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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0th BIFF 데일리] 가질 수 없는 것을 열망해 본 적이 있다면
  • Director LEE Sang-il 이상일 Cast Ryo YOSHIZAWA Ryusei YOKOHAMA Mitsuki TAKAHATA Shinobu TERAJIMA Soya KUROKAWA Keitatsu KOSHIYAMA Min TANAKA Ken WATANABE 시놉시스 주인공 기쿠오(요시자와 료 분)는 야쿠자 집안의 출신이지만, 부모를 잃은 뒤 그의 재능을 알아본 가부키 명문가 힌지로 가에 들어가게 된다. 의지할 곳 없던 기쿠오는 힌지로가의 후계자로 이미 엘리트 수업을 받고 있던 슌스케와 혹독한 훈련을 함께하며 우정을 쌓으며 성공적인 ‘온나가타’ 콤비로 데뷔도 하게된다. 그러나 가문의 적통이 아닌 기쿠오는 결정적인 순간마다 한계를 느끼게 되지만 끝까지 가부키와 예술에 대한 집요함을 놓지 않는다. 결국 긴 세월을 지나 결국 가부키 최고 ‘인간 국보(人間国宝)’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갈라 프레젠테이션 부문에서 만나게 된 이상일 감독의 <국보>는 일본의 전통예술인 가부키를 소재로 한 동명의 소설을 영화화한 영화로 일본 실사영화 역대 흥행 2위라는 대히트를 기록한 작품이다. 개봉 전부터 워낙 화제성이 대단했던지라 과연 3시간의 러닝타임을 견딜만한 가치가 있을지 궁금했는데,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과연 그러했다. 야쿠자 가문에서 태어나 부모를 잃은 뒤 가부키의 세계에 입성하게 된 기쿠오는 평생 두 개의 세계에서 오가며 산다. 가부키를 하지만 내 부모가 남긴 야쿠자 출신이라는 꼬리표는 기쿠오가 최정상의 배우로 서 있을 때 그의 명성에 흠집을 낸다. 그렇다고 야쿠자로서 내 부모의 원수를 갚아 가문으로 돌아가고 싶어도 영글지 못한 소년의 복수를 이루기엔 그럴 힘도 무기도 없다. 그렇기에 그는 더더욱 세상의 정의한 가문, 직업, 지위에 만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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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0th BIFF 데일리] 정중해서 더 애절한 사랑
  • DIRECTOR. 리언 레(Leon Le) CAST. 빈 팟 리엔(Binh Phat Lien), 띠 하이 옌 도(Thi Hai Yen Do), 키에우 한 리(Kieu Hanh Ly), 홍 응옥 응고(Hong Ngoc Ngo), 떼 만 짠(The Manh Tran) PROGRAM NOTE. 전후 10년, 여전히 재건이 한창인 베트남의 사이공. 남편과 사별한 키남은 사이공의 공동주택에서 작은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중정을 공유하는 거주민들은 서로의 일거수일투족을 잘 알고 있다. 그녀는 수라는 베트남-프랑스 혼혈아를 입양해서 키우는데, 어느 날 위층에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를 베트남어로 번역 중인 청년 캉이 이사 온다. 집안 배경 좋고 매력적인 그에게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는 것은 당연한 일. 하지만 캉은 이사 온 첫날, 자신을 위기에서 구해준 키남에게 시나브로 빠져든다. 한 폭의 로맨틱한 수채화를 연상시키는 이 작품의 백미는 두 남녀가 밤새워 사이공 시내를 걸으면서 꿈같은 이별 의식을 치르는 후반부 장면이다. 이 시퀀스는 청년의 내레이션으로 연결되면서 두 사람의 서사를 영원한 현재형으로 머물게 한다. (김채희) 옛 정취를 좋아하고 오래된 물건의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이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사랑에 빠질 것이다. 옛 사이공의 아름다움, 베트남 특유의 그 레트로한 아름다움이 시작부터 묻어나기 때문이다. 영화는 나무에서 수액이 한 방울씩 고여 귀하게 만들어지는 '침향'을 설명하는데, 영화의 여자 주인공 이름인 키남(Ky Nam)이 이 침향이라는 뜻이라고 말한다. 시대의 제한과 아름다움, 억압 속에서 발현되는 사랑의 애절함, 문학의 아름다움까지 한 방울 한 방울 귀하게 아름다운 정수를 모아 만든 영화에 잘 어울리는 제목이다. 원제 Ky Nam Inn은 '키남 식당', 극 중 키남이 운영하는 배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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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0th BIFF 데일리] 영화와 현실이 같은 속도로 흐를 때
  • DIRECTOR. 세피데 파르시(Sepideh Farsi) CAST. 파티마 하수나(Fatem Hassona) PROGRAM NOTE. 칸영화제 ACID 섹션에서 상영돼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킨 작품이다. 유배자 신분인 이란 감독이 10월 7일 전쟁 이후 가자 지구에 머물고 있는 사진작가와 연결된다. 2024년 4월부터 1년에 걸쳐 진행된 화상 통화와 포토 에세이를 결합한 형식을 취했는데, 영화 속 몇 가지 미디어는 절박한 소통과 열악한 상황을 반영한다. 어려서부터 전쟁적 상황을 겪었던 두 사람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매번 기적과 같은 만남을 지속한다. 기근에 가까운 삶을 배겨 내는 하수나의 희망은 평화와 일상의 회복이다. 파르시의 탄식과 하수나의 미소는 일말의 희망을 품게 하지만, 영화를 본 뒤엔 차마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란 명제를 내뱉을 수 없다. 영화제에 초대하는 통화 이후 벌어진 상황은 영혼의 생채기를 부른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믿음, 언젠가 만나자는 약속’ 사이에서 길을 잃은 자의 슬픔이 맴돈다. (이용철) 나는 이 영화 소식을 기사로 처음 접했다. 칸영화제 즈음에 나온 칸영화제 소식이었지만 기사는 국제 면에 실렸다. 그렇지 않았다면 좋았을 텐데. 올해 30주년을 맞아 더욱 화려하고 풍성한 부산의 라인업 사이, 보고 싶어 기다려지는 영화들 사이, 결말을 알기에 사실은 보고 싶지 않은 영화 하나가 끼어 있었다. 파티마 하수나라는 사람을 이런 영화로 알게 되지 않았다면 좋았을 것이다. 어딘가 멀리 평범하게 살아가는 행복한 사람의 이름, 내가 평생 알 일이 없는 이름이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파티마 하수나는 가자지구에서 태어나고 자랐고, 그래서 우리는 그 이름을 알게 되었다. 세상 모든 예술이 그렇듯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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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0th BIFF 데일리] 사육곰, 곰 돌봄 활동가, 그리고 지속 가능한 삶
  • Program Note 청주동물원 사람들을 그린 <동물, 원>(2018)과 야생동물구조센터 사람들을 다룬 <생츄어리>(2022)에 이은 왕민철 감독의 세 번째 영화. 이번에는 반달가슴곰 생츄어리다. 곰 농장을 인수받아 곰 생츄어리로 바꿔놓으려는 ‘프로젝트 문 베어’ 팀의 이야기는 소재에서 전작의 연장선상에 놓인 듯 보이지만 이 영화는 좀 다르다. 야생으로 돌아갈 수 없는 사육 곰을 돌보는 일이 얼마나 수고로운 노동인지를 알아챌 즈음, 우리의 시선은 그 일을 자원한 이들에게로 옮겨진다. <단지, 우리가 잠시 머무는 곳>은 강원도 화천에서 열세 마리의 곰을 돌보며 사는 90년대생 여자 넷의 이야기다. 아마도 이 청춘들은 여기 단지, 잠시 머물렀다가 떠날 것이다. “곰을 돌보는 경험이 내 삶에서 필요할까?” 그렇게 한 사람이 떠나니 다른 사람이 온다. 최단 코스를 검색하는 대신 멀리 돌아가고 때론 멈추어 주변을 둘러보는, 좀 다른 청춘들이 긴 사색을 불러온다. (강소원) (©부산국제영화제) 감독: 왕민철 출연: 강지윤, 구시연, 김민재, 도지예, 이세림, 조아라, 최태규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는 사육곰들을 구조해 곰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해 보금자리(생츄어리)를 마련하기 위해 시작되었다. 이 사육곰들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지리산 방사 반달가슴곰과는 좀 다른 사정을 안고 있다. 이들 곰은 웅담 채취 등 가축 목적으로 들여 온 짐승들이다. 이들의 삶은 예전에도 끔찍하기 그지 없었지만, '멸종위기 종인 곰들을 학대한다'는 국제적 비난에 직면한 한국 정부가 슬그머니 곰들의 거래, 그리고 동물원 등 전문 시설 밖에서의 사육을 전면 금지하면서 더욱 열악해졌다. 정부가 그 동안 눈 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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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0th BIFF 데일리] 죽음의 결합으로 태어난 사랑의 비극.
  •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신작 <프랑켄슈타인>이 오는 10월 22일 제한 상영을 거쳐 11월 7일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에 공개된다. 델 토로가 30여 년간 구상해온 작품인 만큼, 기괴하면서도 따뜻한 감성이 공존하는 독창적 연출이 펼쳐질 것으로 예상된다. 완벽하지 않아서 더욱 사랑스러운 존재의 탄생이다. 영화는 배의 선장, 창조주, 그리고 피조물 세 인물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어머니의 죽음에서 비롯된 빅터의 영생에 대한 집착은 죽음을 통해 생명을 창조하겠다’는 오만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그 결과 태어난 존재는 이름조차 주어지지 않은 채 세상에 버려지게 된다. 피조물이 바란 것은 단지 사랑과 인정이었지만 창조주의 외면으로 인해 내면의 분노가 피어오르기 시작한다. 긴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빅터와 피조물의 시선을 치밀하게 오가며 몰입감을 높인다. 기존 <프랑켄슈타인>과는 다른 각색을 통해 새로운 해석을 제시하는 동시에 인간의 욕망과 결핍, 책임의 무게라는 보편적 주제를 파고드는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시선이 인상깊다. 인간이 만든 존재와 그를 외면한 사회가 서로를 비추는 이야기다. 기예르모 델 토로가 펼쳐낸 이 야심 찬 시도가 관객들에게 어떤 울림을 남길지 주목된다. 상영 스케줄 09-18 19:30 CGV센텀시티 IMAX관 09-20 15:30 CGV센텀시티 IMAX관 09-25 20:00 롯데시네마 센텀시티 3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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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0th BIFF 데일리] 장미의 가시는 무엇을 지킬 수 있는가
  • Director: Natalia UVAROVA 나탈리아 유바로바 Cast: Izabella KHAMPIEVA, Marena KHARSIEVA Program Note 이혼한 엄마와 함께 행복하고 자유롭게 살고 있던 12세 소녀 말리카는 어느 날, 엄마의 연애 소식을 듣고 들이닥친 아빠로부터, 엄마가 재혼하면 말리카의 양육권이 아빠에게 넘어가게 될 것이라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을 듣는다. 엄마와 함께 여름을 보내기 위해 시골의 할머니 집으로 가게 된 말리카는, 대가족과 자연 안에서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엄마의 재혼이 현실화되면서, 말리카의 불안도 고조된다. 카자흐스탄의 잉구셰티아계 소수민족이면서 보수적인 이슬람교도인 말리카의 가족들에게, 여성의 재혼과 양육권 문제는 전적으로 남성들의 의지에 달려 있다. 사춘기에 접어든 소녀 말리카의 실존적 불안은, 주체적이고 자유로운 듯 보이지만 결국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는 엄마의 무기력감에 맞닿아 있는 것이기도 하다. 나탈리아 유바로바 감독은 아름다운 영상미를 통해 말리카의 고난과 성장의 서사를 솜씨 좋게 풀어냈다. (박선영) 재혼하면 아이를 강제로 뺏겨야 한다니, 2025년에 가당키나 한 것인가. 영화 <말리카>는 여자가 재혼하면 자식의 친권은 아빠에게 가는 (한국인 아니 대부분의 사람에게 터무니없는) 무슬림 율법 때문에 이별을 겪는 ‘말리카’와 엄마 ‘로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 법이 카자흐족은 해당되지 않고, 잉구셰티아족에는 적용되는 나름 아주 세세한 기준이 있는 이슬람교 문화에서, 오랜만에 만난 12살짜리 딸에게 “차 좀 내와라.”라고 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그곳에서 여성을 둘러싼 분위기를 단번에 알 수 있게 한다. 친권에 대한 회의에서도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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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0th BIFF 데일리] 우리는 여전히 불평등을 빚는다
  • 만두 요리 '모모'는 인도에서 널리 사랑받는 음식입니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가족주의적 문화가 있는 인도에서는 온 가족이 둘러앉아 모모를 빚어 먹는 풍경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풍경을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모(만두)의 모양을 두고 농담처럼 오가는 말들 뒤에 유독 여성에게만 지워지는 부담이 있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지요. 30주년을 맞이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여성이 겪는 불평등의 무게를 만두 빚기와 같은 일상으로 드러내 보이는 영화 <모모의 모양>을 감상했습니다. 모모의 모양 Shape of Momo Summary '비슈누'는 델리에서 일을 그만두고, 히말라야 근처의 고향 마을로 돌아온다. 아들이 자신을 두바이에 초청해 줄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할머니, 다소 비효율적이지만 자신의 방식으로 집안과 마을 일을 꾸려오던 엄마, 시어머니 및 남편과의 갈등을 피해 친정으로 온 임신한 언니를 보면서 '비슈누'는 최선을 다해 이들에게 더 나은 삶을 제시하고자 노력한다. 어느 날, 건축가 '기얀'을 만나고 관계가 점차 발전하기 시작하면서, '비슈누'의 마음도 복잡해진다. (출처: 부산국제영화제) Cast 감독: 트리베니 라이 출연: 가우마야 구룽, 파슈파티 라이 외 여전히 자유롭지 못한 이름, '여성' <모모의 모양>에는 고향집으로 돌아온 '비슈누'와 그의 언니, 엄마, 할머니까지, 모두 네 명의 여성이 등장합니다. '비슈누'는 가정을 위해 꿈을 포기하는 등 여성에게 씌워진 틀 안에서 살아가는 가족들을 돕고자 하지만, 쉽지 않습니다. 이들은 이미 그 틀 안에서 나름의 방식으로 살아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영화는 성별에 따라 배정되는 역할들, 성별에 기대되는 행동들, 그로 인해 가로막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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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0th BIFF 데일리] 사랑해야 하는, 사랑할 수 없는 당신의 이야기
  • DIRECTER. 후카다 코지 CAST. 유키 쿠라, 카라타 에리카, 켄지로 츠다, 쿄코 사이토 SYNOPSIS. 제이팝 아이돌 그룹의 멤버인 마이는 꿈에 그리던 무대 위에서 사랑을 노래한다. 팬들은 이에 대한 화답으로 앨범을 구매하고 환호성을 보내며 아이돌을 향한 사랑을 열성적으로 표현한다. 팬덤 문화는 사랑의 맞교환으로 성립된 동시대의 거대한 판타지이다. 마이는 데뷔 전 알고 지내던 케이와 우연히 재회한 후 사랑에 빠지고, 소속사는 계약서에 명시된 ‘연애 금지’라는 조항을 앞세워 마이를 법정에 세우며 벌어지는 양자택일의 딜레마를 탐구한다. 아이돌에게 연애는 금기시 된다. 팬들의 사랑을 먹고 사는 아이돌이 사적인 사랑을 욕심내는 것은 불가하다. 그들의 연애 사실이 밝혀지는 순간, 그들은 바로 팬들에게 ‘배신자’로 낙인 찍힌다. <연애재판>은 2015년 한 여자 아이돌이 일본 아이돌계에 실재하는 ‘연애 금지’ 조항을 어겨 소속사가 손해 배상을 청구한 사건에 기초하여 만들어진 이야기이다. 한 사람의 감정을 계약을 조건으로 통제하고, 그것을 어겼다는 이유로 소송까지 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 작품은 실제 사건을 모티브 삼되, 감독의 손을 빌려 창작된 인물의 심리의 변화를 촘촘히 쌓아 올려 아이돌 산업의 현실을 고발한다. 영화의 주인공 마이는 아이돌이라는 꿈을 오래 전부터 좇아왔던 성실한 인물이다. 피나는 노력으로 그룹의 센터까지 맡게 된 마이는 매사에 열심이지만 속을 알 수 없는 인물로 비춰진다. 그런 마이의 마음을 연 사람이 있다. 그는 중학교 동창이자 마임 전문가인 케이이다. 우연한 만남은 인연이 되고 두 사람은 자연스레 사랑에 빠진다. 두 사람은 그저 사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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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0th BIFF 데일리] 권태에 물들다
  • 감독 프랑수아 오종 주연 벤자민 브아장, 레베카 마더, 피에르 로탱, 스완 아를로 프로그램 노트 프랑수아 오종은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1942)을 각색해 흑백의 아름다운 영상미로 1950년대 알제리를 섬세하게 재현한다. 카뮈가 그려낸 태양 아래 짓눌린 해변은—현실이자 은유의 공간인 그 불안한 세계—오종의 유려한 미장센으로 스크린에 되살아난다. 바로 그 해변에서 주인공 뫼르소는 명확한 이유 없이 한 아랍 청년을 향해 방아쇠를 당긴다. 프랑스 영화계의 젊은 스타 벵자맹 부아쟁은 자의식 없이 행동하고 자신의 행위조차 남의 일처럼 받아들이는 ‘이방인’ 뫼르소를 완벽하게 소화해 낸다. 카뮈 소설의 그 유명한 첫 문장 “오늘 엄마가 죽었다. 어쩌면 어제였는지도.” 대신, “아랍인 하나를 죽였다.”라는 주인공의 독백으로 시작하는 오종의 인상적인 각색은 관객을 어두웠던 프랑스 식민지 시대로 단번에 이끈다.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는 사실이 아랍인을 살해한 것보다 더 큰 죄로 여겨졌던 그 시대로. 오종은 그 모순된 도덕의 세계를 냉정하게 응시하며 ‘부조리’의 본질을 그만의 시각으로 조명한다. (서승희) 영화 <이방인>은 감독 프랑수아 오종의 시선으로 재해석한 카뮈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어머니의 죽음을 묘사하는 덤덤한 서술과 달리 그의 영화에서 청년 ‘뫼르소’는 한 아랍인을 죽였다 말하며 다른 시각의 전개를 예고한다. 흑백의 대비로 배경을 보다 뛰어나게 묘사한 오종은 1950년대 프랑스인과 알제리 현지 사람들의 첨예한 사회적 대립을 묘사함과 동시에 그 부조리를 포착한다. 청년 ‘뫼르소’는 오종의 지난작 <썸머85>에서 한층 싱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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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0th BIFF 데일리] 추락했던 그 모든 순간들을 기억하며
  • 감독 마샤 쉴린스키 주연 한나 헥트, 레아 드린다, 수잔 웨스트 프로그램 노트 칸영화제 심사위원상에 빛나는, 실로 야심 찬 작품이다. 전작에서 이혼한 부모를 주시하는 소녀의 내면을 관찰했던 실린스키는 작정하고 네 세대의 소녀를 불러낸다. 그들은 세기에 걸쳐 다른 시간을 살면서도 같은 공간에 머무는데, 그들의 곁을 지배하는 건 죽음의 기운이다. 각 시간은 정교하게 맞물리며 그들의 관계를 아주 느리게 밝혀내고, 소녀들은 타인 및 바깥 세계를 예민하게 감지한다. 유령, 죽은 자와 함께 걷는 게 삶이라면, 싱그러운 아이들은 어떻게 현실의 강을 헤엄쳐 건널까. 미세한 틈으로 인물을 바라보라는 듯이, 인물은 4:3의 좁은 화면 속 또 다른 공간에 갇히기 일쑤이고, 액자 속에 고립된 인물과 반대로 카메라는 공기처럼 자유롭게 유영한다. 이에 더해, 사운드와 조명은 세공품을 다루듯 탁월하게 설계되었다. 가히 올해의 아트하우스로 꼽기에 모자람이 없는 작품이다. (이용철) 태초에 기억은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을까. 무언가를 봄으로 존재했던 것이 아닐까. 영화 <사운드 오브 폴링>은 아주 명백하게 응시에 대해 말한다. 관객과 묵묵히 눈을 맞추는 세 세대의 여성들은 무언가를 보고있노라고 말한다. 감독 마샤 쉴린스키의 카메라는 유령과도 같은 시선으로 영화의 주무대가 된 마당 딸린 집과 강을 오가며 그곳에 필시 존재했던 어떤 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시적으로 선보인다. 특히 세대를 대표하는 여성들은 부유하는 유렁인 카메라를, 그 너머에 있는 관객을 응시하며 자신이 누군가의 추락을 보았다고 말한다. 무언가를 봄으로 우리는 행위의 증인이 된다. 그 행위의 증인들은 같은 공간에 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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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미야케 쇼, 2022)에 관한 단상
  • 우리는 감각하고 그녀는 투쟁한다 미야케 쇼 영화를 보고 난 뒤의 감흥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따뜻하다”일 것이다. 후끈한 열기라기보단 딱 체온 정도의 따스함. 세상을 향한 의심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을 때, 마음의 온도가 식었을 때라면 혹은 그런 누군가를 만난다면 미야케 쇼의 영화를 찾고 싶어진다.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은 필자가 본 미야케 쇼의 영화 3편(<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 <새벽의 모든>) 중 가장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을 보는 내내 ‘케이코’(키시이 유키노 분)의 투쟁을 지켜보면서도 스크린이 그 생동감 넘치는 세계의 따뜻한 온기를 관객에게 실어 나른다는 느낌이 들었다. 감각: 흐르는 이미지와 부산한 사운드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은 극장에서 흔히 접하게 되는 영화들과는 상당히 다르다. 청각장애인 복서의 드라마를 따라가지 않는 이야기, 관객은 영화의 러닝타임 동안 다루는 영화 속 시간의 케이코만 만날 수 있을 뿐 그녀의 전사에 대해 전혀 알 수가 없다. 게다가 카메라는 필요 이상으로 케이코에게 다가가려 하지도 않고, 때론 그녀의 아주 개인적인 부분엔 전혀 관심이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케이코를 계속 지켜보지만, 그녀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는 읽을 수가 없다. 이야기 자체도 그렇지만, 이미지와 사운드 측면에서도 다르다. 작품의 배경은 분명 도쿄다. 그러나, 우리가 ‘도쿄’라고 하면 흔히 떠올리는 번화가의 이미지가-이를테면 시부야의 스크램블 교차로 같은- 아니라 케이코가 냄새난다고 했던 강변과 평범한 골목길, 세월의 흔적이 가득 묻은 복싱 체육관이 주 무대다. 16mm 필름의 따뜻하고 생생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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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끼리는 그곳에, 나는 이곳에.
  • 대구를 떠나 부산으로 진학했을 때가 떠오른다. 주변 친구나 선생님들, 심지어 진학에 크게 압박을 주지 않으셨던 부모님조차 의아해했던 결정. 나는 새로운 경험에 대한 갈망이라는 멋들어진 이름을 내새웠지만 돌이켜보면 도피였다. 웃긴 점은 특정한 환경 때문에 벗어나려고 했던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고향에서도 힘든 일은 딱히 없었다. 다만 여기를 벗어나면 조금은 더 성장하리라는 막연한 생각이 있었다. 언제나 그렇듯 막연한 생각은 충동으로 번지고, 이내 나를 먼 곳을 가게 했다. 물론 후회는 없다. 부산에서 새로운 인연과 사건들이 끊임없이 지나쳤다. 그러는 동안 자연스레 잊고 있던 그때의 기대도 어느정도 충족되었다. 하지만 문득 궁금해진다. 나는 왜 대구를 벗어나려 했을까. 그곳에서도 인연과 사건들은 충분하다 못해 계속 재생산되지 않는가. <코끼리는 그곳에 있어>의 주인공은 4명이다. 이들은 각자 사연을 품고 있다. 친구를 우발적으로 죽였다거나, 원조교재 사실이 학교에 퍼졌다거나, 요양원에 끌려가게 생겼다거나, 자신의 잘못으로 친구가 눈 앞에서 투신자살을 하는 등. 누구도 쉽게 견딜 수 없는 상황을 지극히 보통의 사람들이 짊어진다. 사회는 더욱 잔인하다. 사회는 보통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일부의 대가를 치루면서 형성된다고 한다. 하지만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의미 없는 논의처럼 사회는 사람보다 서순이 앞서는 건 물론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할 때가 있다. 복지로 사람의 인생이 긍정적으로 바뀔 수도 있는 반면 큰 대가를 요구하지만 울타리는 쇠창살에 가까운 부조리한 사회도 있다. 영화의 감독 후보가 묘사하는 중국 사회는 후자에 가깝다. 이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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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삶이 내게 꽃을 내밀 때
  • DIRECTOR. 마이크 리 CAST. 마리안 장 밥티스트, 미셸 오스틴 외 SYNOPSIS.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누구에게나 할 말 다 하는 '팬지'. 집, 길거리, 마트... 그녀가 가는 곳에는 언제나 트러블이 생긴다. 그런 그녀를 유일하게 보듬는 사람은 여동생 '샨텔'뿐, 남편과 아들은 귀를 닫은 듯 그저 무심할 뿐이다. '어머니의 날'을 맞아 '팬지'와 '샨텔'의 가족이 모두 모인 자리, '팬지'가 무슨 말을 할지 조마조마하던 가족은 그녀의 뜻밖의 반응에 당황하는데... POINT. ✔️ 70년대부터 꾸준히 영화를 만들어 온 거장 마이크 리 감독의 컴백입니다. ✔️ 특히 <비밀과 거짓말>을 함께한 명배우, 마리안 장 밥티스트와의 조우! 마리안 장 밥티스트의 연기가 너무 훌륭합니다. 연기를 통해 팬지의 얼굴에서 그 어린 시절부터 현재까지를 다 가늠해 보게 만듭니다. 역시나 여우주연상을 휩쓸었네요. ✔️ 보고 나면 세상에 친절한 마음으로 꽃 한 송이를 내밀고 싶어지는 영화 ✔️ 특히 K-장녀들에게는 꽃을 다발로 주고 싶어지는 영화... ✔️ 가족 상담 사이코드라마로 써 보면 좋겠다는 생각도 (비전공자 비전문가 주제에) 해보았습니다. 당신은 팬지의 가족 중 누구에게 가장 마음이 가나요? 당신을 화나게 혹은 슬프게 하는 인물이 있나요? 그렇다면 이유는 무엇인가요? #1. 가족 상담의 사이코드라마 이 영화는 러닝타임의 상당 시간을 할애애 팬지가 세상을 어떻게 대하는지 보여준다. 방을 지저분하게 해 놓은 아들에게, 남편에게, 마트에서 장 보다 마주친 여자에게, 치과 의사에게... 팬지가 세상을 대하는 방식은 대개 고슴도치 같다. 팬지는 신랄한 말투로 공격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도끼날처럼 떨어지는 말을 가만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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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낭만의 시대, 낭만의 밴드
  • *본 리뷰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 <슈퍼소닉>은 영국 밴드 오아시스의 무명 시절부터 그 발자취를 따라간다. 밴드의 결성 이야기부터, 1996년 무려 25만명의 관객이 모였던 전설적인 넵워스 공연까지의 3년간의 기록을 담아낸다. 갤러거 형제를 어느 정도 안다고 생각했지만, 텍스트로만 단편적으로 접했던 이야기를 실제 영상으로 확인하는 건 사뭇 다른 경험이었다. 두 사람의 목소리로 무대 밖 행적을 시간 순서대로 따라가다 보니 '리암 갤러거'와 '노엘 갤러거'라는 사람을 훨씬 더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영화에는 반가운 오아시스 원년 밴드 멤버들도 함께 등장한다. 저마다의 시각으로 풀어낸 이야기는 오아시스라는 밴드를 한층 더 깊이 알아갈 수 있게끔 돕는다. 특히 요즘엔 보기 드문 저화질 캠코더 영상을 기반으로, 콜라주처럼 구성된 짤막한 애니메이션, 시점을 넘나드는 가족과 관계자들의 인터뷰 등이 계속해서 교차하는 연출이 흥미로웠다. 다양한 방식이 뒤섞이면서 서로를 보완하는 형태로 영화는 지루할 틈 없이 다채롭게 흘러간다. 여기에 갤러거 형제들의 쉴 새 없이 터져나오는 욕설이 더해지면서 영화는 오히려 활력을 얻는듯하다. 다큐멘터리는 밴드의 시작부터 그 과정을 생생히 보여준다. 오아시스는 우연한 기회로 유명 레이블 사장인 앨런 맥기의 선택을 받게 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되는데, 어찌 보면 이들이 운이 좋았다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배경에는 리암과 노엘의 노력이 있었다. 방탕한 생활을 이어가던 리암이 음악을 하기로 결심하고 음악에 엄청나게 몰두하는 모습은 가히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알고 보니 노엘은 내 생각보다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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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촉각으로 그려낸 고독의 세계
  • 두 소년이 함께 춤을 춘다. 주인공 치히로와 그의 친구 나오야가 함께 추는 춤. 이들의 춤은 일반적인 것과는 다르다. 정형화되지 않은 이들의 몸짓. 여기서 중요한 것은 ‘비접촉’이다. 선생은 말한다. “움직이지 말고 파트너가 움직이게 하라”. 두 사람은 언어를 사용하지도 몸을 맞대지도 않고 서로간의 호흡을 맞춰나간다. 그들의 춤만이 비접촉을 전제로 한 것은 아니다. 영화의 주요 인물들은 대체로 접촉을 기피한다. 특히 주인공 치히로가 그렇다. 아버지를 잃고 이복형에게 맡겨진 치히로. 치히로는 형의 손장난조차 피하는 인물이다. 나오야와 함께 추는 춤으로 단련된 탓일까. 치히로는 비접촉에 능하다. 나오야의 여자친구 또한 나오야의 손길을 거부한다. 나오야는 평소와 같이 친밀함을 표하는 손길을 내밀지만, 이별을 결심한 그녀에게 그 손길은 불편한 침범이다. 원한다면 그녀가 원하는 거리를 지켜서라도 곁에 머물고 싶다는 나오야를 두고 그녀는 떠나간다. 그러나 실은 두 사람도 접촉을 원하는 인물들로 보인다. 영화의 중간 중간 치히로는 아스팔트 거리에 얼굴을 맞댄다. <아사코>의 한 장면이 스쳐간다. 아사코와 바쿠는 도로 한복판에 누워 손을 잡고 서로를 바라본다. 두 사람에겐 서로가 있다. 그러나 치히로는 혼자다. 그래서 치히로는 손을 잡은 상대를 바라보는 대신 바닥에 안기듯 온몸을 접촉시킨다. 접촉을 기피하는 치히로의 기질은 이별에 대한 불안 때문인 것으로 유추된다. 이복형과 그의 여자친구와 함께 사는 치히로는 자신이 당신들의 짐이 되는 것이 아니냐 직접적으로 묻기도 한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갑자기 혼자가 된 치히로는 또다른 이별을 두려워한다.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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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룻밤의 시간이 전하는 아날로그 방식의 사랑
  • 영화 <비포 선라이즈>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 에단 호크, 줄리 델피 주연 오스트리아 빈으로 향하던 기차 안에서 우연히 만난 제시와 셀린. 알 수 없는 감정에 끌린 두 사람은 아무런 일정도 없이 기차에서 하차한다. 그리고 단 하루, 꿈 같은 시간을 보내게 되는데... "난 우리가 지금 마치 꿈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아." 짧은 하루의 우연은 영원이 된다. <비포 선라이즈> 속, 파리로 향하고 있던 학생 셀린이 대뜸 말을 건 옆자리 남자, 제임스(제시)를 따라 파리에 도착하기도 전에 기차에서 내린 이유는 단순하다. 그 순간, 제시에게 이끌렸기 때문에. 호텔 숙박비도 없이 하루 동안 거리 곳곳을 오가면서 그들에게 벌어지는 사건은 딱히 스펙타클하지 않다. 갑자기 지갑을 도난당한다거나, 마약 밀매 사건에 휘말린다거나, 살인 사건의 목격자가 된다거나, 그런 '영화 같은' 사건은 없다. 이들은 오로지 서로를 바라보며 대화할 뿐이다. 나이 든 노파와 같은 셀린과, 열세 살 꼬마와 같은 제시가. 그럼에도 우리는 이 영화 속 사랑이 정말 영화 같다고, 그리고 운명 같다고 느낀다. 제시는 셀린을, 셀린은 제시를 완전히 알지 못한다. 이들이 아는 건 이들이 각자 털어놓은 '이 순간'의 정보들 뿐. 그리고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감정에 이끌려 충동적으로, 그리고 꽤나 대담하게 행동한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서, 나 또한 잘 모르는 이곳에서. 순간 '함께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내 감정을 이끈 상대와 함께. 와인잔을 몰래 가져오고, 앉아 있다 손금 점을 보고, 타인을 대하는 태도를 두고 이야기하고, 서로의 옛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고. 커다란 사건 없이도, 그리고 상세한 정보 없이도 그들은 '지금 이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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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위기의 영화
  • 조희영의 영화에는 분위기가 있다. 배경은 길거리일 때가 많고, 인물들은 계속 대화를 나눈다. 또 그들은 자주 걷는다. 미장센은 적당히 세련되어서 감독에게 특유의 미감이 있다는 짐작을 가능케 한다. 극에는 줄거리가 있다. 하지만 영화를 감상하는 데 결정적인 요소는 아니라는 느낌이 자꾸만 든다. 그래서 미세한 감정과 은은한 대화의 흐름, 다소 불친절하게 느껴지는 이야기 설명 속에서 종종 길을 잃더라도 크게 불안하지는 않다. 이 영화에 그보다 중요한 무언가가 있다는 생각 혹은 느낌이 자연스레 솟아서다.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차분한 호흡과 정돈된 미감이 주는 영화의 안정감에 땀 흘리는 순간, 생활의 순간, 노동의 순간이 부재해서다. 의도적인지 무의식적인지는 모르겠으나, 영화 속 인물들은 일하는 중이거나 일에 대한 대화를 나누는 순간에도 명상하듯, 산책하듯 연기한다. 그래서 조희영의 영화 속 인물들은 언제나 조금씩은 붕 떠 있는 것만 같다. 구체가 아닌 추상의 세계로 초대받는 느낌이다. 그래서인지 〈이어지는 땅〉에 이어 홀린 듯 끌려가면서도 조금은 거리를 두며 영화에 들어갔다. 멀리서 흘긋거리며, 끈에 묶여 허공을 날아다니는 느낌으로. 영화에는 정호와 관계 맺은 세 여자가 있다. 먼저 수진. 그림을 그리는 그녀는 정호의 애인이지만 현재 자기가 책 표지 그림을 그려준 시인과도 만나는 중이다. 마찬가지로 예술가인 인주는 병원에서 의사에게 어쩌면 심각한 병일 수도 있다는 말을 듣고 정호를 향한 마음을 표현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여러 캐스팅에 도전 중인 배우 유정은 정호의 전 애인이다. 유정에게는 그녀와의 결혼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애인이 있는데, 두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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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든 걸 주었지만 끝내 하늘에 닿지 못한 생에 대하여
  •  과거 찰리 채플린의 영화들에는 물론 코미디가 주되지만, 그 안의 미묘한 슬픔과 비애도 엿볼 수 있다는 말을 들은 적 있다. 특히 영화 <모던타임즈>를 관람하면 이를 더 느낄 수 있다고 했다. 찰리 채플린의 분장을 떠올려본다면 우리가 왜 그의 유머에도 슬픔을 발견할 수 있는지 깨닫는다.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 표정 그리고 축 처진 눈과 입은 광대를 모티프로 삼은 캐릭터라기엔 '광대스러움'이 묻어있지 않다.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작품 <행복의 눈물>을 생각한다. 분명 웃는 듯한 그녀의 눈망울엔 눈물이 고이다 못해 한 방울 떨어지고 노란색과 붉은색으로 가득한 전체 배경에 눈물의 푸른색은 대비되어 알 수 없는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이렇듯 전체 배경의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 전체 속 무언가의 존재는 생각거리를 제공한다. 특히 배경이 행복과 환희에 가득 차 있는 반면 슬픔과 비극이 서려 있다면 그 효과는 배가 된다. 영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은 각종 빛과 환희, 사랑과 환락이 넘치는 세계관을 보여주는 것 같지만 사실상 이야기하는 것은 그런 세계관 속 비극이다. 비극을 조명하면서 단 한 번도 허락되지 않는 희망에 집중한다. 인생에 있어 희망과 빛이 얼마나 모순적인지를 말한다. 인생에 있어 중요한 것은 선택이라고 흔히 생각하지만, 선택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바로 선택할 수 없는 필연(必然)이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영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에는 유달리 빛이 많은 것처럼 보인다. 보통의 작품들은 관객의 눈 피로감을 위해 빛의 양을 설정하거나 조명하고자 하는 부위에만 빛을 쬐는 등 조절한다. 그러나 영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은 해가 뜬 오전이나 오후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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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머티리얼리스트> 사랑이 사라져 가는 현실에서
  • 순수한 사랑에 대한 낭만은 멸종해 버렸다. 사람들은 더는 사랑의 애정과 열정을 순수하게 바라보지 않는다. 2000년대 초 같은 로맨스 코미디 영화를 요즘 극장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사랑 노래도 자기 성장보다 연애를 우선시하는 세상 물정 모르는 낭만 서사가 되었다. 사랑에 대한 낭만은 한심한 환상 따위로 치부되는 현재가 도래해버리고 말았다. 나이를 먹으며 주변 사람들은 점차 앞으로 다가올 연애에 조건, 배경을 따지기 시작했다. ‘나 정도면 이 정도 조건의 사람을 만나고 싶어.’ ‘결혼하려면 이런 배경의 사람이면 좋겠어.’ 이렇게 사랑에 조건이 더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어른의 현실인 걸까? 순수한 사랑은 어린아이의 상상에 불과할까? 이런 고민이 한참이던 때, 셀린 송 감독이 영화 <머티리얼리스트 Materialists>를 들고 나타났다. 지난해,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 Past Lives>(2024)를 선보임으로써 ‘사랑’으로부터 헤어 나올 수 없게 만들었던 셀린 송 감독이 이번에는 <머티리얼리스트>를 가지고 나타났다. 지난 영화는 과거의 아련히 반짝이던 사랑에 대한 향수를 갖게 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를 과거로써 빛나는 채 남겨둘 수 있게 해 주었다. 이번 영화는 오늘날 현대인이 마음속 깊이 품고 있던 사랑에 대한 욕망에 질문을 던지고 있다. ※ 본 콘텐츠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 <머티리얼리스트>의 한국판 포스터와 주인공 루시 (C) 소니픽처스코리아 영화 <머티리얼리스트>는 뉴욕의 잘 나가는 중매 회사 커플매니저인 주인공 루시(다코타 존슨)가 동시에 나타난 두 남자 사이에서 갖게 되는 고민을 그린다. 한 남자는 연봉도 높고, 키도 크고 잘생긴 해리(페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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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밀의 언덕에 묻어든 솔직한 성장통
  • 비밀의 언덕에 묻어든 솔직한 성장통 영화 <비밀의 언덕> 리뷰 감독] 이지은 출연] 문승아, 임선우, 장선, 강길우, 장재희 시놉시스] 초등학교 5학년 반장인 명은은 시장에서 젓갈을 파는 부모가 부끄러워 자신의 집안 내력을 숨기며 친구들에게 사랑받기를 갈망하는 예민한 소녀이다. 글짓기 대회에서 예상치 못한 인정을 받지만, 거짓말은 점차 꼬리에 꼬리를 물어 일이 커지고 만다. 그러던 중 전학 온 솔직한 쌍둥이 자매와의 만남은 명은의 내면을 흔들며 자신의 비밀과 마주할 용기를 불러일으킨다. #스포일러 유의# 거짓말 속에 숨은 유년의 불안과 성장의 그림자 영화 비밀의 언덕은 초등학생 명은의 시선을 통해 유년기의 불안정한 자의식을 매우 사실적으로 포착해낸 작품이다. 누구나 어린 시절 스스로를 조금 더 멋지게 보이고 싶은 마음에 작은 거짓말을 하곤 하는데, 영화는 바로 그 ‘작은 거짓말’이 어떻게 눈덩이처럼 커지며 아이를 압박하는지 집요하게 따라간다. 명은은 시장에서 장사하는 부모가 창피해 친구들 앞에서 사실을 숨기고, 결국 존재하지 않는 ‘완벽한 집안’을 꾸민다. 그러나 이 거짓은 일시적인 안도감을 줄 뿐, 점점 자신을 옥죄는 굴레가 되어 돌아온다. 관객은 명은의 불안과 고립, 그리고 들킬까 두려워하는 긴장감을 통해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된다. 학창 시절,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스스로를 포장하거나 감추려 했던 순간들을 떠올리게 된다. 이처럼 작품은 특정 세대의 이야기를 넘어, 성장 과정에서 누구나 겪는 ‘있는 그대로의 나와 타인의 기대 사이의 간극’을 날카롭게 드러낸다. 그래서 명은의 거짓말은 단순한 잘못이 아니라, 어린아이가 불안과 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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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Trailers

Awesome trailers from cinLab
    • 영화 <굿뉴스> 공식 예고편
    • 1970년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납치된 비행기를 착륙시키고자 한 자리에 모인 사람들의 수상한 작전을 그린 영화 넷플릭스 영화 《굿뉴스》 10월 17일, 오직 넷플릭스에서 #넷플릭스 #굿뉴스 #GoodNews
    • 영화 <주토피아 2> 메인 예고편
    • 2배 더 넓고, 다채로워진 주토피아! 그곳에서 더 짜릿하고 거대해진 사건을 만난다! [주토피아 2] 메인 예고편 공개 11월, 극장에서 만나요💙 [주토피아 2] 11월 극장 대개봉 #디즈니 #주토피아2 #Zootopia2 #11월극장대개봉
    • 영화 <마작> 메인 예고편
    • 잠들지 않는 도시 위태롭게 흔들리는 청춘들✧˚ ༘ ⋆。 ˚ 대만 뉴웨이브 거장 에드워드 양 감독의 마지막 정수 [마작] 메인 예고편🎞️ 𝟚𝟘𝟚𝟝.𝟙𝟘.𝟙𝟝 🀄️ #에드워드양 #마작 #신타이베이 #장첸 #가우륜 #비르지니르도엥 #당종성 #10월영화 #10월15일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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