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이정2025-05-25 15:41:02
댕겨진 불씨는 반드시 타오른다
영화 <신성한 나무의 씨앗> 리뷰
DIRECTOR. 모함마드 라술로프
CAST. 마흐사 로스타미, 세타레 말레키, 소헤일라 고레스타니, 미삭 자레
SYNOPSIS. 꿈에 그리던 수사판사 승진을 하게 된 ‘이만’, 때마침 테헤란에서는 대규모 히잡 반대 시위가 일어나고 ‘이만’은 가족의 안전을 위해 총을 지급받는다. 그러나 딸들과 논쟁을 벌인 어느 날, 총이 집에서 감쪽같이 사라지고 가족의 믿음에는 균열이 생긴다. 지금 반드시 목격해야 할, 올해 가장 용감한 걸작.
POINT.
✔️ 2022년 히잡 시위를 둘러싸고, 이란의 국가폭력을 비판하는 영화입니다. 감독과 두 딸 역할의 배우는 이 영화 이후로 망명했고, 함께 나오지 못한 엄마/아빠 역할의 두 배우 사진을 높이 올려든 채 레드카펫에 섰습니다. 어머니 역할을 맡은 배우 소헤일라 고레스타니는 2022년 당시 시위에 연대하여 수감되었고, 현재 자택 연금 상태라고 합니다. (해당 내용을 비롯, 영화 외부적 이야기는 배급사 그린나래미디어 SNS에서 참고했습니다.)
✔️ 의미 있는 영화인 동시에, 재미있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2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인데 전혀 길다고 느껴지지 않았어요. 집안에서 없어진 총을 둘러싼 가족 간의 이야기가 아주 잘 짜여 있는 구조라서, 다음을 궁금해하면서 끝까지 따라가게 만드는 흡입력 있는 영화입니다.
✔️ 영화는 6월 3일 개봉합니다.

체호프의 총이라는 개념이 있다. 1장에서 총이 등장한다면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그 총이 반드시 쏘아져야 하며, 쏘지 않을 총이라면 이야기에 등장시켜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물론 이를 역이용해 신경 쓰이는 위치에 놓여 있던 아이템이 별 의미 없는 맥거핀으로 판명되는 경우도 있지만, 집안에서 총이 사라진 이 영화에서 총은 맥거핀일 리 없어 보였다. 총을 쏘지 않는다 해도 최소한 관객은 총의 행방에 대해 좀 더 알게 되겠지.
이 영화에서 총이 맥거핀일 리 없다는 생각을 한 이유는 하나 더 있다. 맥거핀으로 장난을 치기엔 이 영화가 너무 절박한 메시지를 직설적으로 담고 있었다. 모함마드 라술로프 감독은 체제 비판 영화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감시와 탄압을 받는 상황에서 이 영화를 만들었다. 감옥이냐 망명이냐, 다소 극단적인 두 가지 선택지만 남아있던 상황에서 감독은 망명을 택한다. 칸영화제는 <신성한 나무의 씨앗>에 '심사위원 특별상'이라는, 기존에 없던 상을 만들어 수여했다. 한 해가 지난 올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은 다른 이란 감독인 자파르 파나히 감독에게 돌아갔다. 심사평에는 "저항과 생존"이라는 단어가 새겨져 있어, <신성한 나무의 씨앗>도 함께 떠오른다. 무함마드 라술로프 감독은 "수년간 이어진 노력, 인내, 그리고 저항 끝에 이슬람 공화국 체제 아래에서 썩고 텅 빈 검열의 체계는 마침내 밀려나기 시작"했다며 '검열을 거부하는 영화'들이 "보다 단단한 기반 위에 올라섰"다는 내용이 담긴 축사를 보냈다. 히잡에 대한 검열은 2022년 이전의 이란으로 돌아갈 수 없고, 영화에 대한 검열 또한 2025년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1. 이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요?
이 영화의 배경이 된 사건은 2022년 마흐사 아미니라는 이름의 여대생이 히잡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았다고 '도덕 경찰'에게 끌려가 구금 끝에 의문사한 사건, 그리고 거기서 촉발된 대규모 히잡 시위다. 수많은 사람들이 "여성, 삶, 자유"라는 구호를 외치며 거리로 나왔다. 수만 명이 구금되었고 사망자도 (사망 사유와 숫자는 제각각 다르게 밝히고 있지만) 수백 명에 달한다. 의문사에서 시작된 시위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공개 처형까지 불사하면서, 이란은 '신정일치' 즉 종교와 정치를 접붙인 시스템을 공고히 하려 애썼다.
이 '신정일치'의 나라는 1979년 혁명으로 들어섰다. 이란의 마지막 왕조였던 팔레비 왕조를 무너뜨린 시위였는데, 당시 왕조의 급격한 서구화 정책과 경제적 어려움이 맞물리면서 군주제에 누적된 불만이 폭발한 사건이었다. 비밀경찰이 돌아다니고 반대파가 '정치범'으로 탄압받는 사회를 끝내고자 자유와 민주주의를 부르짖은 시민들이 예상하지 못한 것은, 당시 혼란과 의견 차이의 우여곡절 끝에 설립된 국가가 이슬람 교리와 정치를 내세우면서 도덕 경찰이 돌아다니고 정치적 탄압이 강화되었다는 점이다.
그 과정에서 여성 인권은 그야말로 추락했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남성과 동등한 투표권을 누렸고 이란혁명에서도 굵직한 역할을 여성들이 해냈는데, 혁명 끝에 여성들에게 남은 것은 히잡을 뒤집어쓰고 다니라는 강요, 히잡을 쓰지 않고 운전하다가 벌금을 물거나 차량을 압수당할 수도 있다는 현실이다. 시위 이후 수많은 여성들이 히잡을 벗어던지는 시민 불복종을 이어가고 있지만, 이란 정부는 여전히 강경하다. 히잡은 여전히 법령으로 강제되고 있고, 공개 처형과 구금은 셀 수 없으며, 심지어 카타르 월드컵에서 국가를 부르지 않던 남자 축구 선수들에게까지, 선발 제외 소문부터 사형 선고까지 다양한 탄압이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짓밟아도, 외치고 버티고 항의하는 목소리는 죽지 않는다. 끝내 살아남아 우리에게 도달한다. 검열과 탄압이 아무리 이어져도 이 목소리는 제 갈 길을 간다. "1명을 죽이면 1,000명이 일어난다!" 하고 분연히 일어났던 이란의 여자들처럼. 검열 시스템은 "공포와 위협으로 마치 모든 걸 감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일종의 섬광탄 같은 효과"일 뿐 "실질적으로 모든 걸 볼 수는 없다"는 무함마드 모술라프 감독의 말처럼.

#2. 우회하여도 반드시 길은 이어진다
이 영화에서 두드러지게 눈에 띄는 것은 세대와 성별에 따라 다른 미디어를 활용하고 있는 점이다. 불안한 시위의 소식 앞에서 엄마는 텔레비전을 켜 보지만, 텔레비전은 엄마에게 아주 간단하고 정제된 뉴스 이상의 정보를 주지 못한다. 마치 세상에 아무 일도 없다는 듯한 드라마까지 보고 나면 텔레비전을 끄는 것밖에 도리가 없다. 체제의 수호자인 동시에 체제의 피해자인 기성세대 여성은 가장 혼란스러운 자리에 놓여 있다.
딸들은 SNS로 다양한 소식을 접한다. 온라인에 게재된 영상은 끝도 없이 이어지고, 자매는 방 한구석에 앉아서도 거리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안다. 마치 히잡이나 부르카처럼, 두껍고 검은 커튼으로 자신을 가린 채 창 밖을 내다보는 것조차 조심스러운 '자체 검열'의 집안에서도, 자매는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인다. 그뿐 아니라 통제 안에서 우회하는 법을 이미 알고 있다. 빨간 하트로 이름을 저장해 두면 남자친구인 걸 들킬 테니까 하얀 하트를 쓴다든지. 이들에게 미디어는 양방향이고, '모바일'하다.
반면 아버지는 그 어떤 미디어도 접하고 있지 않다. 그에게 그나마 미디어라고 부를 법한 것은 직장 동료와의 대화가 전부이며, 그 또한 세상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에 대한 대화는 아니다. 그의 공간은 눈도 귀도 막혀 있다. 복도 가득 '굳은 믿음'을 보여주는 손동작을 한 이들은 사람이 아니라 등신대이며, 눈을 가리고 손을 묶인 채 고요하게 끌려 다니는 이들의 존재만이 이 공간에서 유일하게 생명을 갖고 움직이는 이들이다. 죽은 공간에서 이들은 자신의 폭력이 자승자박의 미련 일로를 걷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다. 심지어 총이 사라진 후로 "내 집인데도 안심이 안된다"며 불안과 혼란을 체험하고도, 그는 모든 것을 의심하는 와중에 자신의 혐오와 억측만큼은 확신을 갖고 밀어붙인다.

이 미련의 핵심에는 언어의 혼탁이 있다. "여성의 명예를 보호"하기 위해 히잡을 써야 한다고 하는 이들의 언어 논리 그대로다. "가족의 믿음을 회복"하고 "가족들을 지키기" 위해 아버지가 가족에게 가하는 행동은 이 나라의 여성들이 겪는 일상의 폭력을 여실히 느끼게 한다. 보호라는 귀한 단어가, 명예라는 아름다운 단어가, 이토록 해악밖에 남지 않은 방향으로 혼탁해지고 무너졌다. 이렇게 깨지고 더럽혀진 언어로 짜인 지배구조는 시스템 안의 모든 사람을 옭아매는 폭력밖에 되지 못한다.

#3. 반쪽은 피와 어둠 아래 있어도, 나머지 반쪽은 빛 아래 있기에
이 영화에서 인상 깊은 것은 단연 여성들의 얼굴이다. 과연 셋 중에 누가 총을 가져갔을까 궁금해지는, 어머니와 두 딸뿐 아니라 잠깐 등장하는 큰딸의 친구까지 이들 모두 폭력적인 구조의 피해자라는 사실을 (솔직히 영화 보기 전부터) 관객이 여실히 느낄 수 있다.
영화에서 이들의 얼굴은 이따금 절반씩 나뉘어 다른 빛 아래 놓인다. 친구의 다친 얼굴은 처참한 피범벅이 되어 있는데, 코를 기점으로 반대쪽에서 보면 그 상처를 눈치채지 못할 만큼 말끔하다. 그 얼굴을 영화는 햇빛 아래 공들여 오래 보여준다. 마치 보라는 듯이. 현실의 참혹한 이 상처를, 보라는 듯이. 이 느낌은 이후 캠코더 앞에 선 큰딸과 엄마의 얼굴에서 재현된다. 캠코더 화면 안에서 이들의 얼굴 절반은 어둠 속에 가려져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나머지 반쪽 얼굴은 빛을 받아 새하얗게 드러난다.

이는 살뜰한 시중 손길을 받던 아버지의 얼굴과 매우 대조적인데, 그의 얼굴은 아내의 세심한 손길을 받지만, 물로 씻고 머리를 빗어 넘기고 잔털 관리까지 꼼꼼하게 이루어지지만, 역실 불빛 아래 클로즈업된 그의 얼굴은 분명 밝은 빛 아래 있음에도 살아있는 신체보다는, 마치 명화 속에 이미 베어버린 목처럼 보인다. 이는 어둠과 피에 절반이 묻히고, 눈물 혹은 불안을 감추지 못한 채로도 생명력이 하얗게 빛나던 여자들의 얼굴과 대조적이다.
어쩌면 이 얼굴이 이란이라는 나라의, 그리고 기본권 수준의 자유와 권리를 억압하는 모든 국가 폭력과 싸우는 나라들의 얼굴이 아닐까 생각한다. 베어버린 목처럼 보이는 얼굴들이 지배구조를 짠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서 어둠과 피에 짓밟혀도 빛 아래 생명력이 형형한 얼굴들이 일어나고 있다. 권위적인 반지를 낀 손은 그 빛나는 얼굴들을 결코 파괴할 수 없다.

체호프의 총이 반드시 쏘아져야 하듯이, 불씨가 댕겨진 혁명은 반드시 타올라야 한다. 이란의 여자들도 영화들도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그 주요한 분기점을 함께 숨 쉬고 있는 이 순간, 이 '신성한 나무의 씨앗'이 어떻게 피어나 무엇을 뒤덮고 자라나는지 지켜보기로 한다.
Relative contents
-
- 퍼석한 사막 위에 찍어낸, 묵직한 첫 발자국
듄 (DUNE, 2021)
개봉일 : 2021.10.20. (한국 기준)
감독 : 드니 빌뇌브
출연 : 티모시 샬라메, 레베카 퍼거슨, 오스카 아이삭, 제이슨 모모아, 조슈 브롤린, 하비에르 바르뎀, 젠데이아 콜먼, 스텔란 스카스가드
퍼석한 사막 위에 찍어낸, 묵직한 첫 발자국
<듄>이 개봉하기 전, 이런 카피가 정말 많이 보였다. “반지의 제왕을 이을 시리즈의 탄생”이라고. <반지의 제왕>을 이을 작품? 대체 어떤 세계관을 갖고, 어떤 영화를 만들어냈길래 이렇게 야심만만한 카피를 내놓을 수 있는 걸까?
애정 하는 배우 티모시 샬라메의 출연과 드니 빌뇌브 감독이 작품을 연출한다는 소식, 그리고 영화의 원작 소설 <듄>이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SF의 오래된 뿌리이자 대작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그와 동시에 티모시 샬라메의 해변 스틸컷 한 장을 보는 순간 이 영화를 기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체 어떤 비주얼의 영화가 나올지 쉽게 상상 되지 않았다.
<듄>이 개봉 전부터 폭발적인 관심을 끌며, 용광로처럼 펄펄 끓는 티켓 파워를 보여주는 바람에 아이맥스로 예매하기도 참 어려웠다. 꼭 큰 화면, 아이맥스로 보라는 말에 “이 영화의 1회차는 무조건 아이맥스다!”하고 뛰어들었는데 모두가 같은 생각이었나 보다. 이 영화는 아이맥스 또는 돌비관에서 봐야 한다고 말이다.
여차여차 아주 어렵게 개봉 당일에 만난 <듄>은 말 그대로 나에게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었다. 방대한 원작의 세계관의 아주 일부에 해당하는 분량이었지만 그럼에도 그토록 압도적일 수가 없었다.
이번에 개봉한 Part1에서는 묵직한 사건과 반전 같은 것 없이 꽤나 친절하게 세계관을 설명하고, 이제 막 주인공이 새로운 길을 찾으려는 찰나의 순간을 담아냈다. 오프닝을 이렇게 엄청나게 찍어버리면 다음 편은 어떤 영화가 될지, 벌써부터 심장이 떨린다.
긴 호흡으로 나뉘는 호불호
SF 시리즈라는 타이틀 때문인지 <스타워즈> 시리즈와 비슷한 느낌을 기대할 수 있으나 두 작품은 결이 조금 다르다. 우선 주 배경이 되는 환경이 드넓은 우주와 삭막한 사막 행성으로 다소 차이가 있고, 스타워즈가 화려한 색감을 뽐내는 우주 활극이 주가 되는 느낌이라면, 듄은 삭막한 우주 행성에서 살아가는 인간들 사이에 여전히 존재하는 위계질서와 지배욕. 그리고 두려움에 맞서 길을 찾는 주인공의 성장 담을 지켜보는 게 주가 되는 느낌이다. 물론 <듄>이라는 영화도 시각적으로도 상당히 훌륭한 영화긴 하지만 말이다.
재빠르고 역동적인 SF를 선호하거나, <듄>에 그것을 기대했다면 영화가 주는 러닝타임의 압박감과 느긋함에 쉽게 눌려버릴지도 모르겠다. 이 부분에서 호불호가 좀 많이 나뉘는 것 같다.
드니 빌뇌브 감독님의 전작을 보며 그의 영화는 호흡이 다소 긴 편이라고 느꼈던 순간들이 있는데, <듄> 또한 드니 빌뇌브 감독 특유의 긴 호흡이 제대로 담긴 영화라는 느낌을 받았다.
개인적으론 지루할 틈 없이 본, 마음을 뒤흔드는 대작이라고 생각했지만! 드니 빌뇌브 감독의 호흡이 취향에 맞지 않거나, 하나의 사건을 중심으로 1편이 깔끔히 마무리되는 걸 원했던 관객이라면 충분히 지루하다, 진행된 것 없이 이야기가 끊긴다. 같은 불호평을 이야기할만하다고 생각한다.
웅장한 세계관의 시작
하지만 이 이야기는 제목처럼 Part.1. 챠니의 대사처럼 이야기는 “이제 시작일뿐”이다. 영화를 통해 이 웅장한 세계관을 어떻게 담아낼지 기대된다.
연료로 쓰이는 귀한 재료 스파이스와 명예, 부. 그리고 아라키스 행성을 두고 이어지는 아트레이데스, 하코덴 가문. 프레멘들의 대립 속에서 가문과 자신을 위해 두려움에 맞서야 하는 소년 폴의 성장과, 복잡한 이해관계로 얽힌 세계관을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 그리고 폴은 어떤 길을 선택할 것이며 그가 정말 운명을 바꿀 선택받은 자인지. 이 세계를 관통하는 답이 과연 존재하는 것인지. Part.1을 보고 궁금한 것이 정말 많아졌다.
사실 <듄> Part.1이 개봉하기 전, 원작을 꼭 읽어보리라 다짐했는데 1편의 두께에 압도되는 바람에 개봉 전에 원작을 읽는데 실패했다. 하지만 Part.1을 보고 나니 꼭 원작을 완독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편이 나오기 전에 꼭 원작을 완독하리라!
드니 빌뇌브 감독님은 2편에선 더 발전된 액션들이 많이 나올 것이라 언급했는데, Part.1에서 다소 아쉽게 느껴졌던 ‘액션의 부재’가 보완된, 시작 그 이상의 작품이라니. 기대감에 현기증이 날 지경이다. 이런 영화는 최소 2-3편까지 찍어놓고 순차 개봉해야 하는, 그런 법이라도 만들어야 하는 게 아닐지.
작품 속 세계, 새로운 행성에 빠져들다.
퍼석한 사막의 모래와 뜨겁게 달아올랐다 이내 날카롭게 식어버리는 공기. 휘몰아치는 모래의 입체적인 질감과 모든 장면들에 역동적인 숨을 불어넣는 한스짐머의 음악들. <듄>은 시각과 청각을 완벽히 빼앗으며 영화 속 인물들이 서있는 10191년, 아라키스 행성으로 관객들을 이끈다. 극장에서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경험, 새로운 세계와의 황홀한 만남이 이 영화 안에서 이루어진다.
이 시리즈는 드니 빌뇌브 감독의 역작이 될 것이며 티모시 샬라메의 <콜미 바이 유어 네임>을 이길 대표작이 될것이라 믿어의심치 않는다. 마치 다니엘 레드클리프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해리포터를 가장 먼저 떠올리듯, 시즌 2,3을 거친 후 티모시 샬라메하면 듄이 먼저 떠오를 때가 올 거라 생각한다.
SF 대작인 <스타워즈> 시리즈를 처음부터 제날짜에 맞춰 극장에서 관람한 세대들을 부러워했었는데, 나도 이제 같이 나이 먹어갈 SF 시리즈가 생겼다는 것에 벅찰 만큼 기쁜 순간이다. 나중에 “나는 듄 1편부터 개봉 당일 아이맥스로 봤다 이거야~” 하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는 순간이 오겠지?
듄 시놉시스
10191년, 아트레이데스 가문의 후계자인 폴(티모시 샬라메)은 시공을 초월한 존재이자 전 우주를 구원할 예지된 자의 운명을 타고났다. 그리고 어떤 계시처럼 매일 꿈에서 아라키스 행성에 있는 한 여인을 만난다. 모래언덕을 뜻하는 '듄'이라 불리는 아라키스는 물 한 방울 없는 사막이지만 우주에서 가장 비싼 물질인 신성한 환각제 스파이스의 유일한 생산지로 이를 차지하기 위한 전쟁이 치열하다. 황제의 명령으로 폴과 아트레이데스 가문은 죽음이 기다리는 아라키스로 향하는데… 위대한 자는 부름에 응답한다, 두려움에 맞서라, 이것은 위대한 시작이다.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아트레이데스 가문과 하코덴 가문
아라키스 행성을 오래 지배하던 하코덴 가문은 모래 위 스파이스를 쓸어 담으며 아라키스의 원주민인 프레멘들을 억압한다. 프레멘들은 그들을 잔혹한 외지인이라 칭했으며, 하코덴 가문은 아라키스 행성이 가진 스파이스에 눈이 멀어 배려와 양심 따위는 멀리 집어던지고 탐욕스레 스파이스를 긁어낸다.
그러던 어느 날, 계략을 세운 황제가 아트레이데스 가문에게 아라키스의 관리를 맡기게 된다. 소식을 들은 하코덴 가문은 우리가 다 일궈 논, 우리의 행성이라며 이를 갈다 제국과 협력해 아트레이데스 가문을 공격한다.
아트레이데스와 하코덴은 사촌 사이지만 지향하는 바가 좀 다르다. 하코덴은 아라키스 행성을 완전히 지배하는 것이 목적이고, 아트레이데스는 프레멘들과 협력해 그들의 힘을 빌리는 것이 목적이다. 결국 자신의 이익을 위한 선택인 것은 맞지만, 이익을 위해 협력을 부탁하는 것과 무조건적인 지배를 원하는 건 꽤 큰 차이가 있다.
하코덴 가문과 달리 아트레이데스 가문은 프레멘과의 소통을 시도하고, 스파이스 수확기 안의 인부를 구하려 보호막 장치를 내버리는 결단을 내린다. 던컨은 프레멘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그들을 뛰어난 전사라 칭하기도 한다.
아트레이데스 가문은 제국과 하코덴 가문이 원했던 지배와 피지배층의 관계가 아닌 서로를 존중하는, 평등한 위치의 관계를 지향한다. 폴은 이러한 아버지의 뜻을 따라 프레멘들의 힘을 빌리기 위해 그들의 마을로 합류한다.
Part1.에선 프레멘, 제국+하코넨 , 아트레이데스의 삼각구도였다면, 다음 시리즈는 프레멘+아트레이데스, 제국+하코넨(추가적인 대가문들?)의 구도가 되지 않을까?
레토 공작이 남긴 것
새로운 체계를 정비해 가던 중, 첩자와 하코덴 가문의 습격을 받은 아트레이데스 가문은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고 만다. 레토 공작은 하코덴 남작을 앞에 두고 비장하게 죽음을 맞이하며 말한다.
“나 여기 있노라. 여기 남겠노라.”
그는 아트레이데스의 인장 반지를 남기고 세상을 떠난다. 우여곡절 끝에 사막으로 탈출하는데 성공한 폴과 어머니 제시카는 레토 공작이 남긴 반지를 보며 그의 죽음을 알게 된다. 기세를 몰아 하코덴 가문은 다시 아라키스를 점령하기 시작했고, 이제 하코덴 가문에게서 이 행성을 구할 희망은 이 두 사람뿐이다.
폴은 실제 전투 경험이 전무한 상태다. 그는 기초적인 군사훈련을 받았고, 필름을 통해 익힌 풍부한 생존 지식을 갖고 있지만, 아직 한 번도 사람을 찔러본 적 없으며, 미지의 세계에 대한 궁금증과 두려움을 동시에 안고 있는 어린 소년이다.
하지만 폴은 아버지의 죽음과 동시에 아트레이데스 가문과 아라키스 행성의 운명을 짊어지게 된다. “내가 과연 선택받은 자일까?” 반문하고 있을 틈이 없다. 폴은 두려움에 맞서 아버지가 원했던 바른길을 찾고, 자신이 힘없는 어린애가 아님을 증명해야 한다. 아주 작은 사막 쥐 한 마리도 자신만의 길을 찾아 이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남고 있는데, 이 소년이라고 못할 것이 있겠는가.
“두려움은 소멸을 가져오는 작은 죽음이다.
두려움이 지나가면 마음의 눈으로 그 길을 보리라.
그 길을 지나면 나만 남으리.”
프레멘 마을을 찾아 떠나는 길, 폴은 폭풍을 피하지 않고, 비행체의 방향을 바꿔 폭풍 속으로 들어간다. 두려움을 피하기보단 직접 부딪히고 경험해야 두려움을 이겨내고 진정한 나를 찾을 수 있다는 제시카의 오래된 가르침을 직접 행하는 첫 순간이다.
“제 길은 사막에 있어요.”
폴은 가문의 반지를 끼고, 아버지가 원했던 이 행성의 힘을 찾기 위해 사막에 남기로 결정한다. 길이라곤 보이지 않고, 날카로운 모래폭풍만이 불어오고 있지만 그 사이 어딘가엔 아버지가, 우리가 바라던 답이 있을 것이라 믿으면서.
과연 폴은 하코덴 가문과 제국의 검은 속내를 쓸어내고, 닥쳐올 전쟁을 막을 수 있을까? 나의 편의와 이득을 위해 싸우고, 지배하고. 끝없는 이기심을 뿜어내는 존재들을 이겨내고 말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예리하게 변하는 폴의 눈빛에서 짙은 결연함이 느껴진다. 이 소년의 이야기는 이제 시작일뿐이다. “내가 선택받은 자가 맞을까?” 두려워하고 고민할 시간이 없다. 두려움에 사로잡히기 전에 두려움과 그것을 만들어내는 존재들에 맞서 싸워야 한다. 두려움에 묻혀버린 진짜 나의 길과 답을 찾기 위해서.
친절히 세계관을 설명하는데 꽤나 긴 시간을 할애한 파트다 보니 영화 자체의 긴장감이나 속도감이 강하게 느껴지진 않았지만, 나에겐 충분히 차고 넘치는 영화였다. 오래 기다린 보람이 있다. 진심으로.. 다음 편이 시급하다.
-
- 영화 숨바꼭질 줄거리 결말 | 실화라서 더 무서운 이야기
어렸을 때 숨바꼭질 많이 하셨죠?!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라는 노래가 이렇게 무서운 노래인지 몰랐어요.
저는 영화 편식이 없습니다. 단 호러, 스릴러, 무서운 거, 짱 무서운 거, 짱짱!! 무서운 거 절대 네버! 에버! 무조건! 걸러요! 왜냐면... 무서워서...
근데? 제가 영화 숨바꼭질을 봤어요?... 이때 당시 난 왜 봤으까...? 그래서! 겁이 많아도 볼 수 있다!!! 나도 봤으니까 라고 말하고 싶어 가지고 온 영화! 숨바꼭질 리뷰 시작해 보겠습니다~
기본정보장르 : 호러, 스릴러, 범죄감독 : 허정출연진 : 손현주, 문정희, 전미선개봉일 : 2013년 08월 14일평점 : 6.74스트리밍 : 웨이브. 넷플릭스기획의도우리 집에 낯선 사람이 숨어 살고 있다면?..고급 아파트에 완벽한 가정을 꾸리고 사는 성공한 사업가 '성수'는 하나 뿐인 형에 대한 비밀과 지독한 결벽증을 갖고 있다. 어느 날 그는 형의 실종 소식을 듣고 수십 년 만에 찾아간 형의 아파트에서집집마다 새겨진 이상한 암호와 형을 알고 있는 '주희'가족을 만난다.사라진 형. 숨바꼭질 암호. 서로 다른 두 가족에게 찾아온 충격적인 진실. 가족을 지키기 위한 두 가장의 숨 가쁜 사투가 시작된다!여담영화 숨바꼭질 개봉 전 손현주의 명품 연기를 기평이 높았으나, 막상 영화에서 문정희의 광기의 연기가 엄청 났다.'이건 우리 집이야! 우리 집이라고!' 외치는 무주택자의 서러움과 동시에 왜 나왔는지 모르는 설정과 억지 전개로 아쉬운 작품으로 남았다.무엇보다 한국 공포의 고질적인 문제점인 큰 사운드에만 의존하여 스토리와 개연성이 와장창 무너져 버린 영화로 남았다.후기 및 결말영화 숨바꼭질 결말을 살펴보자면 모든 사건의 시작은 블랙 헬멧을 찾아야 하는데 그 범인은 문정희 였다. 그녀는 가족을 살해하고 그 곳에 딸과 거주하는 패턴으로 이사를 하며 살았다. 이번 타깃은 손현주 가족으로 노렸으나, 손현주의 눈썰미로 문정희가 집에 집착한다는 사실을 이용하여 집에 불을 질러 문정희는 불을 끄며 생을 마감한다.손현주 가족은 트라우마로 미국으로 떠나지만... 아직 그 집에는 문정희 딸이 숨어 있으며 영화는 마무리가 된다...영화 숨바꼭질은 예전 집집마다 동그라미, 세모, 네모 등 가족수를 나타내는 이야기가 실제로 존재하였고 그것을 모티브로 삼아 영화를 만들어서 더욱더 무섭게 다가왔다. 고구마 백만 개가 숨어있지만!나름 볼만한 했던 영화 숨바꼭질 이였습니다.
-
- <공조2> 잘못된 첫 단추가 굴려 보낸 스노우볼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북미 수교를 앞두고 국제 마약 밀매 조직의 우두머리인 ‘장명준(진선규)'이 '잭(다니엘 헤니)'이 이끄는 FBI에 의해 뉴욕에서 검거되자, ‘림철령(현빈)'은 그를 인도받기 위해 미국으로 향한다. 그러나 장명준은 호송 중에 탈출에 성공하고, 그가 남한에 들어간 것을 알게 되자 철령도 다시 한번 휴전선을 넘는다. 한편 수사 실패 이후 광수대 복귀를 노리던 '강진태(유해진)'도 또 한 번 철령과의 공조 수사에 자원한다. 한 층 더 돈독해졌지만 여전히 서로를 의심하면서 공조 수사를 펼치던 철령과 진태. 그러나 눈앞에서 장명준을 놓친 잭이 남한에 오면서 세 형사 사이에서는 긴장감이 피어오르고, 미처 알지 못했던 장명준의 진짜 계획이 드러나면서 공조 수사는 위기에 봉착한다.
2017년 설 연휴에 개봉해 781만 관객을 동원했던 <공조>는 예상치 못한 흥행 성공을 일구어냈다. 현빈과 유해진의 케미가 돋보이는 가운데 짧은 분량 속에서도 시선을 사로잡은 윤아의 푼수 연기, 강렬한 악역의 존재감과 나름 짜임새 있는 액션의 조합이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낸 결과였다. 그래서인지 <공조2: 인터내셔날>은 전편의 성공방식을 고스란히 취하되, 규모를 착실히 키우며 관객들이 좋아할 만한 포인트로 잔뜩 무장한 종합 선물세트로 돌아왔다.
성공 공식을 답습한 <공조2>의 명암
실제로 <공조2>는 전작에 비해 한층 돈독해진 림철령과 강진태의 케미에 새로운 인물인 잭을 더해 더 다채로운 관계를 만들어내며 분위기를 환기한다. 민영과 철령의 로맨스 코미디도 잭 덕분에 삼각관계로 발전한다. 뉴욕에서의 총격전처럼 한층 커진 스케일이 돋보이는 장면도 눈을 사로잡는다. 이러한 결과물은 전편처럼 명절 연휴를 겨냥한 선택이 상업적으로 적중할 것 같다는 인상을 준다. 메가폰을 잡은 이석훈 감독이 <댄싱퀸>, <히말라야>, <해적: 바다로 간 산적> 등을 흥행시킨 전력이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명절 연휴를 겨냥한 흥행이 점쳐지는 것과는 별개로 <공조2>의 결과물은 실망스럽다. 동일한 성공 방정식을 활용했지만 전편에 비해 영화의 톤과 분위기는 일정치 않다. 많은 이들이 좋아할 다양한 상차림을 펼친 것과 달리 정작 메인 디쉬는 없는 듯 보이고, 깊은 맛도 부족하다. 그래서 영화의 전반적인 완성도가 하락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그 중심에는 장명준과 림철령이 있다. <공조2>는 새로운 인물인 장명준의 서사를 펼쳐 보이면서 스타트를 끊는데, 첫 단추에서 시작된 불협화음이 거대한 스노우볼로 이어진다.
<공조>와 <공조2>의 결정적 차이
당장 오프닝 장면부터 <공조2>는 전작과 매우 유사하다. 일전에 '차기성(김주혁)'의 범죄를 막으려다가 실패하고 사랑하는 아내를 잃었던 림철령은 이제 장명준의 범죄와 탈출을 막는 데 실패하고 아끼는 동료를 잃는다. 이후 차기성처럼 남한으로 향한 장명준을 쫓아 철령은 다시 한번 휴전선을 넘어 내려오고, 진태를 만나 공조 수사를 펼친다. 여기까지만 보면 <공조2>는 전편이 개척한 길을 착실히 뒤따르는 듯 보인다. 그러나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다. 바로 극의 주도자가 다르다는 점이다.
<공조>는 한 마디로 말해 림철령의 복수극이다. 자신이 신뢰했던 상관의 손에 아내를 잃은 철령의 복수심이 극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지배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철령의 시점에 몰입한 관객들은 자연히 차기성을 응징하고 싶다는 감정을 갖게 되고, 그 덕분에 감정의 밀도가 자연히 높을 수밖에 없다. 반면에 <공조2>는 장명준의 복수극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 사람들을 먹여 살릴 외화를 벌기 위해 당의 명령을 따라 군인의 명예도 버리고 마약 밀거래를 시작한 장명준. 그러나 그는 자신이 벌어온 외화가 북한 사람들이 아니라 권력자의 수중에 떨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당과 국가에 대한 충성심을 버리고 범죄자의 길을 택한다. 이후 북한 정권에 의해 가족이 처형당한 사실을 알고서는 북한 측 10억 달러의 비자금을 훔쳐 복수를 실행할 미끼로 삼는다.
따라서 작중 모든 사건과 에피소드는 장명준에 의해 발생하며, 공조를 펼치는 세 형사는 그 사건들에 휘말리는 수동적인 캐릭터에 불과하다. 그들은 장명준이 숨기는 진짜 목표와 계획을 알아내기 위해 동분서주할 뿐, 그의 큰 그림과 동기가 무엇인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좀처럼 파악하지 못한다. 그 결과 뉴욕이나 폐공장, 클럽 VIP룸과 북한 대사 숙소처럼 장명준과 주인공들이 직접적으로 대면하거나 충돌하는 시퀀스를 제외하면 이들 간에는 직접적인 관련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장명준과 세 형사의 서사는 하나의 이야기로 긴밀하게 엮이는 대신 다 따로 노는 듯 보인다.
달라진 주도자가 밀어버린 스노우볼
물론 장명준을 스토리텔링의 전면에 내세우는 선택은 나름의 순기능이 있다. 각 캐릭터에게 보다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제공되고, 그 공간에서 펼쳐지는 티키타카는 익숙함과 새로움 사이를 오가는 <공조2>의 매력 포인트이기 때문이다. 장명준을 매개로 잭이 공조수사에 투입되어 림철령과의 라이벌리를 조성한 결과 강진태의 큰 형 리더십이 돋보이는 것 대표적이다. 또 빌런과의 직접적인 연관성 혹은 복수해야 할 필연적인 이유도 없기에 림철령은 한결 여유롭고 느긋해질 수 있으며, 그래서 철령과 진태의 관계에서는 익숙한 듯 새로운 면모가 엿보인다. 이에 더해 조연이었던 민영의 역할이 늘어나 로맨틱 코미디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 변화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달리 말해 영화를 구성하는 다양한 에피소드 간의 집약성이 현저히 낮아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냉정하게 따져보면 사실 장명준은 철령에게 잔혹한 짓을 저지르지 않는다. 비록 뉴욕에서 철령이 동료를 잃기는 하지만, 눈앞에서 아내가 살해된 것에 비하면 정서적인 유대감이 느껴지지 않는 동료가 죽는 것은 몰입도를 높일 수 있는 기제라고 보기 어렵다. 즉, <공조2>는 전편만큼의 무게감이 느껴지는 동기를 대체할 수 있는 요소를 찾아야 했다. 이때 영화는 굳이 장명준과 주인공들의 관계성을 강화시키기보다는 장명준이라는 빌런의 캐릭터성을 강화하여 옅은 관련성을 가리려는 듯 보인다. 악역의 잔혹함이 위험성을 직관적으로 각인시켜 주인공들과의 대립에 개연성을 더하는 것이다. 그래서 마약 밀수를 통해 북한 정권의 비자금을 확보하고, 이를 통해 사적으로나 공적으로나 복수하려는 장명준의 서사는 전작의 악역이었던 차기성에 비해 꽤나 상세하게 제시된다. 전편의 철령만큼이나 장명준은 절박하고 다급해 보이는 캐릭터로 비친다.
그런데 정작 카메라의 포커스는 진태, 철령, 잭에게 쏠려 있고 장명준은 국면 전환이 필요한 순간에만 등장하기 때문에 영화는 언밸런스하고 거칠게 느껴진다. 민영이 호감을 느끼자 잭을 질투하는 철령이나 국정원 요원들과 갈등을 빚는 진태처럼 부차적인 장면들이 거듭 더해지다 보니 장명준의 존재감과 복잡한 서사를 소화해낼 충분한 비중과 분량은 미처 주어지지 않는다. 다양한 서브플롯 중 무엇을 희석시키고 무엇을 농축시켜야 할 지의 판단이 잘못된 것이다. 림철령과 잭이 아니라 현빈과 다니엘 헤니라는 배우의 이미지를 담기 위해 심심할 때마다 등장하는 슬로 모션은 이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전편을 좋아했을 관객들에게 추파를 보내기에 바빠 극의 전반적인 밸런스를 좀처럼 잡지 못하는 것이다.
피할 수 없는 산만함
결국 전편이 이야기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액션과 코미디를 활용했다면, 이번 편은 액션과 코미디를 보여주기 위해 이야기를 짠 것처럼 보인다. 액션이 등장할 때, 민영과 함께 코미디가 나올 때, 강진태의 가족 드라마가 펼쳐지고 장명준의 범죄 행각이 묘사될 때마다 영화의 톤과 템포가 전혀 다른 작품을 이어 붙인 듯 널 뛰는 것이 그 방증이다. 그래서 악역인 장명준은 망설임 없는 잔혹한 악행과 독특한 비주얼, 림철령에 견줄 만큼 날렵한 액션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극에 녹아들지 못한다. 전편의 경우 전체적인 서사의 흐름이나 구조가 월터 힐 감독의 1988년 하드보일드 액션 영화 <레드 히트>와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비판을 받았는데, 속편은 그보다도 못한 부실한 서사를 선 보이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공조2>는 산만하다는 인상을 피할 수 없다.
이에 더해 영화가 중심을 못 잡는 사이 커진 스케일 사이로는 구멍이 숭숭 뚫린 장면도 발견된다. 새로운 캐릭터인 FBI 형사 잭을 투입하기 위한 배경 설정이 대표적이다. 코로나 이전에 기획된 작품이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영화는 남북 공조에 미국을 개입시키기 위한 지렛대로 북미 관계의 개선이라는 소재를 끌고 온다. 북한과 미국이 안정적으로 정식 수교 관계를 맺기 위해 잭이 뉴욕에서 검거한 북한 측 범죄자 장명준을 림철령에게 인도하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싱가포르에서 열리기로 했던 북미 고위급 회담이 서울에서 개최된다는 것이나 평창올림픽 당시 김영철의 방남을 연상케 하는 내용도 <공조2> 배경의 시점을 쉽게 짐작할 수 있게 한다. 문제는 북미 관계의 결말을 알고 있는 2022년 현재 시점에서, 추석을 앞두고 북한이 핵을 포기할 수 없다고 선언한 상황에서 이러한 배경 설정은 무리수로 느껴질 여지가 충분하다.
물론 이를 그저 영화 전개를 위한 가상의 설정으로 볼 수도 있다. '인터내셔널' 대신 촌티가 느껴지는 '인터내셔날'이 부제목인 데에는 첨예한 국제 정치의 현실을 스크린 속으로 끌고 오지 않겠다는 의도가 느껴진다. 또 명절에 걸맞게 웃기는 액션 영화로 남겠다는 <공조2: 인터내셔날>의 정체성과도 맞닿아있다. 비록 코미디가 신선하다고 보기 어렵고 휴지 대신 파리채를 쓰는 액션씬이 인상적이라고 보기도 어렵지만, 웃음을 강요하지 않으며 나쁜 놈은 벌 받고 착한 사람은 이기는 액션은 <공조2>가 목적을 이루는 데에 충분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공조2>의 완성도는 더욱 실망스럽다. <오징어 게임>, <수리남>처럼 명절을 겨냥한 장르물이 OTT로 공개되는 가운데 명절 영화라는 이유로 못 만든 영화라는 비판을 피해 가는 기획과 제작에 어떤 의의가 있을지 의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땅한 경쟁작이 없는 상황에서 빈집 털이에 가까운 <공조2>의 성공 역시 과연 유의미하다고 볼 수 있을지, 그 의문을 피할 길은 없어 보인다.
D(Dreadful, 끔찍한)
흥행만을 노리는 선물 세트에 담긴 한국 상업 영화의 절망편
-
- [시사회] 세련된 음악과 깔끔한 영상, 가이 리치의 쿨한 액션. 역사영화보단 오락영화에 가까운.
안녕하세요! 지난 3월 11일 씨네랩 크리에이터로 가이 리치 감독의 신작, <언젠틀 오퍼레이션>의 시사회에 참석하게 되어 후기를 작성해보려 합니다. 개인적으로 제 인생 첫 시사회였던지라 기대가 컸는데요. 액션 영화에 일가견이 있는 가이 리치 감독의 영화인 만큼 믿고 영화관에 입장했습니다.
시사회 기념 무대인사 시간이 있었습니다. 강철부대 W 출연진 분들이 오셨는데요. 군인의 입장에서 어떤 부분에 몰입이 되었는지, 어떤 부분이 흥미로웠는지에 대한 코멘트도 있었습니다. 작전 수행에 있어 폭발물을 다루는 장면처럼, 복무 당시에 수행했던 임무와 관련된 장면에서 더 집중이 되었다고 하시더라고요.
<언젠틀 오퍼레이션>을 관람하는 대부분의 관객들을 놀라게 하는 지점은 아마 해당 작품이 실제 작전을 배경으로 제작되었다는 점일 겁니다. 사실 저는 역사에 그리 조예가 깊지 않아 해당 작전에 대해 잘 알지 못했는데요, 해당 작전의 실제 이름은 “오퍼레이션 포스트마스터”였다고 합니다. 영화가 끝날 무렵 실제 임무를 수행했던 요원들의 사진과 정보들을 확인할 수 있는데요,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실제 배경을 기반으로 제작된 영화이다 보니 더욱 놀랍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나치군에 맞서는 유쾌한 액션 영화 중에서는 이미 수작으로 꼽히는 영화가 있습니다. 바로 타란티노 감독의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이죠. 유대인 출신의 미군인 주인공이 동료들을 모아 나치군을 상대로 복수를 펼치는 내용입니다. 특유의 유머 코드, 시원한 액션으로 유명한 영화인 만큼 <언젠틀 오퍼레이션>의 시놉시스를 읽은 후부터 해당 작품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는데요. 가이 리치 감독이 풀어낸 ‘나치에 맞서는 최정예요원들’ 이야기는 어떨까요? <언젠틀 오퍼레이션>은 이야기를 풀어갈 때에 어떤 지점에 차별점을 두었다고 느꼈는지에 대해 얘기해보려 합니다.
가장 먼저 언급하고 싶은 것은 음악입니다. 센스 있는 음악이 영화 전반에서 분위기를 더합니다. 영화가 실화를 기반으로 제작되었다 보니 설명적인 구간이 없다고 할 순 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루하지 않고 스타일리시하다고 느끼게 되는 이유는 깔끔한 촬영과 음악 덕분인 것 같다고 느꼈어요. 영화에 사용된 개성 넘치는 음악은 목숨을 건 작전을 수행하는 중에도 충분히 즐기는 것이 중요한, 비범하다 못해 미친 것 같은 주인공들과도 잘 어울립니다.
또한 <언젠틀 오퍼레이션>은 막힘 없는 액션을 보여줍니다. ‘스토리상 정예요원이라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 많은 군인들을 상대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많은 나치군이 등장하는데요. 이렇게 가졌던 의문이 무색하리만큼 가차없는 액션을 선보입니다. 박진감보단 후련함에 가깝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추풍낙엽처럼 쓰러지는 나치군들을 볼 수 있는 장면들이 자주 등장합니다. 액션 장면을 원 없이 보고 싶으셨던 분들은 반가워할 작품일 것 같습니다.
더불어, 눈을 뗄 수 없는 주인공들의 비주얼이 만족감을 더합니다. 개봉 후엔 이 지점이 입소문을 타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요ㅎㅎ…
출중한 비주얼의 배우들이 가이 리치 감독 특유의 분위기와 만나 시너지를 낸다고 느꼈습니다. 배우들의 다른 필모가 궁금해질 만큼 러닝타임 동안 각각의 매력이 잘 드러났습니다.
특히, 라센 역할을 맡은 앨런 리치슨은 오프닝 시퀀스부터 강렬하게 시선을 사로잡았습니다. 영화를 본 분들이라면 모두 공감하실 거예요.
다가오는 봄, 가까운 사람들과 시간을 보낼 때에 즐거움을 더해줄 영화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스타일리시한 액션 영화를 좋아하는 분,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전쟁 영화를 좋아하시는 분들께 추천 드리고 싶은 영화 <언젠틀 오퍼레이션>이었습니다!
TRANSLATE withx
EnglishTRANSLATE withEnable collaborative features and customize widget: Bing Webmaster Portal
-
- 생애 첫 뮤지컬 영화 도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리뷰
스티븐 스필버그가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로 돌아왔다.
그의 첫 뮤지컬 영화로 큰 화제를 모은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이미 1957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된 뮤지컬이 원작이다.
미국의 유명한 지휘자이자 연주자인 레너드 번스타인이 작곡하고, <컴퍼니> <스위니 토드> 등을 작사한 스티븐 손드하임,
그리고 저명한 안무가 제롬 로빈스가 힘을 합쳐 만든 뮤지컬이다.
이후 1961년, 원작자 제롬 로빈스는 직접 메가폰까지 잡아 로버트 와이즈와 함께 영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를 만든다.
어릴 적 이 영화를 보고 크게 매혹된 스티븐 스필버그가 오랫동안 리메이크의 꿈을 키우다 이제서야 개봉을 맞게 된 것이다.
헐리우드의 장인인 그가 만든 이번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역시나 현란한 볼거리가 가득한 영화다.
때는 1940년대. 뉴욕의 할렘가 변두리 마을을 주름잡는 ‘제트파’는 백인 남성 젊은이 무리다.
이들은 푸에르토 리코 남성 젊은이들 무리인 ‘샤크파’와 매일같이 반목하는 앙숙 관계다.
이미 온 마을 사람들과 경찰들까지도 이들의 대립을 잘 알고 있는 상황. 제트파는 여느 날과 다름없이 샤크파를 공격하며 서로 싸움을 벌인다.
제트파의 리더 리프(마이클 파이스트)와 샤크파의 리더 베르나르도(데이비드 알바즈)는 경찰 슈랭크(코리 스톨)의 제재에 가까스로 꼬리를 내린다.
조만간 체육관에서 열릴 무도회를 앞두고, 리프는 얼마 전 교도소에 복역했다 돌아온 친구 토니(안셀 엘고트)에게 함께 춤을 추러 오라고 종용한다.
하지만 가석방 기간 중인 토니는 괜한 문제를 만들고 싶지 않아 사양한다. 그는 얌전히 발렌티나(리타 모레노) 할머니의 상점에서 일손을 거두며 철 없던 지난날을 반성하는 청년이다.
한편, 베르나르도의 여자친구 아니타(아리아나 데보스)와 여동생 마리아(레이첼 지글러)는 무도회에 가기 전 들떠 있다.
베르나르도는 자신의 믿음직스러운 회계사 친구 치노를 마리아의 무도회 파트너로 소개해준다. 무도회장에서 제트파와 샤크파는 역시나 서로를 견제하며 춤을 즐긴다.
어설픈 치노와 어떻게 춤을 춰야 할지 망설이는 마리아, 그리고 리프의 부탁에 무도회에 잠깐 들른 토니는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눈이 마주치며 서로에게 반한다.
함께 춤을 추려 하지만 베르나르도에 의해 저지당한다. 둘은 서로를 사랑하지만 사랑할 수 없는 입장에 놓인 셈이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이야기는 사실 누구나 다 아는 익숙한 러브 스토리이다.
서로를 열렬히 사랑하는 남녀, 하지만 그 사랑을 가로막는 압력. 그래서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로미오와 줄리엣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두 주인공이 마리아의 창밖 철제계단에서 조심스럽게 노래를 부르는 장면은 가장 유명한 장면이지만 동시에 위험한 사랑에 빠진 로미오와 줄리엣의 분위기를 풍긴다.
무엇보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스펙터클한 볼거리들로 인해 뮤지컬 영화로서 매우 만족스럽다.
실제 뮤지컬에서 활동하는 배우들을 기용한 덕에 절도 넘치면서도 유연한 군무가 매우 인상적이며,
특히 유명한 넘버 ‘투나잇(Tonight)’에서 인물들이 각자 서로 다른 욕망을 품은 모습들이 교차로 편집된 몽타주는 영화의 화려한 분위기를 한층 고양시킨다.
또한 원작과 조금씩 다른 위치나 상황에 배정된 넘버들도 있어, 서로 비교하면서 더 즐거운 감상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씨네랩 에디터 Hezis
-
- 트라우마의 다른 모습들
우리는 살면서 때론 피해자가 되고 때론 가해자가 될 때도 있다. 어느 누구도 가해자가 되길 바라지 않는다. 가해자는 누군가에게 피해를 입혔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비록 범죄나 심각한 폭력에 연루되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아주 사소한 일상에서 우리는 종종 억울함을 느낄 때가 있고 반대로 다른 사람에게 작은 피해를 입힐 수도 있다. 그런 사소한 문제들을 서로 이야기하고 용서해가면서 서로에 대한 신뢰를 얻고 또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는 것은 우리가 평소에 겪는 아주 일상적인 인간관계일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그런 관계에서 서로 생각이 많이 달라질 때가 있다. 서로 오해가 깊어지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 관계는 점점 멀어진다. 다시 예전의 그 관계로 돌아가려고 서로 시도하지만 다시 과거와 같은 관계를 회복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서로 떨어져 각자의 삶을 살고 서로 가끔씩 연락을 주고받으며 지낸다. 그렇게 상대방이 정확히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감정을 가졌는지 알 수 있는 기회는 없어지고 만다. 특히나 가까운 가족 간에 그런 관계가 되기 쉽다. 자식이 자라면서 자신의 생각이 생기고 성인이 되면서 어떤 일을 계기로 부모님과 멀리 떨어져 있기 원한다. 서로 대화를 하긴 하지만 부모와 자식 각자가 가진 생각을 정확히 알기는 어렵다. 가지고 있는 불편함 마음을 먼저 털어놓지 않음으로써 최소한의 평화를 지키려 하기 때문이다.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 인물이 회복되는 과정
영화 <더 브릿지>는 각자가 가지고 있는 트라우마와 불편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린지(제니퍼 로렌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에 파견되었다가 차량 이동 중 적군의 공격을 받고 재활치료를 받는 장면이 영화의 초반을 채우고 있다. 정신적 트라우마를 받은 듯한 그는 아주 조용하게 재활에 집중하고 있다. 그가 멍하니 앉아서 허공을 보고 있는 모습과 어려운 재활에 힘들어하는 모습은 그가 가지게 된 트라우마가 얼마나 정상적인 생활을 방해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린지가 재활 치료를 마치고 엄마가 있는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엄마가 있는 집에 가지만 여전히 불편해 보인다. 그는 엄마와 대화를 나누는 것도 어색하게 보이고 집에서 쉬고 있는 린지의 모습도 불편해 보인다. 영화는 그녀가 왜 그렇게 엄마와 집을 불편해하는지 설명하지 않는다. 단지 그가 하는 표정과 행동을 따라가며 여전히 트라우마 속에 갇혀있는 린지의 모습을 비출 뿐이다.
린지는 차 수리를 하러 갔다가 자동차 정비공은 제임스(브라이언 타이리 헨리)를 만나게 되고 여러 가지 상황으로 인해 부득이하게 자주 대화를 하게 된다. 그런데 두 사람에겐 과거의 트라우마에 대한 공통점이 있다. 두 사람은 많은 대화 끝에 그것을 알게 되는데, 린지가 군에서 차량을 타고 이동 중에 적군의 공격을 받아서 얻은 트라우마가 있다면, 제임스는 과거 자신이 가족들을 태우고 운전을 하다가 차가 뒤집히는 사고를 냈다는 트라우마가 있다.
재미있는 건, 린지는 자신이 머무르는 고향 집에서 멀리 떠나려고 하는 것이고 제임스는 반대로 집에만 머무르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영화가 관심을 가지는 건 두 사람이 가진 트라우마를 드러내는 것인데 두 사람이 가진 트라우마는 비슷하지만 무척 다르게 보인다. 린지는 집에서 벗어나고자 택한 곳에서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예상하지 못한 상황을 맞는 반면, 제임스는 최대한 가족들과 같이 집에 머무르고 싶어 하지만 가족들을 떠나고 자신은 떠나지 못한 상황을 맞는다.
서로의 트라우마를 위로하는 린지와 제임스
영화가 따라가는 린지는 사실 어린 시절에 겪은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 오빠가 약물 중독으로 감옥에 간 이후 엄마와 살면서 겪은 불행한 일들이다. 영화에서 정확히 제시되지는 않지만 그때 오빠로 인해 발생한 여러 가지 힘든 상황이 린지의 트라우마를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린지 앞에 나타난 제임스라는 사람은 자동차 사고 이후 자신이 다른 가족들에게 피해를 줬다는 죄책감을 가지고 있다. 린지와 제임스의 결정적인 차이는 바로 죄책감의 유무다.
또한 린지가 제임스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측은함이 있다. 나보다 불쌍하다는 생각, 그러니까 동정심이 더해져 자꾸만 제임스와 밥을 먹고 시간을 보내게 만든다. 아마도 린지는 가족과 자신의 한쪽 다리를 잃은 제임스를 만나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는 펀안함을 느꼈겠지만 한 편으로는 상대방을 보며 약간의 위안을 느꼈을 것이다. 두 사람의 대화 들을 지켜보다 보면 두 사람이 서로에게 이성적인 호감을 가진다고 보기보다는 서로에게 위로를 받고 앞으로의 삶을 이어나갈 수 있는 힘을 얻는 관계로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영화 <더 브릿지>는 린지가 심리적으로 회복되는 과정을 아주 천천히 따라가는 영화다. 영화에는 극적인 순간이 없다. 하지만 불안정한 린지가 집에서 엄마와 겪는 장면들에서는 왠지 모를 불안감이 전달되고, 제임스와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들에서는 뭔가 의지할 대상이 생긴 것 같은 편안함을 느끼게 한다. 마치 린지의 트라우마가 회복되는 과정을 체험하는 것처럼 그 세밀한 감정들을 잘 전달하고 있다. 더 나아가 제임스가 가진 트라우마와 죄책감 역시 무척 설득력 있게 담고 있다. 그래서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왠지 관객도 심리치료를 받은 듯한 느낌을 준다.
린지 역을 맡은 제니퍼 로렌스는 전쟁에서 받은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군인 역할을 무척 실감 나게 하고 있다. 화장기 없는 얼굴과 수수한 옷차림 그리고 왠지 공허하게 느껴지는 그의 눈빛은 진짜 실존하는 군인의 모습처럼 보인다. 그가 제임스와 교류하며 조금씩 눈빛이 살아나고 미소를 보이는 모습은 배우의 연기로 무척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다. 제임스 역을 맡은 브라이언 타이리 헨리는 과거에 코믹한 역할을 많이 맡았던 배우다. 이번 영화에서는 무척 심각한 역할을 맡았는데 트라우마와 죄책감 속에 스스로를 고립시킨 인물을 훌륭하게 소화했다. 이 영화의 제작사는 최근 독립영화와 예술영화 그리고 공포영화에서 존재감을 보이고 있는 A24다. 두 배우의 열연은 애플티비+를 통해서 볼 수 있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구독 할인 행사 중입니다!
주간 영화이야기 뉴스레터!
구독하여 읽어보세요 :)
https://rabbitgumi.stibee.com/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에서도 제 뉴스레터를 구독하실 수 있어요.
https://contents.premium.naver.com/rabbitgumi/rabbitgumi2
-
- 이걸 못봤다고? 시간을 순삭 시켜 버리는 송혜교의 복수극 [더글로리] 완결
영화에취한다 비지니스메일: allwey02@gmail.com
넷플릭스에서 바로보기
-
- 다시 돌아온 공룡!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 이렇게 맥없는 퇴장을??
?Rabbitgumi 입니다!
많은 사람이 사랑하는 공룡들이 다시 극장에 찾아왔습니다.
90년대에 만들어진 쥬라기 공원 시리즈도 엄청난 사랑을 받았었는데요.
2015년 부터 시작된 쥬라기 월드 시리즈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어요.
쥬라기 공원과 동일한 세계관에서 발생된 일이다보니,
이번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에서는 오리지널의 세 박사님들도 등장하게 되죠.
과연 이번 영화는 마지막 유종의 미를 거두었을까요?
영화가 어땠을지 알려드릴게요! :)
자세한 리뷰는 영상을 참고해주세요! :)
그리고 제가 매주 일요일마다 영화에세이를 전달 드리는 Rabbitgumi 영화 이야기 뉴스레터에도 관심을 가져주시고 많은 구독 부탁드립니다!
뉴스레터 구독하기는 아래 링크에서! :)
-
- 영화 <매드 마더> 메인 예고편
오하이오주에서 아들 제이콥을 홀로 키우는 워킹맘 애비.
16살이 된 제이콥이 폭력적인 모습을 보이자 CCTV를 설치해 아들을 감시하기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 날, 잠에서 깬 애비는 방문 손잡이를 돌리다가 전기 충격으로 쓰러지고
정신을 차려 보니 자신이 의자에 묶여 있다는 걸 알게 되는데…
-
- 왓챠 <프레이밍 브리트니> 공식 예고편
[왓챠 익스클루시브]
브리트니 스피어스는 13년간 후견인 제도 때문에 친아버지 제이미에게 삶의 주도권을 빼앗긴다.
소송을 통해 자신의 권리를 되찾으려는 브리트니와 그녀의 화려한 커리어를 살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