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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0th BIFF 데일리] 지금도 울리는 목소리
  • 2025년 5월, 칸영화제 개막 직전. 영화인 380여 명이 “가자지구에서 벌어지는 집단 학살에 침묵할 수 없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수잔 서랜든, 마크 러팔로 등 할리우드 배우, 페드로 알도모바로를 비롯한 유명 감독, <존 오브 인터레스트>로 오스카상 수상 직후 떨리는 손으로 가자지구를 언급했던 조나단 글레이저 감독의 이름도 들어갔다. 이 이름들이 모여서 하나의 이름에 마음을 전했다. 팔레스타인 사진작가이자 저널리스트인 파티마 하수나. 파티마 하수나의 이야기는 <영혼을 손에 품고 걷는다>라는 다큐멘터리 작품에 담겨, 칸영화제 독립영화 병행 섹션(ACID)에서 월드 프리미어로,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아시아 프리미어로 상영되었다. 이 영화의 연출자 세피데 파르시 감독을 부산에서 만났다. 이란 출신이자 혁명과 투옥의 현대사를 겪고 18세에 프랑스로 떠나야 했던 사람이자, 파티마 하수나의 친구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담아야 최선일까 많이 고민했지만, 이례적으로 이번 인터뷰는 들은 이야기를 전부 고스란히 담아 넣고 싶었다. 아주 긴 글이 되겠지만, 어떤 이야기는 아무리 길더라도 반드시 약 달이듯 뭉근하게 끓여 찬찬히 마셔야만 하기에. 가자지구에서 벌어지는 잔혹한 일들에 마음이 상한 당신, 무엇을 할 수 있나 고민하고 무력감을 느껴본 당신이라면, 기꺼이 이 긴 글을 읽어줄 거라 기대하기에. 세피데 파르시 감독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뵙게 되어 너무나 반갑습니다. 어제 첫 관객과의 대화를 하셨는데 소감이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정말 좋았어요. 관객들의 반응이 아주 적극적이었어요. 한국 관객에게 영화를 선보이는 것도 정말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이 영화로 세계 곳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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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실패한 혁명가가 지켜낸 불씨
  • 젊은 시절의 인간은 언제나 불타 있다. 누군가는 사랑을 위해, 누군가는 신념을 위해, 또 누군가는 단지 자신이 존재했다는 흔적을 남기기 위해 싸운다. 살아간다는 건 결국 저마다의 전쟁을 치르는 일이다. 하지만 그 전쟁은 총칼이 아니라 신념으로, 혹은 가족과의 관계 속에서 벌어진다. 그리고 그 투쟁은 언제나 불완전하다. 우리가 바라는 승리는 대체로 우리의 손에서 완성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싸움을 멈추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불완전함 속에서만 인간은 자신이 살아 있음을 느끼기 때문이다. 폴 토마스 앤더슨의 영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바로 그 불완전한 투쟁의 역사를 세대의 서사로 그려낸다. 미국이라는 거대한 나라, 여전히 편견과 차별의 구조 속에서 몸부림치는 사람들의 초상을 담아낸 이 영화는, 혁명이란 대의가 결국 ‘가족’이라는 가장 내밀한 관계 안에서 어떻게 이어지는가를 묻는다. 사회적 투쟁이 사라질 수 없듯, 사랑의 투쟁 또한 결코 멈추지 않는다. 우리는 실패할지라도, 그 불씨는 다음 세대로 건너간다. 그 대물림의 과정이 이 영화 안에 세 가지 감정으로 담겼다. [첫번째 감정] 밥의 상실감 밥(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은 한때 세상을 바꾸겠다고 외쳤던 혁명가였다. 젊은 시절의 그는 폭발적인 성향이었고, 실제로 폭탄 설치 전문가로 활동했다. 하지만 딸 윌라가 태어나면서 그 모든 열정은 잦아들었다. 그에게 혁명은 먼 이야기가 되었다. 그는 더 이상 거리로 나서지 못했다. 대신 딸의 곁에 머물렀다. 아내 퍼피디아가 딸과 자신을 떠나버렸지만, 밥은 도망치지 않았다. 우는 갓난 아기인 딸을 달랬고, 그는 아주 정성스럽게 딸을 보며 그 상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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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부장이 열심일 때
  • 집필부터 제작까지 십여 년이 걸렸다는 <어쩔수가없다>에서 가장 흥미로운 씬은 어쩌면 나무를 벌목하는 마지막 엔딩 롤의 배경일 것이다. 문 제지의 박선출은 앞서 유튜브에서 ‘원래 있던 나무를 베는 것이 절대 아니’고 ‘제지를 위해 새로 심은 나무를 베는 것’이라며 단언했지만, 크레딧이 지나가는 화면 뒤로 푹푹 쓰러지는 나무들은 끽해야 수 년을 키웠다기엔 의문이 들 정도로 키 크고 우람하다. 정말 제지 공장에서 일부러 만든 숲인지 알 수 없을뿐더러, 사실이 그렇대도 인간의 필요를 위해 그만큼의 면적을 매일같이 없애는 일이 합당하고 필요한지를 되묻게 만드는 것이다. 계급적 우화보단 (심지어 계급적 낙차가 선명한 상황에서도) 멜로적 정취를 두른 아슬한 관계 자체를 더 탐닉했던 박찬욱이 왜 돌연 약자끼리의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비추었는지를 두고 관객의 평가는 갈리는 편이다. 하지만 이 벌목 장면을 통해 박찬욱은 오히려 인류세의 끝을 모르는 폭식증과 무한 개발 담론이 사랑하는 가족 안팎에서 어떤 파멸을 초래하고 있는지를, 그러니까 결국 다시 관계의 깔깔하고 야릇한 본질에 관한 전언을 전하는 듯하다. 제지맨 범모, 시조, 선출과 만수는 입을 모아 ‘종이도 일종의 예술’이라고 직간접적으로 예찬하지만 사실 제지를 포함한 인류의 모든 창작은 필연적으로 파괴를 수반한다. 인류는 짓기 위해 부수고 비틀고 옭아매고 파묻고 빼앗고 태우고 죽인다. 곧게 자랄 나무를 두꺼운 철사로 칭칭 감고 완력으로 굽혀두어 희한한 모양새로 굳은 채 자라게 만드는 분재도 사실 식물 그 자체를 사랑하는 이들에겐 끔찍하게 다가올 수도 있는 취미다. 화훼, 원예, 조경에 관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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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악의 산불에서 아이들을 구한 작은 영웅들!
  • 실화다. 2018년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 패러다이스 지역에서 발생한 사상 최악의 산불 ‘캠프 파이어’를 소재로 한 이 영화는 공포의 화염속에서도 22명의 아이들을 무사히 부모님에게 데려다 준 스쿨버스 기사 케빈과 교사 메리의 이야기를 다룬다. 다큐멘터리가 아닌 극 영화로서 각색이 들어갔지만, 이 작은 영웅들의 용기와 책임감, 고뇌는 오롯이 영상에 투영된다. 아내와 이혼 후 아들과 함께 고향으로 온 케빈(매튜 맥커너히)은 스쿨버스 운전을 하며 먹고 산다. 홀로 된 엄마를 부양하고, 사춘기에 접어든 아들과 다투는 일이 많아진 그는 하루 하루가 힘겹다. 그러던 어느 날, 송전선에서 화제가 일어나고 거대한 산불로 이어진다. 케빈은 여느 때와 같이 등교 운행을 마치고 회사로 돌아가던 중 화염 속 갇힐 위기에 처한 초등학생 22명을 태울 수 있냐는 무전을 받는다. 전날 심하게 싸운 후, 아픈 아들에게 약을 가져다 주려고 했던 그는 갈등한다. 그리고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차를 돌린 후, 담임 선생님인 메리(아메리카 페레라)와 함께 힘겨운 탈출을 시도한다. 재난 실화 영화로서 기대감을 갖게 한 요소 중 하나는 바로 연출을 맡은 폴 그린그래스다. 그는 <본> 시리즈로 유명하지만, 9.11 테러 사건을 그린 <플라이트 93>, 2009년 머스크 앨라배마호 피랍 사건을 그린 <캡틴 필립스> 노르웨이 테러 사건을 그린 <7월 22일>를 통해 실화 영화에 일가견이 있는 감독이다. 마치 관객이 현장에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정도로 사실감이 넘치는 핸들 헬드 촬영 기법이 그의 트레이드 마크라 할 수 있다. 이번 영화에서 핸드 헬드 촬영은 주효하게 먹힌다. 산불로 인해 혼비백산한 사람들의 모습과, 아비규환인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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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마귀 | 칼이 있어도 쓸 줄 모르는 어설픈 킬러
  •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변성현 느낌이 물씬 풍기는 스핀오프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킹메이커>, <길복순>까지. 변성현 감독의 작품은 명확한 특징이 있다. 바로 관계성이다. 그의 영화는 유달리 두 주인공 간의 양가적 감정을 쫄깃하게 그려낸다. <불한당>만 해도 그렇다. 겉보기에는 누아르지만, 그 내용은 명백히 '재호'(설경구)와 '현수(임시완)의 사랑 이야기였다. 특히 서로 끌리지만, 타이밍이 맞지 않아 어긋나서 유달리 더 슬프고 안타까운 로맨스였다. <킹메이커>도 마찬가지다. 외면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 그의 비서였던 엄창록의 이야기를 다룬 정치물, 시대극이었다. 실상은 두 주인공의 애증을 그려내는 데 주력한 드라마였다. 이상적인 정치를 꿈꾼 '김운범'(설경구)과 현실적인 구도로 정치 판세를 읽어냈던 '서창대'(이선균). 서로서로 누구보다도 필요로 하지만, 정치와 현실을 대하는 관점의 차이로 인해 동행할 수 없었던 빛과 그림자의 감정선이 인상적인 영화였다. <길복순>도 다르지 않았다. '복순'(전도연)의 아버지를 죽이러 간 자리에서 첫눈에 복순에게 반한 '민규'(설경구). 애써 그 애정을 내색하지 않았던 그는 마지막 순간 복순에게 살해당하면서 그 애정을 드러낸다. 이 은근한 로맨스 덕분에 <길복순>은 복순과 딸의 관계가 회복되는 가족 드라마와 킬러 간의 살벌한 액션 영화의 틀에서 한 발짝 벗어날 수 있었다. 변성현 감독이 제작과 각본 작업에 참여하고, <길복순>에서 조감독이었던 이태성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스핀오프 영화 <사마귀>에서도 변성현만의 개성은 유효하다. '이한울'(임시완)과 '신재이'(박규영)의 관계가 친구 이상으로 결코 진전될 수 없는 이유를 파고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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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능 대신 일터로 간 고3 노동자의 눈물 나는 성장담!
  • 영화의 순기능 중 하나는 우리가 전혀 생각지도 않은 삶을 스크린에 투영시킨다는 것이다. 3학년 2학기, 수능 준비가 아닌 현장실습에 나가는 고3의 삶을 생각한 이가 몇이나 될까? 영화는 보란 듯이 고등학생의 마지막 시기를 공장에서 보낸 청춘들이 있다고 조용히 그것도 담담하게 보여준다. 그래서 더 미안함을 갖는다. 학점 따기가 어려워서, 취업이 안 돼서 힘들었다고 말했지만 낭만 하나는 챙겼던 대학 생할을 떠올리면서 말이다. 3학년 2학기, 수능을 위해 마지막 스퍼트를 내야 하는 시기이지만, 직업계고 학생 창우(유이하)는 공장 현장실습에 집중한다. 대기업과 중견기업 자리는 마감됐고, 중소기업 현장실습만 남은 상황이라 선택지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창우는 친구 우재(양지운)와 함께 한 공장에 출근하게 된다. 첫 출근부터 적응이 쉽지 않지만, 천천히 하나씩 배워나간다. 그리고 자신보다 더 먼저 실습을 나온 성민(김성국)과 다혜(김소완)를 만나 동료애라는 걸 느낀다. 하지만 공장 생황이 잘 맞지 않았던 우재는 그만두고, 에이스 실습생인 성민 마저 떠나자 창우의 마음이 흔들린다. <3학년 2학기>는 직업계고 학생들이 첫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일상을 묵묵히 카메라에 담는 작품이다. 영화는 특별할 것 없는 그저 평범한 주인공이 같은 반 친구들처럼 공장으로 현장실습에 나가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일을 배우는 과정이 펼쳐진다. 꼼꼼하지만 일 처리가 늦어 사수에게 혼나고, 할 줄 아는 게 별로 없어 꿔다 놓은 보릿자루 취급을 받는 창우는 사회생활의 냉혹함을 맛보는데, 그런 상황에서도 용접을 배우면서 일의 재미를 느끼고, 점진적으로 공장 직원의 모습을 갖춰 나간다. 그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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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엄마가 손톱 발톱 깎고 아무 데나 버리지 말랬지?
  • 이 글은 영화 [포제션]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 너무 어려웠어요. 방향으로 말하는 진짜와 가짜 사진출처:다음 영화 어려운 영화임에는 틀림이 없다. 특히 초반부는 더더욱.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마치 한 줌씩 대충 입에 집어넣는 팝콘처럼 이리저리 흩어져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고. 나는 그것을 주워야 하나 말아야 하는 기로에 서서 엉거주춤, 하지만 멈추지 않고 영화가 주는 팝콘을 대충 받아먹고 있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영화는 나 같은 무지렁이도 알아챌 수 있도록 아주 작은 장치를 마련해 두었다. 방향. 그것도 서로의 모습을 가장 확인하기 힘든 90도(degree) 틀어진 모습으로. 이는 영화를 지배하는 두 가지 메시지를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는 가짜와 진짜를 분리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는 것이다. 남편에게 비밀을 숨기고 있는 안나(이자벨 아자니)는 마크(샘 닐)와 언제나 그 각도만큼 비뚤어진 채 항상 서 있다. 단 한순간도 그들의 존재가 양립할 수 없음을 보여주듯이. 그러나 마지막 장면으로 가서는 총을 몇 발씩이나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진짜 마크의 곁에서 최후를 맞이하기 위해 노력하는 안나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제야 자신과 마크의 죽음이 진짜들의 멸망임을 알게 된 것처럼. 두 번째는 진품명품(?)을 떠나 둘 사이에 얼마나 의사소통이 안 되고 있는지도 보여준다. 부부 사이를 더 이상 지속할 수 없음을 인지한 뒤. 그들은 한 카페에서 양육권 싸움을 하게 된다. 그런 심각한 상황에서도 마주 보는 것이 아닌, 90도로 꺾이는 지점에 있는 의자에 각자 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상대방에게 전달해야 할 메시지는 마치 독백처럼 흩어지고 눈앞에 존재하지 않는 서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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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끝내 ‘선’을 모른 채 살아갈 악인들에게
  • [백조] (2023) 감독: 웨스 앤더슨 시놉시스 덩치 크고 무지막지한 두 소년이 왜소한 모범생 소년을 잔인하게 괴롭힌다. 로알드 달의 소설을 각색한 웨스 앤더슨의 단편 영화 4편 중 하나. (출처: 넷플릭스) -------------- 폭력이 나쁜 이유에 대해 굳이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을 문득 인지했다. 신체적·물리적 고통을 주고 부조리를 낳는다는 이유야 익히 알려져 있고, 부연 설명이 필요 없겠다만, 이 영화를 통해 그 1차적인 고통 너머에 있는 폭력의 본질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특히 폭력이 남기는 트라우마, 그리고 원하지 않는 선택을 강요당하는 무력감에 대하여 말이다. 영화는 또래보다 왜소하고 어수룩해 보이지만 똑똑하고 선한 소년 ‘피터’가 덩치가 크고 잔인한 ‘어니’와 ‘레이먼드’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이야기를 다룬다. 크게 두 가지 괴롭힘 사건이 등장하는데, 그 첫 번째는 두 소년이 피터를 기찻길에 묶어두는 사건이다. 피터는 다가오는 기차에 치이지 않기 위해 몸을 필사적으로 움직여 철로에 밀착한다. 기차가 다가오며 철로를 타고 전해지는 진동과 소음, 성인이 된 피터의 나레이션과 그날의 어린 피터의 재현이 겹쳐지며 그날의 공포가 생생히 되살아난다. 폭력과 그로 인한 극도의 공포는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현재까지 이어지는 트라우마로 남는다는 사실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두 번째 사건은 백조 사냥이다. 어니는 생일 선물로 라이플총을 받고 친구 레이먼드와 함께 사냥을 즐긴다. 피터는 두 소년에게 제발 백조를 쏘지 말라 애원한다. 말을 더듬을지언정, 백조는 보호종이고 알을 품고 있을지도 모른다며 또박또박 지켜달라 말한다. 이전의 피터가 자신의 생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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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를 잃는 행위가 예술이라는 세상
  • 사와다가 있었슨 딱히 뭘하진 않았슨 그냥 동그라미를 그렸슨... 으로 시작한 영화는 오기가미 나오코 특유의 평탄한 일상적 리듬을 따라가나 싶었지만, 최근작 <강변의 무코리타>와 <파문>부터 더욱 본격적으로 전념하는 종교적 모티브가 곧장 끼어든다. 이때 종교적이란 말은 신의 존재를 믿는다거나 의지한다거나 나를 미뤄둔다는 의미가 아니라, 오히려 이 험난한 인류세를 수행과 사유 그리고 연대로서 이해하려는 사람의 지극히 인간을 우선한 해법에 가깝다. “내가... 나라고 확신하기는 어려워요.” 불교의 ‘무아’란 호류사를 짓던 쇼토쿠 태자 시절에도 만쥬를 그리던 선승의 시절에도 유효했겠으나, 나를 비우는 게 아닌 나를 잃어버리는/갇히는 현세의 무아만큼 무심히 가혹한 벌이 또 있으랴. 예술보다 보수가 먼저 눈에 밟히고, 내가 각인하지 않은 의미로 인해 간신히 만들어낸 작은 무욕의 아름다움이 기어이 내 고기를 구워먹을 불이 되는 세상에서. 혁명가가 된 화실 동료, 옆집의 만화가 지망생, 편의점 알바 선배인 이주노동자의 이름들을 영화는 일부러 적극적으로 호명하지 않는다. 조수를 착취하는 화가 아키모토, 화랑주인 와카쿠사, 바이어 츠치야가 이름부터 밝히며 등장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개중 옆집 사람은 가치 없는 자 살아남지도 먹지도 말라는 자본주의 패러다임의 도덕률을 가장 온전히 체화해버린 이. 그는 다른 두 언더독과 달리 자기만의 투쟁을 정립하지 못했고, 그래서 ‘20%의 개미’가 되길 두려워하며 ‘사와다되기’를 가장 적극적으로 갈망한다. 비워내지 못한 자기 그림이 팔리지도 않는다는 역설을 마주한 그는 결국 사와다의 붕대에 이름을 남긴다. 언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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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편 영화, 그 짧은 호흡 속의 매력
  • 지난 2025.09.13.(토), 압구정 CGV에서 '스토리업 쇼츠 Story Up Shorts' 상영회가 개최되었다. CJ 문화재단과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주최, 주관한 이번 행사에서는 국내외 영화제로부터 호평을 받은 단편 영화 일곱 작품을 만날 수 있었다. 해당 일곱 작품은 오는 10월 10일부터 16일까지 인디그라운드(indieground.kr) 홈페이지를 통해 만나볼 수 있다. 그러니 오늘은 그날 만난 단편 영화의 매력을 얘기해보려고 한다. 2025 스토리업 쇼츠 상영회의 작품 목록과 감독, 배우를 알 수 있는 시간표 ⓒ 서울독립영화제 SEOUL INDEPENDENT 단편 영화, 그 짧은 호흡 속의 매력 '단편 영화'라는 표현 자체가 드문 관객도 있을 텐데, 단편 영화는 말 그대로 대략 45분 이하의 비교적 짧은 영화를 말한다. 영화관에서 흔히 만나는 몇 시간의 러닝타임을 가진 장편 영화와 달리 그 짧은 러닝타임이 특징이다. 하지만 그 정의와 같이 러닝타임은 짧으나, 단편 영화는 결코 가볍지 않다. 현재 국내에서는 주로 영화제를 통해 만나볼 수 있는 단편 영화는 국내 영화감독들의 등용문이 되기도 한다. 봉준호 감독도 <백색인>(1994), <지리멸렬>(1994)과 같은 단편 영화를 시작으로 영화를 연출하기 시작했다. 물론 단편 영화는 국내 영화감독들의 시작에만 함께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꾸준히 단편 영화를 연출하는 박찬욱 감독은 2022년에도 단편 영화 <일장춘몽>을, 웨스 앤더슨 감독은 2023년 넷플릭스에서 로알드 달 단편 영화 시리즈를 선보였다. 우리에게 익숙한 유명 감독들이 그려낸 단편 영화는 그들의 장편과는 또 다른 매력을 보여준다. 단편 영화의 매력은 짧은 시간 내 삶의 희로애락을 가장 잘 담아낸다는 점입니다. - 이윤석 감독 단편 영화를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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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미야케 쇼, 2022)에 관한 단상
  • 우리는 감각하고 그녀는 투쟁한다 미야케 쇼 영화를 보고 난 뒤의 감흥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따뜻하다”일 것이다. 후끈한 열기라기보단 딱 체온 정도의 따스함. 세상을 향한 의심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을 때, 마음의 온도가 식었을 때라면 혹은 그런 누군가를 만난다면 미야케 쇼의 영화를 찾고 싶어진다.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은 필자가 본 미야케 쇼의 영화 3편(<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 <새벽의 모든>) 중 가장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을 보는 내내 ‘케이코’(키시이 유키노 분)의 투쟁을 지켜보면서도 스크린이 그 생동감 넘치는 세계의 따뜻한 온기를 관객에게 실어 나른다는 느낌이 들었다. 감각: 흐르는 이미지와 부산한 사운드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은 극장에서 흔히 접하게 되는 영화들과는 상당히 다르다. 청각장애인 복서의 드라마를 따라가지 않는 이야기, 관객은 영화의 러닝타임 동안 다루는 영화 속 시간의 케이코만 만날 수 있을 뿐 그녀의 전사에 대해 전혀 알 수가 없다. 게다가 카메라는 필요 이상으로 케이코에게 다가가려 하지도 않고, 때론 그녀의 아주 개인적인 부분엔 전혀 관심이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케이코를 계속 지켜보지만, 그녀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는 읽을 수가 없다. 이야기 자체도 그렇지만, 이미지와 사운드 측면에서도 다르다. 작품의 배경은 분명 도쿄다. 그러나, 우리가 ‘도쿄’라고 하면 흔히 떠올리는 번화가의 이미지가-이를테면 시부야의 스크램블 교차로 같은- 아니라 케이코가 냄새난다고 했던 강변과 평범한 골목길, 세월의 흔적이 가득 묻은 복싱 체육관이 주 무대다. 16mm 필름의 따뜻하고 생생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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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끼리는 그곳에, 나는 이곳에.
  • 대구를 떠나 부산으로 진학했을 때가 떠오른다. 주변 친구나 선생님들, 심지어 진학에 크게 압박을 주지 않으셨던 부모님조차 의아해했던 결정. 나는 새로운 경험에 대한 갈망이라는 멋들어진 이름을 내새웠지만 돌이켜보면 도피였다. 웃긴 점은 특정한 환경 때문에 벗어나려고 했던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고향에서도 힘든 일은 딱히 없었다. 다만 여기를 벗어나면 조금은 더 성장하리라는 막연한 생각이 있었다. 언제나 그렇듯 막연한 생각은 충동으로 번지고, 이내 나를 먼 곳을 가게 했다. 물론 후회는 없다. 부산에서 새로운 인연과 사건들이 끊임없이 지나쳤다. 그러는 동안 자연스레 잊고 있던 그때의 기대도 어느정도 충족되었다. 하지만 문득 궁금해진다. 나는 왜 대구를 벗어나려 했을까. 그곳에서도 인연과 사건들은 충분하다 못해 계속 재생산되지 않는가. <코끼리는 그곳에 있어>의 주인공은 4명이다. 이들은 각자 사연을 품고 있다. 친구를 우발적으로 죽였다거나, 원조교재 사실이 학교에 퍼졌다거나, 요양원에 끌려가게 생겼다거나, 자신의 잘못으로 친구가 눈 앞에서 투신자살을 하는 등. 누구도 쉽게 견딜 수 없는 상황을 지극히 보통의 사람들이 짊어진다. 사회는 더욱 잔인하다. 사회는 보통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일부의 대가를 치루면서 형성된다고 한다. 하지만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의미 없는 논의처럼 사회는 사람보다 서순이 앞서는 건 물론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할 때가 있다. 복지로 사람의 인생이 긍정적으로 바뀔 수도 있는 반면 큰 대가를 요구하지만 울타리는 쇠창살에 가까운 부조리한 사회도 있다. 영화의 감독 후보가 묘사하는 중국 사회는 후자에 가깝다. 이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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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삶이 내게 꽃을 내밀 때
  • DIRECTOR. 마이크 리 CAST. 마리안 장 밥티스트, 미셸 오스틴 외 SYNOPSIS.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누구에게나 할 말 다 하는 '팬지'. 집, 길거리, 마트... 그녀가 가는 곳에는 언제나 트러블이 생긴다. 그런 그녀를 유일하게 보듬는 사람은 여동생 '샨텔'뿐, 남편과 아들은 귀를 닫은 듯 그저 무심할 뿐이다. '어머니의 날'을 맞아 '팬지'와 '샨텔'의 가족이 모두 모인 자리, '팬지'가 무슨 말을 할지 조마조마하던 가족은 그녀의 뜻밖의 반응에 당황하는데... POINT. ✔️ 70년대부터 꾸준히 영화를 만들어 온 거장 마이크 리 감독의 컴백입니다. ✔️ 특히 <비밀과 거짓말>을 함께한 명배우, 마리안 장 밥티스트와의 조우! 마리안 장 밥티스트의 연기가 너무 훌륭합니다. 연기를 통해 팬지의 얼굴에서 그 어린 시절부터 현재까지를 다 가늠해 보게 만듭니다. 역시나 여우주연상을 휩쓸었네요. ✔️ 보고 나면 세상에 친절한 마음으로 꽃 한 송이를 내밀고 싶어지는 영화 ✔️ 특히 K-장녀들에게는 꽃을 다발로 주고 싶어지는 영화... ✔️ 가족 상담 사이코드라마로 써 보면 좋겠다는 생각도 (비전공자 비전문가 주제에) 해보았습니다. 당신은 팬지의 가족 중 누구에게 가장 마음이 가나요? 당신을 화나게 혹은 슬프게 하는 인물이 있나요? 그렇다면 이유는 무엇인가요? #1. 가족 상담의 사이코드라마 이 영화는 러닝타임의 상당 시간을 할애애 팬지가 세상을 어떻게 대하는지 보여준다. 방을 지저분하게 해 놓은 아들에게, 남편에게, 마트에서 장 보다 마주친 여자에게, 치과 의사에게... 팬지가 세상을 대하는 방식은 대개 고슴도치 같다. 팬지는 신랄한 말투로 공격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도끼날처럼 떨어지는 말을 가만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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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낭만의 시대, 낭만의 밴드
  • *본 리뷰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 <슈퍼소닉>은 영국 밴드 오아시스의 무명 시절부터 그 발자취를 따라간다. 밴드의 결성 이야기부터, 1996년 무려 25만명의 관객이 모였던 전설적인 넵워스 공연까지의 3년간의 기록을 담아낸다. 갤러거 형제를 어느 정도 안다고 생각했지만, 텍스트로만 단편적으로 접했던 이야기를 실제 영상으로 확인하는 건 사뭇 다른 경험이었다. 두 사람의 목소리로 무대 밖 행적을 시간 순서대로 따라가다 보니 '리암 갤러거'와 '노엘 갤러거'라는 사람을 훨씬 더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영화에는 반가운 오아시스 원년 밴드 멤버들도 함께 등장한다. 저마다의 시각으로 풀어낸 이야기는 오아시스라는 밴드를 한층 더 깊이 알아갈 수 있게끔 돕는다. 특히 요즘엔 보기 드문 저화질 캠코더 영상을 기반으로, 콜라주처럼 구성된 짤막한 애니메이션, 시점을 넘나드는 가족과 관계자들의 인터뷰 등이 계속해서 교차하는 연출이 흥미로웠다. 다양한 방식이 뒤섞이면서 서로를 보완하는 형태로 영화는 지루할 틈 없이 다채롭게 흘러간다. 여기에 갤러거 형제들의 쉴 새 없이 터져나오는 욕설이 더해지면서 영화는 오히려 활력을 얻는듯하다. 다큐멘터리는 밴드의 시작부터 그 과정을 생생히 보여준다. 오아시스는 우연한 기회로 유명 레이블 사장인 앨런 맥기의 선택을 받게 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되는데, 어찌 보면 이들이 운이 좋았다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배경에는 리암과 노엘의 노력이 있었다. 방탕한 생활을 이어가던 리암이 음악을 하기로 결심하고 음악에 엄청나게 몰두하는 모습은 가히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알고 보니 노엘은 내 생각보다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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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촉각으로 그려낸 고독의 세계
  • 두 소년이 함께 춤을 춘다. 주인공 치히로와 그의 친구 나오야가 함께 추는 춤. 이들의 춤은 일반적인 것과는 다르다. 정형화되지 않은 이들의 몸짓. 여기서 중요한 것은 ‘비접촉’이다. 선생은 말한다. “움직이지 말고 파트너가 움직이게 하라”. 두 사람은 언어를 사용하지도 몸을 맞대지도 않고 서로간의 호흡을 맞춰나간다. 그들의 춤만이 비접촉을 전제로 한 것은 아니다. 영화의 주요 인물들은 대체로 접촉을 기피한다. 특히 주인공 치히로가 그렇다. 아버지를 잃고 이복형에게 맡겨진 치히로. 치히로는 형의 손장난조차 피하는 인물이다. 나오야와 함께 추는 춤으로 단련된 탓일까. 치히로는 비접촉에 능하다. 나오야의 여자친구 또한 나오야의 손길을 거부한다. 나오야는 평소와 같이 친밀함을 표하는 손길을 내밀지만, 이별을 결심한 그녀에게 그 손길은 불편한 침범이다. 원한다면 그녀가 원하는 거리를 지켜서라도 곁에 머물고 싶다는 나오야를 두고 그녀는 떠나간다. 그러나 실은 두 사람도 접촉을 원하는 인물들로 보인다. 영화의 중간 중간 치히로는 아스팔트 거리에 얼굴을 맞댄다. <아사코>의 한 장면이 스쳐간다. 아사코와 바쿠는 도로 한복판에 누워 손을 잡고 서로를 바라본다. 두 사람에겐 서로가 있다. 그러나 치히로는 혼자다. 그래서 치히로는 손을 잡은 상대를 바라보는 대신 바닥에 안기듯 온몸을 접촉시킨다. 접촉을 기피하는 치히로의 기질은 이별에 대한 불안 때문인 것으로 유추된다. 이복형과 그의 여자친구와 함께 사는 치히로는 자신이 당신들의 짐이 되는 것이 아니냐 직접적으로 묻기도 한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갑자기 혼자가 된 치히로는 또다른 이별을 두려워한다.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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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룻밤의 시간이 전하는 아날로그 방식의 사랑
  • 영화 <비포 선라이즈>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 에단 호크, 줄리 델피 주연 오스트리아 빈으로 향하던 기차 안에서 우연히 만난 제시와 셀린. 알 수 없는 감정에 끌린 두 사람은 아무런 일정도 없이 기차에서 하차한다. 그리고 단 하루, 꿈 같은 시간을 보내게 되는데... "난 우리가 지금 마치 꿈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아." 짧은 하루의 우연은 영원이 된다. <비포 선라이즈> 속, 파리로 향하고 있던 학생 셀린이 대뜸 말을 건 옆자리 남자, 제임스(제시)를 따라 파리에 도착하기도 전에 기차에서 내린 이유는 단순하다. 그 순간, 제시에게 이끌렸기 때문에. 호텔 숙박비도 없이 하루 동안 거리 곳곳을 오가면서 그들에게 벌어지는 사건은 딱히 스펙타클하지 않다. 갑자기 지갑을 도난당한다거나, 마약 밀매 사건에 휘말린다거나, 살인 사건의 목격자가 된다거나, 그런 '영화 같은' 사건은 없다. 이들은 오로지 서로를 바라보며 대화할 뿐이다. 나이 든 노파와 같은 셀린과, 열세 살 꼬마와 같은 제시가. 그럼에도 우리는 이 영화 속 사랑이 정말 영화 같다고, 그리고 운명 같다고 느낀다. 제시는 셀린을, 셀린은 제시를 완전히 알지 못한다. 이들이 아는 건 이들이 각자 털어놓은 '이 순간'의 정보들 뿐. 그리고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감정에 이끌려 충동적으로, 그리고 꽤나 대담하게 행동한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서, 나 또한 잘 모르는 이곳에서. 순간 '함께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내 감정을 이끈 상대와 함께. 와인잔을 몰래 가져오고, 앉아 있다 손금 점을 보고, 타인을 대하는 태도를 두고 이야기하고, 서로의 옛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고. 커다란 사건 없이도, 그리고 상세한 정보 없이도 그들은 '지금 이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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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위기의 영화
  • 조희영의 영화에는 분위기가 있다. 배경은 길거리일 때가 많고, 인물들은 계속 대화를 나눈다. 또 그들은 자주 걷는다. 미장센은 적당히 세련되어서 감독에게 특유의 미감이 있다는 짐작을 가능케 한다. 극에는 줄거리가 있다. 하지만 영화를 감상하는 데 결정적인 요소는 아니라는 느낌이 자꾸만 든다. 그래서 미세한 감정과 은은한 대화의 흐름, 다소 불친절하게 느껴지는 이야기 설명 속에서 종종 길을 잃더라도 크게 불안하지는 않다. 이 영화에 그보다 중요한 무언가가 있다는 생각 혹은 느낌이 자연스레 솟아서다.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차분한 호흡과 정돈된 미감이 주는 영화의 안정감에 땀 흘리는 순간, 생활의 순간, 노동의 순간이 부재해서다. 의도적인지 무의식적인지는 모르겠으나, 영화 속 인물들은 일하는 중이거나 일에 대한 대화를 나누는 순간에도 명상하듯, 산책하듯 연기한다. 그래서 조희영의 영화 속 인물들은 언제나 조금씩은 붕 떠 있는 것만 같다. 구체가 아닌 추상의 세계로 초대받는 느낌이다. 그래서인지 〈이어지는 땅〉에 이어 홀린 듯 끌려가면서도 조금은 거리를 두며 영화에 들어갔다. 멀리서 흘긋거리며, 끈에 묶여 허공을 날아다니는 느낌으로. 영화에는 정호와 관계 맺은 세 여자가 있다. 먼저 수진. 그림을 그리는 그녀는 정호의 애인이지만 현재 자기가 책 표지 그림을 그려준 시인과도 만나는 중이다. 마찬가지로 예술가인 인주는 병원에서 의사에게 어쩌면 심각한 병일 수도 있다는 말을 듣고 정호를 향한 마음을 표현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여러 캐스팅에 도전 중인 배우 유정은 정호의 전 애인이다. 유정에게는 그녀와의 결혼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애인이 있는데, 두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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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든 걸 주었지만 끝내 하늘에 닿지 못한 생에 대하여
  •  과거 찰리 채플린의 영화들에는 물론 코미디가 주되지만, 그 안의 미묘한 슬픔과 비애도 엿볼 수 있다는 말을 들은 적 있다. 특히 영화 <모던타임즈>를 관람하면 이를 더 느낄 수 있다고 했다. 찰리 채플린의 분장을 떠올려본다면 우리가 왜 그의 유머에도 슬픔을 발견할 수 있는지 깨닫는다.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 표정 그리고 축 처진 눈과 입은 광대를 모티프로 삼은 캐릭터라기엔 '광대스러움'이 묻어있지 않다.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작품 <행복의 눈물>을 생각한다. 분명 웃는 듯한 그녀의 눈망울엔 눈물이 고이다 못해 한 방울 떨어지고 노란색과 붉은색으로 가득한 전체 배경에 눈물의 푸른색은 대비되어 알 수 없는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이렇듯 전체 배경의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 전체 속 무언가의 존재는 생각거리를 제공한다. 특히 배경이 행복과 환희에 가득 차 있는 반면 슬픔과 비극이 서려 있다면 그 효과는 배가 된다. 영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은 각종 빛과 환희, 사랑과 환락이 넘치는 세계관을 보여주는 것 같지만 사실상 이야기하는 것은 그런 세계관 속 비극이다. 비극을 조명하면서 단 한 번도 허락되지 않는 희망에 집중한다. 인생에 있어 희망과 빛이 얼마나 모순적인지를 말한다. 인생에 있어 중요한 것은 선택이라고 흔히 생각하지만, 선택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바로 선택할 수 없는 필연(必然)이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영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에는 유달리 빛이 많은 것처럼 보인다. 보통의 작품들은 관객의 눈 피로감을 위해 빛의 양을 설정하거나 조명하고자 하는 부위에만 빛을 쬐는 등 조절한다. 그러나 영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은 해가 뜬 오전이나 오후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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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머티리얼리스트> 사랑이 사라져 가는 현실에서
  • 순수한 사랑에 대한 낭만은 멸종해 버렸다. 사람들은 더는 사랑의 애정과 열정을 순수하게 바라보지 않는다. 2000년대 초 같은 로맨스 코미디 영화를 요즘 극장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사랑 노래도 자기 성장보다 연애를 우선시하는 세상 물정 모르는 낭만 서사가 되었다. 사랑에 대한 낭만은 한심한 환상 따위로 치부되는 현재가 도래해버리고 말았다. 나이를 먹으며 주변 사람들은 점차 앞으로 다가올 연애에 조건, 배경을 따지기 시작했다. ‘나 정도면 이 정도 조건의 사람을 만나고 싶어.’ ‘결혼하려면 이런 배경의 사람이면 좋겠어.’ 이렇게 사랑에 조건이 더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어른의 현실인 걸까? 순수한 사랑은 어린아이의 상상에 불과할까? 이런 고민이 한참이던 때, 셀린 송 감독이 영화 <머티리얼리스트 Materialists>를 들고 나타났다. 지난해,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 Past Lives>(2024)를 선보임으로써 ‘사랑’으로부터 헤어 나올 수 없게 만들었던 셀린 송 감독이 이번에는 <머티리얼리스트>를 가지고 나타났다. 지난 영화는 과거의 아련히 반짝이던 사랑에 대한 향수를 갖게 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를 과거로써 빛나는 채 남겨둘 수 있게 해 주었다. 이번 영화는 오늘날 현대인이 마음속 깊이 품고 있던 사랑에 대한 욕망에 질문을 던지고 있다. ※ 본 콘텐츠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 <머티리얼리스트>의 한국판 포스터와 주인공 루시 (C) 소니픽처스코리아 영화 <머티리얼리스트>는 뉴욕의 잘 나가는 중매 회사 커플매니저인 주인공 루시(다코타 존슨)가 동시에 나타난 두 남자 사이에서 갖게 되는 고민을 그린다. 한 남자는 연봉도 높고, 키도 크고 잘생긴 해리(페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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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밀의 언덕에 묻어든 솔직한 성장통
  • 비밀의 언덕에 묻어든 솔직한 성장통 영화 <비밀의 언덕> 리뷰 감독] 이지은 출연] 문승아, 임선우, 장선, 강길우, 장재희 시놉시스] 초등학교 5학년 반장인 명은은 시장에서 젓갈을 파는 부모가 부끄러워 자신의 집안 내력을 숨기며 친구들에게 사랑받기를 갈망하는 예민한 소녀이다. 글짓기 대회에서 예상치 못한 인정을 받지만, 거짓말은 점차 꼬리에 꼬리를 물어 일이 커지고 만다. 그러던 중 전학 온 솔직한 쌍둥이 자매와의 만남은 명은의 내면을 흔들며 자신의 비밀과 마주할 용기를 불러일으킨다. #스포일러 유의# 거짓말 속에 숨은 유년의 불안과 성장의 그림자 영화 비밀의 언덕은 초등학생 명은의 시선을 통해 유년기의 불안정한 자의식을 매우 사실적으로 포착해낸 작품이다. 누구나 어린 시절 스스로를 조금 더 멋지게 보이고 싶은 마음에 작은 거짓말을 하곤 하는데, 영화는 바로 그 ‘작은 거짓말’이 어떻게 눈덩이처럼 커지며 아이를 압박하는지 집요하게 따라간다. 명은은 시장에서 장사하는 부모가 창피해 친구들 앞에서 사실을 숨기고, 결국 존재하지 않는 ‘완벽한 집안’을 꾸민다. 그러나 이 거짓은 일시적인 안도감을 줄 뿐, 점점 자신을 옥죄는 굴레가 되어 돌아온다. 관객은 명은의 불안과 고립, 그리고 들킬까 두려워하는 긴장감을 통해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된다. 학창 시절,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스스로를 포장하거나 감추려 했던 순간들을 떠올리게 된다. 이처럼 작품은 특정 세대의 이야기를 넘어, 성장 과정에서 누구나 겪는 ‘있는 그대로의 나와 타인의 기대 사이의 간극’을 날카롭게 드러낸다. 그래서 명은의 거짓말은 단순한 잘못이 아니라, 어린아이가 불안과 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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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wesome trailers from cinLab
    • 영화 <베일리와 버드> 메인 예고편
    • ◉ 찬란 공식 계정 | Challan Official Channel 🎥YouTube :: / challanfilm 🎥Twitter :: twitter.com/challanfilm 🎥Instagram :: instagram.com/challanfilm 🎥Facebook :: facebook.com/challanfilm
    • 영화 <프레데터: 죽음의 땅> 메인 예고편
    • 모두가 사냥감이 되는 이곳 사냥 당하지 않으려면, 사냥해야 한다🪓 [프레데터: 죽음의 땅] 11월 5일 IMAX 극장 대개봉 #프레데터죽음의땅 #PredatorBadlands #프레데터 #Predator #엘패닝 #디미트리우스슈스터콜로아마탕기 #댄트라첸버그 #11월5일IMAX극장대개봉
    • 영화 <굿뉴스> 공식 예고편
    • 1970년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납치된 비행기를 착륙시키고자 한 자리에 모인 사람들의 수상한 작전을 그린 영화 넷플릭스 영화 《굿뉴스》 10월 17일, 오직 넷플릭스에서 #넷플릭스 #굿뉴스 #Good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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