수년간 이어진 노력, 인내, 그리고 저항 끝에 이슬람 공화국 체제 아래에서 썩고 텅 빈 검열의 체계는 마침내 밀려나기 시작"했다며 '검열을 거부하는 영화'들이 "보다 단단한 기반 위에 올라섰"다는 내용이 담긴 축사를 보냈다. 히잡에 대한 검열은 2022년 이전의 이란으로 돌아갈 수 없고, 영화에 대한 검열 또한 2025년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1. 이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요?
이 영화의 배경이 된 사건은 2022년 마흐사 아미니라는 이름의 여대생이 히잡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았다고 '도덕 경찰'에게 끌려가 구금 끝에 의문사한 사건, 그리고 거기서 촉발된 대규모 히잡 시위다. 수많은 사람들이 "여성, 삶, 자유"라는 구호를 외치며 거리로 나왔다. 수만 명이 구금되었고 사망자도 (사망 사유와 숫자는 제각각 다르게 밝히고 있지만) 수백 명에 달한다. 의문사에서 시작된 시위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공개 처형까지 불사하면서, 이란은 '신정일치' 즉 종교와 정치를 접붙인 시스템을 공고히 하려 애썼다.
이 '신정일치'의 나라는 1979년 혁명으로 들어섰다. 이란의 마지막 왕조였던 팔레비 왕조를 무너뜨린 시위였는데, 당시 왕조의 급격한 서구화 정책과 경제적 어려움이 맞물리면서 군주제에 누적된 불만이 폭발한 사건이었다. 비밀경찰이 돌아다니고 반대파가 '정치범'으로 탄압받는 사회를 끝내고자 자유와 민주주의를 부르짖은 시민들이 예상하지 못한 것은, 당시 혼란과 의견 차이의 우여곡절 끝에 설립된 국가가 이슬람 교리와 정치를 내세우면서 도덕 경찰이 돌아다니고 정치적 탄압이 강화되었다는 점이다.
그 과정에서 여성 인권은 그야말로 추락했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남성과 동등한 투표권을 누렸고 이란혁명에서도 굵직한 역할을 여성들이 해냈는데, 혁명 끝에 여성들에게 남은 것은 히잡을 뒤집어쓰고 다니라는 강요, 히잡을 쓰지 않고 운전하다가 벌금을 물거나 차량을 압수당할 수도 있다는 현실이다. 시위 이후 수많은 여성들이 히잡을 벗어던지는 시민 불복종을 이어가고 있지만, 이란 정부는 여전히 강경하다. 히잡은 여전히 법령으로 강제되고 있고, 공개 처형과 구금은 셀 수 없으며, 심지어 카타르 월드컵에서 국가를 부르지 않던 남자 축구 선수들에게까지, 선발 제외 소문부터 사형 선고까지 다양한 탄압이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짓밟아도, 외치고 버티고 항의하는 목소리는 죽지 않는다. 끝내 살아남아 우리에게 도달한다. 검열과 탄압이 아무리 이어져도 이 목소리는 제 갈 길을 간다. "1명을 죽이면 1,000명이 일어난다!" 하고 분연히 일어났던 이란의 여자들처럼. 검열 시스템은 "공포와 위협으로 마치 모든 걸 감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일종의 섬광탄 같은 효과"일 뿐 "실질적으로 모든 걸 볼 수는 없다"는 무함마드 모술라프 감독의 말처럼.

#2. 우회하여도 반드시 길은 이어진다
이 영화에서 두드러지게 눈에 띄는 것은 세대와 성별에 따라 다른 미디어를 활용하고 있는 점이다. 불안한 시위의 소식 앞에서 엄마는 텔레비전을 켜 보지만, 텔레비전은 엄마에게 아주 간단하고 정제된 뉴스 이상의 정보를 주지 못한다. 마치 세상에 아무 일도 없다는 듯한 드라마까지 보고 나면 텔레비전을 끄는 것밖에 도리가 없다. 체제의 수호자인 동시에 체제의 피해자인 기성세대 여성은 가장 혼란스러운 자리에 놓여 있다.
딸들은 SNS로 다양한 소식을 접한다. 온라인에 게재된 영상은 끝도 없이 이어지고, 자매는 방 한구석에 앉아서도 거리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안다. 마치 히잡이나 부르카처럼, 두껍고 검은 커튼으로 자신을 가린 채 창 밖을 내다보는 것조차 조심스러운 '자체 검열'의 집안에서도, 자매는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인다. 그뿐 아니라 통제 안에서 우회하는 법을 이미 알고 있다. 빨간 하트로 이름을 저장해 두면 남자친구인 걸 들킬 테니까 하얀 하트를 쓴다든지. 이들에게 미디어는 양방향이고, '모바일'하다.
반면 아버지는 그 어떤 미디어도 접하고 있지 않다. 그에게 그나마 미디어라고 부를 법한 것은 직장 동료와의 대화가 전부이며, 그 또한 세상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에 대한 대화는 아니다. 그의 공간은 눈도 귀도 막혀 있다. 복도 가득 '굳은 믿음'을 보여주는 손동작을 한 이들은 사람이 아니라 등신대이며, 눈을 가리고 손을 묶인 채 고요하게 끌려 다니는 이들의 존재만이 이 공간에서 유일하게 생명을 갖고 움직이는 이들이다. 죽은 공간에서 이들은 자신의 폭력이 자승자박의 미련 일로를 걷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다. 심지어 총이 사라진 후로 "내 집인데도 안심이 안된다"며 불안과 혼란을 체험하고도, 그는 모든 것을 의심하는 와중에 자신의 혐오와 억측만큼은 확신을 갖고 밀어붙인다.

이 미련의 핵심에는 언어의 혼탁이 있다. "여성의 명예를 보호"하기 위해 히잡을 써야 한다고 하는 이들의 언어 논리 그대로다. "가족의 믿음을 회복"하고 "가족들을 지키기" 위해 아버지가 가족에게 가하는 행동은 이 나라의 여성들이 겪는 일상의 폭력을 여실히 느끼게 한다. 보호라는 귀한 단어가, 명예라는 아름다운 단어가, 이토록 해악밖에 남지 않은 방향으로 혼탁해지고 무너졌다. 이렇게 깨지고 더럽혀진 언어로 짜인 지배구조는 시스템 안의 모든 사람을 옭아매는 폭력밖에 되지 못한다.

#3. 반쪽은 피와 어둠 아래 있어도, 나머지 반쪽은 빛 아래 있기에
이 영화에서 인상 깊은 것은 단연 여성들의 얼굴이다. 과연 셋 중에 누가 총을 가져갔을까 궁금해지는, 어머니와 두 딸뿐 아니라 잠깐 등장하는 큰딸의 친구까지 이들 모두 폭력적인 구조의 피해자라는 사실을 (솔직히 영화 보기 전부터) 관객이 여실히 느낄 수 있다.
영화에서 이들의 얼굴은 이따금 절반씩 나뉘어 다른 빛 아래 놓인다. 친구의 다친 얼굴은 처참한 피범벅이 되어 있는데, 코를 기점으로 반대쪽에서 보면 그 상처를 눈치채지 못할 만큼 말끔하다. 그 얼굴을 영화는 햇빛 아래 공들여 오래 보여준다. 마치 보라는 듯이. 현실의 참혹한 이 상처를, 보라는 듯이. 이 느낌은 이후 캠코더 앞에 선 큰딸과 엄마의 얼굴에서 재현된다. 캠코더 화면 안에서 이들의 얼굴 절반은 어둠 속에 가려져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나머지 반쪽 얼굴은 빛을 받아 새하얗게 드러난다.

이는 살뜰한 시중 손길을 받던 아버지의 얼굴과 매우 대조적인데, 그의 얼굴은 아내의 세심한 손길을 받지만, 물로 씻고 머리를 빗어 넘기고 잔털 관리까지 꼼꼼하게 이루어지지만, 역실 불빛 아래 클로즈업된 그의 얼굴은 분명 밝은 빛 아래 있음에도 살아있는 신체보다는, 마치 명화 속에 이미 베어버린 목처럼 보인다. 이는 어둠과 피에 절반이 묻히고, 눈물 혹은 불안을 감추지 못한 채로도 생명력이 하얗게 빛나던 여자들의 얼굴과 대조적이다.
어쩌면 이 얼굴이 이란이라는 나라의, 그리고 기본권 수준의 자유와 권리를 억압하는 모든 국가 폭력과 싸우는 나라들의 얼굴이 아닐까 생각한다. 베어버린 목처럼 보이는 얼굴들이 지배구조를 짠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서 어둠과 피에 짓밟혀도 빛 아래 생명력이 형형한 얼굴들이 일어나고 있다. 권위적인 반지를 낀 손은 그 빛나는 얼굴들을 결코 파괴할 수 없다.

체호프의 총이 반드시 쏘아져야 하듯이, 불씨가 댕겨진 혁명은 반드시 타올라야 한다. 이란의 여자들도 영화들도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그 주요한 분기점을 함께 숨 쉬고 있는 이 순간, 이 '신성한 나무의 씨앗'이 어떻게 피어나 무엇을 뒤덮고 자라나는지 지켜보기로 한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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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더> - ‘아주 평범한 기적이 깃든 우주’
원더 (Wonder)
개봉일 : 2017.12.27
감독 : 스티븐 크보스키
출연 : 제이콥 트렘블레이, 줄리아 로버츠, 오웬 윌슨, 이자벨라 비도빅, 노아 주프, 브라이스 게이사르
‘아주 평범한 기적이 깃든 우주’
“나는 평범한 아이가 될 수 없을 거다.” 이제 5학년이 되는 작은 덩치의 남자아이 ‘어기’가 말한다. 어기에 대해 말해주자면 이런저런 할 말이 많다. 남들과 조금 다르게 태어나 첫 숨을 내뱉고, 건강히 자라기 위해 27번의 수술을 거친 아이. 다른 이의 시선이 불편해 집안에서 쉽게 나가지 못하는 아이. 커다란 우주 헬멧을 쓰고 우주비행사가 되는 걸 꿈꾸는 아이. 누구보다 총명하지만 자만하지 않는 아이. 하지만 아직 많은 이가 알아주지 못한, 숨어서 빛나고 있는 아이. <원더>를 보면서 내내 마음속으로 외쳤다. “사랑스러운 우리 어기. 사랑스러운 아이들. 너무 예쁘다.” 어기를 포함해 등장하는 여러 아이들의 모습 또한 정말 사랑스러워서 중간중간 절로 웃음이 났다.
태어나자마자 갖게 된 상처들은 어기의 얼굴에 흔적을 남겼고, 어기는 그 흔적들을 가리고 싶어 한다. ‘나 자신이 부끄러워서’라기보단, 남들의 시선이 부끄러워서. 가족들은 밖으로 나가길 꺼리는 어기를 위해 많은 걸 배려한다. 엄마 이자벨은 석사학위를 잠시 내려놓고 어기를 위해 홈스쿨링을 했으며 누나인 비아는 어릴 적부터 어기를 챙기며 엄마 아빠를 걱정시키지 않는 딸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어기의 가족들은 태양처럼 빛나는 어기를 중심으로 도는 하나의 우주다.
평범한 아이가 될 수 없을 거라는 생각, 나의 단점으로 비칠 수 있는 시간의 흔적을 가려야 한다는 부담감, 남들의 시선 앞에서 선뜻 용기를 낼 수 없었던 상황을 마주하고, 그것에 좌절해본 적이 한 번쯤은 있지 않은가? 나는 평범하지도, 특별하지도 않은 그 무엇도 아니라는 우울한 마음이 들 때 <원더>를 추천한다. 당신이 굉장한 우주를 갖고 있지 않아도 괜찮다. 지금도 충분히 박수받을 자격이 있다.
각자의 고민과 아픔 앞에서 좌절하고 무릎 꿇는것이 아닌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 끝없이 날갯짓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참으로 예뻤다. 그리고 아이들의 힘의 원천인 가족애와 우정이 눈부시게 빛나는 영화였다.
원더 시놉시스
누구보다 위트 있고 호기심 많은 매력 부자 ‘어기'. 하지만 남들과 다른 외모로 태어난 ‘어기'는 모두가 좋아하는 크리스마스 대신 얼굴을 감출 수 있는 할로윈을 더 좋아한다. 10살이 된 아들에게 더 큰 세상을 보여주고 싶었던 엄마 ‘이사벨’과 아빠 ‘네이트’는 ‘어기'를 학교에 보낼 준비를 하고, 동생에게 모든 것을 양보해왔지만 누구보다 그를 사랑하는 누나 ‘비아'도 ‘어기'의 첫걸음을 응원해준다.
그렇게 가족이 세상의 전부였던 ‘어기'는 처음으로 헬멧을 벗고 낯선 세상에 용감하게 첫발을 내딛지만 첫날부터 ‘남다른 외모'로 화제의 주인공이 되고, 사람들의 시선에 큰 상처를 받는다. 그러나 ‘어기'는 27번의 성형(?)수술을 견뎌낸 긍정적인 성격으로 다시 한번 용기를 내고, 주변 사람들도 하나둘 변하기 시작하는데...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이륙 준비 완료”
5학년이 될 때까지 또래 친구를 사귀거나 학교를 다녀본 적 없는 어기를 위해 엄마 이자벨과 아빠 네이트는 큰마음을 먹고 어기를 학교에 보내기로 결심한다. 집안에서 아빠와 광선검으로 칼싸움을 하고, 엄마와 함께 공부를 하고, 자신만의 우주인 작은 방 안에서 뛰놀기만 했던 어기에게 또래 친구들이 가득한 학교에 간다는 건 또 다른 행성에 착륙하는 일이나 마찬가지였다. 어릴 적부터 자신의 외모가 눈에 띈다는 걸 인지하고 있던 어기에게 다양한 눈빛으로 쳐다볼 불특정 다수 사이로 들어간다는 건 두렵고, 겁나는 일이었다.
어기는 얼굴에 난 상처들을 가리고 싶을 때, 혼자 있거나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을 때 헬멧을 쓴다. 또래보다 조금 왜소한 어기의 어깨를 꽉 채운 채 얹혀있는 헬멧은 어기를 잠시나마 우주로 보내준다. 어기는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우주에서 자유를 만끽한다. 하지만 이젠 얼굴을 가리고 있던 헬멧을 내려놓고 우주가 아닌 지구로 돌아올 시간이 되었다.
이미 서로 아는 아이들, 끼리끼리 모여 자연스레 어울리고 있는 아이들 사이에 쭈뼛쭈뼛 등장한 어기에게 아이들은 여러 의미를 담은 시선을 보낸다. 어기는 자신을 지구에 내려온 츄바카 같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얼굴에 흔적이 있어.”
신발을 물려신는 집안의 아들 잭, 잘 사는 집안의 아들 줄리안, 이상한 애 샬롯. 어기는 처음 본 친구들의 눈빛과 신발을 보며 그들에 대해 추측해본다. 어기가 여느 아이들에 비해 눈치와 상황 판단이 빠른 건 어기가 총명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만큼 많은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자랐다는 반증 같아서 마음 한편이 아렸다. 첫 등교 날 줄리안과 몇몇 친구들에 의해 마음의 상처를 받은 어기는 소중히 길러온 머리를 자르고 헬멧을 쓴다. 하루를 마무리하는 저녁식사 자리에서 평소답지 않게 말없이 헬멧을 벗지 않는 어기를 걱정하던 이자벨은 어기의 옆에 앉아 다정하게 말을 건넨다.
“누구나 얼굴에 흔적이 있어. 얼굴은 우리가 갈 길을 보여주는 지도이자 우리가 지나온 길을 보여주는 지도야.”
어기의 얼굴에 생긴 흔적들은 흉한 흉터가 아닌 수많은 위기와 아픔을 견뎌낸 어기의 용기와 인내심, 그리고 가족들의 사랑이 담긴 지도다. 이 지도는 어기가 기적과도 같은 아이임을 말해주는 가장 큰 증거이자, 앞으로 어기가 걸어갈 수많은 길을 안내한다. 어기는 가족들과 친구들의 사랑을 통해 우주가 아닌 지구로 돌아가는 길을 무사히 찾게 된다.
“한 번만 그 눈으로 날 봐주길 바랄 뿐이다.”
어기가 엄마 아빠의 사랑을 잔뜩 받으며 침대에서 잠들 때, 어기의 누나 비아는 다정한 세 사람을 바라보다가 홀로 방으로 들어간다. 동생을 갖고 싶다는 소원을 빈 끝에 얻은 소중한 동생 어기는 어릴 때부터 자주 아파 매일같이 엄마 아빠를 걱정시켰다. 비아는 엄마 아빠만큼 동생을 사랑하기에 엄마 아빠가 아픈 동생을 더 신경쓰는 걸 당연하게 받아들여왔다. 이 집의 주인공이 동생이어도 괜찮았고, 엄마 아빠의 문제를 하나 더 늘리지 않도록 노력해 야했다. 아무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강요한 적은 없지만 비아는 첫재로서, 아픈 동생의 누나로서 책임감을 갖고 부정적인 말 한번 하지 않고 묵묵히 어기를 챙긴다.
어기가 처음으로 학교에 간 날, 비아도 새로운 학기를 맞이한다. 하지만 새 학기 첫날이 이렇게 엉망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엄마 아빠에게 하지 못했던 말들도 털어놓을 수 있었던 절친 미란다가 자신을 모르는척하기 시작했고, 드넓은 우주에 홀로 남겨진 기분이 든다. 터덜터덜 걸어가던 비아에게 친절한 말씨를 뽐내는 저스틴이 다가오고, 비아는 새로운 친구 앞에서 공통점을 어필하기 위해 얼떨결에 외동이라는 거짓말을 한다.
항상 어른스럽게, 괜찮은 척 지내왔지만 어기의 누나이기 전에 비아도 이자벨과 네이트의 어린 딸이다. 비아도 어리광 부리고 싶을 때가 있었을 것이고, 엄마 아빠의 우주에 중심에 있고 싶었을것이다. 비아는 아픈 동생을 위해 어기의 누나 역할을 집어 들고, 어린 딸의 역할을 내려놓는다. 그리고 어기라는 우주를 따라 돌거나 그 뒤로 숨는 위성이 되어 살아간다.
저스틴은 비아의 말에 진심으로 집중해 주는 친구다. 저스틴은 자기 얘기하기에 바쁜 연극부 아이들과는 달리 남들의 이야기를 듣고 무대 앞이 아닌 무대 뒤가 좋다고 말하는 비아를 신기해하며 만일 비아가 무대에 오른다면 혼자라도 박수를 쳐주겠다고 약속한다. 비아는 저스틴의 말에 용기를 내 무대 위에 오르기 위해 오디션을 치르고, 미란다의 양보 덕분에 주인공으로서 무대에 서게 된다. 엄마, 아빠, 동생이 지켜보는 가운데 첫 무대를 마친 비아는 벅찬 표정으로 가족의 품에 안긴다.
“넌 너무 신비로워서 아무도 못 알아보는 거야.”
비아가 연기했던 주인공의 마지막 대사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충분히 아름답고 대견한 자신에게, 그리고 비아의 연극과 이 영화를 보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비아가 전하는 마음처럼 느껴진 대사였다. 만일 남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자신을 가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당장 그 생각을 저 멀리 우주로 날려버리길 바란다. 당신이 너무 빛나고, 신비롭기에 남들이 당신의 진정한 가치를 알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뿐이니까 절대 실망하지 말라고, 낙담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진정한 친구가 되는 건 어려운 일이다.
어기는 5학년의 나이가 되어서야 처음으로 학교에 간다. 그전까지는 또래 친구들을 한 번도 사귀어본 적 없었기에 어기에게 친구는 비아와 강아지 데이지가 전부였다. 잭을 만나며 드디어 나에게도 친구가 생기나-싶었지만, 줄리안과 함께 뒷얘기를 하고 있는 잭을 보고 어기는 크게 실망한다. 우주복을 입고 달 위를 뛰어다니는듯했던 기분이 순식간에 가라앉고, 어기는 다시 헬멧 속에 숨어버린다.
잭은 뒤늦게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계속해서 어기를 놀리는 줄리안과 한판 싸움을 한다. 잭도 처음엔 그저 선생님, 엄마의 부탁으로 인해 어기와 함께 어울렸지만, 어기의 친절함과 재치 넘치는 모습에 반해 진심으로 어기와 친구가 되고 싶어 한다. 잭은 선생님에게 사과 편지를 쓰고 근신 처분을 받지만, 다시 용기를 내 어기에게 다가간다.
“옳음과 친절함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땐 친절함을 선택해라.”
초등학교 고학년쯤부터 많은 아이들이 사춘기를 겪는다. 그 시기를 지나고 있는 아이들은 가족보다는 친구들과의 소속감을 중요시하게 된다. 나와 다른 것이 있다면 틀린 것이고, 친구가 맞다고 하면 쉽게 휩쓸리기도 하는 것이 그때의 아이들이다. 소위 잘 사는 집안의 아들이자 선생님들의 총애를 받고 있는 줄리안은 친구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많은 아이다. 쉽게 말하자면 이 교실의 실세랄까. 아이들은 낯선 모습의 어기를 쉽게 받아주지 않았고, 어기를 괴롭히는 줄리안의 행동을 저지하지 못한다. 교실이라는 작은 세계에서 줄리안처럼 어기를 받아들이지 않는 건 ‘옳은 일’축에 끼는 분위기였으니까.
브라운 선생님은 매주 아이들에게 새로운 격언을 가르친다. 가장 먼저 가르친 격언은 “옳음과 친절함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땐 친절함을 선택해라.”였다. 시간이 좀 걸리긴 했지만 아이들은 선생님이 알려준 격언을 따라 행동한다. 잭과 썸머는 다수의 시선이 만든 ‘옳은 배척’이 아닌 친절함을 베풀었고, 나는 그 아이들의 용기가 정말 대단한 것이라 칭찬하고 싶다.
“이겼니?”
수학여행에서 싸움을 했다는 어기의 말에 걱정하던 네이트가 뒤이어 묻는다. 그 싸움에서 이겼느냐고. 네이트는 어기의 첫 등교 날, 아는 것이 있어도 한 번만 손을 들고 과학시간엔 모두 밟아버리라고 말하며 어기에게 힘을 실어준다. 어기는 아빠의 말대로 과학시간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수업을 들으며 즐거움을 찾는다.
어기가 처음 학교를 구경하던 날, 줄리안은 어기를 한껏 내려다보며 과학은 선택과목이라 어려울 것이라고 무시했지만 어기는 과학경진 대회에서는 줄리안의 팀을 가볍게 재끼고 당당히 1등을 차지한다.
“넌 기적 같은 아이야.”
어기는 평범한 아이가 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우리도 평범한 사람이 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평범한 사람은 없다. 모두가 각자의 특별함으로 빛나고 있으니 우리는 평범하기보단 각자 다른 형태의 특별함을 가진 사람들이다. 나는 내 우주의 중심이다. 난 하나의 태양을 두고 돌고 있는 가려진 위성이 아닌 다른 우주의 옆에 머물고 있는 또 다른 하나의 우주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그리고 다른 이의 우주도 나의 우주만큼 특별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존중해야 함을 잊지 말자.
상대의 외적인 형태가 아닌 그의 눈과 그의 얼굴에 남아있는 흔적들을 바라본 적이 몇 번이나 있었지? 그가 나에게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 어떤 말을 하며 살아왔는지 또 어떤 흔적을 남기며 살아왔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려고 하는지. 그의 우주엔 어떤 것들이 가득 차있는지.. 그리고 나의 우주엔 어떤 이야기가 있는지, 어떤 이야기를 남들에게 말해주고 싶은지에 대해 천천히 살펴본 게 언제였는지.. 부끄럽지만 너무 멀어 제대로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나는 언제나 내가 부끄러웠고, 평범함이라는 단어조차 뚫고 내려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원더>는 이런 나의 부끄러운 우주에 대해, 친절을 베풀어준 사람에 대해, 우리의 소중함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를 선물한 영화였다.
나는 여전히 어기처럼 커다란 헬멧을 쓰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다. 매일은 아니지만 자주 꺼내 쓰고 있다. 생각 한번, 다짐 한 번으로 마음을 바꿀 수 있을 만큼의 긍정적 에너지가 가득한 사람이 아니다 보니 여전히 용기 내는 것이 어렵지만, 언젠가는 이 헬멧을 벗어던지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날이다.
만일 처음 학교에 가던 날의 어기와 나처럼 무거운 헬멧을 쓰고 있는 사람이 이 글을, 이 영화를 보고 있다면 당신도 충분히 특별하고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을 더 마음껏 사랑하고 믿어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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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무나 현실적인 디스토피아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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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칠드런 오브 맨>은 서기 2027년을 배경으로 한다. 지금이 2022년이니, <칠드런 오브 맨>의 세계가 구현된다면 바로 지금이다. 출생자가 없으니 살아있는 자들이 다 죽으면 인류가 멸망하는 세상. 영화가 개봉되었던 2006년에는 픽션이었지만 지금에 와서 보면 반쯤은 논픽션이다.
<칠드런 오브 맨>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했다는 다니스 고렛 감독의 영화 <나이트 레이더스>는 2043년이 배경이다. 20년 뒤에는 이 영화를 두고 픽션이 아니라 논픽션이라고 말하게 될까. 하지만 이 영화는 지금도 충분히 현실적이다.
제국주의 메타포
거대 독재국가 '에머슨'은 4살 이상의 아이들을 모두 아카데미로 보낸다. 이름은 아카데미이지만 사실상 군대라고 볼 수 있다. 에머슨은 전쟁을 통해 하나의 거대한 국가를 세우고자 하는데, 살상무기가 바로 아이들인 것. 한 번 아이들을 아카데미로 빼앗기면 다시는 볼 수 없다. 그러니까 아이를 국가에 헌납하는 것이다. 그 국가가 조국도 아니다. 원래 살던 땅을 점령한 침략자이자 식민지 통치자들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고 있는 지금, 이 영화는 오히려 현실보다 덜 비극적여 보인다. "하나의 나라, 하나의 언어, 하나의 국기"를 표방하는 에머슨의 구호는 낯설지 않다. 러시아뿐인가. 중국 역시 '하나의 중국'을 내세우고 있다. 영화는 마치 콜롬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했던 1492년처럼 구현된다. 흰 피부와 최첨단 무기를 가진 사람들이 토착민들이 살고 있는 땅을 빼앗고 그들을 지배하는 방식으로.
에머슨은 식민지의 사람들에게 드론으로 식량을 배급한다. 먹을 것이 아무것도 없는 이들은 드론이 떨어뜨리는 식량들로 연명하는데, 어느 날 사람들이 알 수 없는 바이러스로 죽어간다. 식량에 바이러스를 심은 것. 우리는 침략자들이 가지고 온 균 때문에 토착민들이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죽어갔다는 것을 역사에서 배웠다.
디스토피아의 종말론적 세계관이라기 보다는 과거의 재현에 가깝다. 실제로 토착민의 피가 흐르는 감독의 입장에서는 짚고 넘어가야 할 역사였을지도 모르겠다. 연출을 맡은 타이카 와이티티 역시 뉴질랜드 토착민을 조상으로 둔다.
우리나라의 일본 제국주의 식민지 기간과도 거의 유사하다. 일제의 대동아공영론이나 가상 국가인 에머슨의 방식이 크게 다르지 않다. 언어를 말살하고 땅과 민족성을 빼앗는 것. 일제뿐만 아니라 제국주의 국가의 식민통치 방식은 비슷비슷하다.
요컨대 이 영화에서 표현하는 디스토피아는 새로운 것(외계인, 로봇 등)의 등장이라기 보다는 이미 존재했던 제국주의적 학살의 재현이다.
구원자 서사
영화는 내래이션으로 시작된다. 명상을 하면서 거대한 모기떼와 북쪽에서 구원자가 찾아오는 것을 보았다는. 니스카와 그의 딸 와시즈는 에머슨의 눈을 피해 숲속에 산다. 무려 11년이나 에머슨을 따돌렸다. 먹을 것도 없는 상황에서, 새 사냥을 해야 하는데 와시즈는 새에게 말을 건다. 그의 말을 알아 들었는지 못들었는지 새는 날아 가버리고, 식량을 구하지 못해 굶어야 하는데다 설상가상 와시즈의 다리가 덫에 걸린다.
어쩔 수 없이 황폐화된 도시로 돌아간 모녀. 약을 구하고 싶지만 보건소에 가면 당연히 와시즈가 끌려갈 테고, 속수무책으로 친구의 집에 숨는다. 친구의 아들은 에머슨에 끌려가 군인이 되었다. 덫에 걸린 상처는 점점 깊어지고 열까지 끓어오르는 와시즈를 구하기 위해 니스카는 스스로 아이를 에머슨에 보낸다.
이렇게 되면 관객들이 예상할 수 있듯 영화는 '엄마의 딸 구하기' 양상으로 접어든다. 시장에서 말린 과일을 팔며 생계를 이어가는 니스카에게 접근한 남자는 같이 에머슨으로 가자고 제안하고, 또 갑자기 나타난 사람들에 의해 크리족의 본거지로 가게 된다. 전개가 다소 갑작스럽고 불친절하다.
크리족은 공동체사회를 이루어 사는 토착민이다. 그들의 모습은 인디언과 비슷하다. 그들은 니스카가 북쪽에서 온 크리족이라는 걸 알고는, 그가 자신들의 구원자라고 믿는다. 그러니까, 영화 초반에 나온 내래이션은 크리족의 예언인 것.
니스카가 할 일은 크리족 아이들을 데리고 빅스톤이라는 지역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주면 딸 와시즈를 에머슨으로부터 구해주겠다는 딜. 알고 보니 크리족들도 아이들을 숨겨두었고, 그 아이들을 안전지대로 데리고 가야 했다. 그 역할을 할 사람이 니스카라는데, 한 부족의 운명을 맡길 사람을 너무 검증없이 믿어버리는 건 아닌가 싶다.
에머슨의 이간질로 딸은 엄마가 자기를 버린 줄 알고 있다. 이간질과 세뇌는 상대편을 우리편으로 끌고 오기에 너무 좋은 수단이다. 상대가 집단에 대한 소속감이 클수록 효과도 커진다. 아무튼 와시즈는 와시즈대로, 크리족은 크리족대로, 니스카는 니스카대로 난관에 봉착한다.
거대한 국가주의와 힘없는 가족주의의 싸움에서는 필연적으로 소집단이 패하게 된다. 그때 소집단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구원자 신화이다. 영화는 힘없는 토착민들에게 구원자를 내려줌으로써 그들을 구하고자 한다. 니스카가 이들을 구하게 될까, 와시즈를 구하게 될까, 혹은 크리족이 이 모녀를 구하게 될까.
디스토피아는 왜 비슷한 모습일까?
타이카 와이티티의 (아직까지는) 대표작인 <토르-라그나로크>의 환상적인 영상과 <조조 래빗>의 아름다움을 생각해 보면, <나이트 레이더스>에서는 와이티티가 왜 자신만의 디스토피아를 구현하지 않았는지 의문이 든다. 기대했던 포인트가 와이티티의 연출이었는데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 왜 모든 디스토피아는 회색일까.
눈이 내려 컴컴한 숲, 에머슨 시민권을 얻지 못한 자들이 사는 곳, 그들의 옷, 골목 등 모든 것이 회색이다. 디스토피아들이 대부분 회색으로 표현되는 것처첨, 이 영화는 한편으로는 지난 디스토피아 영화들의 답습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개인적인 바람으로는 과하게 화려하고 발랄한 디스토피아를 보여주는 영화가 나오면 좋겠다. 회색 디스토피아는 너무 많다.
요즘 2시간 반은 기본으로 깔고 가는 영화가 주를 이루는데, <나이트 레이더스>는 러닝타임 101분이라는 대단한 미덕이 있다. 러닝타임이 짧은 탓인지 전개가 갑작스럽거나 매끄럽지 않은 부분들이 꽤 있었다. 세계관의 구현도 다소 아쉬웠다. 다른 디스토피아 영화들과 비교했을 때 변별점이 부족하지 않을까 싶은. 그러나 아직 작품수가 많지 않은 감독이고, 첫 장편이기에 앞으로의 행보가 무척 기대된다. <나이트 레이더스>의 속편이 나올 수도 있을 것 같다.
감독이 세계를 그리고 인식하는 방식이 좋다. 거대한 힘이 휘두르는 폭력 앞에 우리 모두는 패전국 국민이 될 수밖에 없다. 여기서 힘이란 군사력뿐만 아니라 자본력도 포함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크라이나를 공격하는 러시아가 있고, 신장 위구르 지역 및 기타 소수민족을 핍박하는 중국이 있다. 그뿐이겠는가. 우리나라 내에서도 폭력은 끝없이 자행된다.
<나이트 레이더스>에서 세상이 디스토피아가 된 원인은 외계인도, 고도로 발달한 인공지능도, 어떤 특별한 힘도 아닌 그냥 못되고 이기적인 인간들이다.
그럼에도 폭력에 굴하지 않는, 서로를 구원하려는 인간이 있는 한 이 세상이 쉽게 디스토피아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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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신 세상 끝에서, 너와 나> 이야기를 하면서도 영화 제목에 대해서 한번 언급했는데, 나이트 레이더스... 나는 처음에 '밤의 전파'인가? 했다. 알고 보니 Rader가 아니라 Raider이니 '야간 침입자'인가... 알고 보지도 못했다. 영화를 다 보고 나와도 사실 어느 쪽이 레이더스인지 모르겠다.
에머슨처럼 전 세계가 하나의 언어를 쓰는 것도 아닌데... 알고 보면... <나이트 레이더스>의 디스토피아는 이미 진행 중인 게 아닐까?
*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시사회에 참석한 후 남기는 개인적인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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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번의 아픔이 가져온 크나큰 상실과 성장, "클로즈"
안녕하세요 ㅎㅎ
이번에는 관계에 대해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깊은 울림을 전해주는 영화를 소개할까 해요~!
바로
2023년 5월 3일에 개봉하는
<클로즈>라는 영화랍니다^^
이 작품은 현재 해외에서 각종 수상을 했을 정도로 모두가 주의를 기울인! 주목할 만한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저는 메인 포스터에 나와있는 '레오'와 '레미'의 끌어안고 있는 모습을 보고
'이 둘의 관계는 어떻게 형성되어 있는 걸까?' 하는
큰 기대감과 궁금증에 휩싸였었습니다.
사진으로만 봐도 이 둘의 관계, 애틋하고 각별해보이지 않나요??ㅎㅎ
앞서 예상했듯이 레오와 레미는 평소 형제처럼 사이가 각별한뿐더러 매일매일 함께 보낼 정도로 절친한 사이입니다.
처음엔 진짜 형제라고 생각했을 정도로 이 둘은 너무나도 가깝고 모든 걸 공유하는 사이였죠.
위 장면은 영화의 초반부에 등장하는 장면입니다.
왼쪽부터 레오, 레미의 어머니, 레미를 가리킵니다.
전혀 이질감이 안 느껴질 정도로 가깝게 느껴지시죠?
레오는 레미와 레미의 부모님과 함께 앞마당에서 뛰어놀고 밥을 먹으며 같이 잠을 자면서 일상을 서로의 분신처럼 지냅니다.
그중에서도 레오와 레미는 한 방의 한 침대에서 눈만 마주쳐도 서로의 마음을 다 알 정도로 공유하며 하루를 마무리하는데요.
영화에서는 레오와 레미가 한 침대에 누워 대화하고 바라보는 장면을 자주 보여줍니다.
그렇기에 저는 이 장면이 더욱 눈길이 가고 기억에 남습니다.
침대 씬을 통해 서로의 감정이 변화되고 움직이는 걸 지레 짐작할 수 있도록 해주기에 더 마음이 가는 장면이 아닐까 싶습니다.
두 사람은 중학교에 입학하여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요.
아는 친구들이 없어서인지 레오와 레미는 서로에게 더 의지하며 기대는 모습을 보이죠.
화면은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멀리 비추면서도 두 사람에게 초점이 가도록 비추고 있는데, 이러한 화면 구성은 그 둘 사이의 관계를 더 명백히 보여주는 구성이라고 저 혼자 생각해봅니다 ㅎㅎ
이러한 두 사람을 보고 학교 친구들은 '너네 둘 연인이 아니냐', '보통 친구 사이가 아닌데'와 같은 그 둘의 관계를 비웃는 듯한 반응을 보입니다.
바로 이러한 친구들의 말이 두 사람 간의 관계이자 영화의 핵심 포인트로, 사건을 뒤흔들 계기로 작용하게 됩니다.
여기서 레오와 레미는 서로 상반된 반응을 보이는 듯합니다.
레미는 그런 친구들의 말에 타격을 입지 않는 모습을 보이는 반면,
레오는 너무나도 큰 타격과 상처를 입었는지 기분이 확 다운된 상태로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풀썩 눕죠.
그 이후부터 레오는 친구들의 말을 의식하고 점점 레미를 멀리하게 됩니다.
괜히 자신을 괴롭혔던 애들과 어울려 지내려고 노력하고, 레미와 함께 있어도 예전과 같이 서로 뒤엉키며 놀지 않습니다.
처음에 자신들만의 공간에서 서로 상황극?하며 놀았던 놀이도 이제는 예전같지가 않게 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오는 여전히 은근슬쩍 레미에게 관심을 기울이며 레미의 상태를 확인합니다.
겉으로는 다른 친구들과 어울려 지냄에도 속으로는 여전히 레미에게 향해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주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어째서일까요.
왜 사람은 어떠한 큰 사건, 계기가 생겨야지만 비로소 몰랐던 점을 깨닫게 되고 후회하게 되는 것일까요.
영화를 보면 바로 이 점이 제일 안타깝고 안쓰럽고 후회스러울 지경입니다.
레미는 갑자기 변해버린 레오가 낯설고 적응이 되지 않아서인지, 바뀌어버린 레오의 태도에 상처를 받았는지 하루가 갈수록 점점 피폐해집니다.
한순간에 제일 가까웠던 친구가 제일 멀게 느껴지게 되는 그 느낌은 어떤 느낌일까요.
레미의 입장에서는 감히 그 감정을 이루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가시, 큰 상처가 되어 마음에 슬프게 박혔을 테죠..
같이 있어도 같이 있는 것 같지 않는.. 어딘가 나만 홀로 버려진 땅에 서 있는 기분..
아마 그런 느낌이었겠죠, 레미는.
이들에게 기어코 큰 사건, 절대적인 사건이 일어납니다.
바로, 레오의 가장 절친인 레미가 자살하여 죽었다는 것이죠.
레미가 죽은 이 거대한 사건이 레오에겐 가장 큰 영향력으로 다가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때 이후부터가 영화에서 가장 말하고 싶었던 흐름이자 메시지가 아닐까 합니다.
내가 주목했던 건?
저는 영화 장면 중에서 제일 주목했던 부분이 두 가지가 있는데요.
바로 첫 번째는 포스터 속 장면처럼 레오와 레미가 꽃밭에서 뛰어다녔던 장면입니다.
둘은 각자가 느끼는 감정에 따라 꽃밭에서 뛰는 속도를 달리 조절합니다.
영화의 첫 도입부분 역시 레오와 레미가 신나게 깔깔 거리며 꽃밭을 뛰어다니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이때 둘은 서로 나란히 같은 속도에 맞춰 혹은 엇비슷한 속도로 꽃밭을 뛰어다닙니다.
초반에는 어떠한 장애물 없이 세상에는 레오와 레미 단둘이 존재했기에 가능했던 속도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것도 환히 웃으면서 해맑은 상태로 달려가죠.
하지만, 레오가 레미를 점점 피하고 나서부터는 꽃밭에서 뛰는 이 둘의 속도도 점점 달라집니다.
같은 꽃밭에서 예전과 같이 뛰지만, 한 사람은 앞서 나가고 또 한 사람은 뒤로 뒤쳐지게 되죠.
서로의 거리가 점점 멀어졌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장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렇듯 꽃밭에서 달리는 설정을 통해 레오와 레미 이 둘만의 관계가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보여주는 것 같아 인상 깊은 장면이었습니다.
처음엔 같은 속도로 달리는 둘을 보고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함께 웃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변해가는 서로 다른 둘의 속도를 보고 마냥 웃으며 바라볼 수만은 없었던.. 뭉클해지며 가슴 한 편이 시큰해지는 장면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레오와 레미가 자전거로 달리는 장면인데요.
앞서 꽃밭에서의 달리기를 통해 둘의 거리감을 표현했듯이 자전거를 통해서도 이 둘의 관계를 표현해주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영화 초반에서 이 둘 역시 처음에는 학교를 향할 때 같이 나란히 자전거를 타고 다녔습니다.
장난도 치며 웃으며 자전거를 타고 비슷한 속도로 달렸죠.
하지만 둘의 관계가 변화가 있은 후부터는 자전거를 세게 밟아 서로를 앞질러 갈려고 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웃는 얼굴이 아닌, 이 악문 표정으로 말입니다.
마치 자전거를 통해 자신의 화난 감정이나 속상한 감정을 표현하는 것 같았습니다.
예언같기도 하고요.
이렇듯 레오와 레미가 꽃밭에서 달리는 모습이나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모습을 통해 이 두 명간의 관계, 거리감을 간접적으로 알게 되는 중요한 대목 같아서 저는 이 두 장면을 주의깊게 눈여겨 봤답니다!
영화 <클로즈>를 보고 저는 사람 간의 영향력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뜻깊은 시간을 가졌습니다.
사람이 주는 영향력을 감히 무시할 순 없구나. 하면서 말이죠.
그리고 레오의 심정도 어느 정도 이해가 갔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자기 자신과 관련하여 별로 좋지 않는 말을 할 때, 비웃을 때 등등 그런 말들에 당연히 의식하기 마련입니다.
그 말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상황은 달리지겠죠.
저는 상황을 대처하는 방식에서 레오와 레미가 서로 어긋난 것 같다고 판단했습니다.
레미는 주변 사람들의 말을 의식하지 않기로 판단한 것이죠.
레미에겐 그러한 사람들보다 레오, 즉 자기 친구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기에 말입니다.
그에 반해 레오는 다른 사람의 말에 더 의식을 했던 인물이었던 거죠.
이 차이에서 비롯되었던 건 아닌가 하는.
저도 레오와 같이 주변인들의 인식과 말에 영향력을 받는 사람인지라 공감이 갔습니다.
머리로는 가장 친한 친구인 레미에게 가야겠다는 건 알았으나, 행동이 그를 따라가주지 못했죠.
비록 레오는 절친인 레미를 안타깝게 잃고 나서야 레미의 소중함을 깨닫고 변화해가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이 영화를 보는 우리만큼은 레오처럼 그런 후회를 남기지 말라고 메시지를 전달해주고 있다고 봅니다.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 의해 나를 좌지우지할 게 아니라, 나를 사랑해주고 내가 사랑하는 이들을 살펴보는 시간을 더욱 가지라고 말이죠.
세상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만 챙기기에도 바쁘니까요 ㅎㅎ
자신과 가까운 이들에게 관심과 애정을 쏟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는 그런 영화였습니다.
'레오'라는 한 사람이 전하는 메시지가 깊은 울림을 주는 영화 <클로즈>였습니다.
아름다움과 아픈 시련이 함께 담긴 영화랍니다.
여러분도 이 영화를 보시면서 주위 사람들을 한 번쯤 살펴보는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참석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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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정하고 따뜻하게 꿈틀거리는 관계의 성장통
뉴욕 맨해튼. 도그는 혼자인 게 외롭다. 누군가와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다른 동물을 보며 부러워한다. 특별한 것 없는 일상은 무료하게 반복되고 그럴수록 도그의 외로움도 커진다. 여느 때처럼 소파에 늘어져 TV를 보던 어느 날이었다. TV에 반려 로봇 광고가 나오고, 도그는 홀린 듯 로봇을 주문한다. 설레는 마음으로 주문한 로봇은 도그를 위해 만들어진 것만 같다. 둘은 함께 산책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게임을 하며 차곡차곡 우정을 쌓아 나간다. 그럴수록 둘의 행복도 함께 커진다.
그러던 어느 날 둘은 바닷가로 향한다. 역시나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그런데 뜻밖의 사고가 생긴다. 바닷물이 로봇의 몸을 굳게 만든다. 도그는 하는 수 없이 내일 다시 와 녹이 슬어 움직이지 못하는 로봇을 데려가기로 한다. 하지만 다음 날 다시 찾은 해변은 폐장 안내와 함께 출입문이 굳게 닫혀 있다. 도그는 몰래 해변 진입을 시도하지만 번번이 경찰에게 가로막히고, 로봇을 되찾기 위해 시에 민원을 넣어보지만 끝내 출입을 반려당한다. 몇 개월 동안 둘은 떨어져 있어야만 한다.
둘은 몸과 마음을 다해 서로를 무한히 그리워한다. 기분 좋게 재회하는 꿈, 어렵게 찾아갔더니 버림받는 꿈…… 아끼고 사랑하는 존재와 원치 않는 이별을 했을 때 겪을 법한 감정의 파고가 이어진다. 아기자기한 작화에 담긴 감정의 크기가 만만치 않다. 이 '부조화'가 오히려 이별의 아픔을 증폭한다. 원치 않는 우정의 단절이 주는 감정으로 힘든 시간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이라면 자칫 이야기가 지루하다고 느낄 수도 있겠다. 그만큼 섬세하게 도그와 로봇이 서로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좇는다.
영화는 누군가를 간직하며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네가 없더라도 삶은 어떻게든 이어진다. 그러나 결코 이전과는 같을 수 없다. 일상의 모든 곳에서 너의 흔적을 떠올린다. 공연히 빈자리를 그리워한다. 심지어는 네가 없다는 데 화가 나기도 한다. 새로운 관계를 꾸려 또 다른 행복을 만끽하는 순간에도 불현듯 옛 기억과 현재가 겹친다는 자각에 움찔할 때도 있다. 요컨대, 우리는 나름의 방식으로 각자의 삶을 살아가겠지만 그 모든 것에는 너의 흔적이 남아 있다. 길고 긴 그리움의 시간이 지나고, 마침내 로봇은 도그를 찾는다. 둘은 이전처럼 다시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서로를 그리워한 이들의 마음은 어떻게 연결되고 이어질까?
대사 하나 없이 감정을 차곡히 쌓아 올리는 영화는 깜짝 놀랄 만한 결말로 나아간다. 아마도 영화의 메시지를 더 강렬하기 부각하기 위한 선택인 듯하다. 아니, 어쩌면 지극히 현실적인 결말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꽤 여운이 남는 결말이다. 살면서 한 번쯤은 겪어봄 직한, 그로 인해 조금은 더 성숙해졌을 관계의 성장통이 마음 깊은 곳에서 다시금 꿈틀거린다. 비인간 존재들이 주인공이라 그런지 때로는 잔혹하기도 한 인간관계의 또 다른 측면은 잠시 잊게 된다. 그저 따뜻하고 다정한 우정이라는, 어쩌면 판타지일지도 모르는 관계에 몰입하게 된다. 잔잔한 여운을 남기는 영화다.
*영화 매체 〈씨네랩〉에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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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번 묻지 않고 앞으로만 쭉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어디서 누가 날 부르고 있어. 유튜브 영상을 보고 있는데 듀스의 노래 가사가 튀어나왔다. 음악 좋지. 별안간에 어렸을 때 작게나마 소망했던 것이 생각났다. 갑자기 기타를 잘 치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김광석 아저씨 멋있지 않나? 기타 치고 노래하는 것을 살짝 선망했던 시기가 있다. 아빠가 기타를 칠 줄 알아서 배우고 싶었으나 도레미파솔라시도 치는 것도 어려워서 접었다. 아. 노래 잘하는 것도 멋있다. 사실 이것도 실패했다. 기본적으로 내 말하는 방식이 목에 안 좋은 것 같다. 안 그래도 머리가 안 좋은데 복식호흡을 이해하는 것은 나에게 어려운 과학이론을 공부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래서 뭐 어쩌라는 것인가? 네가 원하는 건 뭔데? 이 질문 '네가 원하는 건 뭔데?'는 나의 삶을 관통하는 질문 중 하나다. 이 질문의 답은 그냥 내가 하고싶은 일 하고 살 것이라는 막연한 바람이다. 그들이 정말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원하는 건 그것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막상 도전하려니 안될 것 같은 겁이 나기도 한다. 점점 내가 세상을 선택하는 게 아니라 이 세계가 나의 미래를 좌지우지하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든다. 맥도널드에서 일하고 싶었지만 면접에서 컷 당했던 과거의 내가 생각난다. 거기서 잘 됐어야 했나. 괜히 멋진 사람들을 만나 눈이 높아져 애초부터 불가능한 걸 꿈꾸고 있는 걸까 싶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 인생의 주인은 내가 맞는데 말이지. 그렇게 미래고 인생이고 다 때려치우고 락밴드처럼 노래 부르는 미래가 차라리 낫지 않았을까 싶기도 한 나다. 과연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건 뭘까? 우리에게 특별히 중요한 건? 뭘 찾고 있는 걸까? 이렇게 우리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청춘들에게, 아일랜드의 소년 하나가 들려주고 싶은 음악이 있다고 한다. 왓챠의 3월 신작을 들여다보자.
1. 어떤 것에 대한 영화인가요?
아일랜드에 사는 소년 코너는 어느 날 싱 스트리트에 있는 고등학교로 전학을 가게 된다. 갑자기 가계 사정이 어려워져 자기 의사랑은 상관없는 삶을 보내야 하는 코너. 코너에 눈에 보이는 것은 싸움을 일삼는 학생들과 흡연자들이다. 또, 어딘가 좀 불안해 보이는 학교 친구들도 있다. 상큼한 10대 생활은 다 텄다. 근데 이걸로 끝나는 게 아니다. 교장 벡스터 수사는 이런 개판 5분 전의 상황을 방관하기만 한다. 아니 사실 방관만 하면 다행이다. 코너는 새 학기가 되자마자 싹수없게 생긴 배리에게 '호모답게 춤이나 춰라'라는 협박을 당한다. 이 상황을 겪은 코너. 벡스터 수사에게 잡혀가서 검은 구두 살 돈 없으면 맨발로 다니라고 면박을 듣는다. 자기 생각 외의 상황으로 사면초가가 된 상황. 위기가 곧 기회라고 했던가. 그렇게 뭐같은 학교생활을 마무리하고 하교하던 도중에 맞은편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던 라피냐를 보게 된다.
영화는 코너와 라피냐의 첫 만남을 시작으로 한 하이틴 성장물이다. 코너는 라피냐를 보고 첫눈에 반하게 되고 이에 밴드를 하고 있다고 뻥을 치게 된다. 잘 나가는 모델이었던 그녀에게 마음을 얻기 위해 신박한 직업을 꺼낸 것이다. 노래의 s도 모르던 코너. 음악을 하던 형이 있긴 했지만 아무튼 음악은 잘 모르는 것처럼 보인다. 이 작품은 여자 꼬시려고 밴드를 결성한 소년들의 이야기로 러닝타임을 채운다. 모든 사랑의 이야기가 그렇지만 당연히 순탄한 시간만 있지는 않다. 라피냐의 남자 친구에게 벽을 느껴 좌절하기도 하고, 교장 브라운 수사를 위시한 사람들의 편견에 상처받기도 하며 현실적인 문제로 코너 자체가 속이 쓰리기도 한다. 영화는 음악 영화답게 뮤비도 찍고 공연도 하고 노래도 부른다. 그중 탁월한 음악과 달달한 로맨스도 보이는 영화라고 볼 수 있다.
2. 어떤 영화로 정의할 수 있을까요?
뭐, 영화를 정의한다는 발상 자체가 좀 웃긴 거긴 한다. 그런데 나는 (많지 않은) 독자들이랑 영화 가지고 대화하고 싶은 사람이니까 이런 문항을 쓰는 것 아닌가. 이 문장을 쓰는 이유는 이 영화야 말로 통통 튀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내려본다면, 음악 영화다. 장르적으로 뻔하다? 뭐 틀린 말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런데 이 영화만큼 음악과 영화가 잘 사는 영화는 몇 편 못 봤던 것 같다. 첫 번째. 10대 로맨스 영화의 역할로도 탁월하다. 자아의 성장을 통해 찾았던 사랑과 삽입곡들의 가사 둘이 시너지가 좋아서 관객을 더 쉽게 몰입하게 도와준다. 또 이 영화는 음악이 좋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곡은 <To find you>이다. 팝송을 잘 안 듣는 나지만 이건 꾸준히 듣는다. 사랑이 뭐라고 생각하는가? 결국 너 아니면 나 자신을 찾는 일이다. 사랑하기 위해선 나를 존중할 줄도 알아야 하고. 상대방을 받아들이는 방식도 공부해야 하지 않나. 이 노래는 우리가 공감할만한 사랑의 속성을 가사로 잘 드러냈다고 생각한다. 또 엔딩신에 나오는 가사가 슬펐다. 영화의 핵심 메시지라 글에다 쓸 수는 없겠지만 그 장면이랑도 잘 어울려서 찡했다.
3. 다른 장르물과의 차이점은?
<위플래시>가 생각난다. 똑같이 인성이 더러운 선생들이 나오고, 음악을 좋아하는 10대가 주인공이다. 이 <위플래시>는 장르적으로 스릴러물에 가까운 음악영화다. 주인공들의 미친 광기로 2시간을 채운 영화가 <위플래시>라면 이 영화 <싱 스트리트>는 히피라는 단어가 생각나는 작품이다. 주인공 코너의 초반부 화장기법이나, 검정 코디에 빨간색 기타나 2022년 현재에도 힙하다고 말할 수 있는 지점이 분명 있다. 그리고 이 분위기를 덧붙혀 주는 인물이 있는데, 주인공 라피냐다. 다양한 화장법이 잘 어울리는 미녀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체적으로 어른들에게 대드는 영화의 줄거리가 외적인 요소랑도 잘 맞아서 시너지가 좋았다.
또, 이 영화는 대사를 잘 썼다. 사랑이 뭘까. 난 사랑은 '적당히란 없는 것'의 다른 말이라고 생각한다. 난 내가 좋아하는 것에 적당히란 없다. 미친 듯이 몰입하거나, 될 때까지 하거나 둘 중 하나다. 좋아하는 걸 한다고 해서 세상이 나를 사랑해주지 않는다는 걸 잘 알아서인지 뭐든 피 토하기 전까지 다 갖다 바치려고 한다. 이 이야기를 썼던 이유는, 후반부에 특정한 장면 때문이다. 엄청난 울림이었다. 마치 이 장면을 위해 그동안의 자아 찾기가 이뤄졌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 장면에서 형과 동생의 대화를 통해 꿈을 위해 떠나고자 하는 이에게 용기를 북돋우는 대사를 썼다. 또 이뿐만 아니라 도전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반영하는 가사도 몇 줄 있었다. 사실 우리 인생이 주인공과는 멀리 떨어져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 잘 안다. 이 형제로 사는 모든 이들에게 존 카니가 바치는 따뜻한 메세지만으로도 영화는 탁월하다고 생각한다.
4. 배우들의 연기는 어떠한가요?
비교적 신인 배우들을 등판시킨 작품이다. 그런데 연기가 어색한 것은 아니다. 무리 없이 소화할 수 있는 작품이다. 특히 코너의 밴드 친구들이 풋풋하고 귀여운 연기를 잘 소화해서 보는 내내 미소 지으며 볼 수 있었다.
5. 어떤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나요?
<비긴 어게인> <원스> <라라 랜드> 좋았던 사람들은 일단 재생 버튼부터 누르고 봐야 한다. 이 셋과는 다른 작품임과 동시에 '일단 노래가 좋은' 음악영화이기도 하다. 또 요즘 왓챠가 신작을 들이는 게 시원찮다. <냉정과 열정사이>를 보긴 했지만 내 스타일은 아니었어서 추천하기가 뭐했는데, 이 작품은 안 본 분들이 있다면 보라고 권해드리고 싶다. 또 도입부의 나에게 공감하는 분들에게 추천한다. 우리, 잘 가고 있을 것이다. 지금 가지 못하면 절대 못 가니까 이렇게 두려운 것이 많은 것이다. 기회가 왔다면 뒤도 돌아보지 말고 떠나자. 어차피 한번 사는 인생이다.
#왓챠영화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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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쓰백>, 그들에게 펼쳐질 날들이 노을처럼 따스하기를
이 영화를 떠올리면 미안하다는 마음이 앞선다.
전부터 쭉, 그리고 아직까지 변하지 않은 세상을 어린 아이들이 마주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미안함.
넘칠 정도로 많은 사랑을 받아도 부족할 소중한 아이들인데 아픈 기억만 쌓아가고 있다는 것에 대한 미안함.
<미쓰백>은 우리 사회의 어딘가를 자꾸 쿡쿡 찌르는듯한 아픈 영화이다. '아동학대'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를 다룬 영화인데, 어린 시절 아동학대를 받아 마음을 굳게 닫고 살아가는 '상아'와 아동학대를 받고 있는 어린 아이 '지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상아는 자꾸 자신과 닮아보이는 이 아이가 눈에 밟혀서, 자신과 멀어지면 계속 아파하고 있을 어린 아이가 걱정되어서,
그리고 지은은 자신에게 따스한 손길을 내밀어준 미쓰백이 좋아서, 고마워서, 살고 싶어서, 함께 도망친다. 그들을 괴롭히던 폭력으로부터 도망친다. 인상 깊었던 장면들은 다음과 같다.
어린 시절 성폭행의 위기에서 벗어나려고 상대방에게 저항하다가 상처를 입혀서 살인미수죄로 감옥에 갔다 온 상아를 돌봐주던 사람이 있다. 바로 그녀의 사건을 맡았었던 형사인 '장섭'. 장섭은 상아가 아무 죄가 없고, 오히려 억울한 피해자라는 사실을 가장 잘 알기에 죄책감을 가지고 항상 그녀의 옆에서 그녀를 돕고 있었다. 이 장면은 그런 장섭이 상아에게 결혼하자는 이야기를 꺼낸 뒤의 부분이다.
- 네 그 눈만 보면 숨통이 막혀. 나만 보면 불쌍하고 미안해 죽겠다고 질척대는 그 얼굴.
나는 장섭이 오로지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그녀에게 결혼 이야기를 꺼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경찰인 자신이 진정한 가해자를 처벌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대한 자책,
어린 아이에게 깊은 상처를 줬다는 사실에 대한 죄책감,
아무에게도 마음을 주지 않고 살아가는 그녀에 대한 안타까움.
이런 감정들과 좋아하는 감정이 복합적으로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상아도 이를 알고 있었다.
아직 마음 속에 깊게 남아 있는 학대라는 상처로 인해 굳게 마음을 닫은 그녀였기에 일부러 더 모진 말을 내뱉는다.
어쩌면 장섭의 눈이 자신을 죄책감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던 엄마의 눈과도 닮은 부분이 있어서 더 그랬는지도 모른다.
나는 이런 상아를 함부로 안타깝게 여기지 않는다.
나는 이런 모진 말과 행동이 자신이 받은 상처에 대한 기억을 바탕으로 생겨난 그녀의 '방어막'이라고 느꼈다.
그냥 그녀가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니 굳이 그 선을 먼저 넘으려고 하면 안 된다는 생각도 했다.
내가 그녀의 지난 삶을 자세히 알지 못하니까.
그냥 '백상아'인 것이다.
투박하지만 다정한 사람, '미쓰백'.
어린 아이와 함께 대화해 본 적도 없기에 잘 모르고, 서투르다.
- 너한테 욕한 거 아냐. 나한테 한 거야.
아마 이 순간 속으로 함부로 욕을 쓴 자신을 자책하고 나서 이런 수습하는 말을 내뱉은 것이 아닐까?
서툴어도 하나하나 고쳐나가면 되는 것이다.
대사 몇 마디 없지만 참 다정했던 장면이다.
상아는 놀이공원에 대해 아픈 기억이 있지만 지은이 가고 싶어 했기에 함께 갔다. 그리고 함께 노을을 바라보는데, 지은이 먼저 상아의 손을 잡는다. 그리고 말한다.
- 고맙습니다.
조금 놀란 상아도 지은의 손을 놓지 않는다.
상아의 투박함이 지은의 다정함으로 인해 무너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과의 사별 후 우울증과 알코올 중독이 있던 엄마와 그녀에게 가정폭력을 받던 어린 상아가 헤어지기 전, 놀이공원에서 마지막 사진을 찍는 장면이다.
- 나한테서 달아나, 멀리.
저 공허한 눈빛이 자꾸 눈앞에 아른거린다. 거슬릴 정도로.
놀이공원의 회전목마가 배경이어서 이 장면이 더 기억에 남는 것 같다.
빠르게 지나가는 화려한 불빛, 사람들의 웃음, 알록달록한 색깔들을 뒤로 하고 보여지는 상아와 엄마의 시간.
상아와 엄마 모두에게 행복함 대신 죄책감, 미안함, 쓰라림만 남아 있는 시간.
자신에게서 달아나라는 나의 엄마.
나를 보는 눈빛에서 죄책감이 보이는 엄마.
상아와 지은에게 펼쳐질 날들이 저 노을처럼 따스했으면 좋겠다.
지금까지 너무 많이 아팠으니까.
너무 아픈 기억들을 가지고 살아왔으니까.
"이런 나라도, 같이 갈래?"
상아와 지은이 엄마와 딸의 관계가 아닌, 서로가 서로를 안아주는 그런 관계로 함께 많은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다.
함께 손을 잡고, 서로를 보듬어주면서, 따뜻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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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블 어벤져스의 MBTI를 알아보자!
#산돌구름 #MBTI #마블MBTI
"마블쟁이는 산돌구름에게 폰트를 지원 받았습니다"*영상 타임라인*
0:00 인트로
0:50 이기적 통솔자, 아이언맨
2:55 융통성 제로 선비, 캡틴 아메리카
5:35 역시 어벤져스 외교관, 토르
6:28 조용하다 화내면 무서운 사람, 헐크
7:57 엘리트 공무원, 호크아이
9:08 아웃트로2020. 08. 26 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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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대 공감! 올 봄 따뜻한 감동을 선사할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 메인 예고편 대.공.개? 탈북 천재 수학자 #최민식 이 펼치는 불꽃 열연? [#이상한나라의수학자?] #3월9일 극장에서 확인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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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는 살아있어요” 절망 끝에 피어난 간절한 희망! ⠀ #히가시노게이고 소설 원작 [인어가 잠든 집] 메인 예고편 공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